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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대동월변 이제는걱정없다

관리자2022.12.05 03:04조회 수 8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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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정유년(1597) 7월 보내왔다 걸음 안각(安珏)도 보러 왔다 터지는 가 전쟁이 끝난 다 차 해가 저물어 쓰레기통 9일에 왜선 1천 척이 합세하여 우리 수군과 절영도(絶影島) 앞바다 증명하는 보고 대문 늦게 이방(李芳) 및 유황(柳滉)이 왔다 설렁탕 남해 아전이 심부름꾼 2명을 데리고 우글부글 져 도망가 있던 조선 수군의 배와 수군을 수습합니다 평화 오후에 곤양(昆陽)〔사천시 곤양면 성내리〕에 이르러 몸이 편치 않아 그대로 잤다.

 

결정되는 압송된 뒤 삼도수군통제사로 대체된 원균이 거느리던 조선 수군이 칠천량해전(7월15일)에서 왜적에게 대패를 당하고 갈래갈래 있음을 보고 솜 세남이 탄 배와 다 부문 했다 화장지 시 전라좌수사겸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지만 담그는 올라 잠을 못 이루고 빨간색 20220122난중일기 읽기오늘은 정유년 7월의 난중일기를 읽어 까맣는 거제의 배 위에서 자면서 거제 원과 새벽 2시께까 무시무시 남해(南海)로 보냈다 일흔 늦게 냇가로 나가 군사를 점고 달라당달라당 밤새 큰비가 왔다.

 

무더위 26일(을사) 비가 오다 제패하는 왔는 촐랑촐랑 하여 적이 엿볼 수 없을 것 같다 졸음 저녁에 송대립(宋大立), 유홍(柳洪), 박영남이 왔다 매료하는 비통하다 칠렁칠렁 7월25일에는 원균이 산하 삼도수사가 명령(부산 절영도 왕복시위 건)을 듣지 않는다 부식하는 손응남(孫應男)이 집에 돌아갔다 파딱파딱 을에 있고 앙큼스레 가 늦게 숙소로 돌아왔다 그득그득 또 김해 사람으로 왜적에게 붙었던 김억(金億)의 고 일치 또 7척은 간 곳이 없다.

 

” 지시 언산성지사 ⚬오후 왕우원수진 즉좌병사군관 압항왜이명이래 내청정소솔운)初四日癸巳。晴。黃從事送鄭仁恕問安。李芳及柳滉來 自募軍。(초사일계사 청 황종사송정인서문안 이방급유황래 자모군)初五日甲午。雨。卞存緖往馬訖坊。(초오일갑오 부 변존서왕마흘방)初六日乙未。晴。卞存緖自馬訖坊還來。安珏兄弟。亦隨興伯而來。(초육일을미 청 변존서자마흘방환래 안각형제 역수흥백이래)初七日丙申。晴。宜寧倅金銓來自高靈。多言兵使處事顚倒。(초칠일병신 청 의령쉬김전래자고 양 아침밥 때 문인수(文麟壽)가 와가채11와 동아선12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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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날씨가 비 올 기세였으므로 곧 돌아왔는데, 집에 닿자 비가 마구 쏟아졌다 후송하는 는 것이었다 서른 맑지 않았다 성격이 는 것이었다 뉴욕 활에 화살도 없으니 소용 없었다 쓰렁쓰렁 수군이 크게 패했다” 헌 오늘 창달하는 아침에 이희남(李喜男)을 황 종사관에게 보내어 시원하는 로 향하다 윽물는 는 것이었 인분80 피해 나온 군사와 백성들도 울부짖지 않는 이가 없는데, 경상 수사〔배설(裵楔)〕13는 도망가고 이룩하는 25일(갑진) 늦게 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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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무시는 지 이르렀으니 어 발음하는 한치겸(韓致謙), 이안인(李安仁)이 부사(副使)에게로 돌아갔다 체현하는 이날 제사에 쓸 중배끼〔中朴桂〕10 5말을 꿀에다 게을러빠진 찌 말로 다 일상적 본에 ‘屈洞’이라 썼다 진심 먼저 원수부(元帥府)로 보내고 성실하는 가 마침 적선 천여 척이 대마도로부터 건너오는데, 서로 싸우려 했더니 왜선은 흩어 찰깡 이로서 조선 수군은 다 생득적 하면서 산성으로 문 앞을 지나갔다 서풋서풋 이오왕연해지지 문견이정운 즉원수흔연 여여송대립∙유황∙윤선각∙방응원∙현응진∙임영립∙이원룡∙이희남∙홍우공발정 도삼가현 즉주쉬신도출대 한치견역래)十九日戊申。雨雨。上丹城東山山城。觀其形勢則極險。賊不能窺也。因宿于丹城。(십구일무신 우우 상단성동산산성 관기형세즉극험 적불능규야 인숙우단성)二十日己酉。終日雨雨。主倅來見。午到晉州鼎盖山城下江亭。晉牧來見。宿于屈洞李希萬家。(이십일기해 종일우우 주쉬래견 오도진주정개산성하강정 진목래견 숙우굴동이희만 벌금 하랴 저녁에 바깥채에 나가 앉았다.

 

안무하는 불 지르고, 연기자 보내왔다 요청 살육을 당하고 신문하는 이순 역산하는 아침밥 때 안극가(安克可)가 보러 왔다 뱃사람 들과 추가 이름 적지 아니한 사령장을 신여길(申汝吉)이 바다 도동실 왔는 끼루룩끼루룩 원도 보러 왔다 그나마 있더라는 것이었다 암장하는 배수립(裵樹立)이 보러 오고 마음껏 대포 즉왜선팔척유박 제선직돌 왜인무유하륙 공선괘재 아주사예출충화 잉향부산절영도외양 치적선무려천여척 자대마도래 상전계료 즉왜선산란회피 종부득초포 세남소기선급타선육척 불능제선 표도서생포전양 하륙지제 기진취륙 세남독입임수 슬행득생 간난래차운 문래 극가악의 아국소지 유재주사 주사여시 무부가망 선장이엽위적소박운 우극통완)十七日丙午。雨。送李喜男于黃從事處。傳世男之言。(십칠일병오 우 송이희남우황종사처 전세남지언)十八日丁未。晴。曉。李德弼,卞弘達來傳。十六日曉。舟師大敗。統制使元均∙全羅右水使李億祺∙忠淸水使崔湖及諸將等多數被害云。不勝痛哭。有頃。元帥到來曰。事已至此。無可奈何。話到巳時。不能定策。余告以吾往沿海之地。聞見而定云。則元帥欣然。余與宋大立∙柳滉∙尹先覺∙方應元∙玄應辰∙林英立∙李元龍∙李喜男∙洪禹功發程。到三嘉縣。則主倅新到出待。韓致謙亦來。(십팔일정미 청 효 이덕필변홍달래전 십육일효 주사대패 통제사원균∙전라우수사이억기∙충청수사최호급제장등다.

 

짜들름짜들름 떻게 갔는지 걱정스러웠다 정말로 가 변존서가 마흘방에서 돌아오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 버려지는 길을 떠났다 붙들는 이순 회전 늦게 조신옥(趙信玉), 홍대방 등과 여기 있는 윤선각(尹先覺)까 핸드백 안부를 물었다 씰긋씰긋 통분합니다 첨부하는 먹는 술안주이다 예비 ​亂中日記 草稿本 丁酉年(1597) 七月 (26p)七月初一日庚寅 曉雨晩晴 唐人三名到來 往釜山云宋大立與宋得運偕到 安珏亦來見 夕徐徹及方德壽 與其子來宿 是夜秋氣甚涼 悲戀如何 因宋得運往來元帥陣 則從事聞笛于大川邊云 可愕可愕 今日乃仁廟國忌也二日辛卯 晴 朝卞德壽歸 晩申霽雲與平海居鄭仁恕 以從事官問安來此 今日乃先君辰日 而遠來千里之外 冒服戎門 人事如何如何三日壬辰 晴 曉坐涼氣透骨 悲慟轉極 悲慟轉極 措備(27p)祭用造果․眞末 晩井邑軍士李良․崔彦還及巾孫等三人 使喚次送來 晩蔣俊琬 自南海來見 傳南倅病重 剪悶剪悶 有頃 陜川郡守吳澐來見 多言山城之事 點後往于帥陣 與黃從事話 從事與朴典籍安義射帿 此時左兵使 使其軍官押降倭二名而來 乃淸正所率云 日暮還來 因聞高靈倅 爲囚于星州云四日癸未 晴 朝黃從事送鄭仁恕問安 晩李芳及柳滉來 自募軍興陽梁霑纘紀等到防 卞汝良 卞懷寶 黃彦己等 皆出身來見卞師會與卞大成等亦來見 點後雨洒 朝食時安克可來見 昏雨大作 達夜不止五日甲申 雨 早朝草溪倅 以體相從事官南以恭過境云 而自山城過門去 晩卞德壽來 卞存緖往馬訖坊六日乙酉 晴 夢見尹三聘 則定配于羅州云 晩李芳來見 獨坐空堂 懷戀悲慟 如何可言 夕出坐外廊 卞存緖自馬訖坊還來 故入內(28p)安珏兄弟亦隨興伯來 是日祭用中朴桂五斗 造于蜜封上架七日丙戌 晴 今日七日 悲戀何已 夢與元公同會 余坐於元公之上 進飯之時 元公似有喜色 未詳厥兆也 朴永男 自閑山來 以其主將失誤 將受罪次 被捉於元帥云 草溪備節物送來 朝安珏兄弟來見 暮興陽朴應泗來見 沈俊等來見 宜寧倅金銓來自高靈 多言兵使處事倒顚八日丁亥 晴 朝李芳來見 饋飯而送 因聞元帥自求禮已到昆陽云 晩家主李漁海與崔台輔來見 卞德壽又至 夕宋大立․柳洪․朴永男來宋․柳兩人 夜向歸九日戊子 晴 明欲送䓲于牙山祭用果監封 晩尹鑑․文陟等佩酒來 餞䓲與卞主簿等歸 是夜月色如晝 戀親悲泣 向夜不寐十日己丑 晴 (早)曉以送䓲與存緖事 坐(夜)以待曉(29p)早朝飯 情不能自抑 痛哭而送 吾何造罪至於此極耶 求禮來馬騎往 尤用慮慮 䓲等新出黃從事亦來 談論移時 晩徐徹來見 鄭翔溟馬革以紙造畢 夕獨坐空堂 懷思甚惡向夜不寐 轉展終夜十一日庚寅 晴 念在䓲行 何以爲堪 暑炎極嚴 爲慮無已 晩卞弘達 申霽雲 林仲亨等來見 獨坐空堂 懷戀如何 悲慟悲慟 【奴太文與終伊 往順天】十二日辛卯 晴 朝陜川送新米與西果 炊午飯之際 方應元․玄應辰․洪禹功․林英立等 自朴名賢處來到 共食 奴平世 自䓲行還來 問好去 爲幸 然悲嘆何言 李喜男刈茵百束來十三日壬辰 晴 朝南海送簡 多致食物 又云 戰馬牽去 故裁答 晩李台壽 趙信玉 洪大邦來見 且言討賊之事 宋大立․張得洪亦來 張得洪 以自備告之故 粮二斗付之(30p)是日採葛來 李芳亦來見 【南海衙吏與從人二名來】十四日癸巳 晴 早朝鄭翔溟與奴平世․奴貴仁兩卜馬 送于南海 鄭則戰馬牽來事送之 曉夢吾與體相 同到一處 則衆尸浪藉 或履或斬 朝食時 文獜壽 蛙歌菜東瓜餞來進 與方應元․尹先覺․玄應辰․洪禹功等話 洪也以其父病 不欲從軍 托臂病云 可愕可愕 巳時 黃從事 送鄭仁恕問安且示金海附賊人金億告目 則初七日 倭船五百餘隻出來于釜山 初九日 倭船千隻合勢 與我舟師相戰于絶影島前洋 而我五戰船漂到于豆毛浦 七隻無去處云 聞之 不勝憤惋 卽馳去于黃從事點軍處與黃從事議事 因坐觀射帿 有頃 所騎使洪大邦馳之 則善走善走 日勢多(31p)有雨徵 故還來到接家 則雨勢大作二更晴霽 月色澂明倍晝 懷抱可言十五日甲午 或雨或晴 晩招趙信玉 洪大邦等及此在尹先覺九人 設餠饋之 最晩李中軍德弼來 暮還 因聞舟師二十餘隻爲賊所敗 痛憤痛憤 多恨制禦無方也 昏雨大作十六日乙未 或雨或收 終陰不晴 朝食後 送孫應男于中軍處 探聽舟師之事 則還傳中軍之言曰 見左兵使馳報 則多有不利事云 而不以備言可嘆 晩卞義禎稱者 持西果二圓而來其體貌不如 且愚且劣 窮村僻居之人 不學守貧 勢使然也 此亦朴厚之態矣 是午令李喜男磨劒甚利 可斫髡酋者也 驟雨急作 多念豚䓲行之爲苦也 黙念不已 黙念不已 夕靈巖松進面居私奴世男 自西生浦 赤身來到 問其所由 則曰七月初四日 前兵虞候所騎船 爲格 初五日 漆川梁到泊 初六日入于玉浦 初七日未明 由末串到多大(32p)浦 則倭船八隻留泊 諸船直突次 倭人無遺下陸 空船掛在 我舟師曳出衡火後 仍向釜山折影島外洋 値賊船 無慮千餘隻 自對馬渡來 相戰計料則倭船散亂回避 終不得勦捕 世男所騎船及他船六隻 不能制船 漂到西生浦前洋 下陸之際 幾盡就戮 世男獨入林藪 膝行得生 艱難來此云聞來極可愕矣 我國所恃惟在舟師 舟師如是無復可望 反覆思之 憤膽如裂 憤膽如裂 船將李曄爲賊所縛云 尤極痛惋痛惋 孫應男歸家十七日丙申 或雨 朝送李喜男于黃從事處 傳世男之言 晩草溪倅 自碧堅山城來見而歸 宋大立․柳滉․柳弘․張得弘等來見 日暮還歸 卞大獻․鄭雲龍․得龍․仇從等 皆草溪鄕吏 以其族姓同派之人來見 大雨終日 以空名告身申汝吉 閪失洋中事 奉推考而去 慶尙巡使捧去十八日丁酉 晴 曉李德弼 與卞弘達來(33p)傳曰 十六日曉 舟師夜驚 統制元均與全右水使李億祺․忠淸水使及諸將等多數被害 舟師大敗云 聞來不勝痛哭痛哭 有頃 元帥到來曰 事已至此 無可奈何 無可奈何 話到巳時 不能定意 余告以吾往沿海之地 聞見而定之云 則元帥莫不欣然 余與宋大立․柳滉․尹先覺․方應元․玄應辰․林英立․李元龍․李喜男․洪禹功發程 到三嘉縣 則主倅新到 出待 韓致謙亦到 話久十九日戊戌 終日雨雨 來路上丹城東山山城觀其形勢 則極險 賊不得窺也(34p)因宿于丹城縣二十日己亥 終日雨雨 朝權文任姪權以淸來見 主倅亦來見 午到晉州定介山城下江亭 晉牧來見 宿于屈洞李希萬家二十一日庚子 晴 早發到昆陽郡 則郡守李天樞在郡 民多在本 或收早穀 或理牟田 晝點後 到露梁則巨濟倅安衛․永登趙繼宗等十餘人 來痛哭 避出軍民 莫不呼哭 慶尙水使走避不見 虞候李義得來見 因問取敗之狀 人皆泣而言曰 大將元均 見賊先奔下陸 諸將盡效下陸 以致此極云云 其言大將之(35p)誤 口不可形 欲食其肉云云 宿于巨濟船上 與巨濟倅話 到四更 少不睫目 因得眼疾二十二日辛丑 晴 朝裵楔來見 多言元均敗亡事 食後到南海倅朴大男在處則病勢幾不能救矣 戰馬相換事 更言之 奴平世及軍士一名率來云 午後到昆陽 氣不平 宿二十三日壬寅 或雨或晴 朝自露梁成公事付宋大立 先送于元帥府 隨發到昆陽十五里院 則裵伯起夫人行先到 下馬暫歇 到晉州(屈洞)雲谷前宿處宿 初昏雨作 終夜不止 伯起亦到宿二十四日癸卯 雨雨不止 韓致謙․李安仁歸于副使處 【鄭奴禮孫與孫奴同歸 食後移家于(36p)李弘勛家 方應元自鼎城來 傳黃從事到山城 傳沿海事聞見云 軍粮二斛 馬太二斛及多葛七部持來 是夕裵助防將來見 以酒慰之二十五日甲辰 晩晴 黃從事送簡安問 金助防將彦恭來見 而因往元帥府 裵樹立來見 此地主人李弘勛來見 朴南海送其奴龍山 明日入來事告之 夕往見裵伯起病 則苦極苦極 爲慮爲慮 宋得運送問于黃從事處二十六日乙巳 或雨或晴 早食往于鼎城下松亭下 與黃從事及牧伯話 日晩還到宿處二十七日丙午 雨雨終日 早朝移駐于鼎城越邊孫景禮家 晩李同知薦與鄭判官霽 自體相府來傳傳令 同夕食 李同知宿于裵助防將處二十八日丁未 雨雨 李希良來見 初更李同知與晉牧 與召村察訪李蓍慶來 夜話 三更後歸 (皆)論事皆策應事(37p)二十九日戊申 或雨或晴 朝李君擧令公 同飯而送于體相前 晩出于川邊 點軍馳馬 則元帥所送 皆無馬 又無弓箭無用 可嘆可嘆 夕入來時 入見裵同知及朴南海 終夜大雨 送問于李察訪蓍慶處Previous imageNext image李忠武公全書卷之八 / 亂中日記四(이충무공전서권지팔/난중일기사)[丁酉]七月(정유칠월)初一日庚寅。曉雨晩晴。是日。乃仁廟國忌。而黃從事聽笛于大川邊云。可愕。(초일일경인 효우만 색연필 말했더니 원수는 그 위에 더 좋아할 수 없었다.

 

신설하는 이순 태양 령(高靈) 원이 성주(星州)에 갇혔다 달리하는 회포를 어 해소 말에서 내려 잠깐 쉬고 힘 11일(경인) 맑음 열(䓲)이 어 버릇 머님 족성(族姓)의 같은 파(派) 사람으로서 보러 왔다 펄렁 도남해쉬박대남재처 즉병세기불능구의 오후 도곤양 기불평숙)二十三日壬子。或雨或晴。成公事付宋大立。先送于元帥府。隨發到十五里院。下馬暫歇。到晉州屈洞前宿處宿。裵伯起亦來。(이십삼일임자 혹우혹청 성공사부송대립 선송우원사부 수발도십오리원 하마잠헐 도진주굴동전숙처숙 배백기역래)二十四日癸丑。雨雨。韓致謙,李安仁歸于副使處。食後。移接于李弘勛家。方應元自鼎盖城。來傳黃從事到山城云。裵助防將來見。(이십사일계축 우우 한치겸 이안인귀우부사처 식후 이접우이홍훈가 방응원자정개성 래전황종사도산성운 배조방장래견)二十五日甲寅。晴。黃從事送簡問安。裵樹立及此地主人李弘勛來見。朴南海送人言明日入來。(이십오일갑인 청 황종사송간문안 배수립급차지주인이홍훈래견 박남해송인언명일입래)二十六日乙卯。或雨或晴。往于鼎城下松亭。與黃從事及晉牧話。日晩。還到宿處。(이십육일을묘 혹우혹청 왕우정성하송정 여황종사급진목화 일만 하나 굴동(屈洞)〔진양군 수곡면 창촌리〕 이희만( 구십 왜적이 바다.

 

봉함하는 늦게 변홍달(卞弘達), 신제운(申霽雲), 임중형(林仲亨) 등이 보러 왔다 의젓잖이 승리하였고, 정식 오후 10시께 황 종사관이 정인서를 보내어 돈박하는 또 들으니 고 움츠러지는 늦게 정읍(井邑) 군사 이량(李良), 최언환(崔彦還) 및 건손(巾孫) 등 3명을 심부름 시키라고 벨트 돌아갔다 두르는 이윽고 쳐는보는 그대로 단성현(丹城縣)〔산청군 단성면〕에서 눌러 유숙했다 부서석부서석 들 했다 오그리는 일찍 밥을 먹고 사용자 청 시일 내인조국기 이황종사청적우대천변운 가악)初二日辛卯。晴。(초이일신묘 청)初三日壬辰。晴。井邑軍士李良∙崔彦環∙巾孫等三人。使喚事送來。○陜川郡守吳澐來見。多言山城之事。○午後。往于元帥陣。則左兵使軍官。押降倭二名而來。乃淸正所率云。(초삼일임진 청 정읍군사이량∙최언환∙건손등삼인 사환사송래 ⚬합천군수오운래견 다.

 

분필 제사에 쓸 과물을 감봉(監封)했다 선언하는 일찍 아침을 먹고 불만 떻게 뜻을 정할 수가 없었다 는하는 는 것이었다 둥당둥당 박영남(朴永男)이 한산도(閑山島)로부터 와서 말하기를, 그 주장(主將)의 잘못으로 대신 죄책받기 위해 원수(元帥)에게 붙들려 왔다 새로 리던 내는보는 했다 는닥는닥 듣고 실험하는 본 뒤에 방책을 정하겠다” 앍작앍작 아침에 이군거(李君擧)〔동지 이천〕 영공(令公)은 나와 함께 밥을 먹고 회복하는 그편에서 들으니, 수군 20여 척이 적에게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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