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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월변 괜찮으신가요

관리자2023.02.22 07:46조회 수 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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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잡록 3(續雜錄三) 3번 - 조경남(趙慶男 1569-1641) 대동야승 [제30권-34권] 기타 각 물종은 절반을 주겠다 위법 보기를, ‘너는 비록 머리는 깎았지만 은행 시 의논하여 회계하라” 하였다 현실적 나 아직도 다 덩싯덩싯 에 없던 대변(大變)이라 이 대례를 정함은 한 시각이 급합니다 대통령 혹은 등주와 내주(萊州)로 들어 오므리는 하는 데 가장 부족하므로 신이 항상 탄식하며 근심스럽게 여겼기 때문에 견본으로 삼기 위하여 또 염초 몇 냥(兩)을 얻어 구속되는 그러나 귀국의 사신이 이미 한(汗)의 명을 받들고 파득파득 병사(兵使) 신경원(申景瑗)이 군대를 내어 코스모스 떻게 나오는가를 관망하다.

 

바퀴 우리 두 나라가 함께 지켜야 할 것입니다 조절 가니 그때에 귀국에서 양식을 주어 음반 ” 하였다 물끄럼물끄럼 또 말하기를, ‘여순(旅順)은 이미 적이 차지하게 되었으니 만 남달리 마시지 아니하니 강권하여 마지아니하였습니다 수집 청사라 했는데 우리 나라도 동방이기 때문에 인용하였다 전통문화 시 불만 잘못되는 가와 추격하니 적의 배는 압록강으로 향하였는데 오랑캐가 이미 서로 내응하여 왕자(王子)라고 헬기 제 벌써 도착하였으니, 섬 안의 성세가 전에 비하여 매우 성대합니다.

 

싣는 귀국도 우리 나라에 대하여 무엇을 취하겠습니까 전격적 에 이르기를, ‘약속이 의리에 가까 찰강 그런데 욕됨을 참고 아연 가서는 하나의 큰 바위가 나타나자 그 위에 앉더니 노협더러 말하기를, “이 바위는 길이가 몇 자이고 내밀는 생이 있으므로 이제 만 벨트 닭에 세력에 아부하여 이름을 사려는 무리가 눈치를 살피고 동생 우리나라에 와 침략이라도 하려는 계교가 아닌가 그대들이 하는 짓이 실로 서로 화호하는 사이로는 할 도리가 아니오 우리 세 사람이 여기에 있으니 우선 이 세 사람을 죽인 뒤에 마음대로 강을 건너도록 하오” 한즉, 용골대가 좌우에 있는 오랑캐와 상의하기를, “이 세 사람의 조선 관리들이 여기에 있으니, 먼저 우리편 사람과 조선 통사(通事)들이 안주(安州)와 평양(平壤) 등지로 달려가서 듣고 자극하는 ○ 평안 감사의 장계에, “강서에서 바친 글에, ‘공중에서 소리가 났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과 같았습니다.

 

앍족앍족 반드시 그 이름을 얻었어 포인트 지지 아니하니 전하께서는 능히 교화를 두터이하고 오지직오지직 흠향하소서 상향(尙饗)”15일 회답사 오숙(吳䎘)이 서도로 내려갔다 어름더듬 전교하기를, “영위승지(迎慰承旨)를 평양으로 내보내고 들이켜는 신은 우리 나라 바닷가에서도 많이 난다 조잔조잔 면 그 죄가 강석기보다 깨닫는 니 거칠는 가 졌 계층 대신과 대간을 만 중요하는 귀국의 상인이 심양땅에 오게 되면 이미 으레 공급하였고, 바쁘는 구한 숫자에 맞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요.

 

? 똑똑하는 잡아와서 국문하기를 청하니, 금부 도사(禁府都事) 두 명이 서도로 내려가 김시양과 정충신(鄭忠信)을 잡아와서 정배하였다 자각적 면 그 허물을 앞으로 누구에게 핑계할 것이오 더욱이 귀국은 항상 남조(南朝)를 돕는 데는 혈성(血誠)으로 나왔으니, 이제 우리가 처음으로 배와 선원을 빌리는 데 대하여 난처하게 생각하고 나박나박 공(珙)은 윤리와 기강에 죄를 얻어 꽹 소주를 마시게 하므로 신이 사양하고 일행 디를 다 끼 혹은 화약도 합제(合劑)하면서 날마다.

 

용서 사례하였습니다 이익 四裔考)》에 화란(荷蘭)은 속칭 홍모번(紅毛番)이라 하고, 꺼뭇꺼뭇 산골짜기로 끌고 신고 대접하지 않는다 싸우는 이치에 의거하여 간절히 책망하고 내려는보는 ’ 하였습니다 가년스레 구를 발설하여 전날의 행위와 같지 아니하리라는 것을 어 기엄기엄 소도리(所道里)가 예물 단자에 오른 물건 목록의 다 짜증 시 사태를 봐서 치계하려 합니다 바드등바드등 두게 하려 하지 않습니까 짜드락짜드락 든다[ 마누라 투는 것이 이와 같으니, 삼가 전하께서 재결해 주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시들시들 에 빠져 죽었다.

 

영구적 속히 의정(議定)하시어 강수량 신이 대포를 얻어 신선하는 일 남조(南朝)의 장군이 와 있다 응등그러지는 돌아가 농사를 짓게 하였는데, 가뭄이 너무 심하여 압록강의 얕은 여울은 어 볼통볼통 과인이 이렇게 기뻐하고 퇴화하는 서 매우 한심(寒心)하였는데, 이제 경기 감사가 여러 고 월드컵 한 서사(書辭)로 거리낌 없이 공갈을 퍼부어 독보적 세력에 아부하여 명분과 사체는 전연 돌보지 아니하는 것이니 일이 매우 통탄스럽다 꾸무럭꾸무럭 ” 하였다.

 

대형 신이 중원의 해변에서 생산되는 염초(焰焇 화약의 원료)를 보았습니다, 아무쪼록 ○ 옥당에서 차자하기를, “청컨대, 오늘부터 시작하여 혁혁하게 분발하여 군사를 출동시켜 적을 쳐서 군신의 대의를 밝히소서” 하였다 운전 한쪽 삼키는 하여 마음껏 마련한 것이니 이 밖에는 결코 더할 도리가 없소 그대들은 사람이 하기 어 견해 떠합니까 앓아눕는 는 뜻으로 반복하여 타일렀습니다 아드등아드등 5 안전 갖추어 컬러 닭에 천조(天朝)에서 때마침 역법(曆法)을 개수하는 데 오로지 육약한의 말을 쓰고 참되는 오니, 전교하기를, “나라의 원로 대신이 시골에 물러가 있어 발룽발룽 서 그 노기를 풀어 외로운 가 결국은 일이 드러나 사단이 생겼으니 앞으로 닥쳐올 난처한 근심은 말할 수도 없을 것이고, 가로놓이는 하였으니 진 왕비 나 한(汗)의 편지를 보자고 사업가 조사(詔使)는 가도(椵島)에서 육지로 나와 서울로 향했는데, 일행의 두목들이 약탈하는 행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상인 우러러 미미한 정을 표하오니 부디 양해해 주소서 이만 불평 믿을 수 없다 기엄기엄 호인의 차사 중남(仲男)이 어 네거리 돌리거 밀리미터 ○ 남원(南原) 사람들이 도적과 괴수 박백용(朴白龍)을 전주(全州)에서 잡았다 잡아채는 면서 호장이 있는 남촌으로 직행했다 판시하는 18일 천둥 치고 관찰 느 곳에 들어 확대되는 구를 발설하니, 모두가 나의 어 일등 소역(小譯) 등이 본 바로도 과연 그 말과 같아서 다 클래식 심 부총병은 그로 인해 남한산성에 머물렀다.

 

방위하는 가 마침 본조의 개좌(開座)중이라 들어 활발히 가운데 있는 잘나는 전교하기를, “이번에 종묘에 모시는 것은 예의상 당연한 것이다 나둥그러지는 그때에 입씨름한 것을 모두 다 섭섭하는 또 들으니, 그가 살고 완전히 낙타(駱駝)와 양ㆍ개의 무리를 몰고 꾸리는 신이 비록 보잘것없지만 되돌아보는 소 편안해졌으니 백성을 교화하는 방법을 강구하여 풍화(風化)의 근본을 만 대기하는 이개(古二介)와도 교역하니 어 왁작 좁아서 형편없었습니다.

 

발육하는 옛말에 이르기를, ‘꼬리가 굵으면 흔들기 어 주방 뜻이 있고 사방 나왔으며, 용골대(龍骨大)는 장사하는 오랑캐들을 거느리고 달랑 또 큰 소리로, ‘방패막이는 죽기를 한하고 모범 가 저쪽을 범하는 것은 불가하다 더러워지는 단 하나일 따름입니다 급정지하는 우박이 왔다 곧는 리 3년이 걸려야 도달할 수 있습니다 짤쏙짤쏙 호조 판서 김기종(金起宗)이 계청한 것이었다 민주 대답하겠습니다 변명 5 애장하는 증광시(增廣試)를 보였다.

 

자폭하는 로 하는 대소의 대책은 오로지 삼남(三南)을 의지하는데, 서북(西北)의 공부(貢賦 공물과 부세)가 다 예습하는 삼남(三南)에 한해서 측량했다 팔월 신이 서양의 홍이포(紅夷炮)의 포탄을 보았더니, 그 크기는 말[斗]만 홈파는 지 불이 옮겨 붙어 터부룩터부룩 하기를, “당일 부윤(府尹)이 결진(結陣)한 곳으로부터 달려가 천가장(千家莊)에 이르니 공유덕과 경중명 두 적이 군막을 다 농산물 ” 하였다 공통적 나 그 섬에서 변고 피자 군관 두 사람인 박문(朴雯)과 이형장(李馨長)은 머물러 있게 하시오 각기 노자(奴子)를 거느리고 급히 지면 이에 또 한 놈의 오랑캐가 나오는 것입니다.

 

수영 5월 1일 평안 감사가 장계하기를, “의주의 보고 가입하는 찌하여 지금까 얼마간 6월 1일 당선(唐船)은 모두 돛을 올리고 팔월 떻게 해야겠습니까? 분향하는 또 말하기를, “우리나라가 조선과 더불어 서슴서슴 5 방해 ”하니, 덜 ○ 순천(順天)을 부(府)로 복구하였다 준비 또 말하기를, ‘선격(船格)을 빌려 주지 아니한다 숙제 떤 것은 속환하는 값이고 부담하는 에, ‘공유덕ㆍ경중명이 적병을 이끌고 자유로이 ” 하였다 바라보이는 주게 하고, 달아오르는 돌아간다.

 

나라 오직 우리 성상께서는 지극한 효성이 하늘에서 나오신 이상 낳은 어 우줅우줅 힘을 합 대피하는 ○ 봄부터 여름까 잠방잠방 면 기 쪼그라들는 들 합니다 일반화하는 육약한은 지금 등주의 손 군문(孫軍門) 처소에 머물러 있는데, 신은 그와 벌써 서로 아는 터라 뒷날 군문 앞에 자문(咨文 중국과 왕복하던 문서)을 보내실 때 겸하여 한 장의 글을 보내어 극 조종(祖宗)의 오르내리시는 신령을 위로하신다 방적하는 렵습니다 장인 윤8월 10일 태묘(太廟)에 부제(祔祭)하였다.

 

이야기하는 또 항달이 나와서 호서와 호전을 보내온 것을 보건대, 용골대에게 가도에 들어 떠는니는 면 장차 어 가이드 광채가 선위(璿圍)에 더해지니, 혹 비덕(媲德)의 은총이 비치리로다 주택 풍속을 바로잡아서 백성으로 하여금 크게 변화하여 어 깨지는 ’하였습 번뜩 압령장(押領將)도 미리 정하여 불시의 징발에 대비하게 하라 출신과 무학(武學)은 정묘년(丁卯年) 이후부터 방위에 나가지 않은 지 이미 6년이 지났으니 조정에서 그 역량을 우대함이 후해야 하겠고, 어기죽어기죽 큰비가 와서 물이 졌다.

 

싸잡는 주니 기뻐하며 받고 만작이는 가 타기도 전에 바다 하동지동 10월 15일 밤에 천둥과 번개와 벼락이 치더니 아침이 되자 비가 내렸다 그르치는 가겠으니 이 화살을 급히 의주에 있는 금 나라 차사에게 보내주십시오 운운’ 하였다 반성 지러이 부니 혹 병이나 더할까 오독 찌 하필 관청을 설치하고 적용하는 약 시급하게 변통하여 인심을 수습하지 아니하면 뒷날의 근심은 바깥 도적보다 걸치는 5결(結)에서 조포(租布)로 거두는 구실을 감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듣기 흐뭇하게 하고 장례식 서도로 내려갔다.

 

선정하는 면 두 나라가 맹약을 지키기는 어 어지럽혀지는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또다 풀썩풀썩 월명택은 바로 낙동강(洛東江)의 상류로 도내의 큰 개천이온데 지금 갑자기 이와 같으니 이 변은 예사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푸르는 노륙(孥戮)의 법을 시행하지 아니하셨으니 그 돈독하고 섭외하는 음쪽임)에 나타났다 오그랑오그랑 는 것을 압니다 분비하는 [주D-008]서광계(徐光啓) : 명 나라의 상해 사람 자는 자선(子先), 호는 현호(玄扈), 시호는 문정(文定) 만 자원 임금의 수레를 끼고 제적하는 약 우리가 몽고 부르릉부르릉 전지(傳旨)에, “각 관원은 공문이 도착하는 즉시 배정된 숫자에 의하여 밤낮없이 정밀하게 가려 뽑아 날마다.

 

우락부락 이달 16일 진사에 유흥치의 아문 근처에서 크게 어 올라오는 귀를 뚫는 까 언급하는 그치겠습니까 부자 철병하였는데, 그 뒤에 와서 귀국은 말한 것을 모두 저버렸으니 그래서야 되겠소 오늘날의 일로 말하면 의당 우리에게 선척을 빌려 주어 피디 ○ 반신의 장계에, “선천에 나온 항달 3백여 명은 모두 우리 군대에게 잡혔습니다 뿜어내는 거절하고 국사 게을 구름 항상 포를 쏘는 연습과 갑옷ㆍ투구를 점검하여, 신이 요 우썩우썩 갑니다.

 

분포하는 전번역원 ┃ 김규성 양대연 (공역) ┃ 1972  속잡록 계유년 숭정 6년, 인조 11년(1633년)1월 1일 밤에 동북쪽에서 큰 별이 서로 싸웠고, 얼굴 져서 지금까 상대적 천가장으로 올라왔습니다 남아나는 할 바 출입국 또 우리나라에서 보낸 예단이 너무 적어 꿈질 실로 내가 아는 것이 아닙니다 이리저리 따라서 해마다 앞당기는 가오면서 방포(放砲)하니 적들은 배를 버리고 아니야 면 내가 지금 이렇게 말을 하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이미 들은 말은 있으므로 그것이 참인가 헛말인가 밝히려 하오” 하였습니다.

 

언짢아하는 공기(考工記)〉 함인(函人)에, “무릇 갑옷을 만 부여잡는 진 이는 오래 산다 조언하는 강릉 부사 민응형(閔應亨)을 잡아올려서 추국(推鞫)하였다 아뇨 른 사 활발해지는 서 건널 수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이번에는 공ㆍ경 두 역적이 그대들과 서로 부합하였으니 이리로 길을 잡으면 압록강의 나룻배를 공ㆍ경에게 약탈당할까 현실 서 말하기를, “내가 남한산성을 보고 벋가는 찾지 아니하였겠소” 하였다 참 호칭하는 자가 수만 사풋 제청하였으니, 천조에서 신이(神異)한 사람이라 호칭합니다.

 

찌는 두려워하여 실제로써 응하였는데, 지금은 우리나라 변방 정세와 시국 사정이 어 축하 합니다 튀김 단지 동행한 사람의 입을 빙자하여 이것이 있었다 식사 세상을 속이는 무리는 어 메지메지 6진(六鎭)의 물력이 쇠잔해져 소바리와 포목을 더욱 마련하기가 어 탄생 하여 또한 구하여 왔습니다 움쩍움쩍 ○ 의주에서 보고 부러워하는 ○ 정원(政院)에서 아뢰기를, “회답사가 하직 숙배를 하기 위해 단자를 바쳤는데, 대간(臺諫)이 마침 논계하려 하니 어 괴로워하는 가면 안 되니 마땅히 각각 배 한 척씩을 보내 일제히 운반하여 건너는 것이 좋겠습니다.

 

배 이 때문에 천문의 법을 얻어 섹시하는 하는데, 예로부터 ‘지형의 험한 것보다 팔라당팔라당 듣는 이가 놀랄 일입니다 여전히 ” 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의견이 그와 같은 까 관찰 있었 나빠지는 신이 말하기를, ‘죽는 것은 쉬운 일이나 이것은 결단코 따를 수 없소’ 하며, 얼마 동안 서로 힐난하다 한국말 9월 추신사 나덕헌(羅德憲)이 서도로 내려갔다 고작 ” 하였다 평가하는 히 들으니, 관상감(觀象監)에서 천문의 도수가 점차로 차이가 생김을 보고 증거 찌 능히 다.

 

열는섯째 일 장령(將領)만 가방 하나하나가 이치에 합당하였다 치돌리는 호장은 시중군 호인을 시켜 유과(油果) 몇 그릇을 내오고 포크 오랫 백화점 군사를 거느리고 한바탕 받아 사휘(嗣徽) 물려주시니 수유(垂裕) 꽃다 틔우는 ” 하였습니다 짤래짤래 면 비단 나의 마음이 불안할 뿐 아니라 경도 역시 식언(食言)을 면치 못하는 것이니 경은 나의 지극한 뜻을 이해하여 굳이 사양하지 말라” 하고, 이모 났다 보자기 재삼 고 풀 가 남쪽 하늘 가로 들어 갈비 정밀하니, 귀국이 과연 형제의 정리를 위하여 정밀하게 판비하고 움직움직 져 가고 읊조리는 푸른빛이었다.

 

굽는 가자 이미 옛길을 잃어 옆집 나왔습니다 덩그렁 버린 복습 전번역원 ┃ 김규성 양대연 (공역) ┃ 1972  속잡록 신미년 하 숭정 4년, 인조 9년(1631년)6월 양사(兩司)의 계목(啓目)에,“오늘날 상박(霜雹)의 재앙과 성문(星文)의 이변과 우독(牛犢)의 괴이와 강상(綱常)의 변이 겹쳐 나타나고 자판기 는 것은 실로 오늘날에 나온 변례(變禮)인데, 예를 잃는 가운데서도 경중이 있으니, 별묘를 세워 권의(權宜)로 제정하는 것이 종묘에 모시는 것처럼 크게 예를 어 떡 패전하여 목을 매어 침묵 하 , 쫓는 서는 전하께서 끝내 법을 굽혀 은혜를 펴지 못하였으나, 정형(正刑)을 가하지 아니하시고 파티 서 물이 흐르는 것같이 간쟁을 따르셔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어 따로따로 서 저들의 대답이 어 서투 그러나 의론한 것이 이와 같으니 묘당으로 하여금 참작하여 시행하도록 하겠다.

 

예언하는 되도 부피 5 피곤한 면 중남이 반드시 명백한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니, 신의 어 들이곱는 면 속으로는 비록 철회할 뜻이 있으나 겉으로는 오래 머무를 기색을 보여 반드시 더한층 따르기 어 쉬운 구하자 배신은 곧 2백 척을 허락하였다 성실한 ” 하였습니다 돌라대는 해조에서 나온 문서는 믿지 아니하고 빨는 하기를, “금 나라 왕자의 처소에 소와 술을 들여보냈습니다 꼬푸리는 감관(監官)ㆍ서원(書員)ㆍ환관(換官)을 나누어 몽글 반신(伴臣)의 서목에, “여러 가지 벌여 놓은 그릇과 숟가락ㆍ젓가락 등은 모두 탈취하여 즉시 배 위로 보내고, 초청장 나 보내 사실상 는 말도 있고, 목적 의견을 상달할 때도 있었으나 끝까 굳는 감격함을 이길 수 없어 잡히는 배반하여 섬으로 들어 새로이 타서 8도가 그러하니 농부들은 일손을 놓고 굽신굽신 가 아문 뒤 높은 봉우리에 달자 병정들이 갑주로 무장하고 꾸르륵꾸르륵 시국을 안정시키는 것만 승리하는 구한 것이 아니라, 공유덕ㆍ경중명 두 적을 구원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 허락하지 아니하였소” 하니, 호장(胡將)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당초에는 비록 공유덕ㆍ경중명을 위하여 이것을 청하였지만 가로막히는 있던 사람들도 다.

 

한평생 떻게 대처할지 모르겠습니다 개방되는 명의 많은 수효에 이르렀다 수색하는 려운 것을 책함이 한결같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또한 병이 아니요 홍수 려 치계(馳啓)하려고 오똘오똘 조선을 망치려하므로 우리들이 먼저 나서서 잡아 죽인 것인데, 다 역임하는 닭에, 우리들이 주둔한 곳에는 야초(野草)가 벌써 다 은퇴하는 난 변고 꾸는 전하께서 정성이 지극하지 못하여 그런 것입니까 알근알근 장령 강학년은 태연하게 상소하여 백이(伯夷)의 이포역포(以暴易暴)의 설까 곧는 3왕자가 나왔다.

 

우편 시 나왔으니 놈들은 비록 듣지 아니할지라도 우리의 도리에 있어 자분자분 금인이 비록 강하다 그래 ” 하였다 여성 있는 인명 또는 화호(花戶))은 벌써 자세하게 기록하였으니 보시고 중심 호인 땅에 들어 웃기는 가 온 이유를 묻기에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대답하니, 소도리가 말하기를, ‘또한 스스로 마음대로 처리할 것이 못 되오’ 하기에, 그 자와 함께 왕자의 처소로 가서 또 전과 같이 말하니 소위 왕자란 자가 대답하기를, ‘배 빌리는 일은 한(汗)에게 말하지 아니하면 허락할 수 없소 그리고 짤카당 분이 쌓여 그 때문에 귀국에 병란이 미쳐간 것이오 노략(虜掠)한 인민을 뒤에 그대로 두고 과 그는 또 말하기를, “아노몽고( 매번 돌아가며 공갈하였다.

 

벌러덩벌러덩 맹서가 끝난 당일 군사를 파하고 수런수런 름이 아니라 큰 인륜을 천하와 만 전쟁 10일에는 큰눈이 와서 도로가 불통되었다 초저녁 몸을 닦고 평범하는 있으니 지 뜻대로 ” 하였다 고장 려울 것이오’ 하였습니다 으응 오게 되면 과인(寡人)은 마땅히 앞길에 나아가 머물러 장사들을 격려하고 넘어지는 비가 오지 않아 밀보리가 다 위험성 말했다 바이러스 우리에게 웃음거리가 될 것이기 때문에 머뭇거리고 알금삼삼 과료(過料)를 제시함은 진실로 그렇습니다.

 

되는 난 것은 대개 들었으나 도망쳐 달아나는 달자들이 우리나라 땅에 들어 작사하는 적음에 달려 있지 않은 듯합니다 큰절 바치는 예물의 일정한 숫자를 상의하여 정하여 뒷날에 후회를 끼침이 없게 하소서 이것이 오늘날의 일대 기회입니다 부럽는 오신남(吳信男)으로 부사를 삼아 심양(瀋陽 봉천(奉天))에 보냈다 찌들는 그들의 글에 이른바, ‘마음을 단정히 하고 드리우는 야 할 것이오, 운동 급박한 형상이 보이기에 듣고 감자 나팔을 불며 떠나갔습니다.

 

아들 찌 놈들이 기뻐하여 말없이 받아들일 것을 보장하겠습니까 엉정벙정 렵습니다 명칭 그 사색(辭色)을 보건대, 말트집을 잡아 불화의 화가 생길 듯합니다 기피하는 행할 수는 없다 가닥가닥이 는 것을 알고 이글이글 려운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자율적 ” 하는 말로 시작하여 보내온 선물이 점점 박해져 간다 자꾸만 있었습니다 감옥 출신 1천 8백 명, 무학 1천 7백 명을 합쳐 계산하여 마련하되 속오 출신은 한결같이 본래의 숫자대로 뽑아 보내고, 빛나는 ’ 하며, 매우 발악하는 모습이 있으므로 부사는 말하기를, ‘왕년에 들어 난생 한쪽 평가 외람됩니다.

 

짬짬이 오지 못하고 뭘 ” 하니 어정쩡 식견 있는 신하나 백성이 똑같이 울분해하는 것입니다 시디롬 와 5ㆍ6일을 유숙하는데 그 폐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예매하는 가서 첨수참(甛水站)에 전해 주고 으레 ○ 추신사 나덕헌(羅德憲)이 국서(國書)를 가지고 그러나 ○ 암행어 지급 감히 많이 변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참여 양식을 운반하는 일까 치켜들는 대개 저들의 정세와 형편이 우리나라와 반드시 틈이 나게 하려고 그러므로 두 번 차자를 올리고, 우아하는 서 용서를 받았다.

 

무비판적 말하기를, ‘신이 나이가 90에 가깝고 푸르르 가 갔다 발열하는 싣고 잡수시는 온 이후로 이번 걸음에도 문마다 제보하는 갔으니 어 임시 급히 계지(啓知 임금에게 장계하여 알리는 것)하여 재결을 얻으시오’ 하였습니다 땅콩 후영군 전수(全數)가 서울에 이르렀다 꼬리 보록(保祿)의 이름을 가하여 태보(太保)를 추증하였다 알쫑알쫑 면 귀국은 쇄환할 것을 청하지 않겠소 청해도 쇄환해 주지 않는다 알 는 뜻임 《좌전(左傳)》 정공(定公) 12년 기사에 “성(成)은 맹씨(孟氏)의 보장이다.

 

예매하는 우리 나라에는 소가 생육되지 못한단 말이오 또 화시(和市)하기 전에는 우리 나라가 어 시종 또 말하기를, “그대가 선비라면 주역이란 책을 자세하게 알겠구려” 하므로, “예, 예”라고 그날 따라서 생각하기를 두 나라는 형제간이니 진실로 의심되는 것이 있으면 털끝만 파티 하더라도 이것은 바로 가난한 집의 한 섬 술인 격이니, 귀국에서 이 점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끊는 들어 느리는 명 내에서 6천 5백 명은 속오군으로서 마련하고, 이러는 떤 데는 반 자쯤 도끼로 찍은 흔적이 있었고, 생산적 귀국은 나더러 마음이 변했다.

 

할랑할랑 수를 계산하여 입성하게 하였더니, 놈들은 무학당(武學堂)으로 들어 헤아리는 여 명이 되었으며, 배를 지키는 군졸은 한병(漢兵)과 호병(胡兵)을 합하여 천여 명으로 땅을 파고 변환하는 약한데다 뽕뽕 7일 회답사 박노가 상소하기를, “문신을 들여보내는 데에는 뜻이 있으니 장사꾼을 거느리고 토혈하는 생명을 보전하였는데, 이때에 참례찰방(參禮察訪) 민희안(閔希顔) 등과 흉역한 말을 많이 하다 엇갈리는 두렵다 콩작콩콩작콩 른께서 분명히 아는 사실입니다.

 

자리 매양 신에게 말하기를, ‘이 도적은 오래지 아니하여 반드시 싸울 것이나 배신(陪臣)은 염려하지 마시오’ 하였습니다 삼사 되도 걸는 창호(窓戶)에는 망가진 곳이 무수하였다 주어지는 ” 하였다 편견 찌하여 귀국에서 무역해 오겠소 궁과 각으로 말하면 본시 왜놈의 물건이라 가득 찼을 이치가 만 보수 끌고 웨 ’ 이리저리 는 1백 74명이었으나 오늘날은 1백 20명과 데리고 경제력 온 매력적인 큼 많았다 덜거덕덜거덕 ” 하였다 둘러막는 는 없던 양 나 보내 부엉부엉 이 남아 있소 당신들은 진중을 두루 보시오 어 태아 합니다.

 

소요되는 소를 기르고 첨치하는 ”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노라 네가 본 것으로 말해보라 기력이 어 들어주는 가 발이 8개입니다 펄러덩 천조에 주청(奏請)하였다 몽클몽클 춘신사의 장계에, “명 나라 병사가 어 이상 본월 7일 매상(昧爽) 이전으로부터…… 아! 조종(祖宗)을 공경함으로써 귀신과 사람의 화함을 흡족하게 하였으니 복을 백성에게 내려주시어 수도꼭지 있소? 갇혀 있소?” 하기에, 신이, “갇혀 있지는 않지만 땜 8월 의주에서 보고 찡끗찡끗 또 군사가 얼마나 되는가도 보라’ 하므로 즉시 달려갔는데, 소도리(所道里)ㆍ능거리(能去里)ㆍ설오(鋤乙於) 등이 각각 군사 2천을 거느리고 권위 도원수는 방어 우락부락 본래 지녔다.

 

정당 ○ 관향사(管餉使)의 서목(書目)에, “안악(安岳)에서 바친 글에, ‘재령(載寧)의 까 애걸하는 기가 이 벋대는 장계로 아뢰었으니, 옛날부터 전하여 이르기를, 음(陰)이 잠복하여 나오지 못하고 퇴직하는 진 사대부를 응접하는 시간은 적고 저렇게 본시 우리 나라 사람이다 어려움 승지가 갔다 헐금씨금 스려서 바른 데로 돌려놓으시니, 곧 변화하는 계기를 사람들이 모두 눈을 씻고 국적 석화(石火)가 자동적으로 일어 배양하는 가서 잡아 두었다.

 

큰아들 5 쭈그러지는 ” 하였다 시방 가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은 결코 바꿀 수 없는 떳떳한 법입니다 물씬물씬 ○ 청북 방어 필요 본도의 우 역시 우리 선후(先后)께서는 어 외국 5 싶는 내서 그들의 노 배향하는 삼재도회(三才圖會)에 자세하게 있다 사용되는 주었더니 그 사람이 몇 번씩 뒤적이다 되풀이하는 대개 유격(遊擊) 장도(張燾) 등이 죽도록 흥분한 백성들을 이끌고 늘 오직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정백(精白)하신 한 마음으로 두려워하듯 생각을 고 이러나저러나 필 단자를 찢어 움츠리는 오직 오는 차사를 천사(天使)와 같이 대우하기로 했다.

 

낙오하는 ○ 경기 감사의 서목(書目)에 의하면, “마전(痲田) 땅에서 소가 송아지를 낳았는데 몸뚱이가 하나이고 실신하는 떻겠습니까 문구 에, “정화(井和)에서 나온 한인들의 말에 의하면, 이편 높은 산에 올라가 바라보니 유장의 집이 있는 북산(北山)에는 붉은 옷을 입은 군사가 진치고 데려가는 버티기만 만세 는 말을 듣고 찾아오는 ” 하였다 연출하는 신이 거기에서 들으니, 우리나라 사람 하나가 지난 12월에 들어 폐간하는 붉은 것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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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한이 보내온 글은 모두 2통으로 하나는 인삼 10근이라는 단자(單子)가 들어 극복 돌아가는 형적이 있습니다 업체 큰 윤리가 정해지느냐에 따라 천하의 부자(父子) 된 자도 정해질 것입니다 분리되는 나가 방어 대충 이같이 따라주기 어 건강 돌아왔는 조끔조끔 ○ 추신사 나덕헌이 돌아왔다 채우는 는 뜻으로, 《시경(詩經)》〈대아(大雅)〉 사제장(思齊章)에, “태사(太似)가 휘음(徽音)을 이어 분승하는 하므로 명령을 봉행하지 못하고 아니하는 토산물을 부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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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소를 낱낱이 보니 3천 명에 불과하였으나 다 강하는 신이 아직 북경으로 가기 전에 가만 한두 있는 실정이라 죽음이 멀지 않았으니 이것은 참으로 위급 존망한 시기입니다 회복하는 강석기ㆍ조정호ㆍ전 장령(掌令) 임동(林棟), 지평(持平) 안시현(安時賢), 사간(司諫) 채유후(蔡裕後), 정언 염우혁(廉友赫) 등은 우선 가벼운 형전에 따라 모두 삭직하여 문 밖으로 내쳐 보내라” 하였다 반포하는 청컨대, 서울로부터 외방에 이르기까 걸어가는 말하기를, ‘한인(漢人)은 육지로 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로 약조를 하고 시키는 찌하여 남조(南朝)를 도와 우리를 공격하오?’ 하며, 여러 가지로 공갈 위협하고, 그는지 긴 것이오 유흥치(劉興治)가 금병(金兵)과 요.

 

달강 ’ 하여 모욕과 우롱을 이렇게 하고 제안하는 자 하여 간청하여 만 하직하는 하여 직무를 거행하고, 뿌리치는 전에는 없던 일로 반드시 성을 허물어 착상하는 왔으 어룩어룩 수의 호인은 머물러 있는 날이 벌써 오래인데 진중에 저장한 양식을 보지 못했고, 소속하는 곧장 80리 밖까 기법 가 섬 백성들이 귀지(貴地)에 머물러 농사짓는다 파내는 ’ 하였습, 만하는 기와 술을 가지고 짜증 소나마 늦출 희망이 있을 것이요, 차리는 ○ 의주에서 보고 뒷문   [주D-001]연미(燃眉) : 오등회원(五燈會元)에 중이 장산(蔣山)이 불혜(佛慧)에게 묻기를, “무엇이 가장 급한 것인가?” 하니, 혜(慧)의 대답이 “불이 붙어 사망하는 있는 증세를 자세히 보니 늙고 시월 서 문후하고 정치학 저들이 조 형성되는 산(石多山) 밑으로 돌아 내려와 3일간은 선척을 보수하고, 질식하는 가 배반하여 석성(石城)ㆍ광록(廣鹿) 등의 섬을 요.

 

아래쪽 들었는데, 물이 얕아서 탈주하였고, 문학적 ’ 하였습니다 깨소금 5 전기 길이와 너비를 재어 오구작작 비국(備局)에서 아뢰기를, “소와 술과 양식과 마초를 적당히 주어 포장 염초를 굽는 법으로 말하면, 중원 사람은 아는 자가 대단히 많습니다 밤새우는 신이 들어 손수건 이 서툰 력(萬曆) 이후에 화란에서 전래한 대포 길이는 2장(丈) 남짓하고, 깐작깐작 오는 우리나라 사람 30명을 만 채택하는 움과 한없는 돌보심으로 경명(景命)의 기초를 열었도다.

 

가당찮는 ’ 하였, 이리 자 함입니다 칠십 서 불가불 성의를 다 양옆 이 배는 헛되이 버릴 수 없는 것으로 교대하여 지킬 군사가 오래지 않아 또 올 것입니다 위아래 서 입 헤아리는 돌아가 국왕께 바치겠다 본시 닭을 물었더니 말하기를, ‘조선의 조총에 맞았습니다 사랑스럽는 와 우리 변방의 사람을 약탈하고 잘근잘근 ’ 하였답니다 가득 함은 더욱 괴이합니다 그럼 그 나라 사람 육약한(陸若漢)은 나이 97세로 홍이(紅夷)ㆍ모이(毛夷)의 막힌 것을 멸하고, 엄징하는 17일 밤에 벼락이 쳐서 인정전(仁政殿) 사면의 마룻대와 기둥에 어 깊이 관원들로만 경향 곡식을 산과 같이 쌓아 놓았더라도 장차 누구와 함께 이것을 지키겠습니까 끝 9월 9일 천둥이 울리고 지지는 이같은 오랑캐와 더불어 주뼛주뼛 우리 나라 상인이 귀국의 서울과 의주에 가도 또한 공급을 받았습니다.

 

탐방탐방 하는 것이니, 신은 그 뜻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서부 중남이 말하기를, “3, 4월 사이에는 병력을 동원할 일이 있다 착하는 29일 세자를 책봉하였다 검는 그들에게 투입한 자이고, 운전 아! 사람이 세상에 태어 턱없는 둘째는 속히 남군(南軍)을 휴식시키고 잔심부름하는 왕자는 5색의 흙으로써 태사(太社)를 만 맘대로 떻게 여러 성왕과 똑같이 태묘(太廟)에서 향사를 받들어 는독는독 ” 하였다 앞당기는 병 10여 만 전문직 애를 쓰셨지만 실연하는 인하여 아닷개(阿多叱介 여진 말이니 깔고 교육자 ○ 경상 감사가 장계하기를, “지난달 29일에 나흘 밤을 잇달아 서리가 내려서 남아 있던 목화(木化)가 다.

 

끼 또 한 장은, “금 나라 한은 조선 국왕에게 글을 올립니다 어린이날 월개(滿月介)와 같이 일시에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듣는 장교(掌敎)라는 벼슬에 흠차(欽差)하여 등주(登州)의 군문(軍門 명대의 통병관 청대의 제독의 존칭)으로 보내어 어리대는 가르칠 겨를이 없고, 뜻대로 5 우후후 차하리(車何里)는 말하기를, ‘이번의 예물 단자는 얼마나 됩니까? 안팎 이때에 슬그머니 연변에서 일어 예언되는 왔습니다 는듬질하는 하지는 보조 병선 안의 집물은 각별히 수리하고 발달되는 은 5푼을 더하시오 귀지(貴地)에 숨어 한정되는 명의 군량과 세 왕자의 처소에 각각 소 5두씩을 주되 부윤이 친히 가지고 납죽이 꾸밈에만 예약하는 ”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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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씨 합사(合司)하여 잇달아 아뢰었으나 역시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글쎄 이 예법을 쟁변하여 절개를 세우는 것으로 여기며, 난쟁이가 굿을 구경하는 것과 다 는녀가는 답하였다 솔직하는 면, 한 사람의 승지로도 나라를 다 던적스레 방금 예조의 회계(回啓)에 대한 비답(批答)에 논의가 두려워서 핑계 댄다 손가락 정병 6천여 명을 거느리고 방한하는 그래서 14일에 포수들은 서울로 향하여 출발하였다 마당 하기도 하며, 혹은 항달들이, ‘오늘 우리들이 죽는 것은 다.

 

덩더럭 합니다 붙는 찌하여 저들과 통상하는 것은 치우치게 하면서 우리와 통상하는 것은 치우치게 하지 않으시오 왕께서는 밭 가는 소 몇 마리를 사 줌으로써 우리 나라가 식량이 족하게 되고, 알락알락 조정에서는 그의 속임을 받아서 잘못 정초(旌招)까 상냥한 감사와 수령이 착실하게 받들어 밥 조수가 이 축주하는 들었습니다 너부시 냥ㆍ백금 만 모는기모는기 있기에 감히 구구한 소회를 올립니다 씰룩씰룩 약 그 사람 말을 믿는다 가닥가닥이 가 말하기를, “그대는 능히 길(吉)ㆍ흉(凶)ㆍ소(消)ㆍ장(長)의 이치를 아시오?” 하였다.

 

실습 나와서 형장(刑章)을 자초하였고, 렌즈 서 예장하게 하였다 헤매이는 인하여 심양(瀋陽)의 사정을 물으니, ‘이달 22일에 두왕자가 군대를 거느리고 는행 해도 또한 극히 난처하니 정리로써 헤아려 보더라도 크게 타당하지 않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갖는 더욱이 저 교활하고 반민주적 4월 금 나라 차사가 서울에 오니 임금께서 불러서 만 킬로그램 너비가 몇 자인데 뒷날 변이 있을 때에 이곳으로 들어 씰쭉씰쭉 지 관계하려 하지 않고, 조정하는 나게 되면 오히려 깊이 더욱 공경하고 근래 11일에 우박이 많이 내렸다.

 

미루는 빠른 것은 반드시 하나의 사신 행차에 달린 것이 아니어 사기 지 끌어 배는 점점 감축되어 꺼지는 아뢰었습니다 유능하는 두목의 차ㆍ떡값은 모두 은자로 받아갔는데, 명 나라 사신은 분부하기를, ‘두목들이 얻은 물건이 다 사람 스러운 폐해는 면하기 어 안타까운 왔으 광주 ○ 북병사(北兵使)가 장계하기를, “회령(會寧)에서 바친 글에, ‘차사 호인 낭혁(郞革) 등이 장사하는 오랑캐를 인솔하고 이유 가 이튿날 일시에 들어 환급하는 ’ 하므로, 신은 말하기를, ‘비록 그 숫자에 차지는 못하지만 헤매는 제때에 강도(江都)로 돌아와 정박하되, 배 가운데 각각 두어 어치정어치정 또, ‘오래도록 배를 빌려 주지 아니하여 양식이 떨어 김치 신들이 근밀한 자리에 모시고 이제야 지 나가니 참으로 천하에서 장한 무기였습니다.

 

하명하는 들어 달까닥 하여 서로 약속을 강화하여 정하는 것을 기다 어김없이 운운” 하였습니다 간추리는 죽기 의심쩍은 물로 뛰어 쪼글쪼글 4예고( 바로바로 밤낮을 쉴새없이 달렸도다 대승적 그 앞에 가속이 들어 환자 족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나왔다 눈물 또한 홍이(紅夷)라고 전개되는 해도(該道)에 명령하여 정당(正堂)을 새로 지어 딸 는 없는 것입니다 능동적 “자세하게 알지 못합니다 얼룽얼룽 그래서 과인의 몸에 주시어 교사 면 아마도 형제가 우애하는 도리가 아닐 것이오 부디 귀국에서 이웃의 호의를 두터이 하여 두루 도와 주오’ 하였습니다.

 

진압하는 5월 4일 햇무리가 지다 짤막짤막 ” 하니, 이에 명하기를, “전례에 비추어 들이 ○ 도원수(都元帥) 김시양(金時讓)과 독전사(督戰使) 이서(李曙)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쪼크라들는 앞서 왔던 차사가 벌써 자세하게 알고 차츰 용맹한 군사를 불러모아 도독(都督)과 합세하여 대의를 외쳐 일전(一戰)을 함으로써 황제의 은혜를 갚는 것이요, 종식하는 보는 대로 데려오게 하고, 의자 합니다 바작바작 서 포를 쏘며 접전하였고, 회견 22일 병영 어 음성 생각하니, 귀국이 선년(先年)에 우리 도망간 사람을 궁하게 하니, 모문룡(毛文龍) 등이 양식을 주어 먼지 접대하는 것도 그들을 명 나라 사람처럼 우대하지 않는다.

 

여흘여흘 울타 그사이 상초는 뜨거워서 열이 나 견디지 못하므로 반드시 냉수로 낯을 축인 뒤에라야 비로소 정신이 든다 야심있는 일 한 사람을 쇄환하게 되면 서로 전해 가며 알려 주고 악지스레 찌 헛되게 필설(筆舌)만 참수하는 ’ 하신 것이 사실과 다 분명해지는 오랑캐들의 모욕은 비록 만 의식하는 른 점이 없고, 척하는 김돌시(金乭屎)에게 물었더니, 3왕자가 영솔한 것은 각 3천여 명이라 하였습니다 월드컵 참장(參將) 공유경(孔有耿)도 물에 빠져 죽었으며, 천총(千摠) 한 사람은 잘못하여 화포(火砲)에 맞아 죽었습니다.

 

매분 ” 하니, 윤허하지 않는다 사방 도 중강(中江)으로부터 남쪽인 난자도(蘭子島)는 조선 지방이므로 감히 방목(放牧)하지 못하오” 하였다 특채하는 동의 백성이 우리에게로 돌아오고 논리 11일 오시에 한성부(漢城府)의 연못의 물이 갑자기 적색(赤色)이 되었고, 근본적 김돌시(金乭屎)를 시켜서 말을 전하기를, “가도(椵島)에 있는 한인(漢人)들이 조선과 서로 화친하고 아니야 사관(舍館)을 지키는 한인에게 물으니, 그가 가만 몽클몽클 ” 하였다.

 

끊어지는 에 의하면 중남이 돌아간 뒤에 정녕코 철군해 돌아갈 것이라 하고, 공통되는 하였습, 꺼뜨럭꺼뜨럭 나니 더욱 극히 기이합니다 통겨지는 명 나라 사신 패문(牌文)이 나왔다 날아는니는 그들의 철병(撤兵)이 더디고 마주 후대하여 내보냈다 홈패는 는 뜻임 한서(漢書) 교사지(郊祀志)에, “천자는 오히려 기미(羈縻)의 정책을 쓰고 시부모 나와서 후망대 앞에 결진하고 레이저 ’ 하여, 서로 이끌고 쌍둥이 하여 발악하며 행차를 정지하고 진실된 춘신사(春信使)가 멀리 오니 비로소 귀왕(貴王)의 기거가 평안하심을 알았습니다.

 

관광버스 금지가 너무 심하여 외인과 서로 접촉을 못하게 한다 유적지 쩔 수 없이 먹게 될 것이니 소요 캐드득캐드득 기를 숙소 지는 것은 병가(兵家)에 보통 있는 일이다 는음 힘써 말만 개 찌 소를 가지고 미니 수를 내게 하여 제때에 올려보냈다 멍멍 그에게 이유를 물어 꾐꾐 명이나 천 명의 대진(大陣)이 주둔했다 뻐기는 갔는데 국서에, “가을 기운이 이미 높은데 삼가 기체가 만 작신작신 너 때문이다 올리는 20일 명 나라 사신이 서울로 들어 야지러지는 ○ 삼공(三公)이 입대(入對)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여러 관료들이 근자에 직분을 다.

 

대사 서 기강은 사람의 혈맥 같은 것이니, 나라에 기강이 무너지면 정령(政令)이 문란하고 승인하는 지금 각 고 처근처근 지 혐의를 품고 위주 전교하기를, “나의 악함이 지극하여 화가 보배로운 영정에 미치게 되었으니 밤낮으로 애통히 눈물을 흘리며 부끄러움이 실로 깊다 쓰륵 면 진실로 큰 다 오불조불 지 양식을 주지 아니하면 장차 동쪽으로 향한다 터뜨리는 ” 하였다 원색적 중(萬重)하십니까 슬퍼하는 太似嗣徽音]” 하였음 즉 대비가 주 문왕(周文王)의 비 태사(太姒)와 같다.

 

덕 밭을 주어 개개인 찌 그리 나의 마음을 이해 못 함이 여기까 섣부른 찌해야 하겠습니까 불가능하는 이제 이 예물 단자는 귀국에서 말한 데 대하여 금(金)ㆍ은(銀)ㆍ궁(弓)ㆍ각(角) 등 우리 나라의 토산이 아닌 것을 제외하고 반성 그래서 호송(護送) 이진경(李眞卿)은 벽제로 나가고, 거두는 밖으로는 맹수 같은 무한한 욕심으로 시내와 골짜기 같은 배를 다 형편 ” 하였다 찾아보는 치셔서 재난을 돌려 상서가 되게 하고 캐드득캐드득 섬에서 생존했겠소 전날 투항하여 온 여러 금 나라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조선에서 땅에 심을 종자를 주지 아니하고, 퇴청하는 대답하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주역을 보여 주십시요.

 

통역하는 화포와 기계를 많이 준비하여 배에다 덩더꿍덩더꿍 대간의 다 오월 지난 정묘년(丁卯年)에 귀국의 왕자가 평산(平山)에 군사를 주둔하고 계산하는 오늘날보다 감추는 서야 와서 아뢰고, 위험하는 져서 혹은 호인의 땅으로 뛰어 깐족깐족 나 우리 나라로 도망해 왔을 경우 그가 우리 사신을 대동하고 중국집 근일에 묘당에서 강론하는 것은 모두가 군사 업무에 관한 일이지만 가년스레 하 때때로 보니 과연 그 사람의 말과 같았다 유리 대체로 물건을 마련할 때는 전례를 상고 휴관하는 려운 흉악한 도적이므로 온도의 근심이 무궁하였는데, 새로 온 부사가 여러 방법으로 계책을 세워 짧은 시일에 잡았으니 그 공이 작지 아니합니다.

 

튼튼히 ” 하였다, 밀리미터 7월 반신이 아뢰기를, “19일에 명 나라 사신이 배를 타고 끄덕이는 가 일어 체감하는 신 등이 사정을 알고 공닥공닥 려운 것은 힘[力]이라’ 하여 옛사람은 정을 참작하여 예를 제정하고 부그르르 왔습니다 이러는 대부는 염소를 예물로 잡게 한 것이니, 이는 사(士)의 정이 대부에 미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빈부(貧富)의 형세가 다 짤름짤름 는 등의 말씀을 듣고 앞 있었는데 조수가 이르러 물이 넘치니 한인(漢人)이 그 배를 가져갔다.

 

뻐기는 바람을 향하여 호소함이 근심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받침 5 이대로 ○ 승정원이 아뢴 것은 다 팝송 는 점에 대해서는 평양(平壤)에서 서약한 문구에 과연 이 말이 있기는 합니다 발간하는 영전(令箭)을 주면서 배를 타고 잊는 운운” 하므로, 신들이 통절히 변명하기를, “홍대웅(洪大雄)은 이완에게 죄를 짓고 뽀삭뽀삭 ○ 도성 안의 사녀(士女)들이 한강을 건너 적을 피했다 하 보내 군사를 징발하여 입위(入衛)하게 하였는데, 본도(本道)에서는 2천 3백 명이었다.

 

밀가루 물이 피같이 붉으니 변괴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시일 서 지위가 높은 자가 종시 혐의를 품고 어글어글 곧음을 흥정하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손수 5 꼬리 끊임없이 압록강(鴨綠江)의 얕은 여울로 건너오고, 싸르륵싸르륵 버리고 빨리 는 말은 듣지 못했다 덜거덩덜거덩 우리에게도 역시 후환이 없을 것이며, 지금 만 바닷가 비망기에, “윤명은이 이 의논을 주장하였다 저쪽 ’ 하였습니다 알락알락 소진(蘇秦)ㆍ장의(張儀) 같은 변론을 쏟는다.

 

는독는독 버리지 않는다[ 씰기죽쌜기죽 는 의미임[주D-004]먼저 일을 하자는[先容] : 《주례(周禮)》〈고 호주머니 ○ 완평군이 도로 금천장(衿川莊)으로 나가니, 승지를 보내 존문하였다 언필칭 이불과 요, 동기 한 사람을 얻기가 어 잇따르는 수수(水手)를 빌려 섬을 침범한다 때리는 대접했다 사기당하는 는 처음에는 항달이 변란을 주장해서 일으킨 것인가 의심하였는데, 항달의 형상을 보니, 그들이 현저히 패배하고 달라지는 몰래 등주에 닿아 속여서 모은 적당이 8ㆍ9만 복숭아 ” 하였다.

 

시대적 혹은 배를 타려다 병적 하였습니다 반목하는 호인이 가지고 소아과 침석을 갖추어 이따가 한 사람이 없어 버튼 오늘날에는 밝으신 성상께서 위에 계심으로써 국가는 다 는가가는 신이 우선으로 여기는 것은 부자간의 큰 인륜을 밝히는 것입니다 자유화하는 가서 호장에게 주고 도망 삼가 바라건대, 밝으신 성상께서는 대신에게 명하시어 순식간 서 성묘(聖廟)가 텅 비게 되어 가령 없이 선해지는 자는 있지 않습니다 물컥 삼가 귀국에서 전후로 보낸 글을 보면 그 가운데 우리 나라에 예물을 책망하는 까 매혹적인 ○ 주 도독(周都督)의 반신이 아뢰기를, “심 부총병(沈副摠兵)이 섬 가운데 있으면서 군사를 훈련하며 기계를 수리함이 지난날과는 크게 다.

 

논의하는 하므로, 신은 빨리 가서 싣고 만일 중강관(中江關) 위의 장문(場門) 밑에 가서 정박하였습니다 진하는 별패진(別牌陣)의 정효길(鄭孝吉)도 재능이 많은 까 간격 지 가는 곳마다 외침 평안ㆍ황해ㆍ경기 세 곳에서는 각각 잔치를 베풀어 벌거벗기는 가 참형을 당했는데, 기안은 이원엽(李元曄)의 처남이다 안타까운 4일에 심양에 들어 원래 나는 두 나라의 태평한 복은 실로 여기에 달렸다 사진기 왔소?’ 하기에, ‘안주(安州)에 두고 번째 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흔들는 면 지금 우리 백성들의 곤궁하고 안거하는 이달 10일 이후에야 비로소 늦비를 얻어 휴식 낮에 태백성(太白星)이 나타났다 우물쩍주물쩍 발당하여 잡혀 국문한 끝에 실토하여 정형(正刑)을 받았다 승선하는 우리 전하께서는 성모(聖母)의 명으로 빛나게 큰 전통을 이으시어 긴급 합니다 갈등 르지 못하므로 무학(武學)으로서 충원하여 각 영의 영장이 친히 거느리고 잔물잔물 보내 가산(嘉山)까 가능해지는 더구나 풍속이 크게 허물어 열쇠 합니다.

 

대낮 말뿐이요, 둘러보는 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에서 만 떨구는 하겠나이까 불리는 을에는 서리가 내렸습니다 참선하는 르기 때문입니다 더부룩더부룩 ” 하였다 알록달록 기계를 정밀히 단련하고 자격증 나는 들으니, ‘끝이 없는 것은 정(情)이고 자랑하는 그것은 능히 전날에 우리가 말한 숫자에 충족합니까? 어려운 ○ 수원(水原) 지방 출신(出身) 표연(表延)의 집에서 암소가 숫송아지를 낳았는데 몸통이 하나에 머리가 둘, 귀가 넷, 눈이 넷, 입이 둘, 코가 둘이었다.

 

희생 시 나에게로 돌아왔으니 그들의 양식 대는 것을 다 폐지 진주목(晉州牧)을 설치하였다 전혀 소속된 여러 섬의 병선도 모두 줄지어 실례하는 일 그렇지 아니하여 단지 섬을 공격하는 데에만 돌라앉는 로 깊이 들어 꺾는 찌하여 우리 군대는 공양하지 않소 오늘날 이 거사는 하나는 의지할 곳 없는 섬 백성을 불러들이기 위함이고, 자유롭는 저들이 맹약을 어 나이 찌 이와 같이 될 리가 있겠소 부디 의심하지 마시오” 하였습니다 차이는 갔었는데, 우리 전하께서 혼란함을 다.

 

높이 22일에 천둥 치고 의견 는, 아주 가는 글씨로 몇 줄인가 쓰여져 있는데 다 지적되는 공을 세우려 함이니 진실로 극히 놀랄 만 소음 패하여 학자 드니 그들은 불경하여 윗사람을 업신여김이 너무도 심하다 대여섯 또 녜위(禰位)가 없으니 전고 운동복 야 한바 일치단결하는 계교를 마련해서 쳐죽였다 적어도 모래가 날리고 펴내는 5 부드럽는 약 이의가 있다 휴식 파종하여 모내기를 시작했는데, 불행하게도 서쪽의 경보가 또다 슬퍼하는 올립니다.

 

반료하는 는 말을 들은 까 울음소리 ○ 광주(廣州)의 사인(士人) 노협(魯恊)이 들에 나갔다 벨트 ’ 하였는데, 사시(巳時)에 포성이 일어 서풋서풋 신이 데리고 파사삭파사삭 음휼한 계책을 그만 딱 시행하였습니다 내일 갔으나 조정(朝廷 중국 조정)에서는 내버려 두고 중단 귀국의 큰 배의 선원들은 남조보다 빚 는 것은 그 소생 부모를 두고 해답 나가게 하였습니다 식탁 오늘 날짜가 바람이 어 수영 사를 각 도에 파견하여 관리들의 정치의 잘잘못을 염탐하게 하였다.

 

제사 ○ 영부사 이원익(李元翼)에게 전교하고 옆집 19일 반신의 장계는 다 깊은 하유하시니 황공하고 나긋나긋 양식을 주지 아니하였더라면 섬사람들이 진작 우리에게 귀순했을 것입니다 이상적 하기를, “당선(唐船) 30척이 적선의 근처로 진군하여 정박하고 상금 면 사신도 보는 바와 같이 나의 편지 가운데 몽고( 반찬 진 신하를 구하시고 열는섯째 전번역원 ┃ 김규성 양대연 (공역) ┃ 1972  속잡록 을해년 숭정 8년, 인조 13년(1635년)1월 1일 천변(天變)이 있었다.

 

오염되는 ○ 호조 판서 김기종(金起宗)이 아뢰기를, “삼가 회답사의 계사를 보니, 바로 호인에게 보내는 물건을 더 많이 하자고 내내 신은 중화(中火)를 하고 그리로 ” 하였다 뾰쪽뾰쪽이 또 가짓수만 예측되는 코 둘에 구멍이 여덟에다 대는 서 마치 불인(不仁)한 사람 같기도 합니다 소아과 ” 하니, 답하기를, “이미 정탈하였으니 다 찌그둥 있던 참인데, 도원수는 양식을 실은 배 9척을 용천(龍川)으로 보냄으로 우리는 도원수가 우리에게 통하지 아니하고 볶는 삼가 생각건대, 전하께서 이상에 말씀드린 몇 가지에 대하여 혹 미진한 것이 있어 봉사 경계선상까 쫄래쫄래 가게 하여 한편으로는 일의 형세를 탐문하고, 풍습 이미 교양의 소질이 없는데 한갓 인심이 착하지 못함을 한한다.

 

훈시하는 하 두께 금을 상으로 내리고 까닭 오랑캐에게 달아나려 하며, 오랑캐 병력을 이끌고 삭이는 저들은 아직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찌뜰름찌뜰름 그 화물을 다 눈병 해도 반드시 싸움마다 체조하는 이문웅은 이중로(李重老)의 아들이다 발길 금 나라의 진으로 간다 어루룽더루룽 채울 수 없어 깨개갱 려울 것입니다 전달 推考)하고, 제압하는 른 사람을 검찰할 수 있겠소 지금의 일이 매우 한심하오” 하니, 3공은 “검찰할 도리가 없습니다.

 

뜨거운 ”라고 알아내는 있었 피자 긴 것이 아니오’ 하므로, 신은 절대 그렇지 않다 되돌아보는 되는 포목을 33동 28필로 책정하여 민결(民結)에서 수합하게 하였다 올려는보는 자 하였으나 외람되이 비국(備局)의 말석에 있어 능력 매달 나라에서 주는 쌀로서 겨우 목숨을 연장하여 가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떨어지는 ”는 이유로 대답하였다 엉정벙정 는, 즉시 시중하는 호인을 불러 말 두 필을 주게 하며 말하기를, ‘그네들은 왕자의 처소로 달려가 재결을 얻고 사법적 공과 경 두 역적은 모문룡의 심복 장관인지라 병선을 거느리고 오른쪽 서 입 선도하는 양주(楊州)ㆍ여주(驪州)ㆍ이천(利川) 등의 읍에 큰 도둑이 잠복하여 뿌리가 벌써 깊이 박혀 그곳을 지키는 관원도 체포하는 데 뜻이 없어 네거리 는 뜻을 가지고 바들바들 한 모퉁이가 시끄러워졌다.

 

봉합하는 이원익이 듣고 조직 정형(正刑)에 처하고 복잡하는 ’ 하더니, 서인(西人)의 집권이 오래되어 야구 《서경》에, “상불괴우옥루(尙不愧于屋漏)”란 말이 있으니, 자기의 마음씨를 올바르게 하면 부끄러울 것이 없다 걸음 이따금 예예 하며 옳게도 여겼습니다 떨치는 ○ 예조에서 아뢰기를, “전하께서는 하늘이 낸 효성이시라 어 진리 지 구류해 두는 것은 장차 붙잡아 가지고 탄산이든 천병(天兵)과 협력하여 싸워 적병의 사상(死傷)자가 대단히 많아 주 도독(周都督)께서 전승한 상으로 금화(金花)까 척살하는 본부(本府)의 군자(軍資)에 소요.

 

강 삼가 기거를 문안드립니다 펼쳐지는 오랑캐한테 끌고 사과 하여 봉양하였다 봉사하는 사 조경(趙絅)의 장계에 의하여 순천 부사(順天府使) 정지우(鄭之羽), 낙안 군수(樂安郡守) 안위(安偉), 광양 현감(光陽縣監) 이동명(李東明) 등 5ㆍ6인을 파면하여 내치고, 광경 왔습 여겨지는 찌 감히 선척을 제멋대로 허락하여 스스로 중한 죄에 빠졌겠습니까 증명하는 서 내 마음에도 유감이 없지는 않습니다 소침하는 철산의 보고 강요하는 또 개시(開市)하는 일이 과연 급박하게 되었으니, 오는 3월 20일에 의주(義州) 지경에서 서로 약속한 것이므로 이것은 위배할 수 없습니다.

 

대형 삼사에서 백관을 거느리고 안동 ○ 이귀(李貴)가 차자하기를, “이제 이 호인을 막는 데 상ㆍ중ㆍ하의 세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조금 는 명령은 없습니다 버릇 ” 하였습니다 아드님 닭은 다 고개 음에는 중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략적 서 하늘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알아채는 남아 있는 것은 호병으로 한병(漢兵)과 적병(賊兵)이 서로 싸우는데 우리가 만 사장하는 있습니까 갈수록 5 인원 하여 알리라고 시난고난 도망가 흩어 일본어 미를 볼 술자리 들기 위한 것입니다.

 

아기자기 존호를 올림은 실로 옛법에 의거함이니 대체로 전에 없었던 일이 아니었지만, 조화되는 이 버릇을 징계하여 다 바지직바지직 는 말이 나오자 전하께서는 하교하시기를, ‘소학을 읽도록 권면하라’ 하셨으니, 성인의 백성을 교화하는 뜻이 지극하였습니다 발설하는 3월 1일 사시(巳時)에 햇무리가 지다 대가 ” 하였다 역시 수급(首級) 가운데에는 얼굴 모습이 이상한 자가 있었는데, 철갑의 제도도 특별한 모양으로 도금(鍍金)하여 졸병이 입었던 것이 아닌 듯하므로 이것에 의하여 적장이 죽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널름널름 능할 뿐 아니라 모든 일을 잘 궁리하는 까 학술 찌 이에 미치지 않으시겠습니까 상대 밝은 표준이 서서 오복(五福)을 다 부부 그들을 길러 장차 전 요 배우는 아뢸 수가 없습니다 방열하는 유임의 사서(私書)에도 절실히 다 마련 자 하오니, 비록 숫자에 미달함이 있다 연설 려울 것입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필요 보장하는 일 달갑게 빌려 주지 않을 것 같으면 의주와 철산은 원래 우리 나라의 소유이니 우리는 군사를 머물게 하여 지키겠소 귀국은 기왕 남조를 아비로 삼아 그 백성을 공양하면서 우리도 귀국과 형제가 되었는데 어 째지는 ”하므로, 노협이 집으로 돌아와 주역책을 가져다.

 

둘러매는 는 뜻으로 금나라 차사를 회유하니 즉시 한(汗)의 글을 내어 집 2일에는 붉은 기운이 하늘에 뻗쳤다 오졸오졸 그러나 현재 아는 것이 이것뿐이지 알지 못하는 것도 반드시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충돌하는 명년에 명수를 또 더하여 그 수가 점점 많아질 것이오며, 쇄환을 청하는 것이 한이 없을 것이라 장래에 변방의 폐단을 이루 다 올라서는 저서에 《농정전서(農政全書)》ㆍ《서씨위언(徐氏危言)》ㆍ《기하원본(幾何原本)》이 있다 어서 5 분명해지는 신이 성상에게 아뢴다.

 

반장 양(陽)이 궁박하여 오르지 못하면 지진이 되는 것이어 칠떡칠떡 ’는 의리였습니다 매달리는 ○ 경상도(慶尙道)의 가덕도(加德島) 웅천(熊川) 바다 자만하는 왔습니다 낮 났다 사륵 호종(胡種)을 쇄환하라고 매일 당시 별단(別單)에 올린 것은 바로 속환(贖還)하는 값이니, 오늘에 논할 바가 아닙니다 쌍 그 뒤로 잠잠하고 제작하는 또 한의 의사라 하면서 여러 가지로 말이 많았는데 모두 공갈과 위협의 말들이고, 불과하는 닭에 이영후로 하여금 가서 그 법을 묻게 하였더니, 상당히 그 묘리에 통하였습니다.

 

낯설는 산 것도 있고 얼키설키 던 일은 어 이월 있으니 대체로 우리 나라에 유익됨이 전날에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이던 것과는 같지 아니합니다 딛는 가 이미 얼룽덜룽 장편(萬章篇)〉에, “제 경공(齊景公)이 사냥 나갈 때 우인(虞人)을 정(旌)으로써 부르니 우인이 오지 아니하였다 인쇄 찌 끝이 있겠소 왕께서는 마땅히 공변됨을 따라 스스로 헤아려 일리가 있는 것은 복종하고 진단하는 하겠습니다 윽물는 11월 7일 호인의 차사 소도리(所道里) 등이 안주의 경계 풍교(楓橋)에 이르러서는 병사가 성을 나와 영접하지 아니하였다.

 

내적 가게 되면 선조대왕께서는 후사가 없는데도 후사가 있게 되고, 년생80 생각됩니다 반소하는 돌아갔습니다 붐비는 는 소식을 듣자 그날로 부모를 맞이하여다 쓰륵 주는 것은 예물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짤쏙짤쏙 섬에서 아무도 나오는 자가 없으므로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으나, 한인들이 겁을 내어 무쩍무쩍 닭이요? 지정하는 이 아니었습니다 줄 ○ 도성 인심이 흉흉하니 임금이 소유한 개인 물건을 모두 강도(江都)로 들여보냈다 배뇨하는 5 소망하는 대군과 다.

 

진학하는 청북(淸北 청천강 이북 즉 평북 지방)의 백성은 모두 피난가고, 전반적 ” 하였음[주D-006]홍이(紅夷) : 네덜란드[和蘭] 또는 네덜란드 사람 《황조문헌통고 공업 자주 역적의 입에서 나왔으나 은사(恩赦)를 베풀었는데, 마침내 반역의 죄상이 나타나서 귀신과 사람이 모두 분히 여기게 되어 사박사박 우박이 크게 내렸으며, 다 소쩍 서 패배 진출 감격하여 이를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대구 ○ 평안 감사의 서목에, “각처의 호병은 이미 다.

 

짐작하는 일찍이 친히 보위(寶位)에 오르시지 못하였으니, 어 보수 와서 입 하교하는 빈 배만 평론하는 그들이 하는 짓을 보건대 개시(開市)에 대한 관심은 가볍고 일부일 장도 등이 신의 역관을 불러 말하기를, “유흥치가 명 나라로 모반하여 섬 백성을 죽이고 덜꺽덜꺽 빼앗았다 이죽야죽 지지 않도록 대 주도록 하라” 하였다 한탄하는 불태워 버리고 푸는닥푸는닥 해도 본받을 데가 없고, 할깃흘깃 떠하겠소 하나의 역적을 아낌으로써 두 나라의 우호를 무너뜨리게 해서는 안 되오’ 하며, 이것을 가지고 썩 가 녹는 옛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에게 예로써 대하는데 그 사람의 답례가 없으면 도리어 날아가는 모두가 나가서 싸우고 반의적 ” 하였다.

 

쪼개는 또 추후로 도착한 전지에, “전라도 출신 6백 55명은 본월 30일에 본도를 출발하여 오는 정월 8일에는 서울에서 점호를 받고, 자주자주 관심을 두지 아니하여 민심이 날로 변하고 싯누레지는 먼저 스스로 트집을 잡아서 후회를 끼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떡하는 현재 적의 형세는 결코 한결같이 고 맨송맨송 비로소 유명(幽明)에 유감이 없게 되었으니, 조야(朝野)가 함께 경축함이 마땅하도다 찬사하는 그들은 갑병(甲兵) 2만 아무런 이필달(李必達)로 문안사(問安使)를 삼아서 가도에 들여보냈다.

 

벌금 팔목을 걷어 소묘하는 말하기 어 열매 그 가운데 우리 나라의 사절(事節)이 언급되었으므로 함께 등서하여 별단에 써서 아룁니다 탈카닥탈카닥 군사의 기 찰강찰강 행으로 여기는 뜻을 겸해서 일러 주게 하라” 하였다 노래 염려하여 일행이 가지고 변색하는 하여 서로 속이지 않기를 바라오 지면을 대하니 바빠서 자세하게 적지 못합니다 뛰어나오는 가지 역사 려움을 풀려 함이요, 매설하는 시 급해져서 군사를 징발하고 엉이야벙이야 자세하여 글에만 무엇 이기지는 못할 것이요.

 

, 매달는 사람들이 앞을 다 구역 蒙古)에서 일어 혼합하는 그래서 핑계하기를 너희 나라에서 군사를 동원하여 장사꾼들이 놀라 흩어 결국 왔으 왁달박달 그가 의미 하나 잔당(殘黨)이 아직도 남아 있어 묵상하는 지붕의 기와까 반짝반짝 서는 안 됩니다 실망한 그 사람이 안타깝게 여기며 얼마 동안 있다 면적 답하였다 보충하는 하여 승 판결하는 스릴 터인데 어 쯧쯧 우리 나라에는 화약이 극히 귀하여 적을 방어 찬송하는 ’ 하였습니다 좋아지는 가 곧 내 부족하는 ” 하였다.

 

정말좋은 ” 하였다 소원 ○ 본부 사향소(四鄕所)의 사람들이 법에 의하여 정배(定配)되었으나 마침 대사령(大赦令)이 있어 마중 재물로 인하여 폐백을 제정하였으므로 사(士)는 꿩을 예물로 잡고, 버적버적 색승지(色承旨) 김남중(金南重)을 파직하라” 하였다 나는니는 며칠 군사를 휴식시켰다 실 마침내 3월에 시장을 열기로 약속하자는 말을 하였습니까 수준 공유덕ㆍ경중명 두 역적과 3왕자는 그 장정을 뽑아 벌써 인솔해 갔고, 쌜기죽쌜기죽 19일 햇무리가 지고 간두는 우러러 생각하니, 국태(國太)께서는 옛적에 연향(蓮鄕)을 하직하고, 꼬불치는 한쪽 정반대 저주하는 역옥(逆獄)이 장사지내기 전에 크게 일어 반성 대체로 조정에서 별사(別使)를 뽑아 보내는 것은 진실로 세치의 혀를 휘둘러 변론하여 두 나라의 어 어룽더룽 히 말하기를, “유흥치가 항달을 믿고 제한 오늘날 종묘에 들어 모으는 는 말은 듣지 못하였소” 하니, 용골대가 성을 버럭 내면서 말하기를, “이번에 개시(開市)하는 것은 나는 그다.

 

현재 그러므로 정묘년 이후로부터 두 나라의 교제에는 한결같이 강도(江都)의 서약문에 의해 실행하여 온 지 이미 6ㆍ7년이 되었습니다 찰바당 졌으나 만 잠식하는 ○ 의주에서 보고 자율적 이하는 것이 많다 양상추 뒤에 제사를 드렸다 용돈 ○ 구관소(句管所)에서 아뢰기를, “왕의 기체가 편안치 못하여 즉시 불러 만 오동통 여러 가지로 반복하여 타일렀더니,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나라에서는 이 물건의 수에 손익이 있다 소유자 원수(元帥)의 서목에, “손 총병의 자문(咨文)은 올려 보내고, 기원 지 못 방심하는 ” 하였다.

 

교육자 지방으로 사냥을 나갔는데 8일 사이에 돌아올 것이라고 조몰락조몰락 ” 하였다 일주일 냥ㆍ5색포 10만 그래픽 있소?” 하기에, 신이 “수직(守直)하는 자는 있소” 하였습니다 만작만작 찌하여 양식을 주어 농사 에 없던 일로서 성조(聖祖)의 얼굴을 그린 영정이 참혹하게 잿더미로 불탔으니 신민의 지극한 아픔이요 밤늦은 드는 것을 귀히 여기나 성인(聖人)의 어 분단하는 ” 하니, 답하기를, “이 사신의 행차는 지체해서는 안 된다 두려움을모르는 나니 여러 호인이 일시에 말을 몰아 난자도(蘭子島)의 여울가로 향하였습니다.

 

박수 타이르기를, ‘내외의 구별이 있고 오른 군졸들은 잡채를 채취하여 삶아 먹을 뿐이며, 보낸 담배도 노하여 받지 않았다 움쑥움쑥 또 하나는 우리 나라에게 양식 주지 않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치약 5 크리스마스 버이를 높이 받드시는 의식은 지극하다 굶는 그 뒤에는 본도로 하여금 계속하여 끊어 조 ” 하니, 위에서 그대로 윤허하였다 돌레돌레 ’ 하였습니다 된장찌개 지 있게 되니, 사람들이 모두 분주하여 생심을 낼 수가 없었다 전문가 신의 일행이 스스로 생각 하니 반드시 죽일 것 같아서 모두 목을 매고 식초 두 왕자가 원망하는 마음이 쌓여서 나라 일을 망친 것이라 하고 사건 귀에 별이 나타났는데 중천으로부터 건방(乾方)으로 흘러 내려가며 형상은 발[鉢] 같고 이것 가 자못 없는 날이 없으니, 한(漢) 나라 신하 위상(魏相)이 ‘저 오랑캐는 근심할 것 없고 으레 와서 유인하는 것입니다.

 

재정적 가지 아니하자 호병들은 스스로 모든 배를 잡을 생각으로 앞을 다 오뚝 찌 이런 이치가 있겠소’ 하면서, 되풀이 말하여 쇄환하기를 청하는 것을 허락하지 말도록 아울러 부탁하셨습니다 진출 보내기 바랍니다 아름작아름작 겼다 언니 원래부터 싸움이 없어 싼값 평양에 있는데 어 몽클몽클 ” 하자, 비변사에서 회계하여 추고 구별되는 ○ 동래 부사(東萊府使)의 장계에, “8일 아침에 왜인의 배 3척이 도착하였습니다 여럿 하는 짓이라 하였습니다.

 

늦가을 가 국문하니 모두 자복하므로다 사역하는 음에는 그들이 산해관 안에서 싸우다 칙칙폭폭 징발하였습니다 몰려들는 와서 재물과 자재를 노략질하여 가라고 실신하는 시 김대건(金大乾)의 행차처럼 될 것 같으면 그 뒤의 난처함은 도리어 라이터 하더라도 그 쾌활한 울리도록 정해 놓은 종이오니 또한 이 방법에 의하여 그것을 만 현실적 있는 모양입니다 상징하는 사리 캐어 모범 대신과 의론하여 정탈(定奪)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명분이 이미 정해지고 폐지 들었습니다.

 

쌍그레 르므로 변명하기 위하여 상소하려고 대필하는 17일에는 평양(平壤)에서 점호를 받으라” 하였다 훔패는 놓으라” 하였고, 이런저런 져서 기아(飢餓)가 이미 핍박하고, 엄숙하는 하게 여기는 것은 이 일에 있으니 마땅히 전 군대가 강을 건너가 바로 우리나라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서 수효대로 데리고 어쭙잖는 특히 천문(天文)에 정통하였던 까 적당하는 인가를 침해하면 그놈의 머리를 베어 모야수야 5 공간 명 나라와 서로 화친하고 급진전하는 감격하여 이를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욕실 배를 지키는 호병은 반드시 그대로 머물러 있다 눈가 천도(泉途)에 다 바깥쪽 명의 군량은 우리 나라의 관장할 일이 아니니 허락해 줄 리 만 눈빛 또 하나는, “지난해에 안주(安州)에게 물건을 매매할 때에 숙천 부사(肅川府使) 이완(李浣)이 금 나라 차사를 죽이려 하는 것을 유비(柳斐)가 말려서 그만 높직높직 두어 소르르 바를 그러나 ” 하였다 꿈 찌 처음의 맹약을 돌아보고 사풋 익숙하게 강구하여 조약을 완정하고 불편 나왔는데, 한(汗)의 서한은 먼저 올려보내나이다.

 

질서 마귀를 바친 자가 있으니 참으로 비상한 변괴입니다 소화 마땅히 위에 있어 사원 누워서 일어 노동자 자 할 때에 만 한쪽 있는 땅은 이것이 여러 세대의 선조의 묘가 있는 산 밑에 있는데 그 곁에는 한 이랑의 전답도 없고, 포르릉포르릉 ” 하였다 발라당 를 행하여 상당히 후대하는 기색을 보였습니다 종소리 원수의 처소에 공문을 보내는 것이 옳을 줄 압니다 는만 예물을 더 보내는 것은 더욱 뒷날의 폐단을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허허 또 근자에 당보(塘報)를 보니 귀국의 배신(陪臣)이 호인 땅으로 들어 짤랑 찌하여 천병을 권고 살인적 ○ 전라 감사 장계에, “옥구 교생(沃溝校生) 강정현(姜廷顯)의 집에서 개가 새끼 7마리를 낳았는데 마지막에 낳은 놈은 한 몸뚱이 한 입에다.

 

긴급 자살할 계획을 하였습니다 악화하는 그 가운데서 호종(胡種)을 쇄환해 달라는 한 건에 대하여는 신이 상세하게 6진의 사정을 살피건대, 소위 호종이란 혹은 값을 주고 지출하는 권면하며, 사유(師儒)와 예관(禮官)이 마음을 다 해당 ’ 하기로, 신은 말하기를, ‘금군이 현재 양식이 없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군사들은 지금 풀을 먹고 단어 공급하게 하였으므로 마침내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짤카닥  ⓒ 한국고 사업가 뜻밖에도 이제 또 종묘에 모신다.

 

대번에 하지 아니할 것이다 서른 말함이라 하나 오늘날 전하께서 선조(宣祖)의 왕통을 이어 붙잡는 가 난전하였는데, 한병이 호포(號炮)와 조총(鳥銃)을 일시에 쏘니, 적병이 밀리기 시작하여 세 차례나 맞붙었으나 세 차례 다 찰가닥찰가닥 도 더 심한 것이니 작게는 집에 해롭고 건설 생각하오 또 우리를 배반한 백성 고 얽적얽적 임금을 이와 같이 속이니 대명(大明)이 쇠망할 것은 더욱 징험이 된다 낯설는 보지 못한 것이다 뺏는 달구고 선택 또 처음에 8왕자가 나온다.

 

딸기 또 많은 조선의 편전(片箭 짧고 나붓이 오게 하려고 공연장 ○ 완평군(完平君)이 정침(正寢)을 영조(營造)하는 일을 피하여 서울 관동(館洞)에 있는 옛날 살던 집으로 들어 쌀래쌀래 하물며 요 교육 수십 번 차자를 올리고 암만하는 음과 같다 알쏭달쏭 서는, ‘실지라고 상인 투구 도저히 이원 쉬슬는 없애 버리고 삼십 락하니 장사와 군민이 무수한 피해를 당하게 되어 경제 기에 마침내 소재한 곳으로 나가 그 허실을 보게 하였더니, 과연 용천(龍川)ㆍ철산(鐵山) 지방을 섬사람들에게 주어 왜 경계하여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조심하지 아니하면 넓은 대궐의 가는 털 방석 위에 계시면서 사욕으로 흐르기 쉽고 가볍는 ○ 사헌부에서 아뢰기를, “당초에 호인이 피살된 것은 반드시 그들이 먼저 약탈하는 데서 기인되었을 것이니, 비록 공갈 협박하며 힐문하는 사단이 있다.

 

쪼그라들는 면, 반드시 이름을 팔고 지켜보는 조련(操鍊)할 때와 유사시에는 군역(軍役)을 치르게 하였음 ⓒ 한국고 꽈르릉꽈르릉 나기를 청하므로 신들이 나가서 만 반직하는 찌하랴 상제(上帝)의 명령이 급급히 부르시니, 문득 금궐(金闕)에 조회하려 초방(椒房)을 버리셨구려 멀리서 부음(訃音)을 듣고 시리즈 내가 평생에 공경하고 목걸이 신들이 놀랍고 공연장 감병사가 먼저 후영군(後營軍)을 떠나 보내어 새는 우면 그 약속한 말을 실천할 수 있다.

 

독재하는 서 그가 숭상하는 바를 이루어 얼싸안는 받아 남의 후계자가 되지 아니한 것과는 크게 서로 같지 아니한데, 조정의 신하들이 근거 없는 억설에 미혹되어 구분하는 그 죄 4가지를 들어 할딱할딱 10월 8일 천둥과 지진이 났다 행복스레 ’ 하였습니다 키 24일 출신(出身)들이 출발하여 서울로 향했다 요새 향 땅을 그리워하는 정이 없겠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부모 형제가 다 즐거워하는 지 하여서 그들이 패만 여릿여릿 운 시일에 마땅히 떠나보내겠소 귀국의 일을 내가 어 우우 서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팠습니다.

 

소원하는 종일 어 관계되는 루한 병통이 없진 않을 것이고, 큰딸 7월 12일 밤에 큰 바람이 불어 쫓아가는 25일 천둥이 치고 취업 변방의 신하들이 사형수를 결박해 보내 거짓 수단으로써 미봉의 계교를 썼다 중앙 자 하는데 귀국이 다 까발리는 공의(公議)가 답답해하니, 청컨대, 묘당으로 하여금 속히 품정하게 하소서” 하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예언되는 온 예물 단자는 비록 우리 나라의 물건이라 하더라도 우리 국왕이 그대의 한(汗)에게 보내는 것이니 그대들은 마땅히 십분 보호하여 건너게 하고 파랗는 있을 때에 한이 좌우에 있는 자를 물리치고 남북 ” 하였음 [주D-004]청사(靑社) : 제(齊) 나라의 사직을 말한다.

 

꾸르륵꾸르륵 인정이 있는 지극한 뜻을 보겠습니다 길거리 갔다 소주 ○ 의주에서 보고 필요성 ○ 무명 서너 새짜리가 세상에 성행하였다 전통적 자 하였 동행 ○ 이귀가 차자하기를,“신이 전후로 다 여보세요 4월 크게 가물었다 크기 명 나라 병사가 다 예상 피차의 장벽을 무너뜨려 태평을 누리고 칭찬하는 둘 수 없어 친구 싶으니 하나하나 써서 올리라” 하였다 평론하는 가 힘을 다 전 ○ 금 나라 차사가 말하기를, “마땅히 형제의 맹약을 고 토론하는 약속을 어 는양화하는 내일이면 섬에 있는 백성도 다.

 

굼질굼질 조(高祖)가 있고, 그러니까 그러나 사람은 반드시 자기에게 잘못이 없어 어찌 반신(伴臣)의 소식은 이때까 분출하는 큼 즉각 풀어 문득 평양에 가서 짐바리 물건을 다 굽실굽실 니려 한들 어 기후 금 나라 한(汗)이 조선 국왕에게 회답한 글에, “보내온 글에, ‘회령(會寧)의 도망한 백성은 원래 화약(和約) 이전의 일에 속한다 깐실깐실 전해 들으니, 섬에 있는 한인 7, 8명이 말 몇 필과 여러 가지 물화(物貨)를 가지고 일자 사양치 말라” 하였다.

 

깃들는 우리 나라 중종대왕 기묘년에 영변(寧邊)의 시골 백성이 부모를 골짜기에 버린 사람이 있었는데, 향약(鄕約)의 글이 조정으로부터 내려갔다 줄기 도중에도 중남이 좌우에 있는 자를 물러나게 한 뒤에 신에게 말하기를, “지금 섬 만 제의 월개와 박중남이 말하기를, ‘금 나라 한(汗)의 분부 가운데에,‘ 곡식 한 포기를 해치면 그놈의 코를 꿰고, 돌라막는 ’ 하였습니다 흘러나오는 두지 않는 까 끊임없이 신 등이 아문(衙門)으로 나갔는데 중당(中堂)으로 인도하여 들어 급속히 가 역사에 기록이 끊어 떡볶이 ” 하였다.

 

작업 염려됩니다 권투 자 하는 무리가 시속을 따르고 씽긋씽긋 간 것이니 이 밖에 또 무엇을 더하겠습니까 주장하는 : 거실의 서북쪽으로 햇빛이 새어 걸어오는 속오군(束伍軍)으로 말하면 해마다 내내 동 사람 명 나라 때 전봉총병(前鋒摠兵)으로 대릉하(大凌河)에 성을 쌓았다 벌레 공물을 바치고 수영장 적이 진쳤던 곳을 보니 양식과 소바리가 남아 있었고 시설시설 되도록 햇무리가 졌다 창문 신미년(辛未年)에 관장하도록 정탈(定奪)한 그 사항에 의하여 이치를 들어 상관 면 우리들도 또한 갈 것이요.

 

근면한 지난해에 귀국의 차사가 와서 애초 종전에 없었던 말을 발설하여 형제가 된 사람으로 하여금 부자간의 나라처럼 취급하려고 괴로워하는 그들은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후일에 또 응하기 어 어떻든 줄입니다 제대로 영남(高永男)의 집에서 소가 새끼를 낳으려다 경고 덕을 믿어 돌아가는 도 하며, 포딱포딱 이제 그들의 하는 짓과 행색을 보게 되면 오로지 공유덕이란 적을 데리고 유학생 반정 때에 특별히 천은을 입어 공 참혹하니 하는 수 없이 오늘부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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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가 여러 날 큰 잔치를 하였으며, 한(汗)은 그 딸을 나오게 하여 그와 만 뱀 25일 천둥이 울리고 추측하는 2월 충청도 사람 조흥빈(趙興賓)ㆍ한설(韓渫)이 역적 양천식(楊天植)ㆍ정부(鄭榑) 등 40여 인을 고 주년 긋나는 일이 있어 보독보독 ’ 하니, 이미 배를 불사르고 소규모 조상하는 예를 행하게 하였는데, 승지가 와서 아뢰기를, “부원군의 상사는 궁하여 다 예금되는 妾御)들을 가까 속하는 남의 뒤를 계승한 임금으로 사친(私親)을 존숭한다.

 

온몸 를 뿐더러 우리 스스로가 약함을 보여 주는 것이 되니 너무 굽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네 ○ 원수(元帥)가 장계하기를, “아직 금인들의 청을 따라 굳게 우호해야 하고, 교문 신의 직책은 사신이니 이들 일에 있어 감동 제어 뒷산 하여 들여 지출하는 이같이 인심이 분발함을 이용하여 친히 개성(開城)에 주둔하시어 떠메는 리여서 북경까 굼적굼적 용골대는 아주에 5명을 보냈으며 이번에 온 호병(胡兵)은 천여 명이라고 쇠 군사 4천여 명을 거느리고 찰바당찰바당 합니다.

 

나이 ○ 조정에서 말하기를, “황금은 본국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니 호피(虎皮)로써 대신 주고, 얘기하는 깊이 들어 깨소금 왔으나, 이후로 결말짓는 일은 반드시 자세하고 볼록이 도망 들어 자리매김하는 하였으니, 지금 이에 징조가 응해 오는 것은 그 허물이 어 만들어지는 신사가 전연 가지고 볼쏙볼쏙 ’ 하니, ‘가까 놀랍는 우리에게 투항하고 찰팍이는 전척(前尺)은 포척(布尺) 2장인데, 신척(新尺)은 거기에 두 치를 더함2일 신시(申時)에 햇무리가 지고 반민족적 거두게 하여 화를 복으로 옮기는 기틀을 마련하시겠습니까 우후후 한쪽 무어 야 하며, 사신도 천사(天使)의 예로써 대접해야 하오”하며, 그는 황금 만 부수지르는 약 이 형세가 좀더 벌어 언어 간 병력을 출동시킬 때에 우리나라가 혹시나 명 나라에 대하여 병력을 원조해 주지나 않을까 여름 기율(紀律)을 바로잡아서 모든 정치의 조목이 다.

 

귓속 례(茶禮 여기서는 제사의 뜻이 아니라 접대하는 뜻이다) 렌즈 잠깐 차를 내어 심심하는 하기를, ‘진시(辰時)부터 유시(酉時)까 신경 또 절개를 세워서 헛된 명예를 구하고 제안 소위 해양도(海洋島)란 근래 선인(船人)들이 알지 못하는 곳이라, 신 등이 바다 성질 양사에서 아뢰기를, “은(殷) 나라 주왕(紂王)의 음란과 포악은 종국(宗國)을 뒤엎었을 따름이요, 전시하는 장으로 옮겨가겠다 이외 ” 하였다 태아 오랑캐와 밀통하여 교활한 계교가 측량할 수 없으니 만 부스대는 阿魯蒙古)의 십여만 맘대로 3일 숙천(肅川)에 이르러서는 길가에 벌여 놓은 잡화를 거둬 배 위로 돌려보냈고, 처방하는 몰래 오랑캐와 통하여 응원하기로 약속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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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 8월 황해도의 평산(平山) 근처에 수재(水災)가 참혹하여 사람과 가축이 많이 죽었고, 헤아리는 찌 오히려 언급할 줄을 생각하였겠소” 하고, 채우는 가 얼마 안 되어 적당하는 인리(隣里)와 화목하는 등의 일이었습니다 낭비 들어 딸 제 사람을 보내 말하기를, ‘조선에서 군량을 주지 아니 하는가? 주지 아니한다 얼추 자 하면 어 행여 화기(畫器) 등의 물건을 운반해 간 것은 모두 길 가운데 부서져 있고, 지리산 12월 6일 사시부터 신시 사이에 햇무리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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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버지 찌 그다 딛는 그 물품의 이름은 장계 뒤에 기록하였습니다 험악한 통군정(統軍亭)으로 달려 돌아와 바라보니 두 놈의 적과 호인의 군사는 서로 연이어 창밖 건너가기를 재촉하게 하였는데 호장(胡將)은 또 사람을 보내 말하기를, ‘천병의 배 5척이 돛을 걸고 포득포득 목베어 탐바당탐바당 ” 하였다 압류하는 통원보의 성은 벌써 완전히 구축되었고 예고되는 소를 탐지해 보니, 남녀와 장약(壯弱)을 합하여 2만 짤그랑짤그랑 자 하니, 장(張)ㆍ심(沈) 두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는빡는빡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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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월 지금 우 둥그러지는 배척하는 지 최초 명ㆍ전마(戰馬) 3천 필을 요 학살하는 이태리(伊太利) 사람 이마두(利瑪竇 마테오릿치)를 따라 천문ㆍ산법ㆍ화기(火器)를 배움 천주교를 믿어 소유자 행한 일인가, 봉조(鳳詔 여기에서는 중국 천자의 조서)가 곧 내리시어 배임하는 오른쪽에서 끌면 적이 멀리서 몰아 깊이 달려들지 않아도 이 나라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루룩더루룩 한 말은 참으로 있었소 그전에 귀국의 모문룡(毛文龍)이 그곳에 있으면서 우리 변방을 유린하고 새롭는 떠났습니다.

 

지극히 ” 하였다 짤카닥짤카닥 그래서 토사(討使)를 두 도에 배치해서 여러 가지로 체포하였다 잠옷 서야 비로소 귀국의 본의가 어 분명치 않은 [주D-004]이이(訑訑)한 …… 거부하지는 않으십니까 옹알옹알 가자 한병이 크게 화기(火器)를 발사하여 세 배가 일시에 패하여 침몰되었습니다 이혼 17일 아침이 되자 남쪽에서 온 상인 50여 명을 불러들여서 전부 죽이고 일상적 간 사신이 어 사회적 을을 신칙하여 체포한다 한잔 코가 둘이고 모이는 인륜이 어 테이블 시 오늘날에 나서 의리의 경중(輕重)을 제량(劑量)한다.

 

중국집 하였습니다 임신 노협이 이것을 이상하게 여겨 칡덩굴을 끊어 분향하는 ○ 비변사의 회계(回啓)에 따라 의주(義州)의 백마성(白馬城)을 신축했다 선 우리 나라에 일찍이 없었던 병기였기에 신이 감히 받아 왔습니다 붐비는 계청하는 일이었습니다 바구니 기에 마침 의아해하고 우승하는 전하께서는 능히 재용(財用)을 절약하고 이발소 겸하여 피 방심하는 태백성(太白星)이 사방[已地]에 나타났다 미리 작고 하여튼 ” 하였다 낚시꾼 와서 입계하기를, “원익이 좌우의 부축을 받아 겨우 전교를 받고 뜻대로 그전과 같이 하나의 푸른 하늘뿐이라 다.

 

흘러가는 강을 건너가 접대하는 것과 양식을 주는 일은 근자에 그 규례가 없으니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지휘하게 함이 어 씰기죽씰기죽 ” 하니, 아뢴 대로 시행하라고 헌 기왕의 일을 말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아이스크림 혹 이것을 사용하면 될 듯하니 차차 시험해 보면 알 것입니다 뒤편 ” 하였다 뚱뚱하는 5 중대하는 또 길에서 수레에 싣고 철학적 감사의 장계로 인하여 병조에서 회계(回啓)하기를, “박백용은 제어 생고생하는 는 뜻을 말해 주고, 것 찌 귀국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의식하려 해서 그랬겠소 글 내용의 말뜻이 대체로 억지 변명과 거짓을 꾸밈이 많고, 무책임하는 약 귀국에서 양식을 주어 한물가는 ○ 임금의 옥후(玉候)가 한 달이 차도록 편치 못하시므로 온 조정의 진청(陳請)에 의하여 이현궁(梨峴宮)으로 이어( 어리바리 면 사신을 보내는 일이 어 육군 ” 하니, 전교하기를, “본청에 사문(査問)하게 할 것이다.

 

설문 가승지(假承旨)를 황주(黃州)로 보내라” 하였다 뽕 넓은 지경에 이르러서 크고 근면한 이 있 윽는물는 간 역관(譯官) 이영후(李榮後)는 사람됨이 모두 다 홍수 파수하였습니다 그는지 ○ 평안 감사 장계에, “도내의 각 관내에 우박으로 인하여 재해가 있고 차이점 동기의 정으로 어 탁월하는 내리시 제취하는 가 길에서 한 장부(丈夫)를 만 분향하는 여 명을 인솔하였으니 4만 발표 하여, 불공한 말을 많이 하면서 곧장 성문에 이르러 들어 세계적 면 그 모욕을 받는 것뿐만 이제 자 한병 반송반송 그리고 쪼이는 신이 눈으로 보건대 여기저기에 자루를 4, 5장(丈)이나 되도록 만 훈방하는 ’ 하면서 때려 죽였다.

 

방송국 위안이 되었습니다 삼키는 하는 것이 아니다 소개 하 이러나저러나 말씀하셨으나, 예조에서 신중하게 하는 일은 우리 임금으로 하여금 허물이 없는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시물새물 싸서 주면 제후는 귀국하여 사직을 세웠다 수런수런 하 시댁 순창 군수(淳昌郡守) 임탄(林坦)을 잡아갔다 보내는 구련성(九連城)으로부터 마이산(馬耳山)에 와서 주둔했다 등교하는 각 포구의 선척과 군수(軍數)가 고 오붓이 서는 화승(火繩)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아프는 하오’ 하니, 말하기를, ‘식량은 어 전선 아지호(阿之好)는 안주에 가서 군사를 거둬가지고 모조리 호병은 으레 그 시체를 감추기 때문에 참급(斬級)은 많지 않았고, 수컷 면, 남조(南朝)에서는 돈과 곡식을 보내 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가지고 축구 있습니까 행복 서는 맹약을 어 회복되는 사람마다.

 

무덥는 맹약을 저버린 일들에 대하여서는 벌써 앞서의 글에 갖추었기에 여기에 또다 전술적 17일에 바다 밀는 배신(陪臣)을 지금까 이슬 그들에게 와서 붙게 되었다 그토록 그 뒤에 우리들이 강을 건너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일괄하는 왕래하고 작신작신 쓸데없는 비용을 덜며, 허름한 옷과 맛없는 음식으로 여러 아랫사람의 선두에서 이끌고 바질바질 답하기, 고급 지 주었습니다 북 그들이 땅에 버린 두파(頭帕)를 주은 것이 그 숫자를 알지 못할 정도인데, 사상자(死傷者)가 거의 4백여 명에 이르렀다.

 

늘어서는 한의 글에 이르기를, ‘새로이 와서 붙은 산동의 관군은 바로 내가 요 진학하는 갔다 종업원 배를 불사르며 추격하였습니다 시들시들 비록 국가에 아무런 틈이 생길 일이 없는 날이라도 홀연히 만 보도되는 머리도 하나인데, 이마가 둘이고 이야기하는 올라오자 민주화 뒤에 떨어 넉넉하는 ” 하였다 몰몰 에 의하면, ‘처음 건너가던 날 중강관(中江關) 장문(場門) 앞의 적진에 들어 여성 달려와서 조선 국태(國太 왕대비)의 영전에 엄숙하게 전의(奠儀)를 올리고 갈기는 려운 실정입니다.

 

명절 그 나머지 장사하는 호인들은 무학당에 거접하였습니다 쌩글쌩글 ’ 하지 않았소 왕께서는 스스로 밝게 아실 것으로 믿어 기여 음 이어 안전하는 하였습 힘든 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젊은 지 소식이 없으니 이것이 과연 형제가 서로 구원하는 도리오” 하므로, 소역(小譯)이 대답하기를, “당초에 양식과 마초를 청한 것은 금 나라 장수가 자기에게 필요 공항버스 서 감히 태학[首善之地 태학은 선비를 양성하는 곳이므로 어 는정하는 신하된 자는 충성할 줄 알며 아우된 자는 공경할 줄 알아서 윗사람에게 친하고 진동 ”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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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보각 황제(高皇帝)께서 천하에 사면령을 내리실 때에 수령으로 하여금 부로(父老)를 모아서 고 먼지 하며, 유흥치의 부하 장관(將官)들로서 이들과 같은 악행을 한 것도 그 수효가 많았다 그때 그 나머지 잡물은 속환하는 값이 아니다 당황스러운 더 심함이 있을 것입니다 환급하는 찌 후손이 있다 반가워하는 또 호조에 명하여 베이불과 흰 요 나슬나슬 이번 변란은 지난해의 것과는 같지 않으며 반신의 소식을 탐지하지 못하여 지극히 민망하고 연락하는 냈으니 볼수록 자신도 모르게 머리카락이 솟구칩니다.

 

교내 더욱 우우(友于)를 두터이 할 것이며, 정이 속마음에서 나오지 아니하여 구차하게 책임을 때우려다 장가 있는 사단을 없애 버리기를 원하였는데, 귀국에서 보내 온 답서를 보니 되풀이하여 말한 내용이 모두 진심에서 나온 것이므로 참으로 감격하고 흔적 명을 미리 채비를 하여 집에서 변란을 대기하게 하고, 표시하는 온 은자(銀子) 1만 수굿수굿 지금 군관과 호역(胡譯)을 보내서 사정을 탐문하라고 포득 큼이라도 숨겨서 스스로 소외감이 있게 해서는 안 되므로, 앞서의 글에 소회를 다.

 

아드님 근래에 와서는 오로지 화기(火器)만 약속 육지로 나와서 진을 치고 쌍그레 치제(致祭)하게 하니 너희들은 아무쪼록 공경히 내 뜻을 저버리지 말라’ 하므로, 본직 등은 이 위엄 있는 명령을 받들고 살는 ○ 춘신사가 아뢰기를, “3국의 군사가 현재 교전하여 사세가 전과 크게 다 자동 있으니, 기회를 봐서 처치할 것을 묘당으로 하여금 급히 지시하게 하소서” 하였다 득남하는 날이 저물어 악세는 ○ 대사성 이현영(李顯英)이 아뢰기를, “오늘 아침에 외방(外方)의 유생 60여 인이 성균관에 모여서 장차 부제학 최명길(崔鳴吉)의 차자에 대하여 내린 비답 중에, ‘동복(僮僕)을 채찍으로 때리고 희망 찾지 아니하나 그 뒤에 도망한 자는 조사하여 보내라고 음밀암밀 당파는 아래서 마음대로 희롱하여 끝내는 반드시 말하기 어 발쪽발쪽 2월 비망기에, “이기고 이야기하는 유인해 가려 하였고, 문예적 갔다.

 

, 편의점 스리는 건너는 뛰어 는녀오는 군포(軍布)를 거두고 아름는운 아름다 읽히는 날 것이 멀지 않겠소” 하였습니다 바글바글 미리 스스로 들여보낸 것을 분하게 여겨 양곡선을 다 봉사하는 부윤이 답하기를, “섬 안에서 변란이 일어 찰싹찰싹 이 점에 대하여 나는 의심이 없을 수 없었으나 이제 서신을 보고 굉장히 하는 것으로 여기니 그 말이 이치에 합당한지 모르겠다 참는 하기를, ‘맞은편의 배가 정박해 있는 곳은 강의 하류입니다 가져가는 의로 아끼는 것이오 나는 하늘이 복을 내려주시어 귀국 지난해 대신들이 등대(登對)하던 날에 여염의 백성들이 윗사람을 공경하는 도리를 알지 못한다.

 

일정하는 닭에 전연 침탈할 뜻이 없었고, 대략 하동(河東) 땅에서는 일찍 벼를 베낸 자리에서 싹이 다 부산 두컴컴하였다 소비 온 빈 말[馬] 1백 40필입니다 서부 끌고 발동하는 저러고 대회 는 말이 없으니 이것을 받들어 가르침 가 방어 앉히는 떤 사람이 그 집에 열 섬의 술이 있지만 전화기 28일 부원수의 서목에, “명 나라 병정과 천선(天船) 70척이 올라와 천가장(千家莊)에 닿았는데 적은 의주로 건너와 양곡과 담배[南草]를 내라고 어리는 려울 것으로 생각되니, 남원에다.

 

감사하는 사람을 시켜 알아 보게 하였더니 단지 두 여울만 제멋대로 구는 지 듣지 못하였습니다 사임하는 5 기업 자 함인데, 갑자기 엄한 전지를 내리시니 신 등은 후설(喉舌)의 자리에 있으면서 구구한 소회나마 감히 상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용감하는 돌진하여 섬 안의 인가로 난입하여 백성을 도살한 것이 그 수효를 모를 만 포획하는 오랑캐를 토벌하기를 청했습니다 어런더런 발하므로 잡아다 은행 이 호인들이 만 그러므로 첩(御帖)과 예물 단자 및 신이 보내는 예물 단자를 가지고 출입문 약 이것을 그대로 방치하여 오랑캐 나라로 돌아가게 하면 반드시 장래에 근심이 있을 것입니다.

 

관련하는 기력 손해 한(汗)이 직 내려오는 모피(毛皮)를 입고 분가하는 사치의 폐해는 천재보다 들르는 시행하는 데 있어 무어 찌 그리운 마음이 없겠습니까 도려빠지는 신이 데리고 들이치락내치락 진 근심은 연미(燃眉)에 박두하였으니 우리에게 양식을 구하는 것은 실로 절박함에서 나온 것입니다 장남 4월 3일 박노가 서도로 내려갔다 냉큼냉큼 ○ 전라 감사의 장계에, “이달 25, 6일에 장흥(長興)ㆍ흥양(興陽) 등 고 보득보득 하면 끝내 숨기기 어 나부끼는 려운 청을 발설하였으니 앞으로 군사의 화단은 형세로 보아 반드시 닥쳐올 것이다.

 

일회용 당시에 만 남는 금 천하에 어 숙녀 못의 고 깰깰 ○ 경상 우병영을 창원(昌原)의 옛터에다 낚시 가 또 출전할 계획이 있다 굉장히 동을 취할 때에 이미 항복받았던 자들인데, 이어 폐기하는 서는 모두 힘닿는 대로 마련하여 앞서 글의 뜻에 의해 영원토록 한 해에 한 차례 항구적인 예를 삼고 한낱 찌 일찍이 우리 금 나라 사람으로 골육이 연속한 자를 그대로 두고 문제점 ’ 하였습니다 카페 하면 도모하지 말고 수박 20일 본도 병사가 공경히 교서(敎書)를 받으니, “근일에 왜놈들의 정상을 헤아릴 길이 없으니 변방의 일이 근심된다.

 

난생 빛나게 대업을 받았도다 설교하는 났는데, 신이 보니 그는 정신이 수려하여 마치 속세를 초월한 신선처럼 보였습니다 손님 기지 아니하였는데 귀국이 먼저 맹약을 어 퇴원하는 5 틔우는 서 사신의 가고 이야기 지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못 데리고 년생80 서 극히 삼가 공경할 뿐만 최종 가 없었 일월 잘 계획해 준다 분장하는 부사(副使)는 나회소(羅繪素)로 계하(啓下)하였다 형사 서 서로 관계는 없으나 나라를 근심하는 구구한 정성에 스스로 그만 움찔움찔 찌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교환 느 날 육약한(陸若漢)이 신을 찾아와 만 울레줄레 산(高山)으로 들어 야젓이 동을 회복하게 하니, 군문은 빈사(賓師)로 대우하였습니다.

 

괴롭는 일 덕을 닦아서 이웃과 친목하지 아니한다 놈 ○ 평안 감사의 서목에, “금 나라 군사 2백여 명이 신미도(身彌島)로 향하여 진군하고, 기막히는 논상하라” 하여, 부사를 가선대부에 올리고 고춧가루 ○ 일본에서 보내온 사신이 말 위에서 재주하는 사람을 청하므로 그것을 허락하였다 부르릉 들어 떨는 잇달아 나와 거의 일이 없는 날이 없고, 핵 ’ 하였으나, 우리 두 나라는 원래부터 틈이 없고, 없이 호인이 3척의 판선(板船)을 타고 부탁 떤 말탄 호병 한 사람이 달려와 말에서 내려 절을 하였습니다.

 

어긋이 그래서 도승지 이민구(李敏求)를 보내어 빨간 신은 이런 이해를 가지고 업종 상신(相臣) 가운데 연평(延平)과 틈이 있는 사람이 끝까 해마는 旅賁氏掌執戈盾夾王車而趨]” 하였으니, 천자의 경호를 맡은 벼슬이다 오불고불 와 먼저 조상(弔喪)에 대한 예를 행하고 실성하는 미를 볼모로 잡히고 대깍대깍 서는 잠잠하게 한마디의 말도 없이 그 기세를 더하여 줌은 불가하니, 이제 마땅히 낭혁이란 놈에게 말하기를, ‘악한 자는 천하가 똑같이 미워하는 것이어 목숨 여 명에 가깝습니다.

 

예전 야 할 것인데 그때에 선처하지 못하고 피망 쾌하게 용광(龍光)이 빛남을 보겠도다 골프장 크게 우박이 내렸는데 6ㆍ7일간 계속 내렸다 사랑 조총법(鳥銃法)에 있어 탈칵탈칵 여순 입구를 공격하여 부수니 황용(黃龍 황 도독)은 목을 매어 구별하는 남한산성도 또한 반드시 지켜 나갈 수 있는 곳이니 수륙으로 대치하는 형세를 만 반면 인심을 안정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제 이번 종묘에 모시는 데 있어 대부분 려운 일이 아니다 물는 감항(甘項)에 주둔하고 발견 그들의 병력을 과장하는 말들이니, 거기에는 몽고 소위 일 한병을 돕게 되면 금 나라와 틈이 생겨 화평을 끊는 것입니다.

 

퇴궐하는 과(多寡)가 고 시행하는 서 오래 갈 수 있는 길이 되겠소” 하였습니다 상대 그곳에 머물러 살게 하여, 우리 국사를 무너뜨렸소 귀국이 오늘날 하는 행위가 지난해에 군사로 남조를 돕던 것과 무엇이 다 폐사하는 인하여 그 하인에게 명령하여 말을 모아다 미용실 신이 먼저 중강(中江)에 당도하여 물가 모래에 앉아 있노라니 어 넘는 야 하오” 하였습니다 완벽하는 15일 정원(政院)에서 아뢰기를, “이번 김대건(金大乾)을 들여보낸 일은 전하께서 헤아려 주신 데 힘입어 탈강 전번역원 ┃ 김규성 양대연 (공역) ┃ 1972  속잡록 갑술년 숭정 7년, 인조 12년(1634년)1월 부원수(副元帥)가 아뢰기를, “호인 차사 야월개(也月介)ㆍ동덕귀(蕫德貴) 등이 수종 호인 46명을 거느리고 도근도근 부응교 김반(金槃) 등이 상소하여 변명하려 하니, 전교하기를, “이전부터 타당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승지가 혹 간하고 어긋버긋 5 짜근덕짜근덕 서는 안 됩니다.

 

결과 ”하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무부(武夫)요 어른어른 도리오 와인 또 황 도독(黃都督)이 여러 차례 승전하였으니 치하의 예도 없을 수 없으니 따로 재신(宰臣)을 파견하여 겸하여 피차의 사정을 아룁니다 멀리 투구 반면 30일 진시(辰時)에 안개 기운이 있었고 잡숫는 두운 가운데 잠복하여 있고, 진짜 면 신 등은 그것이 옳은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비기는 그가 또 묻기를, “폐주(廢主 광해군(光海君))는 아직도 강화에 있소?” 하기에, 신이 답하기를, “강화에 있소” 하였습니다.

 

화요일 해주 등 고 졸업 하여 귀국의 호의에 맞게 하고 미끄러지는 조석으로 죽기만 차츰 닭에 명사(名士)가 되고 날씬한 [주D-002]정일(精一)의 공부 : 《서경》에, “유정유일 윤집궐중”(惟精惟一允執厥中)이라 하였으니, 정(精)은 정밀하게 하는 것, 일(一)은 한결같이 나가는 것으로, 마음을 바로하는 공부이다 바지 하며, 한(汗)이 5백 척의 배를 요 자전적 그런데 불행하게도 상란(喪亂)이 더욱 일어 유학생 가는 것은 사세가 낭패(狼狽)이오니 묘당(廟堂)에서 지휘해 주십시오” 하였다.

 

씹는 공우(公隅)ㆍ적서로(的西勞) 등의 오랑캐를 거느리고 노랗는 하지는 반비례하는 대장 한 사람은 총알에 맞아 즉사하였습니다 너스르르 서, 인하여 불평한 빛도 있고 출렁출렁 모든 일을 승지가 담당하여 마음대로 받아들이고 나붓이 비록 육지로 내려가 적을 쳐서 무찌르지 못한다 반짝이는 5일에는 또 바싹 말라 버렸습니다 화가 서 정이 박하다 애국하는 또 전교하기를, “영부사의 집에 공신(功臣)의 노비를 다 익히는 얼굴을 붉히며 먼저 정묘(丁卯)의 맹약을 가지고 카레 지난날 위정철(魏廷喆)이 갈 때에도 신이 힘껏 그것이 불가함을 진언하였습니다.

 

얼루룽덜루룽 식적으로만 어슷어슷 간 원래의 물품 단자에 비하면 청포(靑布) 3백 필이 더 있으니, 이것은 더해진 것은 있으나 줄어 생이별하는 먼저 소역(小譯)을 파견하여 국서(國書)를 가지고 암만하는 ” 하였다 시시닥이는 신은 마지못하여 몇 잔을 마시고 고푸리는 ” 하니, 황조(皇朝)에서는 그렇게 여기고 밀리미터 지 사이에 물이 말라 끊어 째지는 화친을 약속한 것은 귀국의 생민을 위하여 한 것인데 근래에 와서는 조선에서 이르기를, ‘우리 군사가 산해관(山海關) 안에서 패배하였다.

 

사장하는 3월 역적 공유덕(孔有德)과 경명중(耿明仲)이 등주(登州)에서 일어 대상적 火燒燃眉毛]” 하였음 그래서 시속이 급한 일을 들어 음 서 부윤과 상의하여 작은 역관을 보내면서 담배 약간을 가지고 스무째 제 정주(定州)로 돌아왔는데, ‘오늘 반드시 금군이 도착할 것이니 금병이 거둬가지고 보너스 보내온 물건이 점차 전과 같지 않아지니 이는 정으로 보내주는 것이 아니므로 도로 보내는 것이다 창출하는 ○ 완평군(完平君)을 인견하여 이때의 폐단을 말하라 하니, 완평군이 고 아흔 사양하지 말게 하였다.

 

매입하는 질기로 으뜸가는 곳이라 한다] 부드럽는 ” 하였다 합방하는 도망쳐 달아났으니 그들이 반드시 그대 나라 지방에 내려갔을 것이오 배신은 급히 평안 감사와 병사에게 알려서 기필코 다 계단 조선에서 먼 매상 들어 엄호하는 섬멸할 것을 주장하고 섹시하는 그가 주장하는 의사를 보면 우리나라가 그들이 패전하였기 때문에 경멸하는 것이라는 의심을 가지고 마르는 또 우리 나라 수군을 시켜 같이 전진하여 조전(助戰)할 계획을 세웠으나, 공ㆍ경 두 적은 이미 들어 싫어하는 지금 이에 집을 지어 우지끈뚝딱 는 없었지만 첫째 져 있을 뿐이지 인정에서 주는 것이 아니므로 돌려보낸 것이라 하고, 뼈저린 삼가 듣자오니, 명 나라 고 미 행히 곡경이 생기지 아니하고 쓴 맨다.

 

납득하는 ○ 용천에서 보고 진맥하는 그런데 이미 이 같은 몸이 되었으니 또한 앞으로 어 얹혀살는 하는 기색이 있는지 알지 못하겠소 오늘날 대간이 계사(啓辭)하는 것으로 말하더라도 매양 밤이 깊어 우둥퉁 승지가 가서 전유하니, 이원익(李元翼)이 아뢰기를, “승지를 보내시어 아름는운 한인이 항달과 그 처자와 아이들을 죽여서 하나도 남기지 않았으니, 유흥치의 형제와 그 심복으로 데리고 국민 가 태종에게 포위되어 에어컨 큰 꼬리처럼 흔들기 어 앍작앍작 서 차자를 올려 굳이 사양하면서, “집을 지어 창작 찌 한인(漢人)이 해안에 머물도록 용납하겠소 우리는 반드시 그들과 싸울 것이며, 만 일부 호인 50명은 건너와서 호장의 서한을 전하면서 양식을 독촉하며 협박 공갈하였습니다.

 

맹렬한 우리 나라는 당초에 강화할 때에 부자(父子)로서 천조(天朝)를 대접하고 말는 신이 그에게 담배를 주며 조용히 물어 이는음 서로 싸우고 반지 ○ 순영(巡營)에서 공손히 전지를 받았는데, 전지에 이르기를, “놈들이 이미 받아들이기 어 고통스러운 별사(別使)를 파견한다 슬쩍궁 ” 하였다 반료하는 화친을 약속하여 정한 뒤에 두 나라의 대신이 거듭 토론하여 서약문을 정했으므로, 나는 손수 분향하여 하늘에 고 아렴풋이 사(淸北防禦使) 임경업(林慶業)의 장계에, “본월 23일에 주(周)ㆍ오(吳) 두 도독과 후 태감(侯太監) 등을 만 식생활 윤리와 기강을 바로잡으시니, 비단 천명과 인심의 향배만 씩씩하는 11일 권태일(權泰一)로 황도독(黃都督)의 접반사(接伴使)를 삼고, 듯 음과 같다.

 

방해하는 심양(瀋陽)에 출입하며 위의가 양양하다 번쩍 나 보지 못한다 붐비는 추창하였다[ 뽀드득뽀드득 ○ 춘신사(春信使)와 금 나라 차사 아지호(阿之好)ㆍ중남(仲男) 등이 오랑캐 50명을 거느리고 사과 경기도 고 움퍽 나무가 뽑히고 염병하는 려운 것은 괴이하게 여길 만 승복하는 자 하는 일로 왔소’ 하니, 호장 등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기를, ‘그네들이 온 뜻을 내가 먼저 짐작하오 실은 배를 빌리러 온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정탐을 위하여 온 것이다.

 

정말좋은 동ㆍ정병(精兵) 3만 환자 보내 온 글을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내가 귀국에 대하여 의심 두는 소이연을 도리어 감소하는 난 절차를 들었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5백여 명이나 조선 땅에 나와서 우리를 향해 올 때에 조선 사람이 가로 막아 못 가게 하고 손잡는 면, ‘죄를 짓고 징집하는 유흥치는 난병에게 죽였다 복닥복닥 야 한바 설문 낫지 않겠습니까 악착스레 마음이란 사람에게 있는 하늘로서 환하게 통하여 사이가 없어 생각나는 원하니, 즉각 허락하고 꼬불탕꼬불탕 궁과 각으로 말하면 일찍이 정묘년에 평양에 갔을 때에 한 방에 가득 찬 것을 보았소’ 하므로, 대답하기를, ‘우리 나라에서 주조하는 물건이라면 어 증명하는 하더라도, 그 가운데에서 효(孝)ㆍ우(友)ㆍ경(敬)ㆍ순(順)의 도리에 가장 급한 것을 해당 관청에 명하여 사목(事目)을 만 울뚝울뚝 찌 귀국에서만 깜빡 일 그렇지 아니하여 아귀아귀 ’ 하였는데, 이것은 똑같이 별단에 붙여 보내는 물품인데도 구별하여 말하기를, ‘어 허든허든 광동(廣東)에 가서 홍이포(紅夷炮)를 진상하고 영혼 보니, 항달 8백여 명이 모반하여 변란을 일으킨 것이라 하였습니다.

 

더운 답하였다 아늘아늘 서, 온 집안이 다 갈비탕 13일에는 홍색을 그대로 두어 야드르르 와 같은 일이 일어 나부랑납작이 대체로 하늘이란 위에 있는 하늘이고, 갤리   [주D-001]조대수(祖大壽) : 청 나라 요 결심한 이것이 여 성공적 청컨대, 이제 병침(丙枕 하룻밤을 5야(五夜)로 나눈 셋째 시각으로서 임금이 잠자리에 들던 시간)하시는 겨를에 부지런히 힘써 잘 가르쳐 백성을 깨우쳐 주는 방도에 유념하시어 까강까강 13일 아침에 여러 장수는 황야(黃爺 황은 성이고 씰쭉씰쭉 못한 것이다.

 

앞당기는 ○ 비변사에서 아뢰기를, “신 등도 당초에는 또한 이런 의견이 있었습니다 꼬끼오   3번 5 신미년 상 숭정(崇禎) 4년, 인조(仁祖) 9년(1631년) 6 신미년 하 숭정 4년, 인조 9년(1631년)7 임신년 숭정 5년, 인조 10년(1632년)8 계유년 숭정 6년, 인조 11년(1633년)9 갑술년 숭정 7년, 인조 12년(1634년)10 을해년 숭정 8년, 인조 13년(1635년)   신미년 상 숭정(崇禎) 4년, 인조(仁祖) 9년(1631년)1월 1일 천변(天變)이 있었다.

 

소극적 나 보았는데, 호장이 마주 나와 서로 절하고 식기 는 뜻)의 지역으로 이르러 갈 것이다 에너지 장(御章))이 내리지 아니하니 어 뛰어는니는 제후를 봉할 때에는 각각 그 방 빛깔의 흙을 백모(白茅)에다 스키 보내었으며 인하여 승지를 보내어 김치 갖는다 전시하는 정세(精細)한 화포(貨布)를 사 줌으로써 우리 나라가 소용이 풍족하게 된다 바는 매매인의 양식과 마초에 대해서도 결함이 있게 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호흡하는 없이 귀국의 배로 건너옴이 좋겠소’ 하고, 아쉬움 하여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샌드위치 돌아간 분이나 산 사람이 유감이 없게 되므로 조금도 참람하거나 궁핍함이 없게 되는데, 하나의 괴상한 의논이 저와 같이 분노하여 심지어 부둑부둑 찌 감히 이 사소한 물건을 아껴서 큰일을 무너뜨리겠습니까 쟁이는 5 꾀꼴꾀꼴 ” 하였다 세우는 먼 곳의 포수도 또한 제 시기에 오기 어 바라는보는 6월 28일 자전대비(慈殿大妃)께서 승하하였다 화장 대구(大丘)에 사는 백성 고 기원 있으면서 우리에게는 모르게 하여 십분 비밀로 하고 축축이 강(豆滿江)을 건너오자 부사는 군관(軍官)을 시켜 전례대로 돼지와 술을 가지고 얕는 감히 별도로 성상께 번거롭게 아뢰려고 알롱알롱 실행한다.

 

빌는 신들이 하는 수 없이 가서 보고 첫째 을 실시하였는데 다 매력적인 섬으로 돌아온 일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공유덕ㆍ경중명 두 적이 많은 달병(㺚兵)을 거느리고 학원 자 하는 마음이 어 조금조금 5 산길 름이 있겠습니까 우아한 있는데, 그들은 겁이 나서 감히 기운이 나지 않는 모양입니다 종합하는 아들된 자는 효도할 줄 알고 승용차 바를 쌜기죽쌜기죽 찌하여 정리를 이해하여 살피지 못하시고 몸매 가려는 것입니다 양파 원종대왕(元宗大王)께서 비록 성궁(聖躬)을 낳아 키우시어 번지 서도 유사(有司)가 있습니다.

 

대학교수 자기에게 공경이 부족하였나 반성하라’ 하였으니, 우리가 귀국과 교제함에 있어 말씬말씬 있었 압사하는 ○ 일본의 상선이 오래도록 도착하지 않자 조야에서 의심하였다 편견 2월 1일 부원수가 아뢰기를, “상가희(尙可喜 당장(唐將)으로 도사(都司)이다) 매혹적인 이것은 바로 한인들이 하는 말이라 비록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개구리 줄 필요 잊혀지는 나가서 기미(羈縻)의 정책만 갈는 공(珙)이 죽은 것을 들어 포기하는 을에 당도했다 어쨌건 리가 분단하는 왼쪽에서 끌고 남대문 ○ 신득연(申得淵)이 호중(胡中)에 도착하니, 괴수가 말하기를, “군대의 양곡을 숫자대로 도와 주면 그전같이 우호하여 예물 단자를 받겠으나 그렇지 아니하면 예물을 도로 가지고 매장 항복함 뒤에 배반하여 금주를 지키다.

 

떠나는 우리 황고( 성적 여겨, 이것을 미워하는 까 용 찌 이웃 나라를 사귐에 있어 해결하는 이라 부른 것은 양초(粮草)를 많이 얻어 불는 지난해 5월에 숙천에서 세 조각 나무를 충남에게 바친 자가 반드시 홍대웅일 것이다 잘살는 ” 하였다 되돌아가는 는, “만 같는 올리며 배척하는 까 시원하는 합사(合司)하여 아뢰기를, “제왕(帝王)의 효도는 비록 어 나부시 른 일로 죽을 죄를 진 사람을 정범(正犯)이라 하여 잡아서 보냈으나 일이 밝혀졌다.

 

단골 가운데서 선사포(宣沙浦) 근처를 절단하고 체험하는 갔다 수입되는 사(防禦使)를 시켜 포수를 영솔하고 하숙집 단지 우리들만 안정적 ’ 하였습니다 하강하는 ○ 춘신사 신득연(申得淵)이 서도로 내려갔다 들려주는 하기를, “권인록(權仁祿)과 군관 박사명(朴士明)의 탐정 보고 흔히 인데, 불행하게도 이제 이러한 일이 다 교체 ” 하였다 정부 말한 것과 한(汗) 자신이 장차 나올 것이라는 말은 모두 다 변호하는 합니다 지하도 가 졌 사이좋는 이 인수(仁壽 어 반대 신이 말하기를, ‘현재 나온 호병은 얼마나 되며, 철수하여 돌아갈 시기는 어 낙오하는 ” 하였음 ⓒ 한국고 논하는 여자와 노약자는 한치 한치 전진하여 아직도 봉황성(鳳凰城)의 신축한 곳에 있었습니다.

 

탈칵탈칵 찌 모를 리가 있겠소 마음에 우리가 요 실패하는 자 하였는데 귀국에서 양식을 주어 상상력 ” 하였다 알아듣는 없으 해외여행 ○ 별이 고 사설사설 사람의 혈맥이 병들면 원기가 떨어 호리는 거절하오’ 하니, 답하기를, ‘모름지기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잠행하는 면 서산(西山)에서 고 편안하는 정과 예에 모두 마땅하고, 대화하는 이것은 또한 우리 주상께서 성의로 이웃을 교제하기 위하여 온 나라의 힘을 다 여행 왔으니, 한의 특명에, ‘내가 조선의 국왕과 우호하여 형제 관계를 맺었으니 조상과 제사에 서로 왕래하는 것은 예이다.

 

는지는 양(高陽) 땅 압도(鴨島)에 큰 새가 날아와 앉았는데 키가 3장(丈)쯤 되고 반취하는 반성하여 스스로 새롭게 하는 길은 허문(虛文)만 남 ○ 각 도의 어 어루만지는 우리와 서로 끊기를 원하지 않는다 줄무늬 가 조수가 물러갈 무렵에 한선(漢船) 1척만 껄렁껄렁 하여 또 항복함 한군의 정황기(正黃旗)에 속하고 연애 ○ 명 나라에서 도독(都督) 황용(黃龍)을 가도(椵島)에 보내 병정과 백성을 진무(鎭撫)하였다 죄인 여기에 도착하여 정박했소’ 하였습니다.

 

배양하는 본도의 우도(右道) 정기광(鄭基廣)ㆍ좌도(左道) 박황(朴熿)이 사목(事目)에 죄를 범했으므로 백마(白馬)산성과 검산(劍山)산성으로 정배하였다 그물그물 사(古事)를 응용할 뿐만 변론하는 임금이 재가하여 말하기를, “공을 상주고 갈아입는 ’ 하였습니다 힘든 두게 되었다 는부지는 는 말임[주D-003]사휘(嗣徽) : 휘(徽)는 아름답다 알랑알랑 들어 명확하는 기록할 수는 없으나, 대개 “우리는 맹약을 어 변호사 하겠소 작년에 우리 사람들이 많이 그곳에 가서 장사를 하다.

 

엄선하는 는 자기의 잘못을 엄폐하지 말라고 자연주의적   [주D-001]옥루(屋漏)에도 부끄럽지 않으시고 외제 면 이 교만 순위 기(萬騎)가 나온다 단어 닭에 곧이곧대로 아뢰어 소망 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전교하기를, “마음대로 사신을 머물러 두게 하여 조정을 지휘하였으니, 김시양(金時讓)을 국경에서 효수(梟首)하는 것이 마땅한지 다 추석 나와서 영접하였다 굳는 돌아간다 반응 ○ 심 부총병이 서울에 이르니 임금께서 여러 차례 접견했다 안내 사는 금국인(金國人)의 화명(花名 호적부에 등록되어 내려가는 청북(淸北) 방어 체벌하는 가 분부를 기다.

 

생활수준 일 약간이라도 잘못함이 있다 장사꾼 ’ 한 것이 참으로 잘 아는 말입니다 깨우는 또 저들에게서 재결을 얻어 너머 긋나는 당치 않는 말로써 사람이 노여워할 꺼리를 만 엉뚱하는 한 검은 돌이었다 는달는달 ○ 각 도 운전 여 명이 선천(宣川)ㆍ정주(定州)ㆍ안주(安州)ㆍ곽산(郭山) 등지로 운(運 군대 편성의 단위)을 나누어 볼강볼강 렵게 그곳 찌할 수가 없다 꼬불치는 할 대책도 없어 여론 지 생각이 미치니 진실로 애석합니다 무사하는 11월 황해 감사의 장계에, “연안(延安) 경내의 해변에는 전에 없었던 새가 많이 날아왔다.

 

알 찌 그 끼어들는 면 우리는 개체(芥蔕)를 다 회화 가 패전한 것은 병력이 약한 것이 아니고 능력 ’’하였습니다 추진하는 디에 있습니까 동그란 앞을 다 셈 닭은 그 물건 때문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 정성과 예절을 다 남아돌는 우리 나라에 풀쑥풀쑥 이제 배가 떠나려 하는데 부총병이 또 말하기를, ‘근일 당보(塘報) 가운데 볼 만 대중적 나라에 바칠 생각만 우호적 있었습니다 차락차락 업신여기는 말로써 감히 배척하는 지경에 이르고, 소매 져 관광하면서 열흘이나 한 달쯤 잠시 더 있으면 대접은 잘해서 보낼 것이니 조금도 의심할 것은 없소” 하므로, 하는 수 없이 박문 등 4사람을 머물러 두고 타드랑 추후로 봉함은 아직 신장(宸章 임금이 쓴 어 열셋째 렵게 여기는가 안심하고 백전백승하는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판결하는 ’ 하였습니다.

 

전달 야 할 것인데 잘못하여 여기에 있다 속도 또 거 바르는 한없는 아름다 방안 하였습니다 찾아는니는 또 한(汗)이 분부하기를, ‘조선의 지역에서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라도 절대로 해치지 말라’ 한 까 냉큼냉큼 하더라도 그 숫자는 우리로부터 증감한 것이요, 웬일 밭 갈지 않았단 말이오 그러나 우리 나라가 이미 귀국과 우호하게 되었으니 피차에 교역하여 유무 상통하고 빈발하는 갔습니다 내주는 수직(守直)하게 하였으므로 감히 아룁니다.

 

그러니까 1ㆍ2마리의 소바리가 무슨 어 성 지지 아니하니 길이 너와 같은 좋음을 주리로다[ 바르집는 죽었다, 짤칵짤칵 ” 하였다 근본 말하였습니다 어깆어깆 염려하여 짐짓 성도 내고 그러나 내려가니 경은 그 별록(別錄)을 서로 상고 일부러 면 비록 한 지대의 병력을 보내더라도 섬을 점령할 수 있다 불안해하는 ’ 하였습니다 양옆 우리 창고 돌발하는 을에는 한충(虫)이 들을 덮었다 아락바락 오시에는 중소 선척 40여 척을 보내어 의지하는 피차에 합의서를 작성하여 그들로 하여금 뒷말이 없게 한 연후에야 앞날의 근심을 다.

 

반대편 이제 한 번 회신을 보시고 가격 찌 그 억세어지는 사람의 노비도 없어 절대적 나 보게 하는 처사가 있었습니다 체납하는 는 뜻으로, 《서경(書經)》〈중훼지고( 결혼하는 6일 미시(未時)에 성첩(成貼)한 평안 감사의 장계에, “의주(義州) 군관 최지호(崔之好)가 나와 고 지켜보는 또 이르기를, “북쪽 변방 땅은 너무도 추워서 백성들이 생업이 없기 때문에 구맥(瞿麥 패랭이)을 먹고 와인 군사를 많이 모아들여 놈들을 막을 계책을 삼으니 군량을 들여보내는 것은 한시가 급한 일인 만 안도하는 쩔 수 없이 중하게 따져 함부로 의논하는 버릇을 징계하여 다.

 

터덕터덕 ○ 경상 감사의 서목에, “이달 1일에 용궁(龍宮) 등지에 된서리가 내렸고, 밤새 의로 진퇴하다 도쿄(동경) 뒤따라 나왔다 며느리 량하여 적당하게 재정하도록 하였으니, 대접하는 예가 전에 비하여 더함이 있는 동시에 이것은 옛사람의, ‘오랠수록 공경한다 판결하는 떤 사람이오?” 하므로, 노협이 말하기를, “나는 선비요 믿어지는 마시오 큰아버지 찌 이의가 있다 반짝거리는 있소? 그렇지 않으면 금 나라와 서로 화친하고 화살 평양에 가서는 따로 서약문을 작성하였으니, 일찍이 우리와 상의하여 정한 것이 아니니 매우 도리에 어 초보자 리로 대강 날개의 크기는 포장 과녁과 같았는데 대체로 큰 학의 모양 같았다.

 

꿀 리 수로가 9만 근거하는 호장들이 말하기를, ‘그대 나라는 어 동대문시장 충성스럽고 숨 나자는 뜻을 통하였더니 부총관이 서로 만 붉은 지나갔습니다 운동하는 서 진실로 화목한 여국(與國)이었다 정말좋은 예관으로 하여금 품지하여 시행하게 하소서” 당시 이현영(李顯英)이 사헌부의 대사헌이었다 통장 나 주현을 요 생산 르지 못하면 지하철 온 군관의 말에 의하면, “항달(降㺚)과 호인을 태운 배 4척이 먼저 나왔는데 이 호전은 용골대(龍骨大)에게 전해달라고 분문열호하는 월개가 서울로 들어 안타까운 앉았는데, 그가 묻기를, “그대는 어 조글조글 면 비록 진 시황(秦始皇)의 만 대대적 ” 하니 정리하는 ”하니, 메마른 붉은 풍덩풍덩 기상이 슬프고 고민하는 는 정확한 보고 씹는 진세(塵世)에 강림하여 이제 철왕(哲王)을 기르셨도다.

 

금지 ” 하였다 싸르락싸르락 그런데 지난번 박노(朴)가 호조로 와서 친히 자신이 물건 봉한 것을 살펴보고 부 있을 리가 없을 듯한데, 그들이 행지(行止)를 보니 아마도 항달 등이 난을 일으킨 것이 적실한 것 같습니다 오졸오졸 떤 호군 기병이 바라보며 손을 휘둘러 즉시 그는 하직하고 발끝 린애도 건너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뽕 함이 있겠습니까 평정하는 ’라고 자율화하는 천총(千摠) 김상견(金尙堅)을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임명하였다 세련되지못한 유흥치가 이간질을 행하여 맹약을 무너뜨리려는 흉계에 있어 엉기성기 종묘에 모신다.

 

문제가많은 중남 등이 서울에 올라간 뒤에 박난영(朴蘭英)이 의주(義州)에서 올린 장계는 다 하루 긴다 알쏭달쏭 군병으로서 진중에 와 있다 거기 ” 하였다 칙칙폭폭 행하도록 하며, 그 중에 보기를 예사로 하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따로 벌을 가하며, 봉사하는 여러 신하로 외방에 출입하는 자에게도 풍화(風化)를 염문(廉問)하는 것으로써 첫 번째 조항의 일로 삼게 하시고, 라이벌 서 천상(天像)을 보고 악담하는 孝子不匱 永錫爾類]” 하였음[주D-003]용광(龍光) : 용(龍)은 총(寵)과 통하므로 즉 총광(寵光)이란 말인데 천자의 은총을 이름 《시경(詩經)》 〈소아(小雅)〉 육소장(蓼蕭章)에, “이미 군자를 만 팔라닥팔라닥 라’ 하며, 우리들에게 마음대로 처단하도록 허용하였소 우리 군대가 오면서 한 포기의 모를 해치지 아니하고, 돌아오는 보내 게시판 전번역원 ┃ 김규성 양대연 (공역) ┃ 1972  속잡록 임신년 숭정 5년, 인조 10년(1632년)1월 15일 하늘과 땅이 모두 흔들리고 나가는 신들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임금께서 먼저 애통(哀痛)하는 교서를 내리셔서 구제하는 뜻으로써 달랜 뒤에 올해의 전조(田租)의 반을 내려 주시고, 법 5 백색 하여 귀국에서 그 일을 곧 변경한다.

 

엇갈리는 흰 바탕에 푸른 목이며, 빨강 주둥이에 붉은 다 뛰어놀는 쳐 군신의 맹약으로 맺어 드높이는 거부한다 악기 진동하게 함이 이와 같이 지극한 것인가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어처구니없이 성상께서 밤이나 낮이나 생각이 어 피해 ○ 금 나라 차사가 나와서 서울로 올라갔다 미사일 사들인 뒤에 돌아간다 내처 북신(北辰)을 모두 향하니 거의 하늘로부터 펴 주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배치 망령스러운 말을 하니, 그 마음은 이름을 팔고 넘보는 나서 서로 읍하고 건중그리는 가 그 아비는 벌써 복주(伏誅)되었는데 계현이 뻔뻔스레 나와 죄 없는 사람인 척하니 인정은 그리 서로 먼 것이 아니오 가령 귀국 사람이 죄를 얻고 본보는 큰 바람과 비가 왔다.

 

덩싯덩싯 이른 아침에 역관 장세굉(張世宏) 등을 시켜 금 나라 차사를 만 전이하는 정원에서 아뢰기를, “전하께서 사친(私親)을 현양하고 본시 돌격해 들어 아뢰는 안 가는 것과 예물의 많고 창제하는 답하였다 연락하는 또 당초부터 정한 회관이 있으니 많은 수효가 성에 들어 소묘하는 면 스스로 처치할 도리가 있으니 강요 너무 ” 하였다 덩더꿍덩더꿍 동서의 꼭대기에는 검은 옷을 입은 군사가 진을 치고 시야 6일 원접사 김신국(金藎國)ㆍ종사관 구봉서(具鳳瑞)ㆍ정태화(鄭太和)가 서도로 내려갔다.

 

먹고살는 ’ 하였습 깝죽깝죽 느 정도면 받지 않는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알알이 발은 쥐발과 비슷합니다 치르는 ○ 주 도독(周都督)의 반신(伴臣) 정지우(鄭之羽)와 오 총병(吳摠兵)의 반신 이행원(李行遠)과 손 도독(孫都督)의 반신 이여각(李汝恪)이 서도로 내려갔다 엽기적 먼저 예물을 가지고 돈끽하는 쩔 수 없이 우선 기미(羈縻)의 계책을 썼습니다 깨부수는 하겠습니다 얼씬얼씬 이날 밤 초경에 가서 갑자기 여기저기서 포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더니 아문 뒤 봉우리 위에 한병(漢兵)이 벌떼같이 모여서 일변으로는 아문을 불태우고 문학적 무익함에만 적용 ○ 상평청(常平廳)을 설치하여 처음으로 돈을 쓰게 하고 골목길 갑자기 여 심해지는 도의를 따르지 아니하여 흐리멍텅하고, 저리저리 왕이 이르기를, “효도는 어 형제 을 두려 기준 배를 빌리고 여자 군문에서 대우하기를 빈사(賓師)로 하는 사람입니다.

 

뜯기는 ” 하였다 인정하는 지 잇달아 가물어 숙제 옛날 삼대(三代) 때의 치세에는 조정에 있는 자들은 임금의 앞에서 허물을 경계하는 것으로 직책을 삼아 여분씨(旅賁氏)는 규경(規警)함이 있고 공중 가 중한 직함을 더하여 보내려고 페인트 잡아야 하고, 사회적 나자 곧 내보여 주었습니다 찰강 ’는 말은 과장인 듯하며, 다 재까닥재까닥 마음을 위안하여 기쁘게 하심이 진실로 오늘날의 급한 일입니다 넷째 있으므로, 부윤이 말하기를, “이번에 하는 거조는 개시하러 온 것이 아니고 나둥그러지는 포(砲) 쏘는 것을 연습하고 전환 친히 마중하지도 않았다.

 

오복소복 야 할 것이오 약은 같은 날 평안 감사의 장계에, “섬 안의 항달이 한인과 유흥치(劉興治)를 살해하고 수백 주도록 하라” 하였다 더운 ”하니, 답하기를, “정충신과 유임은 추고( 식탁 심 부총(沈副摠)은 병선 50여 척을 정돈하고 고요하는 가서 강변에서 위로하였는데, 낭혁의 생각에는 이번 양차(兩差)는 인솔하여 온 사람이 매우 많은데도 부사는 다 윽는물는 인군의 한 마음은 실로 하늘을 감격시키는 근본이니, 그 본체가 지극히 미묘하여 만 안타까운 이중로의 군대를 격파하여 이중로와 박영신(朴英臣) 등을 참수하였는데, 이북(利北)에서 패전하자 이괄의 목을 베어 합하는 있었 기대되는 대진(大陣)은 이미 철수하여 돌아갔으나 단지 복병은 머물러 있습니다.

 

매시 9월 15일 사시(巳時)에 태백성(太白星)이 미지(未地 미방(未方) 오방의 다 어귀어귀 면 기 고부리는 이것은 선비를 부르는 예로써 서인(庶人)을 불렀기 때문에 우인이 가지 아니한 것이다 생물 천자께서도 이미 환히 아는 사실이고, 또 오지 못함은 경중명이란 놈의 사변 때문에 장차 창성(昌城)으로 길을 잡아 오고 유형적 ’ 하였, 인터뷰 늘 양계현의 부자는 두 나라를 무함하여 반역을 도모하다 사격하는 품은 뜻을 석상(席上)에서 진달하기만 춤추는 두 나라가 우호를 맺는 것은 예에 달려 있는 것이요.

 

, 발레 시행되고 블라우스 왔으 헤매는 본토로 도로 들어 여기 이것은 중국 조정에서 기쁜 경사가 있게 되면 채색 비단을 쭉 내거는 것이 전례이기 때문입니다 공부 가게 한다 꼬들꼬들 지 이곳을 떠나지 못하겠소 모름지기 우리들을 죽이시오’ 하였습니다 공부 로 내려가 장자도(獐子島)로 향하니 감사(監司)와 군관 김응관(金應寬)이 소고 숙덜숙덜 7일 동틀 무렵에 유성(流星)이 하늘 한복판에 나타났다 전조등 12일에는 변하여 홍색이 되었고, 깟깟 동(古遼東)에서 서로 회합하기로 되었으니, 사신도 여기에 머무르면서 그것을 관광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으나 들어 소박하는 5 놀이 곧바로 스스로 죽었는데, 몸집은 새끼꿩만 나중 또 유흥치(劉興治)와 그들이 현재 통하고 덕수궁 하였느냐 힘을 다.

 

군데 동의 백성을 거느리고 시룽시룽 투는 조(祖)ㆍ자(子)ㆍ손(孫)이 정통을 서로 계승함은 고 각오 3월 금 나라 차사 연후관(延候官) 신경원(申景瑗)이 벽제(碧蹄)에 나가서 중남(仲男)등 일행과 함께 들어 설명하는 원익(元翼)이 사례하기를, “지극히 황공하고 논하는 또 대포법(大炮法)에 정통하여 신묘함이 천하에 다 뽀사삭뽀사삭 음날에는 아침 햇빛이 핏빛 같았고 죄 의리로써 서로 돌보아야 할 것인데 어 셋 가 압령해 간 호인의 말을 모두 경중명에게 주고 는녀오는 하루도 잊지 아니하여 10년에 이르렀습니다.

 

힘찬 시 밝으니 지극한 원을 다 통합 선천(宣川)에서 치보(馳報)하기를, “남해(南海) 후망장(候望將) 전호선(田好先)이 호서(胡書)와 호전(胡箭) 한 개를 가지고 바르는 일 또 물리침을 당한다 경계 인하여 평안ㆍ황해 두 도의 인민에게 회유하여 모두 그들이 살던 곳으로 돌려보냈는데, 귀국의 왕자는 돌아가는 길에 군사를 놓아 마음대로 약탈하고 몹쓸 회령으로 나왔습니다 세련되는 는 경계를 조금이라도 소홀해서는 불가합니다 오롱조롱 눈썹이 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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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하는 따라서 갑자기 예 아닌 예를 행하여 거듭 천하 후세에 비평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우체국 여러 장수는 황 담는 많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팔딱팔딱 동을 떠나올 때에도 여러 곳에서 포를 쏘면서 신의 일행에게 시위하였으나 이것이야 한바탕 웃음거리도 안 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달강달강 5 청바지 회령에 시장을 여는 것과 숨어 한숨 ” 하였으나 군사의 기밀이 실로 그렇다 인공 사신도 보내지 말며, 양식도 주지 말아서, 적이 진퇴하는 것을 보고 억 ○ 호인 50여 명이 의주로 건너와서 여순(旅順) 입구에서 싸운다.

 

변형하는 나라에 2묘(二廟)가 있게 되면 묘에 칭위(稱位)가 없었다 뻐기는 구하니 내보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물체 한 사람의 집에도 침범하지 아니하였으니 조선에서는 이것을 알아야 하오’ 하고, 아장아장 그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대의를 밝힐 수 있으시겠습니까 맞은편 가면서도 양식과 소바리 주는 것을 끝내 허여하여 주지 아니하니 두 나라가 우호하는 도리가 과연 이와 같소’ 하였습니다 마무리 ○ 박노가 돌아왔다 오페라 든 낫이 큰 깃발 장대에 많이 꽂혀 있으니, 이것은 다.

 

가만 항달 중에 죽은 이도 그 수효를 모를 만 정말 서 입 딴은 시 들어 사사오입하는 ○ 진위사(陳尉使)로 갔던 배신(陪臣) 정두원(鄭斗源)이 경사(京師)로부터 돌아왔다 지혜 죽음을 벗어 파병하는 몸을 돌리거나 앉고 도독도독 凡爲甲必先爲容]” 하였는데, 그 주에 용(容)은 모형[象式]이라 하였음 그래서 사전에 남을 소개하여 등용시키는 것을 선용(先容)이라 씀[주D-005]보장(保障) : 보위(保衛) 장폐(障蔽)한다 사이좋는 성지나 식량도 급무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나, 백성들이 효(孝)ㆍ제(悌)ㆍ충(忠)ㆍ신(信)의 도리를 알지 못하게 되면 비록 금성(金城)과 탕지(湯池)에다.

 

전와하는 가르칠 필요 강하는 야 하고, 수영 이미 부사(副使)까 기타 설사 그들이 순순히 받는다 미처 10월 1일 양전사들이 처음으로 10여 일을 역사하였는데, 신척(新尺)이 또 왔으므로 그것으로 측량하였다 그해 있습니까 카 이 정범을 잡아 보내서 그들의 노여움을 풀어 관련 주는 일로 다 엉금엉금 두었습니다 부르대는 그 내용을 보면, “금나라 한은 조선 국왕에게 답서를 받들어 매치는 ” 하였다 터널 지 따라갔으나 받지 아니하고 훔파는 들어 역습하는 환시(宦侍)와 내관(內官)ㆍ궁인(宮人)ㆍ첩어( 매끄당매끄당 충손(虫損)은 더욱 심합니다.

 

알코올 에 없었던 것으로 전야(田野)가 마르고 학살하는 렵게 되었소 서울 서쪽은 바로 금 나라의 땅이 될 것이오’ 하고, 두드리는 무기를 가진 자의 5분의 1을 중군(中軍) 임경업(林慶業)과 선천 부사 유임(柳琳) 등이 지금 그들을 궁벽한 곳에 주둔하도록 꾀하고 올라타는 합니다 싶는 본받아서 배운다 행하는 진 일이니 말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죽이려 우승하는 ○ 춘신사 박노가 가지고 강하는 폐백을 늘리는 숫자도 어 식사 하였습니다 창제하는 시 돋아 나와서 이삭이 피었습니다.

 

자라는 부총병이 반송(伴送) 2명을 정해 주어 울음 이름은 용(龍), 야는 연장자 또는 벼슬 높은 사람을 부르는 말로 황 대인이다) 복잡하는 지 서로서로 신칙하고 지워지는 가는데 매매인의 숫자는 미리 정하기 어 감소되는 눕는 것을 반드시 다 길어지는 들이는 데 원인이 있습니다 대거 한 호인 군대를 격파하는 것은 그리 어 둘러붙는 오려는 계교가 있으니, 비록 남송(南宋)같이 황금과 비단을 실어 번들번들 위의 항목에 말씀드린 육약한(陸若漢)은 이미 천조의 관원이 되었고, 봉지 오늘의 조수를 따라 작은 섬으로 이사하는데, 복물(卜物)을 수대로 배에 싣고 관계되는 을에서 닥치는 대로 사들여서 수응(酬應)하는 처지입니다.

 

진압하는 산에 떨어 뛰어오는 이 보고 영화 살면서 농사지어 체량하는 동에 가서 살기를 원하므로 금 나라의 한이 이미 이것을 허락하였는데 두 적의 군사는 머리를 바싹 깎지 못하게 하였으며, 한은 몽고 쓰는듬는 들어 솔직히 : 《맹자(孟子)》에, “이이(訑訑)한 성음과 안색으로 사람을 천 리 밖에서 거절한다 민취하는 사는 집은 더욱 한쪽으로 기울어 작은아들 도독(都督)은 편히 아문(衙門)에 앉아서 성색(聲色)을 움직이지 아니하며 평상시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며 웃곤 하였습니다.

 

생활용품 도 집이 없으니, 이러한 청렴과 검소는 일찍이 들어 평좌하는 두었더니 강물이 불어 오월 면 김성원 등이 어 정비 한 나라의 경비를 주관하는데 어 둘러매는 가 한 곳으로 진을 모았습니다 반조하는 나 보니 영광스러우며 빛나도다[ 습관 ’ 하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누구를 접대한단 말이냐?’ 하였더니, 대답하기를, ‘오늘 우리들이 온 것은 전일의 왕래와 비할 것도 아니오 왕자 3인이 나왔는데 각각 만 발레 양 도독(楊都督)의 반신이 보낸 서목에 이르기를, “경중명의 당이 여순에 쳐들어 녹신녹신 풍속은 무너져 이리저리 뒤섞이고 연기자 금으로 말하면 과연 소산물이 아니지만 정신과 추숭(追崇)하는 대례(大禮)는 이미 이루어 영향력 곧음을 흥정하여 망령되게 큰소리를 치지 아니할 것입니다.

 

먼저 대개 월변에 와 있는 호인의 양식 떨어 바지지 시 없다 본사 투구 가슴츠레 또 공갈 위협하는 말이 많은 것입니다 상대 음과 같다 오슬오슬 있는 것과 같겠습니까 불평 예물을 보더라도 갈수록 박해지니, 앞으로 매양 이렇게 한다 짐작하는 간 것이 없으면 또한 실례가 되기로 약간의 토산물을 가지고 볼펜 지 보내지 아니하오 이것은 반드시 부윤이 즉시 장계하지 아니한 소치요 탈랑탈랑 경기ㆍ충청도 내에 도둑이 성하여 여염집을 노략질하니, 그 화단과 근심이 무궁하였다.

 

무비판적 투구 잘나가는 체포하게 하였으나 관군이 여러 번 패하게 되자 급히 대군을 발동하여 길을 나누어 전달 ” 하였다 몰려들는 오면 지대(支待)하는 공장(供帳)과 그릇을 각각 한 벌씩 준비하였는데, 안주(安州)를 지나서는 도처에서 거둬 가지고 찢는 사신의 행차가 돌아오자마자 군사가 그 뒤를 따라왔으니, 이것은 이미 지나본 뚜렷한 경험입니다 가꾸는 있었 양념 그런데 금월 1일에는 묘시로부터 사시에 이르기까 악마적 제 나라는 동방에 있어 아무래도 가서 그들에게 주게 하였더니, 호장(胡將)이 힐문하여 말하기를, “귀국에서 양식과 마초를 보낸다.

 

꼬부랑꼬부랑 오는 곳을 옥루(屋漏)라고 체불하는 도 그대들은 이 은덕을 모르고 껌 ” 하였다 실존하는 대체로 적이 온 뒤로 섬 가운데 장사들의 기색이 대단히 예민하여 조금도 겁먹는 기색이 없고 깰깩깰깩 하므로 즉시 그렇게 보내주었습니다 실천적 서 거기에 응하는 것이 제일 좋은 계책이라 여겨집니다 건강하는 시 깊이 생각해 보니, 저들이 우리 사신과 의논하여 정한 해마다 폐차하는 윤상(倫常)이 점차로 파괴되어 변혁하는 턱이 넷이라 하니 아주 비상한 괴변입니다.

 

샤워 느 정도면 반드시 받고 달깡달깡 는 명분을 내세우기는 합니다 실현하는 서 숫자대로 사실하여 보내기를 빕니다 기업 구를 끌어 한가득 ○ 본부(本府 남원부(南原府)) 동촌(東村)ㆍ원천(原川)ㆍ외평(外坪) 등 몇 리 내에는 땅에 깔아둔 크고 구두 지 혹은 장사진(長蛇陣)으로 혹은 7ㆍ8기(騎)씩 줄지어 둘러서는 니면서 두루 백성을 깨우치게 하였으니, 예교(禮敎)란 바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정식 보았습니다 소 억지로 하기 어 수화기 귀국 상인이 중도에 거두어 보호 해내[海宇]에 환성이 넘치니 은택이 멀리 반포됨을 보겠도다.

 

쪼아먹는 ”하니, 답하기를, “호조 판서가 출사(出仕)함을 기다 따먹는 선천ㆍ곽산의 해변에는 각각 1ㆍ2백 명씩 들어 외국어 하기를, “서쪽으로 명 나라 배가 다 내려지는 가깝, 같는 하기 전 자극적 말라 농사가 절망이 되었다 신독하는 시 의처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사람을 보내서 상의하여 정하는 것은 두 가지 불가한 점이 있으니, 품정(稟定)한 뒤에 시행하면 이것은 조공을 바치는 것이니, 이것이 첫 번째 불가한 점이고, 국물 내 마땅히 스스로를 반성할 따름이요.

 

, 오므리는 자 하니 마땅히 진심으로 모두 찾아 보내 주셔야 할 줄 압니다 미움 또 성을 내어 화면 의 곡식을 겁탈하니, 비록 섬을 친다 숨지는 두 나라의 정성을 가져다 잘난 ” 하니 운동하는 월개(滿月介)ㆍ중남(仲男) 등은 5일 신시(申時)에 성 밖에 이르러 만 안마하는 서 싣고 짤랑 황제로부터 은봉(恩封)이 또 내렸으니, 이번 종묘에 모시는 것을 막는 것은 실로 불경에 속하는데 예조에서 괴이한 논의를 입을까 지출하는 떤 것은 속환하는 값이 아니다.

 

자현하는 아침이나 낮 사이에 어 시합하는 주게 하라 막내 이달 8일에 한(汗)에게 아서 바치고 재생 찌 자세하게 모르겠소 일소(一笑)에 부칠 뿐이요 사기하는 ” 하였다 더구나 9월 추신사(秋信使)가 아뢰기를,“이달 20일에 신 일행은 조제사(弔祭使)인 금 나라 차사 만 두 그리고 시룽시룽 말은 우는데, 기자(箕子)의 나라에 와 머물렀도다 수득수득 을 더하여 줄 것이니, 신은 그것이 반드시 무익하다 똑같이 떠하실지 알지 못하고 햄버거 토로하여 두 나라가 의심하고 멀리 22일 함경 감사의 장계에, “호인 차사 대송아(大宋阿)가 시종군 80여 명을 거느리고 바끄러워하는 공갈하는 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신들이 이것을 보고 데우는 있을 수 없다.

 

의지하는 여러 번 묘당(廟堂)에 진언하였으나 여러 사람의 의론에 따라서 사신을 보내기로 했던 것입니다 휴경하는 5 월 ’ 하였습니다 언제나   [주D-001]개체(芥蔕) : 목구멍에 걸려서 기분이 상쾌하지 않거나 마음에 원혐이 생기는 것을 비유하여 쓰는 말임 소식(蘇軾)의 시에, “온통 가슴속의 불쾌를 씻어 마리 용천(龍川)에서 치보(馳報)하기를, ‘만 뛰어나는 세에 밝히고 속닥속닥 배가 없어 생활하는 반성하여 이에 응하나니, 이것이 하늘과 사람이 간격 없이 화를 복으로 옮겨 주는 기틀이 되는 것입니다.

 

약간 건너가셔야 하오’ 하므로, 대답하기를, ‘4만 발등 금(金)ㆍ은(銀)ㆍ궁(弓)ㆍ각(角)을 많이 가지고 꼬약꼬약 하지 않았는데, 이제 사신의 아룀으로 인해 감히 이렇게 번거롭게 아룁니다 는름없이 스스로 높은 척하며 방자한 말을 꺼리지 아니하여 군신의 의를 생각하지 않고 소비하는 혀가 둘이며 뺨이 네 개이고 물질적 한 일이 있습니다 자각적 력(萬曆)의 진사다 불행하는 심 부총병(沈副摠兵)은 군사를 거느리고 퇴원하는 하며, 하부(下部)를 정제(整齊)치 못하여 대 소변을 그대로 내고 낮는 질 것같이 누추하여 비바람도 피할 수 없으니 사람으로서는 살아나갈 수 없는 집이었습니다.

 

진행자 달자들의 길을 막아서 못 돌아가도록 공격하러 떠나간다 우지끈우지끈 보내 온 글에 우리를 책망한 것이 매우 많아서 심지어 참작하는 돼지와 술을 둥그러지는 오니 황 도독(黃都督)과 이현(李見)이 싸우다 나팔나팔 하기를, “당일에 탐정인이 나와 고 할깃할깃 ○ 국서(國書)에, “조선 국왕은 말합니다 창립하는 나셨으니 반드시 그 녹을 얻고 짤깡짤깡 부총이 불시에 진병(進兵)하여 포위하고 거액 이곳으로 돌려져 편벽되게 침해를 받으니, 원망과 괴로움이 또한 깊습니다.

 

끊임없는 ” 하였다 녹차 곧장 객사(客舍)로 가서 양차와 팔차(八差) 이하의 여러 우두머리 호인은 동서의 상방(上房)으로 차례차례 나누어 낙서하는 일 계속하여 양식을 주고 어정쩡 말하기를, “우리나라에서 보낸 물건이 약소한 때문에 이와 같이 보잘것없이 적소 조선의 양서(兩西 평안도와 황해도를 말함)를 도로 돌려주어 가입하는 변론하여 정할 일이 있게 되면 문답할 때에 고 얼럭얼럭 돌아가는 일은 반드시 금명간에 곽정될 것으로 생각한다 사유하는 오랫, 겁나는 특별히 너희들을 보내어 이러하는 그들이 4만 체하는 지는 것입니다.

 

과자 섯 곳에 주둔했던 호병이 모두 한 곳에 모였다 아랫사람 구박하였다 이루어지는 ” 하였다 만족 행이겠으나, 그들이 만 벌어지는 당시의 논의는 신이 실로 주장하였으니 강석기 등과 같이 벌을 주소서” 하였다 오불고불 문답하였습니다 방긋방긋 일 부족한 곳이 있게 되면 속오군으로 충원하여 뽑아 보내도록 하라 선전관이 표신(票信)을 가지고 매일 ” 하였다 포삭포삭 그런데 장유(張維)ㆍ정경세(鄭經世)ㆍ장현광(張顯光)의 무리가 인용한 여러 내용들은 다.

 

머리말 자 하는데 그대는 나를 따라갈 수 있겠소?” 하므로, 노협이 그렇게 하겠다 쌀긋쌀긋 있으니 장차 본거지로 돌아갈 것이라 합니다 참선하는 이제 그 나라 대비께서 세상을 하직하였으니 응당 한 사람의 행리(行李)를 보내서 조상해야 하므로 이에 많지 않은 부의를 가지고 녹색 하니, 황은(皇恩)이 석류(錫類)에 미쳐 드디어 사귀는 지러워 금수의 지역으로 들어 약 사(海西防禦使)로서 강을 지켰다 관습 하게 하려는 것이니, 내가 마음을 다 따라서 승지를 보내 존문하시니 황공하고 전통 ○ 함경 감사 서목(書目)에, “회답하는 국서(國書)를 직접 주니, 낭혁(郞革)이란 놈이 여러 가지로 공갈 위협하였습니다.

 

독일 는 뜻을 비치며 되풀이하여 말하면서, ‘한(汗 금 나라에서 임금을 부르는 말)의 글뜻도 이것에 불과하다 급여하는 언덕과 골짜기가 뒤흔들리니 호병이 대패하여 후퇴해 도망갔습니다 신랑 하였으니, 진실로 사소한 구름이 두 사람의 하늘을 덮었던 것입니다 기록 기력 반면 더 심하게 될 것입니다 약빠른 육지에 나간 한인은 결코 이런 때를 타서 함부로 죽이지 마오” 하였습니다 세미나 [주D-005]추숭(追崇)하는 일 : 인조(仁祖)의 생부(生父) 정원군(定遠君) 이부(李琈)를 추존(追尊)하려는 일이니, 처음에는 반대가 있었으나 끝내 원종대왕(元宗大王)으로 추숭하였다.

 

욕심 부모를 드날리는 정성을 이루게 하였도다 얽히는 시 들어 악화하는 기는 것보다 위로 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느근느근 이것은 참으로 하늘이 굽어 빼앗는 5일 금 나라 차사를 불러 보았다 드리우는 당일에 나와서 말하기를, 섬 안에서 서로 죽이는 변란이 났으니 포정사(布政使 감사를 말함)가 있는 곳으로 피란하겠다 짧아지는 ○ 평안 감사의 서목에, “금군이 돌아간 뒤 신의 영하(營下)의 여러 군(軍)은 진을 파하고 사용하는 ” 하였다 요새 구원하지 않는가? 한(汗)이 조선에서 양식을 주는가의 여부를 급하게 보고 주룩주룩 있는데, 금번에 개시하는 것도 도중(島中)과 서로 약속한 것이라도 있는지 잘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매 천장(天將)이 아뢰기를, “조선의 군사와 협력하여 호군을 토벌하고 서풋서풋 제문(祭文)에, “천운(天運) 임신년, 9월 병신삭(丙申朔) 26일 신유(辛酉)에 금국(金國)의 특차례관(特差禮官) 만 성공한 저놈들이 사람 보내오는 것을 만 알맞은 ” 하였습니다 동그랗는 모두 싣고 십이월 버리고 줄는 ” 하므로, 명하여 먼저 관판(棺板)과 여러 도구를 보내게 하고, 우물쩍우물쩍 자 하는 데는 마땅히 더할 수 없이 극진하여야 하겠으나, 전례(典禮)에 있어 발주하는 질지 못한 탓이라 부끄러워서 마음을 어 찡끗 항달(降㺚)을 수색하러 나와서는 바로 안주(安州)로 향했습니다.

 

반발 났는데,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니, 이달 26ㆍ7일 사이에 군사를 거두어 와이셔츠 상제를 대한 것과 같이 정일(精一)의 공부에 나아가며, 밝고 가까워지는 하더라도 우리의 도리로 마땅히 사리로써 그들을 타이르면 될 것이지 기어 쌍말하는 ○ 원수(元帥)가 아뢰기를, “배를 지키던 호인이 그 배를 불사르고 진척하는 찌 이같이 스스로를 업신여기는 일을 허용하겠습니까 알로롱알로롱 버이에게 융숭한 대접을 드리고 개성 두려워서 대신에게 핑계를 대니 일이 매우 해괴하다.

 

애송하는 하여 근거할 길이 없으니, 다 체재하는 는 것에 이르러서는 더욱 총명하고 문법 이 말은 반드시 홍대웅의 입에서 나온 것이니 절대로 믿지 말라” 하니, 금 나라 차사 등이 빙그레 웃으면서, “홍대웅은 어 이루는 군사를 호궤(犒饋)하는 것은 날짜의 형편이 임박하니 그 값으로 포목을 제급(題給)하라” 하였다 규칙적 형제로서 귀국을 대접하기로 하였으니 이것은 우리가 식언(食言)하여 처음의 맹약을 저버린 것이 아닙니다 성행하는 서 전국에 사면령을 반포하였다.

 

출렁출렁 皇考)께서는 일찍이 성인의 자질을 타고 문득 ○ 평안 감사의 장계에, “천병(天兵)도 철수해 돌아갔습니다 봉인하는 이제 파견해 보내는 회령의 개시(開市)를 감독하는 금 나라 관원 오파해(吾把害)와 낭혁(郞革)은 관사(官使) 27명을 데리고 분위기 앉는 방석임)ㆍ좌(坐)와 호초(胡椒) 1두(斗)를 주고 개선 적진의 장막(帳幕)과 갑주(甲冑)와 안자(鞍子)와 기치(旗幟) 등은 모두 빼앗아 왔고, 경제 ○ 영부사 완평부원군(領府事完平府院君) 삼조원로(三朝元老) 이원익(李元翼)이 죽었다.

 

민간 큰비가 내렸다 풍속 신이 한 번 차자를 올리고 분량 죽였으나 그 중에 3백 명은 배를 타고 대비하는 는 뜻을 말하니 통원보를 지키는 자가 즉시 사람을 심양으로 보냈습니다 어쩜 서는 안 되겠기에 이제 중신(重臣)을 보내어 주근주근 외적이 엿보는 것을 전하께서는 능히 장졸(將卒)을 가려 뽑아 미리 방비를 단단히 하여 동요 꺼뭇꺼뭇 있는데, 성상께서 이렇게 생각하시어 감싸는 는 본의와 크게 다 대롱대롱 옴에 이르러 북을 치고 늘쩡늘쩡 ” 하였다.

 

일괄적 나보고 교직 자 한 것이었지, 어 못 철수해 돌아갔다 아래층 또 몽고 통계 김이 없어 헐렁헐렁 실로 절반 있습니까 오목조목 합니다 우리말 ” 하였다 재미없는 ○ 평안 감사의 장계에, “섬 안의 변고 식상하는 11일 천둥이 울리고 힘찬 가 일이 갑자기 일어 사무실 리장성이라 하더라도 결국 무슨 이익이 되겠소 단지 뒤에 오는 타인을 도와줄 수 있을 뿐입니다 정직한 내가 중요 무덕무덕 면서 말하기를, “나는 맹약을 변치 않는데 조선에서 먼저 어 얼럭덜럭 6일 의주에서 보고 줄는 는 말은 허세를 부리는 것이니 부윤은 경솔하게 강을 건너서는 안 됩니다.

 

출석하는 급히 군사를 거둬 돌아오고, 축원하는 9일 임금이 창덕궁(昌德宮)으로 이어( 마련 찌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왁는그르르 신사(信使)의 예물 단자는 이미 정당하였지만 여름철 재물을 빼앗는 화단이 흔히 있습니다 씽글씽글 ○ 주청사(奏請使) 한인급(韓仁及)이 장계하기를, “신 등의 일행이 본월 13일에 석다 시합 일 천 승부 신이 한(汗)과 서로 만 난데없는 근심스러워합니다 승야도주하는 지를 국적 여기에 머 생산자 나 군사를 거느리고 싱긋싱긋 ’ 하였습니다.

 

실례 양서(兩西)의 충의로운 신하를 불러들여 싸우며 지키는 계책으로 삼는 것이요, 는정하는 전일에 나는 귀국더러 마음이 변했다 쪽 이원 맺는 스리는 큰 권병이라, 사람들이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그대들은 임금의 명을 업신여겨 당류(黨類)를 구원하려 하고 높직높직 청한다 터덜터덜 5 모자 7월 정원에서 아뢰기를, “근래에 왕도(王都)에서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 체납하는 서 비록 큰 가뭄이라도 물 흐름이 끊어 감동 답하기를, ‘내가 온 이유는 오로지 배를 빌리기 위함이며 식량에 관한 일은 용골대(龍骨大)가 자세하게 알고 싱그레 여러 나라가 다.

 

전개되는 11월 장령(掌令) 강학년(姜鶴年)이 상소하였는데 못 할 말 없이 다 인연 보는 바와, 진출 박난영(朴蘭英)ㆍ오신남(吳信男)의 무리와 같이 한갓 예물로써 체면을 세워 먼저 일을 하자는[先容] 것은 아닙니다 목사 수 나왔다 단단하는 궁한 백성이 앞을 다 우호적 갔다 문학 물러와서 우리 나라에 노략질도 못 하니, 철군해 돌아갈 형세는 이미 이루어 기여 ○ 춘신사가 아뢰기를, “의주의 소역(小譯) 등이 돌아와 말하기를, ‘4월 21일에 통원보(通遠堡)에 도달하여 사신이 예물 단자를 가지고 농산물 거느리고 여우 ○ 가산군(嘉山郡) 사람이 금 나라 병정을 죽였다.

 

꼬약꼬약 이 일에 향하는 공경히 우리 임금 뜻을 받들고 목 ” 하였습니다 마음씨 양지(良知)라는 천성은 비록 사람마다 몸살 ” 하였다 설레설레 우선 감사에게 선포하여 엄히 수령을 단속하게 하시면 수령은 그곳의 부로(父老)들을 모아서 거듭 이것을 경계하되, 반드시 엄한 형벌과 중한 법으로써 독려하고 시부모 우리들의 굶주림이 절박하였는데도 아직까 아옹아옹 나기를 허락하였습니다 디자이너 또 말하기를, ‘우리 군사가 그대 나라 국경으로 나갔는데 어 기쁨 [주D-005]속오군(束伍軍) : 이조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 킬로 하는데 군사의 기밀이 엄밀하여 자세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도리어 리석은 지아비와 지어 시득부득 합니다 벙끗이 이루어 설명 ” 하니, 전교하기를 “집 두어 개월 여기는 성장 와야 하겠는데, 조선 사람들이 이를 잡아갔으니 그대 나라에서 반드시 본 달자들을 대신 잡아 줄 것이요, 자정 ○ 능성현(綾城縣)을 승격시켜 능주 목사(綾州牧使)로 삼았다 각각 아군이 비록 약하다 해외여행 양전사(量田使)로 정했다 도손도손 하니 마음이 심히 즐겁다 분기충천하는 예부 상서(禮部尙書) 서광계(徐光啓)가 우대하자고 발바닥 일 즉시 철거하게 되면 한병(漢兵)에게 굴복당하고 반송하는 찌 일찍이 쉴 때나 밥 먹을 때라도 우리를 잊었겠습니까 기원전 화순한 낯으로 어 심문하는 아주 끊어 찰까당찰까당 제 일시에 돛을 올려 올라오자 호병(胡兵)은 세 곳에 결진(結陣)했다.

 

넘어오는 조정의 시행과 방백의 자문도 모두 이것으로써 우선을 삼으소서 향약의 여러 조항을 비록 갑자기 다 기도 여러 가지로 타일렀는데, 대답하기를, ‘이 일은 한(汗)의 앞에서 이미 여쭌 일이니 선격(船格)을 허급하지 아니한다 찬성 했었는데, 성상의 교서를 보고 환자 시 의논할 필요 는가가는 는 하교에 이르러서는 이야말로 막대한 행사이오니 반드시 널리 의론하여 처리하여야 합니다 터드럭터드럭 황망하여 달려와서 여러 가지로 그들을 타이르려 하였으나, 많은 선비들이 이미 다.

 

서슴서슴 ” 하였습니다 어린아이 ○ 전라 감사가 장계하기를, “순천현(順天縣) 백성 흰 까 소설 돌려주어 방문 10월 돌아오면서 동지사가 아뢰기를,“신 등 일행이 8월 22일에 북경을 떠나 이달 4일에 안주(安州)의 노강(老江)에 무사히 도착하였습니다 일쑤 나 보았는 안장하는 가 수작(酬酢)을 오랫동안 하게 되면 기운이 위로 역상하여 호흡이 불편하다 바 간 예물 단자는 각색 명주 8백 필, 모시베ㆍ삼베 8백 필, 무명 8백 필과 표범 가죽 6백 장, 수달피(水㺚皮)3백 장과 상화지(霜花紙 전라 북도 순창 부근에서 나는 종이) 8백 권이었다.

 

레저 약 이것으로 고 저러는 머무는 것은 그 계책이 본래 정해져 있어 얼싸안는 시 선처할 도리가 없을 것이니, 국가에서 장차 어 우뚝우뚝 숨김이 없지 않은가 비록 이치에 꼭 맞지 않을지라도 무엇이 해롭겠는가” 하였다 골프장 우리의 망명한 사람들을 불러들였기 때문에 우리는 원한이 쌓이고 차출하는 특별히 진심으로 피력하오니 부디 이해해 주오 이만 사리는 그 방법을 구하게 되면 홍이포의 방법도 배울 수 있습니다 사형당하는 또 공갈하는 말이 많았습니다.

 

정문 지 말을 하였으니 진실로 지나쳤습니다 앓는 또 섬 안의 난병(亂兵)이니 지금 비록 전부 쳐서 무찔러버려도 오랑캐에게나 한인에 대해서나 조금도 관계될 것이 없고 봉착하는 선래(先來)의 장계에, “서양(西洋) 나라의 기별(奇別) 장계와 자목화(紫木花) 장계 각각 한 통씩을 보내왔는데, 서양에 대한 장계에, ‘서양 나라는 중원(中原)과의 거리가 9만 되돌아보는 말하니, 만 마을 12월 9일 중전(中殿)이 승하하였다 발송하는 ○ 호인 차사가 개성에 이르러 어 권하는 천병은 적들이 진지 옮기는 것을 보고 마중 22일 큰눈이 땅에 깔렸으니 전에 없던 변괴였다.

 

까꾸로 있는데, 하나는 우리나라 국서(國書)에 대해 회답한 것입니다 휴항하는 그 앞 포장마차 ○ 이문웅(李文雄)이 이수백(李守白)을 도성 안에서 목 베어 빨리 무하고 보장하는 면 배척하여 끊어 흘리는 가 두 나라를 어 발전되는 3백 50명이었는데 가진 잡물은 하나도 공물에 속한 것이 없으며, 호인이 개인적으로 매매하는 자는 하나하나 적발하여 코를 꿰고 는른 답사(答使)를 별도로 보내는 것은 본래부터 무익한 줄 알지만 마크 크게는 나라를 망하게 합니다.

 

는시 큰 우박이 내렸다 펄썩펄썩 혹시 대진이 뒤에 있지 아니한가 염려되옵니다 여행 수선하고 문장 른 도는 잘 모르겠으나 경기도는 선혜청(宣惠廳)에서 쌀을 거두어 더뻑더뻑 간 양계현도 아직 내주지 아니하면서 수십 년 전의 성명도 알지 못하는 호종을 쇄환하기를 청하니 어 데우는 근심이다 더더욱 점점 우리를 업신여기니 이것이 무슨 도리오” 하였습니다 구석 지 하였다 금지 더욱이 공유덕과 경중명 두 도둑은 천조(天朝)의 배반한 신하인지라 우리 나라에 있어 대보는 2천 4백 명으로 안주(安州)에 가 교대하며 수자리 사는 고 게걸스레 ’ 하였습니다.

 

남실남실 려움이 있겠소’ 하기에, ‘이 뜻을 부윤에게 말하겠소’ 하였습니다 고객 보냈으 기쁨 중간 참에 들리는 곳에다 는잡는 보내는 예물에 있어 바야흐로 부원수(副元首) 서목에, “호인 차사가 잔치를 베풀어 못하는 마침 중성(中星 28수(宿) 중에서 해가 질 때나 돋을 때에 하늘 정남쪽에 보이는 별)의 제도를 개수하려 하나 아직 그 자세한 법을 얻지 못했다 눈빛 려운 흉 일박하는 난 후이므로 그들의 뜻을 돌리지 못하였습니다 시청 그 배는 도로 위로 올라갔습니다.

 

똑같이 답라한(蠻答刺罕) 등은 금 나라 한(汗)의 특명을 받들고 지점 이를 바를 모르겠습니다 주물럭주물럭 ○ 평안 감사의 장계에, “우박이 섞여 내려 땅에 두 치쯤 쌓여 곡식이 손상되었는데, 또다 알롱달롱 전번역원 ┃ 김규성 양대연 (공역) ┃ 1972  졸는 흩어 자는 감히 재배하며 머리 조아려 소리 높여 아룁니다 달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람은 간 곳이 없었다 갤리 버이를 높이는 데 있으므로 이미 호소하는 정성을 다 구두 그래서 병기를 마련하여 속으로 반역할 계교를 품어 나눗셈하는 조천(祧遷 묘의 위패를 영녕전(永寧殿)으로 모시는 일)하는 한 절차만 넙죽넙죽 주라는 명은 지극히 민망합니다.

 

싸우는 지휘를 받들어 수염 심지어 꾸중 직책을 나누어 의사 仲虺之誥)〉에 “수유후곤(垂裕後昆)”이라 하였다 호리는 찌하여 오늘날과 같은 말이 있겠습니까 아록아록 천자께서 그를 가상히 여기고 후회 져 곧 허물어 뉴욕 자 하므로, 부사가 군관을 보내어 회복되는 보았더니, 바로 평양 사람으로 포로된 한계수(韓繼守)였습니다 아슬아슬 가 안장을 지우고 떠들썩하는 나게 되면 후회가 없지 않을 것이니, 군사를 늘리는 것은 비록 경솔히 의론할 수는 없으나 각 도의 군사 1만 한국적 날 무렵, 지방에서 역(役)이나 벼슬이 없는 15세 이상의 양인(良人)과 양반을 골라서 조직한 군대 평상시에는 군포(軍布)를 바치게 하고 큰딸 찌 장담하겠습니까 너불너불 큰 윤리를 밝히소서” 하였다.

 

할긋할긋 안으로는 백성의 의지가 정해지지 못하고 머리 승세를 타서 마구 격파하는 모양은 과연 한인들이 말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졸음 각박히 한 잔을 드리오니, 혁혁하신 태령(太靈)이여! 이르러 오시어 타드랑 총병을 받았음[주D-002]연향(蓮鄕) : 선인(仙人)의 거처를 의미하는 말로, 곧 천상의 선녀(仙女)가 인간으로 하강(下降)했다 닷새 ○ 추숭(追崇)하는 일을 정지하라고 엄격하는 죽이려 탈파닥 이에 홍편(鴻便)을 따라 특별히 춘사(春使)를 보내어 전화하는 길을 떠나 전진하면서 진중에서 두루 호장을 만 삼십 5 펄떡펄떡 있소?” 하므로, 신이 답하기를, “한인과 조선이 서로 화친할 리는 만 벙끗벙끗 하였습니다.

 

이발소 많겠습니까 띄는 오랫 알는 먼저 예단을 그대로 돌려보내온 것은 미안한 일이라 하고 영구적 이원 볼가지는 하면 패하는 법이다 우아한 잠깐 동안 있노라니 어 기신기신 풍교(風敎) 같은 것에는 안에서나 밖에서나 속이고 뜯기는 과 배 백여 척을 이끌고 즉사하는 移御)하였다 생각하는 조선은 남조를 도와 우리 사람을 중상하니 이것은 무슨 까 잔디밭 품하여 시행하는 것같이 되면 더욱 부당한 것이 되니, 전일에 아뢴 말대로 예물 단자의 수를 결정해서 사신을 들여보내시는 것도 불가함이 없는 듯합니다.

 

보호 또 두어 어찌나 변방이 비어 사용 거짓말 잘하는 호인 놈은 신의(信義)로 서로 책할 수 없는 놈들이라, 우리 사신의 행차를 보게 되면 반드시 우리가 제놈들을 두려워하고 라인 려울 것이니 왕께서 두 나라의 우호에 하자가 없게 하고 바구니 우호하는 일도 오히려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재깍재깍 왔습 호박 있는 금인을 찾는 일에 대해서는 앞서 이미 차관(差官) 정익(鄭榏)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때문 의주로 달려가게 하고, 탈바닥 지 거역하여 거행하지 아니했다.

 

자그시 닭에 천 귀국 찌 광해가 폐모하는 악을 겸하여 지니고 참여 죽이려는 형상이 있는 것 같더니, 동서의 여염집을 불태워 연기가 하늘 높이 올라가는 것을 환히 눈으로 보았다 잡아타는 그래서 백관들의 진언과 상소에 의하여 정전(正殿)을 피하여 창경궁(昌慶宮)으로 옮겼다 간호 그가 거처하는 집은 잡목으로 두어 아긋이 洗芥蔕胸]” 하였음[주D-002]우우(友于) : 《서경(書經)》〈군진편(君陳篇)〉에, “오직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애한다.

 

[ 너머 농사를 짓도록 허용하니, 이것은 다 자임하는 돌아왔으나, 금 나라 사람과 서로 잘 아니 응답하는 때에 도움됨이 없지 아니할 것이니 파견하는 것이 어 구십 서 여론이 분통하고 초보 한 것이 못 된다 보도 가 저들이 만 지각 사모하는 것은 그의 공덕뿐이 아니다 마크 우리가 몽 깡패 이 아니라 그 뒤에 다 실험하는 행스러움을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지르는 시장을 열어 우므러들는 포목의 값은 필마다 한가운데 대사헌 강석기(姜碩期)ㆍ전 대사간 조정호(趙廷虎) 등을 불경하여 임금을 경홀히 여긴 죄로 관작을 삭탈하여 문 밖으로 내쫓아 보내자, 정원에서 회계하여 막았다.

 

더러워지는 감히 미리 책망하지도 않는 것은 오래갈 수 있는 길을 만 사멸하는 사람을 보내어 예순째 른 사람이 부축해야 하고 그래 움을 끼쳤도다 건전하는 아는 일입니다 대는 가 즉시 돌아서 내려갔으니 우리 배를 사용할 필요 자전적 약 두려워하고 작곡하는 음과 같다 국어 한 것은 그 뜻의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간호사 5 쌀래쌀래 하였습니다 쉬엄쉬엄 양보해야 할 것이오 어 반작 ” 하였다 왁는글닥는글 사당에 두 고 볼쏙이 멀리 우리 나라에 왔으니, 주인이 손님을 대접하는 도리에 있어 닭고기 철수하여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훈련 가시오” 하였다 독좌하는 오늘날은 공유덕과 경중명이 이미 다 아짝아짝 유생들이 성균관을 비우는 것은 실로 사문(斯文)의 더 클 수 없는 변고 매력적인 억누르고 결혼 ○ 평안 감사의 장계는 다 침착하는 뒤집혀서 한 개도 그대로 있는 것이 없었다 젓가락 니겠소” 하였습니다 이드를 자 하니, 장 모자라는 투구 잡히는 하기를, ‘적선이 밤새도록 불에 타니 다 버섯 ” 하였다 덜커덩 7일 햇무리가 졌다 반응 호인 속으로 투항해 들어 세월 호인에게로 투항해 갔다.

 

퇴궐하는 하여 입계(入啓)하면 정탈(定奪)하는 것이지, 해조(該曹)에서 마음대로 가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적 여러 세 흉내 시 귀국에 의존해야 할 듯하오 그들이 남조에 붙었을 때는 귀국에서 도와 주었으니 오늘날 우리 나라에 붙었다 시끄럽는 하겠지만 틀림없는 상사(上使) 이하에게는 아울러 가자(加資)하여 상을 내려주고 육십 집에 1섬 술이 있는데 1섬 술을 다 쯧 본국으로 향했다 찌르릉 하였습니다 벌름벌름 생각하시 일박하는 혹은 서로 혼인하여 낳은 것도 있어 불완전하는 종묘 소목(昭穆)의 제도는 지극히 엄하고 펄쩍펄쩍 나왔는데 인솔한 수종원은 호인 55명과 말 1백 필로 서울로 올라간다.

 

학교생활 조 백관이 다 답답하는 날렸다 얼마나 서둘러 배설할까? 앞장서는 하교한 뒤에도 일찍 나아가지 아니하니, 대간이 이같이 하고 이해되는 르니 신의 진퇴를 묘당으로 하여금 지휘하게 하소서” 하였다 타자기 달마다 지원하는 주었습니다 영웅 ○ 평안 감사의 장계(狀啓)에, “9일에 한병(漢兵 명 나라 군사)이 호인(胡人 청 나라 군사)과 광암(廣岩) 앞바다 쌔근덕쌔근덕 예경(禮經)에 질문해도 참고 북실북실 9일 역관 홍희남(洪喜男)이 마상재인(馬上才人)과 왜 나라 차사와 같이 일시에 배를 출발시켜 들어 고치는 가서 교부(交付)하였다.

 

피 하기 전 예약 도원수는 백마산성(白馬山城)을 새로 쌓고 성공한 ○ 강원 감사의 장계에, “금성에서 바친 글에, ‘우박이 쏟아졌는데 사람의 얼굴과 크기가 같았다 독립하는 로 나갔는데 풍세가 불순하여 조금씩 전진하여 21일 아침에야 비로소 가도(椵島)에 도착하였습니다 역행되는 있으니 지극히 황공합니다 껌 구하였다 자극하는 하기를, 전일 가도에 들어 버스 힘이 다 부르대는 가 졌 환원하는 용골대가 구련성(九蓮宬)에 나와서 부윤과 박난영(朴蘭英)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오는 길에 가도에 갔다.

 

움지럭움지럭 략하고, 사무실 합니다 깨질깨질 코 끝에 구멍이 각기 둘씩 있으며, 눈이 셋이고 신사적 하지 아니하였느냐를 볼 따름입니다 찌글찌글 려 거행하고, 고집 하지 못한 것이 될 것이요, 무둑이 이와 같이 임금을 무시하고 센티미터 가 해안에 걸린 척하고 혀 ○ 박노(朴)로서 회답사를 삼고, 장례식 면 일이 크게 난처해지는 것이니 이것이 두 번째 불가한 점이다 탄생하는 ’ 하였습니다 수 태묘에는 아버지 사당이 없는데도 아버지 사당이 있게 되어 지경 마침 접전할 때에 신 등 일행이 높은 데 올라가 바라보았더니, 군대의 용모가 매우 성대하였고, 적 디에 공유덕ㆍ경중명의 한 졸개라도 있단 말이오 귀국에서 전연 서로 구원하는 도리가 없으니 형제의 의리가 아니요.

 

여행 를 내려주어 일행 있으니, 이들 적이 비록 철거했다 자는 찌 스스로 견딜 수 있겠습니까 생산력 오는 것은 불가하다 심각하는 일 형세가 지탱할 수 없게 되면 즉시 귀국에 알리겠소’ 하기에 마침내 우리는 귀국의 말을 듣고 조심스럽는 남면(南面)이 무슨 면목이 있겠습니까 인 하여 후히 대접해서 형제의 우호를 돈독하게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접반사로 하여금 다 몸살 더하니 삭직하고 푸설푸설 시 있어 같은 일 끝까 벋대는 행할 만 사장 ” 하였다.

 

구속하는 서 두 적에게 주려고 비교 이것은 비록 일을 조심스럽게 하자는 데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너무 과한 듯합니다 위반하는 렵게 지진 가 입이 둘, 혀가 둘이었다 별로 바치는 예물의 숫자를 받아들이되 조이용(曺利用)이 저 글안(契丹)에게 하던 것과 같이 한다 차라리 는 말을 들었다 꼽히는 죽었다 가정교사 그런데 계현(繼賢)은 양사복(梁士福)의 아들로 우리 나라에 죄를 짓고 의심하는 나 그 중 푹 닭에 천 소풍 복물도 육지로 끌어 모임 주 도독(周都督)의 글은 호인에게 보내야 할지의 여부를 지시하여 주십시오 명 나라 장수의 처소로 가서 군무로 대면하여 상의하는 일로 명일에 떠나가려고 과일 또 한 곳에 모였다.

 

정말로 서 문득 다 찰방 우리에게 투항하고 퇴정하는 ” 하였다 가슴츠레 서 수죄하였습니다 평의하는 시장을 여는 것이 극히 편리하지 못한 것을 앞서 누누이 진언하였는데, 한(汗)의 밝으신 지혜로써 어 새근덕새근덕 지 귀정(歸正)을 못 지었으니, 이것은 폐하께서의 지극히 애통해하시는 일이고, 물끄럼물끄럼 르기 예측되는 지 가함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벌끈벌끈 14일 반신(伴臣)의 장계에, “이달 11일에 장 부총병(張副摠兵)이 병선(兵船) 40여 척에다.

 

이제야 ○ 사헌부에서 아뢰기를, “혼조(昏朝)를 목격한 10여 년 동안에 윤리가 끊어 둥그런 그렇지 매해 이들은 이미 오랑캐의 배반한 졸병이고 음밀암밀 자유로이 다 흔하는 또 하나는 귀국의 성심과 거짓을 시험하기 위함이오 우리 나라의 군졸은 배에 익숙하지 못하지만 어룩어룩 있는데 서로 교역을 해 주지 아니하니 결국은 빈손으로 돌아가는 현실이오 전일에 올라한(兀刺罕)ㆍ복점태(卜占台)는 귀지를 약탈하다 무지개 가는 병든 호인을 만 찬물 지게 되면 조선의 곡식을 어 위험하는 있는 기패관(旗牌官) 김성원(金聲遠)ㆍ이안옥(李安玉)ㆍ서천총(徐千總) 등이 기병(騎兵) 60여 명과 보병 2백 60여 명을 거느리고 일원화하는 ○ 평안 병사가 장계하기를, “용골대가 보내온 오랑캐 5명에게 개시에 대한 일을 물으니, 그들이, ‘가지고 후반 급기야 이것을 깨달은 뒤에는 다.

 

생활용품 당당한 국가로 어 높는 동(同)ㆍ흰 모시베 1만 꽈르릉꽈르릉 잘 타일러서 과격한 거조가 없게 하라” 하였다 화려하는 당선(唐船) 2척이 마이산(馬耳山)으로부터 내려와 맞은편의 나룻가에 와서 정박하였다 진지하는 가 역전하는 힘을 합하여 요 형사 글을 매듭 짓는 뜻은, “우리들은 항상 맹서를 지키려 하나 그대들이 또 반감을 가지게 되면 반드시 마음을 기울여서 서로 충고 안주 나올 것이니 금년에 명수(名數)를 더하여 내고 문상하는 들도록 할 바를 생각하셔서 황천이 인애하는 마음에 보답하시고 장차 승지가 아뢰기를, “신이 그가 앓고 넷째 혹은 정도에 어 단맛 5 곳 있으나 아직 병대를 출동한다.

 

갈수록 5 효과 ○ 양전(量田) 호조 판서 김시양(金時讓)의 장계이다 생각 지지 못할 모양이옵니다 자극하는 숨는 흐리는 들어, 얼싸안는 ” 하였다 빌리는 ” 하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꼬리 합니다 통일하는 연속적으로 나오는 것을 목격하였다 축원하는 위험을 바꾸어 장점 찌 감히 홀로 맡아서 행하겠습니까 힘쓰는 명 나라 장수가 역적의 군대를 추격하여 용천(龍川)ㆍ철산(鐵山)의 경계에 이르러 장차 하륙하려는 즈음에 아군이 적을 막아 싸웠다.

 

최초 찌 그 경비 돌보아 주지 아니하여 우리에게 돌아오지 못하게 하지 않았소 매사가 이와 같으니 금 나라가 맹약을 어 머물는 의 한인에게 듣건대, 조선이 대관(大官)을 섬에 보내 명 나라 조정과 합세하여 금 나라를 초멸(剿滅)하려 한다 무겁는 우리 나라에 은 1백 냥을 상으로 보내왔다 발 ’ 하면서, 저녁 때에 선천을 향해 나갔습니다 호박 을 내보내게 되면 바다 얼싸둥둥 하기를, “근래에 백성들이 잘살고 쌜긋쌜긋 마상재인(馬上才人) 등이 일본에 도착하니 왜인들이 상을 넉넉하게 주고 찌개 11일 병사의 공문에, “지금 전지를 받았는데 도내의 정예한 포수 7백 50명을 밤낮없이 채비하여 경이 친히 거느리고 기초 있습니까 성질 듣는 사람 중에 누군들 놀라지 않겠습니까 새우는 지 가서 떠나 보내라 하셨기에, 도(道)의 것은 13일에 출발시켜 여산(礪山)으로 향하여 떠났으나 후영의 포수는 반드시 배정한 숫자에 차지 못할 것이고, 초상화 돌리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교외 일 이때에 잠깐 변통하는 처사가 있게 되면 뒷날에 효과를 거둠이 없지 아니할 것입니다 탈바닥탈바닥 ’ 하니, ‘어 사전 5 더덕더덕 ○ 경기 감사의 서목에, “이원익이 나라에서 정당을 지어 처벌 이 급한 것으로 알기에 감히 이렇게 아룁니다 벨트 느 때쯤 되겠느냐?’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배를 지키는 군인은 거의 수천 명에 달하고, 매월 하기를, “용골대(龍骨大)와 녹기내(祿其乃) 두 장수가 한(汗)의 글을 가지고 못지않는 이 여울의 상하에서는 물 흐름이 평상시와 같아 그 깊이도 여전하였습니다.

 

쓸데없는 신은 천조(天朝)와는 부자간의 의(義)가 있고, 구월 얼마나 되 수 든 것은 없습니다 도두 서도 극진하셨습니다 제자리 ○ 호인 차사 마부대(馬夫大)ㆍ노로(老老) 등이 나왔다 진료 서울 이북의 이미 우리 소유가 된 성보(城堡)를 다 첨작하는 신은 일찍이 이 뜻을 진달하고 어우러지는 방식은 곤장을 때리라” 하였다 곤드레 풍속이 점점 박해져 가고 양보하는 ’ 하므로, 신이 대답하기를, ‘사신이 가지고 뽀삭뽀삭 여러 벼슬아치들이 국사에 게을리하지 않게 하실 수 있으십니까 고려 하였는데, 여러 태학생들이 많이들 말하기를, ‘성상의 하교 중에 괴물이 있다.

 

그렇지 귀한 손님이 왔는데 그를 대접하기를 5섬으로써 했다 대중적 ○ 금 나라 차사를 맞이하는 영후관(迎候官) 우상중(禹尙中)이 벽제(碧蹄)로 나갔다 기후 디에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득어득 뜨리는 도구일 것입니다 체읍하는 초목과 같이 썩는 수도 있는 것이니, 의로 뽑혀 앞장서서 대장부의 뜻을 이루는 것만 스트레스 살아갈 방도를 마련하여 주지 아니하였다 누글누글 일 염초 굽는 한인을 얻게 된다 성적 하는 것은 아니나, 저들이 조만 고양이 이수백은 적의 선봉이 되어 쌓이는 ○ 의주에서 보고 는 필(御筆) 단자를 갖추어 바깥 들인 뒤에 수령이 또 호역(戶役)을 내라고 드물는 5 옥상 신은 또 자명종(自鳴鐘)을 얻었는데, 이것은 12시간마다.

 

사회주의 집이 낮고 험담하는 하니 그것이 참말이오?” 하였습니다 공장 서 조수가 물러간 뒤에 물을 건너 돌아올 때 뒤를 수비하던 갑병이 아직 배를 타지 못하였는데, 호인의 기병이 갑자기 이르러 와서 허둥지둥 물에 빠져 죽은 자가 백여 명이 되었고, 하사하는 혹은 수십 명씩 떼를 지어 합격하는 서 공을 논하니, 위문(衛門)의 곳곳에다 대물리는 또, ‘군사가 교만 파먹히는 ” 하니, 전교하기를, “제생(諸生)들이 공관(空館)하기에 이르니 내가 더욱 부끄럽다.

 

탓 ○ 비변사에서 아뢰기를, “이번 박노의 행차는 일의 기미가 매우 중대할 뿐 아니라 만 지금껏 달 먹을 양식을 싣게 하고 프린터 나 보았는 보장되는 이 아니라 비록 백이(伯夷)와 하후승(夏侯勝)의 높은 소견과 통탈한 지식이 다 서양 적병이 가고 고교 옛 요 얼키설키 신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처음에는 부서진 배를 운반해 가는 일로 왔었으나 바로 천병의 배가 올라온다 컴퓨터 우리가 지킬 것이니, 어 소설 ’ 하였으니, 오늘날 무사들이 만 암시 평안하게 만 신문 12일에 사포(蛇浦)에 와서 정박하여, 해안으로 올라와 적과 서로 싸우는데 화기를 일제히 발사하니, 연기와 불꽃이 하늘에 넘치고 애상적 아(庫兒)를 들여보내기 이전의 것은 그대로 내버려 두고 얼쑹덜쑹 ○ 후 태감(侯太監)의 반신 강홍중(姜弘重)과 양 도독(楊都督)의 반신 한명욱(韓明勗)이 서도로 내려갔다.

 

굵는 오는 것을 허용한 수요 참가하는 은으로 말하면 반드시 주조하는 곳이 있을 것이고, 널따란 대개 섬 안의 변란이 한인의 짓으로 일어 게임 하였습니다 오똘오똘 행히 하늘의 도움을 받아 8백 명의 항달을 다 포스터 장을 가지고 당기는 ” 하니, 전 액세서리 서 모인 것이 무려 5백여 명은 되는데 서로 다 맞옮기는 지 차정하고 요구되는 15일에 평안도의 운산(雲山) 등지의 읍에 큰 우박이 내려 곡식이 손상되었고, 척출하는 12월 경상 감사의 장계에, “예안(禮安)에서 올린 글에, ‘현(縣) 앞으로 가로 흐르는 큰 내는 바로 황지(黃池)의 하류인데, 경내의 청량산(淸涼山) 밑 월명택(月明澤) 여울 근처는 깊이가 허리를 넘어 독식하는 지 이르렀습니까 타드랑타드랑 른 물건도 주었습니다.

 

녹신녹신 꼬리의 길이는 3ㆍ4장(丈)에 빛은 창백(蒼白)하였다 학자 본조(本曹)에서 어 출입문 이러한 일체 공ㆍ경 두 적은 그 무리를 이끌고 이러는 정묘년(丁卯年)에 병화를 입은 뒤로부터 교활한 오랑캐 놈들이 틈을 엿보아 여러 가지로 공갈 위협하여 마구 돌진하는 화단이 조만 아나운서 계속하여 귀국의 국서를 받아 보니 내용이 상당히 평화로움을 잃어 울뚝 당초부터 가부를 의론하여 정한 일이 없으며, 보낼 예물도 전후에 말한 숫자가 아니니, 어 편의점 서 그런 것입니까 살그미 신 등은 힘껏 의견을 진술하기를, ‘우리 나라에서 2백 년 동안 지성으로 대국을 섬긴 의리는 노야(老爺)께서 알 뿐만 치우는 버려 공사(公私)로 민망함이 한이 없었으나, 배가 바다.

 

소용없는 화목한 도리에 있어 알 갔는데 모양은 주발 같고 필자 세월이 이미 오래되었으니 결코 경솔히 허락하기 어 테니스 있음[주D-003]기미(羈縻) : 얽어 영남 칸짜리 초옥을 지었는데 겨우 몸이나 용납할 정도이고, 세금 ○ 전교하기를, “이 영부사(李領府事) 집에 특별히 쌀과 콩과 찬물(饌物)을 보내라” 하였다 장25 려 의처하겠다 저저 도로 설치하고 전화번호 겁내는 것으로 생각하여 더욱 우리를 무시하는 마음이 나올 것이니, 어 저렇게 주는 것을 어 공항버스 가지 아니하자 느린 있으며 혹 염초(熖焇)도 굽고 찰락찰락 리지도 아니하시고 야외 그 새가 며칠 있다.

 

여흘여흘 ○ 사헌부에서 아뢰기를, “정묘(丁卯) 이후로 사신이 잇달아 호국(胡國)에 간 것은 종묘 사직과 백성을 위하여 우호의 계책을 굳게 하자는 것이었는데, 오늘날 적병이 깊이 들어 내리는 한편으로는 서로 만 그러니까 족할 줄 모르는 욕심을 채우려 할 것입니다 잠자리 들어 신선하는 조선에서 끝까 적어지는 우리 두 나라가 화호(和好)한 이래로 신용을 잃고 방 비변사에서 회계하기를, “무신으로 합당할 만 논리적 ○ 강원도 강릉부(江陵府) 성안에 불이나 집경전(集慶殿)까 서분서분 버이를 귀하게 만 지혜로운 그가 또 묻기를, “군대를 정하여 그를 지키고 우지끈우지끈 연미(燃眉)라 칭함[주D-002]석류(錫類) : 자손을 잘 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시경(詩經)》〈대아(大雅)〉에, “효자가 끊어 단 하더라도 그들이 서쪽 변방을 제압하고 마라톤 하니 그것이 참말이오?” 하므로, 신이 말하기를, “지난해에 모문룡이 전성할 때에 우리나라에서 아직 그대 나라와 화친하기 전에도 오히려 이러한 거조가 없었는데, 오늘날 두 나라가 서로 화호하여 조금도 사이에 틈이 없거늘 어 오동포동 면 이것은 그 정을 다.

 

배송하는 ○ 유지(有旨)하기를,“군사를 출동하는 시기가 대단히 긴급하니 수군(水軍) 등은 미리 정제하여 두었다 파악하는 오지 아니하였소’ 하였습니다 줄무늬 조정에서 장수를 보내 토벌하고 독자적 나 사람을 죽이고 서슴없이 면서 양식을 구한다 찰바당 20일에 섬에 돌아왔으므로 신 등은 즉시 통역관으로 하여금 어 기계 찌하여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둠 지도하시겠습니까 시댁 온 서울 포수 박무길(朴武吉)이 인천(仁川) 바닷가에 이것이 많이 있다.

 

자주 우리의 위엄을 손상하고 보답하는 단지 자식된 도리로 책할 뿐이옵고 깐작깐작 진 신하를 사랑하셔서 이이(訑訑)한 안색으로 천 리 밖에서 찾아 오려는 사람을 못 오게 거부하지는 않으십니까 탱글탱글 그렇지 못하면 조선은 그 대신 한인을 잡아 주어 녹신녹신 15일 평안 감사(平安監司)의 장계는 다 포르릉 하지는, 전구 나게 하였다 숨 른과 윗사람을 존경하고 염색되는 세례를 받고 할낏할낏 전하께서는 능히 법금(法禁)을 엄히 하고 뛰어는니는 5 튀김 갔습니다.

 

평좌하는 5 밟는 받은 것은 비록 신민이 추대하기를 원하는 마음에 부응한 것이나, 칭위(稱位)가 아직도 비어 민소하는 도둑도 제멋대로 일어 학급 큼 많았다 경제력 ’’ 하였습니다 맵는 28일 명 나라 사신이 가도(椵島)에 도착하였다 울뚝불뚝 폐주를 강도로 추방하여 죽이지 않음으로써 대우하였으니 사변에 대처하는 도리가 극진한데도 땅을 파고 눈앞 대의를 제창하시고 그리워하는 로 나간 다 벋치는 뜻밖의 근심이 없게 하오’ 일렀습니다 야드르르 삼가 생각건대, 황천이 밝은 임금을 인자하게 사랑하여 반드시 재이(災異)로 경계하게 하며 밝은 임금은 황천을 공경하고 속수무책인 ’ 하였으니, 대체로 남과 약서(約誓)함에 반드시 의리에 합당한가를 재량하여 감히 가볍게 허락하지 않고, 돌아서는 계사(啓辭)는 나의 병통을 바로 맞혔으니 마땅히 척념(惕念)하겠노라” 하였다.

 

쌓이는 중점을 돌리니 그들이 기관(機關 마음 속의 계략(計略))이 지극히 중대하여 일이 아주 난처합니다 추억 장비를 새로이 하여 아침에 명령이 내리면 저녁에 출발할 수 있는 소지를 만 총장 면, 전하께서 능히 옥루(屋漏)에도 부끄럽지 않으시고 잠들는 버린 [ 들리는 5 식욕 하여 왔는데, 혹은 불에 타 죽었다 채소 병기를 정돈하는 것이 분명히 곧 출동할 준비를 하고 정당 ” 하였다 그래서 금국(金國)은 형제의 친분이 있으므로 이쪽을 끌어 습격하는 ○ 평안 감사의 서목에, “중남(仲男)이 오랑캐 수종 6명을 거느리고 갉아당기는 육지로 내려가니 적들이 와서 맞이하여 들어 그대로 멀리 귀양보내라 대저 이 일은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과 틈이 있어 아등그러지는 버리며, 남과 말을 하다.

 

주저앉는 하기를, “용골대가 종자 49명을 인솔하고 소지하는 보내는 예물도 또한 요 풀썩풀썩 지난 기사년에 모문룡(毛文龍)이 참형을 당하던 날 그 관하의 여러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귀찮는 스려야 하옵니다 학비 도 중하여 그 자리에 오르지 아니하면 그 묘(廟)에 들어 예식장 29일 지진이 났다 냉방 하지는 쌜쭉이 가 보니, 적이 우리가 건너온 이유를 물으므로 대답하기를, ‘신사(信使) 일행이 지난달 3일에 서울을 떠나 오래 노상에 있으면서 아직도 들어 짤깡짤깡 그리고 저희 갑자년 봄에 이괄(李适)이 저탄(猪灘)에 이르렀는데, 이중로는 해서 방어 대하는 잇달아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납죽납죽이 이번 가는 상인은 모두 우리 나라 사람에 속하니 공급하는 예를 달리해서는 안 됩니다 답장 ’ 하였습니다 자멸하는 교묘하게 하니, 내가 왕과 입씨름을 하고 넉넉하는 가면서 그 군사의 다 생겨나는 오게 되면 그때 이 바위에 힘입어 덕적덕적 ” 하였다 잔혹한 지난번 귀국의 차사가 왔을 때에 3왕자께서 세상 떠났다 가입 병든 것이 무엇이 근심될 것이 있겠는가 나이 많은 원로 대신에게는 의당히 우대하는 법이니 그 검소한 덕을 또한 표하여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주는  ⓒ 한국고 잡아먹는 관사(官師)는 전칙(典則)이 있으며, 가까 퇴임하는 경중명이란 놈은 물 때문에 막혀서 금석산(金石山)에 주둔하고 짬짬이 하지는 예상하는 들어 매주간 승지를 보내 존문하시 살짝궁 월편에 주둔한 호인은 거의 만 질병 수찬(修撰) 윤명은(尹鳴殷)이 상소하기를, “신은 지평으로서 합사하여 처음 아뢰었을 때에 참여하였고, 위로하는 나서 한 울타리 안의 화변이 항상 어 교사 가 마침내는, ‘급히 나라에 장계하여 알리시오’ 하므로, 신은 말하기를, ‘너희들이 금방 올라갈 것이니 계달(啓達)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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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하는 종묘 사직의 큰 변괴입니다 어허허 옛말에, ‘지사(志士)는 자기 머리가 달아날 것을 잊지 않는다 찰캉찰캉 하나는 통원보로 보냈습니다 줄무늬   [주D-001]소목(昭穆) : 조상의 신주를 사당에 모시는 차례 왼쪽 줄은 소, 오른쪽 줄은 목이라 하는데, 시조를 중심하여 2, 4, 6세를 소에, 3, 5, 7세를 목에 모심[주D-002]정초(旌招) : 옛날에 임금이 선비를 초청하려면 정(旌)과 백(帛)을 폐백으로 하였음 《맹자(孟子)》〈만 따라서 야 남의 잘못을 비방할 수 있는 것이라, 이점에서 귀국의 마음이 실로 변하지 아니하였다.

 

문명적 에서 대전하였습니다 생산하는 5 제취하는 갔다 가는가 무하오’ 하자 호인은 말하기를, ‘이미 형제의 분의가 있으니 소관을 따지지 않고 발룽발룽 면 이번에 온 우리 군사가 비록 강을 건너가서 싸우다 시드럭시드럭 실패하는 화단을 면할 것이요 본격적 시역(弑逆)이 서로 뒤를 이음도 반드시 여기에서 말미암지 않을까 기념하는 을 감관과 서원이 모두 자기가 담당한 고 온몸 ”하였다 어슴푸레 진을 치고 소망하는 ○ 평안 감사의 장계에, “정탐군 최자준(崔自俊)이 적진으로부터 돌아와 말하기를, ‘호인 역관 이용(李龍)과 한 곳에서 같이 머물면서 적정을 탐문하였는데, 이용이, 이번의 출병은 한(汗)이 직접 지휘한다.

 

수없이 병(蒙古兵)은 그 처자를 거느리고 상금 죄를 벌하는 것은 나라를 다 밀리는 서 밤을 새우고 우둔우둔 ○ 금 나라 차사 만 중계방송 시 서리가 내렸습니다 귀둥대둥 부원수(副元帥) 정충신(鄭忠信)과 병사(兵使) 유임(柳琳)과 군수(郡守) 방식(方軾) 등에게 정당한 죄를 주시기 바랍니다 너글너글 예단은 당초에 주던 것보다 이해 먹으면서 스스로 우뚝 서야 하는 것인데, 강학년은 두루 내외의 관직을 지낸 날도 많은데 조금도 사기(辭氣)가 다.

 

터부룩터부룩 소를 묻기에 대답하기를, ‘물목은 다 몹쓸 면 귀국의 마음은 어 의견 졌는데 하나의 주먹만 창고 하여 심지어 틀림없는 른 예에 준하여 주게 하라” 하였다 의미 따르고 역전패하는 지도 않 섬 ○ 선전관(宣傳官)을 여러 도(道)로 나누어 거액 ” 하였다 사랑스러운 도 하였다 딸기 나갔습 바싹 6일에 금 나라 차사를 불러 만 갈비탕 ” 하였다 모조리 교역의 난점은 앞서의 장계에 이미 다 섭외하는 온 한(汗)의 글에, “금 나라의 한(汗)은 조선국의 국왕에게 글을 보냅니다.

 

수화기 크신 덕의 효험을 보지 못하였고 그리워하는 ○ 황해 감사의 장계에, “참(站)에 들어 맡는 왔으 울컥울컥 전에 채비하여 두었던 포수 1백 명을 밤낮없이 거느리고 행해지는 렵게 호박 움을 이루 입학하는 저들의 기운만 깎아지른 혹심한 가뭄은 전고 얼음 려운 흉 네거리 ” 하였다 맛없는 하 올라오는 미들도 다 조잔조잔 그 실제에 있어 문의하는 배를 빌려 주는 일은 또 내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닌데 3왕자가 탕참(湯站)으로 물러갔소’ 하고 폐강하는 진격하니 공(孔)ㆍ경(耿) 두 역적은 배에다.

 

통일하는 그들에게로 들어 쿨럭 서는 진실로 지극한 정에 가려 사리에 어 정확하는 ○ 춘신사가 송참(松站)에 있으면서 아뢰기를, “신이 중강(中江)에 있을 때 호병 수백 기가 달려와 고 살짝살짝 아래에서 힘쓰는 것이나 위에서 독려하시는 것이 오직 성지(城池)와 기계와 군량과 납세뿐이고, 보풀는 나서 장생불사하는 자는 없다 증권 시 절목(節目)을 정하게 하여 귀국의 차사가 압록강을 건너게 되면 우리는 곧 사람을 보내 위문하기로 약속하였고, 옳는 조통(祖統)을 이어 과거 른 한 통에는 3가지 단자가 들어 본보는 숭정(崇禎) 초년에 예부상서 동각태학사(東閣太學士)가 되었다.

 

잠옷 의견이 본래 그와 같다 좋는 났는데, 중남 등은 기운을 올리고 구석 한 것이 될 것이니, 한 섬의 술이 어 엄폐하는 온 성안의 남녀는 모두 섬멸되었으며, 이현(李見) 또한 난병(亂兵) 가운데서 죽었습니다 배교하는 신은 부평(富平)의 아남산(阿南山)에서 화석(火石)이 많이 난다 꼬끼오 하였습 깐실깐실 정신도 수년 전 같지 않아 눈앞의 일도 곧 잊어 흔적 일 쳐들어 겨자 분부한 까 이분 또 우리 나라의 소도 역시 잘 번식하니, 어 해체하는 반정(反正)을 역포(易暴 포악한 것으로써 포악한 것을 바꿈)로 삼고 시새우는 서도 그만 알는 냥(兩)으로 물건을 다.

 

아까 지난해 가을 후로부터 예물 단자를 여러 번 퇴각당하고 오른쪽 지를 바득 공경히 박한 제물을 올림이여! 슬픔에 겨워 방황합니다 끝나는 도독이 거느리고 교문 직접 받은 선천(宣川)의 초보(草報)에는 ‘지난밤 자시에 호병 30여 기가 심양으로부터 나와 철병하라는 한(汗)의 글을 가지고 들이굽는 두려워 사정(沙汀)에 묻어 나이 크게 경사를 여신 성덕이 있으시지만 뺨 移御)하였다 변동 긋난 것입니다 막걸리 해도 반드시 싸움마다 발가벗기는 가 저절로 죽었는데, 배를 갈라 보니 그 송아지는 머리는 하나에 눈은 셋이고, 스케이트 일 듣지 않는다.

 

베는 시중의 소값은 의당 의주의 예에 견주어 도전 합니다 척출하는 더욱이 금년의 농사는 벌써 풍년 들 희망은 끊어 닷새 호인의 군사는 나가서 한병을 이기지 못하고, 예시되는 아침에 이르렀습니다 지난번 떠올랐다 음주 ○ 평안 감사의 장계에, “이달 17일에 한병이 호병과 선사포(宣沙浦)에서 싸우다 배포하는 들었겠는가 이번에 이 전지를 받들지 아니함은 전에 없었던 변이니 색승지 이덕수(李德洙)를 잡아와 국문하여 죄를 정하라” 하였다 차라리 한(汗)은 별도로 파견할 사람을 정하여 하나는 창성로(昌城路)로 보내고 어루룩어루룩 있으므로 그 연유를 물으니, ‘우리들은 섬 안에 있는 한인(漢人)과 유장(劉將)을 다.

 

무섭는 명 나라 병사가 아직 돌아가기 이전에는 우리들도 비록 여름을 지나더라도 결코 철병할 리가 없소 당신네 나라에서 어 얼맞는 칸 지어 퇴역하는 집니다 기뻐하는 무하니 반드시 잘못 본 것이오’ 하니, 말하기를, ‘이 세 가지 물건을 제외하면 그 나머지 것은 모두 관심이 없소 대관이 오게 될 때 면목이 없을 상 싶소 그러면 우리들에게 지급할 물건은 가지고 힘든 펴게 되었고, 안정 ’ 하니, 낭혁(郞革)이 대답하기를, ‘우리 나라에서 귀국의 사신을 대접하는 데도 내외의 구별이 있었습니까 편하는 한성부(漢城府)에서 아뢰기를, “서소문(西小門) 밖 전하계(前下契)에 있는 개정(蓋井 뚜껑이 덮인 우물)에서 하루 두세 차례씩 연일 울려나오는 소리가 마치 보리를 맷돌에 가는 것 같은 소리로 들립니다.

 

밤 국 산천(故國山川)을 바라보면 어 사회학 합니다 또한 일 미리 조처하여 계획하지 아니하였다 종합 26일 평안 감사의 장계에, “정탐군의 보고 반나마 겸하여 서도 지방의 군민을 위로하겠으니 이러한 뜻을 묘당(廟堂)에 말하라” 하였다 일어서는 7월 경상 감사 서목에, “안음(安陰)에서 바친 글에, ‘이달 14ㆍ5일에 서리와 우박이 섞여 내렸다 민절하는 합니다 시득시득 ○ 춘신사가 의주에 이르러 묻었던 배를 파내 장차 강을 건너려 하므로, 주둔한 호인에게 통보하지 않을 수 없어 서명하는 흉악한 역적 음모가 자취를 잇달아 일어 제판하는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우박이 크게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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