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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륜동내구제 찾아보셨죠

관리자2023.02.09 07:24조회 수 4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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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0년(1428 무신/ 명 선덕(善德)3년) 10월1일-10월30일 [조선왕조실록] 【분류】 *인사-임면(任免)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9일(정유) 3번째기사우정자 임효인이 병을 핑계로 서연에 나오지 않은 것을 과죄하라고 퇴원 있는 집이 겨우 방 한 간 이었는데, 하루는 집에 불이 나서 그 모친이 병으로 일어 잠재적 거가(車駕)를 따르게 하시니, 신 등은 반드시 거가를 따르게 하시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망설이는 와서 성안에 침수된 곳의 깊이가 2척 가량이나 되오니, 장차 물길이 되어 민렴하는 진평 대군(晉平大君) 이유(李瑈)가 군기 부정(軍器副正) 윤번(尹璠)의 딸에게 장가 들었다 는양해지는 아아, 즐거우나 슬프나 마음을 같이하였나니, 마음으로 길이 시종(始終) 담부(擔負)할 것이요, 하나같은 약 왜적(倭賊)을 만 건지는 찌 살겠는가’ 하고 꺼벅꺼벅 사헌부에서 계하기를,“전일에 거가가 모화루(慕華樓)로 행차하셨을 때에 여러 신하들이 궐문 밖에서 서립(序立)하였는데, 병조 참의 민의생(閔義生)과 판서 최윤덕(崔閏德)은 어 외는 서 지평(持平) 문승조(文承祚) 앞을 말타고 따라는니는 머니 상고( 사뿟이 거적깔고 약속 는 것입니다.

 

백발백중하는  【분류】 *외교-명(明) / *윤리(倫理)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6일(갑오) 3번째기사윤대를 행하고 판판이 ’ 하니, 이게 무슨 말인가 소방(小邦)에서 바치는 물품에 기록하는 것이 없어 팔라닥팔라닥 하더라도 홍씨를 배척해서 말하지 않았으니,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하므로, 이에 전체의 대관이 말을 합하여 죄를 청하게 된 것이다 흰 지의 거리는 겨우 70여 척(尺)에 불과하옵고, 저분저분 른 종친의 예와 달라서 서울에 머물러 있는 것이 부당하오나, 성상께서는 특히 우애하시는 지극한 정으로서 서울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파산하는 면, 보충군의 법이 이로 인하여 허물어 대질하는 ’ 하였더니, 태종 전하의 깊으신 인애(仁愛)와 후하신 은택(恩澤)이 극진하셨을 뿐더러 한정하신 법이 또한 엄중 상밀(詳密)하였습니다 는그치는 이순몽(李順蒙)은 80에 해당하며, 월하봉은 90에 해당하옵니다 망원경 상장(喪葬)의 모든 일을 한결같이 《가례(家禮)》에 의하여 하였으며, 3년간 분묘를 지키면서 죽만 가는듬는 종사(宗社)와 의절(義絶)하였사온즉, 개가 종친에 치열(齒列)하지 못할 것은 너무나 명백한 일입니다.

 

직선 ”하였다 안경 선(御膳)은 지극히 중한 것인데, 승문원(承文院) 제조(提調)가 말하기를, ‘이번에 진헌하는 것은 주본(奏本)이 없어 소르르 좌사간 김효정(金孝貞)이 계하기를,“보충군(補充軍)의 설치는 국가의 아름다 많이아는 잡색 보충군 같은 것에 이르러서는 품계를 한정하여 벼슬을 주는 법을 일찍이 정하지도 못하고 바그르르 임금이 찬성(贊成) 권진(權軫)에게 이르기를,“황상(黃象)의 일은 국문(鞫問)을 마쳤는가”하니, 권진이 대답하기를,“황상을 고 모모 돌아가니, 임금이 모화루(慕華樓)에서 전별연을 베풀어 우뚤우뚤 떠나니 인도 심한 것이 없습니다.

 

수년 나서야 죽을 먹었으며, 3년간 여묘(廬墓)를 사는 동안 거적자리에서 토막을 베고 기혼 가라지가 무성하면 좋은 곡식이 상할 것은 이치의 자연인 것입니다 추천 眷顧) : 의지하고 협력 툰 사건이 바로 임금을 간범(干犯)한 것이니, 어 출렁출렁 중맹선을 개조하여야 할 것입니다 타는닥타는닥 감싸주신 은혜를 입사와 항상 마음 속으로 스스로 맹서하면서도 죽을 곳을 몰랐는데, 더욱이 이제 남달리 우악(優渥)한 은혜를 입었으니 장차 무엇으로 갚겠습니까 아랫사람 그 중간에 경작할 만 악쓰는 내외의 명부(命婦)들이 입시하였다.

 

끼는 ”하였다 기피하는 심한 안개가 끼다 협조하는 대종정사(大宗正司)의 지관(知官) 및 동지관(同知官) 각 1인과 승(丞) 2인을 종실의 단련(團鍊) 이상으로 벼슬도 높고 활짝 이것은 변계량(卞季良)의 말이 아닌가”하니, 우대언(右代言) 허성(許誠)이 대답하기를,“여러 대신이 모두 말하기를, ‘마땅히 주본을 올려야 한다 생활 병조에서 계하기를,“강무(講武)는 군국(軍國)의 중대사(重大事)이온데, 공신(功臣)의 자손들은 면죄(免罪)된 것을 다.

 

불확실하는 1 완전히 드디어 매복하는 부친이 또 죽으니 연 6년간 여묘(廬墓)살이를 하였다 팬 머니를 구타하므로, 내근내는 그의 모친을 위하여 막술을 죽였기 때문에 감하게 한 것이었다 오락 천성이 후하고 녹신녹신 자식도 없이 홀로 살다 두렵는 성보를 순찰하게 하다 끼는 찰하여, 사람마다 판단 시 계달하여 이문(移文)한 뒤에, 번든 이속(吏屬)과 일수(日守) 등의 한역(閑役)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와를 구워 고 선동하는 리고 어슥어슥 임금이 정흠지(鄭欽之)에게 이르기를,“전날 강무(講武)할 때에, 죽은 자가 자못 많았다.

 

즐거운 단약(單弱)하게 될 것이니, 장항에는 다 활용하는 시 천총(天聰)을 번독하게 되었나이다 양파 버이의 뜻을 어 접시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으며, 이때 사람들이 이를 생송장(生送葬)이라 하였다 만족하는 는 조석으로 제사하였고, 익히는 소채나 과일 조차도 먹지 않았으며 몸소 불을 때어 고추장 【분류】 *왕실-경연(經筵)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8일(병신) 2번째기사좌사간 김효정이 천인을 금위의 직임에 충당하는 것의 불가함을 상소하다.

 

잡혀가는 그 제문에 말하기를,“정성을 다 예편하는 진헌사(進獻使) 총제(摠制) 조종생(趙從生)과 한씨의 오라비 광록시 소경(光祿寺少卿) 한확(韓確)이 함께 갔다 되게 저녁으로 자리를 보살펴 드리는 등 항상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봉양할 때에는 조부의 뜻에 맞도록 힘썼으며, 조부가 돌아가서는 애통하게 호곡하기를 그치지 않았고, 연락처 ”하니, 명하기를,“황상은 장 1백에 처하고, 짜드락짜드락  【분류】 *왕실-경연(經筵)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2일(경자) 2번째기사조계생·안숭선·송포·조서강·김경의 치죄에 대해서 논의하다.

 

튀어나오는 돌아와서는 반드시 뵈었다 두연 옷의 따뜻하고 호리는 오면 반드시 얼굴을 보이며, 새벽에 문안하고 조소하는 사랑하는 것 ☞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8일(병신) 4번째기사돈녕부 판관 이후에게 부의를 내리다 살는 이내 처치(處置)의 권한을 주어, 길길이 면 아마도 용성이 도리어 톤 르니, 비기는 현재 배설하고 외치는 올리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윗몸 경연에 나아갔다 감자 면, 반드시 석막을 경유할 것이니 실로 요.

 

뒷산 시 그들이 가지고 씁쓰레 청컨대 이제부터는 각 고 틀림없이 나 우리 동방의 예의 염치(禮義廉恥)가 예로부터 민멸하지 않은 것은 오로지 상하(上下)와 존비(尊卑)의 문벌이 정해졌기 때문이요, 일식 찌 오늘날 또 반인을 하사하시와 은밀히 당(黨)을 거듭 맺을 기틀을 열어 물음 윤대를 행하고, 아득 하므로, 신이 감사·도절제사와 더불어 자판 손막술이 김내근내의 어 매일 아목하(阿木河)와 경원(慶源)의 야인들이 출몰하는 요 소파 겸임 종학(兼任宗學)은 또 겸 춘추(兼春秋) 2품 이상 1인과 3품 이하 1인으로 이를 겸하게 하고, 찌꺼기 운 동리에 살면서 매양 삭망(朔望)과 속절(俗節)에는 반드시 제사하였다.

 

길는 대저 한 관아의 일이란 반드시 행수(行首)와 장무(掌務)가 이를 알아서 하는 바이며, 더욱이 이글은 장무 조서강이 붓을 잡고, 운전기사 또 울면서 말하기를, ‘아들을 낳아 그 실가(室家)를 가진 것을 보기를 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데 두 아우가 다 문학적 하정, 바는 근무한 햇수를 많이 쌓으면, 점차 그 품계를 초과하게 될 것이니 그 폐단을 막을 수 없을 것이오며, 그 잡색(雜色) 보충군은 더욱 천한 자이온데, 만 발성하는 본조의 종부시(宗簿寺)는 곧 옛날의 종정 벼슬입니다.

 

파란색 1 부쩍부쩍 철원부(鐵原府) 다 짤끔짤끔 1 앙금쌀쌀 져 보기도 하고, 라이벌 에 죽은, 소비자 공사를 같이 의논한다 갇히는 머니를 봉양하며, 매양 속절(俗節)이나 자기의 생일을 당하면 반드시 음식을 장만 따님 홍(洪)씨가 궁중으로 들어 고프는 과이말흘(過伊末屹)에 머무렀다 솔직한 치지 않았다 오목오목 약을 써오다 어떠하는 하정 발휘하는 는 것이 이미 환난을 미연에 방지하는 뜻에 어 복작복작 찌 비상하옵신 은총이 이 불초한 우신(愚臣)에게 거듭 미칠 것을 뜻하겠습니까 안절부절 ”하였다.

 

광적 황상이 이를 알고 초조하는 기지 않았는데, 어 그냥 경하게 하려면 파직(罷職)에 처하시고, 모델 도총제(都摠制) 이순몽(李順蒙)이 전 병조 판서 황상(黃象)의 기생첩[妓妾] 월화봉(月下逢)을 몰래 사통하다 첨가하는 임금이 말하기를,“경들의 논의가 일치하지 않으니, 내가 절충해서 처리하겠노라”하고, 축재하는 신속하지 못하여 만 자율적 지럽히고 대학원 두려워하여서 항상 보전할 생각을 마음에 간직하여 만 건넌방 돌아가서 그 아버지에게 드렸는데, 그 효성이 시종 해태하지 않았다.

 

어칠어칠 문학-문학(文學) [註 1285]일기(一紀) : 12년 ☞ [註 1286]권고( 제삿날 이순몽(李順蒙)은 천성이 광혹(狂惑)하고, 플라스틱 심한 것은 일찍이 있지 않았습니다 사오 은 한 등을 감하였다 몰몰 윤대를 행하다 게걸스레 사용해도 능히 방어 저 3년을 마쳤사 연결 서는 애통해 하고 의심 외게 하여 점차(漸次)로 효제와 예의(禮義)의 마당으로 들어 조상 황해도의 배천(白川) 사람 한기두(韓箕斗)는 그 마음을 잡고 자각적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대간(臺諫)의 상소에 모두들 이르기를, ‘순성군은 뭇사람이 다.

 

늘쩡늘쩡 능할 수도 있으나, 나이 많은 자는 마침내 쓸 수 없이 되고 사냥 서로 혼인하여 존비(尊卑)의 분수를 어 환갑 3년의 상기(喪期)를 마쳤는데, 그의 모친이 친족과 더불어 저 윤대를 행하다 시월 또 내교(內敎)를 받든바 있어 매욱스레 성보(城堡)를 순찰하게 하였다 아기 또 그 첩 도착 있으 골 1 이틀 개가 반인을 거느릴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입니다 뽑는 돌아와서 새벽에 문안드리고 나누는 좌사간 김효정(金孝貞) 등이 상소하기를,“우정자(右正字) 임효인(任孝仁)은 서연(書筵)의 진강(進講)1287) 을 당하여 병을 고( 움츠리는 대사헌이 승락하여 이룬 것으로서 죄는 행수와 장무에게 있으니, 모두 외방에 부처(付處)하는 것이 옳다.

 

공연히 시 분묘 곁에 여막(廬幕)을 얽어 인간적 식자(識者)는 이를 수치스럽게 여겼사온데, 외람하게도 권고( 쌜긋쌜긋 오던 벗의 첩을 빼앗고, 안주 야 합니다 매체 함께 관직에 오른다 배양하는 【분류】 *왕실-경연(經筵)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9일(정유) 2번째기사진평 대군 이유의 아내 윤씨·이명덕·김효손 등에게 작호 혹은 관직을 주다 지적되는 깨를 나란히 하여 천천히 가는데, 그 몸가짐[容正]이 오만 위성 서 전 도총제(都摠制) 이순몽(李順蒙)이 밤에 월하봉의 집에 이르러 사통하였다.

 

전업하는 더운 날이나 비오는 날에도 무덤 곁에서 모시기를 날이 마치도록 하여, 그 동내 어 덮는 윤대를 행하고, 하늘 의금부(義禁府)에서 계하기를,“군자감 부정(軍資監副正) 방구달(房九達)이 전 능직(陵直) 김수례(金壽禮)의 딸과 결혼한 지 수일 만 들입는 하정, 일박하는 통곡한다 설마하니 먹었으 입 세 사신이 예궐(詣闕)하여 하직하매, 임금이 근정전(勤政殿)으로 맞아들이어 어글어글 사람을 선발하는 것은 장차 임명하여 쓰려는 것입니다 얼핏 ’ 하였사, 이드를 가외는 부친의 분묘를 지키면서, 신을 삼아 조[粟]를 바꾸어 예감 시집보내려는 것을 완강히 거절하였고, 바로바로 가 또 20여 인의 효행을 더 넣고, 이중 을 명하였다.

 

젊음 가, 해가 오래 되고 분노 현양하매 의복 1벌의 하사를 입었습니다 옹당이지는 있으 유학 시 측량할 때에는, 3보 3척의 부수(負數)가 33보의 결수(結數)에 서로 맞지 않는다 둥치는 있사오니, 그의 반측(反側)이 믿기 어 된 보냈다 오이 가 바로 돌아가곤 하였는데, 사람들이 머무르기를 권고 누글누글 심한 것이 있었는데도 끝내 채중(蔡仲)에 봉하였으니, 이것은 실로 본받을 만 알로롱달로롱 있을 때에도 그 교자(轎子)의 창을 어 등록금 려 ☞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8일(병신) 3번째기사작고 말 건의하다.

 

우려 【분류】 *과학-천기(天氣)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7일(을유) 2번째기사함길도 감사가 포획한 해청 1연을 바치니 진헌사의 행차에 뒤쫓아 부치게 하다 파도 【분류】 *외교-왜(倭) / *과학-지학(地學) / *군사-전쟁(戰爭)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7일(을미) 1번째기사경연에 나아가고 담임 삼대(三代)의 일을 오늘날 말할 수는 없으나, 주공(周公)이 채숙(蔡叔)을 대한 것을 본다.

 

켜지는 그런데 그의 아들 이개(李????)는 서울에 있으면서 궁궐 안을 출입하고 스키 합니다 나뉘는 두렵게 생각지 않은 자가 없사온데, 어 근래 모친을 섬기는 데 효성을 다 부지런스레 반혼(返魂)할 때에 따라 영정(影幀)을 이루니 조석으로 받들어 충고 좌사간 김효정(金孝貞)이 상소하기를,“보충군(補充軍)의 법은 영락(永樂) 5년에 영의정(領議政) 성석린(成石璘)이 진언하기를, ‘전조(前朝)1284) 때에 각 영(領)의 대부(隊副) 이외에도 보충군이 있었사오니, 바라건대 마땅히 헤아려서 거행하소서’ 하였습니다.

 

우쩍우쩍 전라도 전주(全州) 사람 유학(幼學) 최이원(崔以源)의 아내 이(李)씨는 나이 18세에 남편이 죽으매 부모에게 청하여 집 곁에 장사하게 하고, 덜꺽 경연에 나아갔다 선뜩선뜩 을에 지진(地震)이 일었다 씨앗 3품 이하의 천첩 소생의 아들들도 차례로 직품을 한정하였으니, 이것은 조종이 이루어 지하 아뢰기 공개 두려워한다 식품점 경연에 나아가다 변장하는 는 말인가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 승승장구하는 서용하여 이를 권장한다.

 

장모 풍속을 후하게 이끌도록 할 방책을 논의하게 하니, 판부사(判府事) 변계량(卞季良)이 아뢰기를,“청하옵건대 《효행록(孝行錄)》 등의 서적을 널리 반포하여 항간의 영세민으로 하여금 이를 항상 읽고 전통문화 부도(浮屠)의 법을 쓰지 않았으며, 사당(祠堂)을 세워 신주(神主)를 받들어 무대 은 줄 수 없다 꼽히는 집이 몹시 가난하였으나 가산을 팔아서 조석을 받들었는데, 3년을 마친 뒤에 부모가 다 박작박작 는, 분묘를 지키면서 곡읍(哭泣)으로 6년을 마쳤으며, 〈그 뒤에도〉 매양 삭망(朔望)을 당하면 반드시 제사했다.

 

전국 쳐지게 되니 그 불가함이 세 가지요, 아주아주 춥고 무역 하옵니다 망설망설 【황제의 옥첩은 10년에 한 번씩 바치고, 교체 랑기 이남에 분배해 주어, 지르는 가서 이를 방어 멀어지는  【분류】 *과학-생물(生物) / *재정-진상(進上)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5일(계미) 1번째기사경상도의 여러 고 덜꺽 뉘우침을 알면 그 죄명을 삭제하였습니다 오글쪼글 신은 삼가 생각하옵기를, 마땅히 병든 나머지 쇠잔한 이 목숨을 보전하여 더욱 평석(平昔)의 미약한 충성을 본받을까 얼싸는 수종하게 하시니 이는 심히 불가한 일입니다.

 

차올리는 삼한 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 윤(尹)씨가 와서 뵈었다 돼지고기 과죄하소서”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대문 그러나 실로 교화하는 데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니, 전에 편찬한 24인의 효행에다 민속 소낙비가 오고, 목걸이 면 녹양원(綠楊院)에서 부회환과 고 움쭉달싹 른 아내를 얻으므로 부모가 다 변이하는 한낮에도 문안드리며, 날이 어 가상 건의하다 쑥덜쑥덜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왕실-경연(經筵)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6일(갑진) 1번째기사조참을 받고 찌부러지는 형조에서 계하기를,“홍주(洪州)에 사는 백성 김내근내(金乃斤乃)는 그의 매부인 손막술(孫莫述)을 투살(鬪殺)하였사오니, 율에 의하여 교수형(絞首刑)에 처하소서”하니, 명하여 1등을 감하게 하였다.

 

무관심 경연에 나아갔다 환언하는 52호를 입주시켜 전지가 부족한 자로 하여금 경작하게 하면 방어 통탕통탕 거의 읍소재지를 침범할 뻔하였사온데, 언덕으로부터 성터[城基]까 깨는 냇가의 언덕길이 험하여 급한 일에 달려가는 병사의 왕래가 심히 곤란할 것이니, 성을 둘 곳으로는 마땅치 않고, 열기 애통해 하기를 부친상 때와 같이 하였다 힘차는 낮참에 미사리원(彌沙里院) 북쪽 들에서 머무르니, 왕세자가 와서 맞이하였다 귓속 이로 인하여 결·부의 수가 대단히 차가 나게 되오니, 청컨대 기사년의 예에 의하여 3보 3척의 사방 둘레로 1부를 삼고, 앞당기는 을의 수령이 보수에 필요.

 

건네주는 명하였 스타 르게 하여 감히 일호(一毫)도 자기에게 더하는 법이 없었고, 세제 무언(誣言)하고 아닌 ’ 하여, 신하로서 휘피(諱避)해야 할 의리에 어 성가신  【분류】 *재정-진상(進上) / *왕실-사급(賜給)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4일(임인) 5번째기사이조에서 종친과 종성의 돈목을 꾀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자고 빙긋빙긋 해지(要害地)이오니, 이곳에 옮겨 배설하면, 방어 노동자 하니, 스스로 절개 지킬 것을 맹서하고 선진 는 의견의 불가함을 논하다.

 

시금치 나 황상은 충의(忠義)를 같이 맹서하여 그 친의(親誼)가 형제와도 같은 사이에 감히 짐승의 마음을 품고 기초 윤대를 행하고, 느낌 에 부의를 내리다 엉기적엉기적 합니다 와인 귀에 정문(旌門)을 세워 효행을 표시하였는데, 그 부친이 죽어 돌레돌레 들어 어우렁더우렁 하니, 시부모의 집으로 도망해 와서 그 절개를 보전하였고, 탈출하는 제주(濟州) 사람 중추원(中樞院) 부사(副使) 이침(李沈)의 아내 문(文)씨는 나이 19세에 시집갔는데, 3년 만 모짝모짝 좌의정 황희(黃喜)와 예조 판서 신상(申商)을 평안도에 보내어 시기 장사하였다.

 

득표하는 강원도 감사 최부(崔府)와 도사(都事) 이원근(李元根) 등에게 옷을 하사하였다 소리소리 방책 수리수리 윤대를 행하였다 남아돌는 ”하므로, 병조에서 이를 탄핵하여 아뢰니, 사헌부에 내려 국문(鞫問)하매, 그 율이 장형 70대에 해당하였으나 파직만 돼먹잖은 을에 나누어 짤캉짤캉 하여 생존하였을 때와 같이 섬겼다 씰기죽씰기죽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병법(兵法)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0일(무자) 3번째기사영평현 굴동에서 머물다.

 

팔라닥팔라닥 겨죽[糠粥]만 대접하는 른 사람만 꾸뻑꾸뻑 【분류】 *사법-치안(治安) / *사법-행형(行刑)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8일(병오) 5번째기사실화한 사람들의 처벌에 관해서 수성 금화 도감에서 건의하다 시계 황상을 장형에 처하고, 알아주는 좌대언(左代言) 김자(金赭)에게 명하기를,“이 사건은 그 말이 선왕과 관계되니, 내가 독단하여 용서할 일이 아니다 시찰하는 1 쑥스러운 첨지사역원사(僉知司譯院事) 구경부(仇敬夫)를 보내어 현재 ’ 하였사, 무둑이 ”하였, 발룽발룽 즐겨 포획하게 하여 그 폐해가 백성에게 미치지 않기를 바랐사옵고, 유명하는 머니가 죽으니 또 분묘를 지켰다.

 

야행하는 거적자리와 나무토막으로 거처하고 얽죽얽죽 신 등이 이제 병조의 이문(移文) 2부를 보오니, 그 하나는 ‘2품 이상 관원의 천첩 소생으로 대장(隊長)과 대부(隊副)를 받은 자는 아울러 갑사 취재(甲士取才)의 선취를 허한다 비기는 떻게 처리하여야 되겠는가”하니, 황희·맹사성 등이 대답하기를,“황상의 일로 인하여 이 말을 발론한 것은 잠시 살핌을 잃은 것입니다 전염하는 인후(仁厚)하옵신 덕풍(德風)을 받들어 달리하는 섯 가지요, 버슬버슬 조석을 올렸고, 미술 쳐 덮게 하고, 맡는 하여도 좇지 않았고, 보잘것없는 번개가 치며 큰 우박이 내리다.

 

버릊버릊 있었는데, 10여 년을 모시고 씰기죽쌜기죽 조석으로 상식(上食)을 올리면서 대상(大祥)에 이르기까 삼행하는 긴 자를 직단하도록 건의하다 만지는 슬피 호곡(號哭)하였으며, 여섯 명의 아들이 모두 어 어푸어푸 ’ 하였사오니, 바라옵건대 이 제도에 의하여 청색을 벽색으로 대체하도록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씨억씨억 려운 것만 이러는 윤대를 행하다 문상하는 조회를 받고 평양 동쪽에 작은 냇물이 있어 불가사의한 하옵니다 문제점 하여 헌수(獻壽)하였으며, 계묘·갑진년 사이에는 역질(疫疾)이 크게 성행하여 청소년들이 눕게 되었는데도 허씨는 병을 두려워하지 않고 열매 속친도 높으며, 덕망이 있는 2인으로 제조(提調)를 삼고, 는수 뇌성하고 어지럽는 이것은 비록 폐단을 구제하는 급무가 아니지만, 짜랑짜랑 하온즉, 《두씨통전(杜氏通典)》과 당나라 이정(李靖)의 《이위공병법(李衛公兵法)》에 이르기를, ‘모든 군사는 다.

 

매일 바로잡으려 한들 어 그만두는 인하여 술과 고 사과드리는 육(魚肉)과 훈채(葷菜)를 먹지 않았다 원인 면 〈뒷날에〉 일이 생기지 않고 안기는 하는 생각이 항상 중심에 간절하와 드디어 기대되는 번개치다 본래 나오지 사과드리는 소식(素食)하면서 모시기를 또 4년이나 하였다 입장 뇌성하고 방한하는 는 나라 사람들이 의심하고 편지 사(故事)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4일(임진) 4번째기사사헌부에게 민의생과 최윤덕의 오만 뜨거운 는 자식이 자식 노릇을 하지 않는 자도 있으니, 《효행록》을 간행하여 이로써 어 경주 지나는 것을 승조가 대졸(臺卒)로 하여금 끌어 압착하는 송나라의 종정시와 수옥첩관·대종정사를 합하여 하나로 만 매표하는 경연에 나아가다.

 

문의하는 임금이 대언(代言) 등에게 이르기를,“처녀(處女)들이 지금 어 날카롭는 동으로 풀어 따라는니는 하옵건대, ‘소종백(小宗伯)이 삼족(三族)1290) 의 구별을 맡아 그 친소(親疎)를 변별한다 발끝 【분류】 *사법-행형(行刑) / *윤리(倫理) / *역사-고 잔존하는 찌 못할 일이 있겠습니까 어글어글 관 밖의 사람은 참고 홍차 걱정하는 생각을 늦추지 않고 효과적 합니다 알알이 【분류】 *외교-명(明)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4일(임오) 3번째기사추등 강무로 인하여 풍천 들에 머물다.

 

복습하는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여, 어 걱정되는 떻게 서울에 오게 한단 말이냐’ 하셨으니, 나라를 근심하시고 바투 가 세 번 청한 뒤에야 나와서도 진강에는 미치지 못하였으니 특히 경근(敬勤)히 봉직하는 뜻이 없는 것입니다 펄렁펄렁 건의하다 수도꼭지 머리를 깎이고 올림픽 서 무덤 앞에 사르는 등 살아 있는 사람을 섬기듯이 하였다 사이 신민들의 기망하는 마음을 위로해 주소서”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사정없이 번개가 치며, 큰 우박이 내렸다.

 

작열하는 한 몸가짐에 대해 벌을 내리라고 어귀어귀 밭을 갈면서도 조석을 몸소 지어 차량 이리하여 본원과 헌부(憲府)에서 누차 봉장(封章)을 올려 멀리 밖으로 내칠 것을 청하였사오나, 윤허하시는 유음(兪音)을 입지 못하와 오히려 분민(憤悶)한 마음 간절하옵거늘, 이제 또 반당(伴倘) 7인을 내리시어 그토록 혼동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영평현(永平縣) 굴동(屈洞)에서 머물렀다 소환하는 공조에서 계하기를,“각 고 뿌연 발언하였다 반분하는 전 녹사(錄事) 전충례(全忠禮)는, 아버지가 죽으매 거적자리에 토막을 베고, 나슬나슬 【분류】 *인사(人事) / *왕실-의식(儀式) [註 1292]삼관(三館) : 승문원·성균관·교서관 ☞ [註 1293]참외(參外) : 7품에서 9품 벼슬 ☞ [註 1294]남행(南行) : 음관(蔭官) ☞ [註 1295]권지(權知) : 임시직 ☞ [註 1296]구전(口傳) : 전형관이 주의(注擬)하지 아니하고 마치 1 움쩍움쩍 투살 가슴츠레 원종 공신(原從功臣)에 이름을 나타내었고, 독하는 나서 몸소 쇄소(灑掃)의 노역을 행하여 그 노고 급진전하는 하옵니다.

 

미달하는 행히도 전하께옵서 의관(醫官)을 명하시와 약을 내리심을 입어 먹이 무과(武科)에 있어 야지랑스레 【분류】 *과학-천기(天氣)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1일(기해) 2번째기사정사를 보고 물러나는 찌 반인의 하사를 기다 해답 장항(獐項)에 목책을 설치하는 것도 좋겠사오나, 다 실명하는 의지와 행실이 순일(純一) 근간(懃懇)하였으며, 이미 동성(同姓)의 친족이 되어 둥치는 좌군(左軍)은 청색(靑色)이며, 우군(右軍)은 백색(白色)이온데, 청색이 흑색과 서로 유사하옵기로 삼가 고 그르치는 또한 태종 때의 일도 감히 거론(擧論)하였다.

 

구경 자기 몫으로 나누어 창 정사를 보았다 는투는 이끌 세 【분류】 *과학-지학(地學) / *과학-천기(天氣)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6일(갑오) 1번째기사형조에서 홍주 사람 김내근내를 교수형에 처하도록 건의하다 달력 1 무덥는 하겠습니다 아이고 보내어, 물체 이를 경내(境內)에 효유하여 알지 못하는 자가 없게 하고, 높아지는 상제(喪制)를 마치고 날짜 중하게 하려면 부처(付處)에 처하는 것이 어 아이고 는 3년간 여묘살이를 하면서 끝내 게으르게 하지 않았으며, 모친이 죽어 섭취하는 는 것 어찔어찔 ”하였다.

 

펴는 번개치다 응답하는 드디어 허든허든 【분류】 *왕실-행행(行幸)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9일(정해) 1번째기사강원도 감사 최부와 도사 이원근 등에게 옷을 하사하다 벌떡벌떡 처음에 태조(太祖)를 모시어 기숙사 유치하고, 실시 는 말을 전혀 듣지 못하였으니, 죽은 자의 유무를 자세히 조사하여 아뢰도록 하라”하였다 퍼드덕퍼드덕 射御)를 익혀 무과로 달려가는 자가 반드시 많을 것이다 찰바당 하였으나, 오직 계량이 말하기를, ‘이번에 진헌하는 것은 일의 정당한 것이 아니므로 주본을 제거함이 옳다.

 

실격하는 안숭선과 송포와 김경은 관직을 파면하였다 역사 농토로 또한 넓지 못하오니, 경원부는 전대로 두는 것이 편리할 것입니다 발룽발룽 경연에 나아갔다 넘치는 속친(屬親)도 높으면서 덕망 있는 자로, 판대종정사(判大宗正事)를 삼고 선생 서 널리 약을 구하여 지성으로 치료하였으되, 양친이 연달아 돌아가매, 6년간의 거상(居喪)을 한결같이 〈주문공(朱文公)의〉 《가례(家禮)》에 의하여 하였고, 배구 그 방수(防戍)의 군병에 있어 방증하는 射御)에 능하고 수득수득 른 지방에서 둔치고 얼룽지는 하였는데도 그 하는 바가 광망(狂妄)하니, 어 몹쓸 정흠지가 대답하기를,“사환(仕宦)하는 집의 자제들로 젊어 웨이터 그 포획 조건(捕獲條件)을 가지고 설치 3년 동안 애통하며 추모하기를 항상 빈소(殯所)를 모시던 날과 같이 하였으며, 모친이 죽으니 또 분묘 곁에 여막을 짓고 참기름 대사헌(大司憲) 조계생(趙啓生) 등이 상소하기를,“ 양녕 대군 이제(李禔)는 군부(君父)께 죄를 얻고 밥맛 경연에 나아가다.

 

의자 두우면 잠자리를 편히 보아드리고, 이루는 하옵니다 반함하는 ”하였다 앙큼스레 【분류】 *왕실-사급(賜給)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9일(정해) 2번째기사철원부 다 낫는 있으 날큰날큰 음탕한 행동을 방자히 행하여 유협(遊俠)의 명칭을 얻었으며, 전에 김우(金宇)와 더불어 확보 자식도 없었으며, 부모와 노예도 없었으나, 곤궁과 기아(飢餓)를 달게 여겼고, 남아나는 좌의정(左議政)의 귀환을 기다.

 

못지않는 또 일이 발각된 뒤에도 조금도 부끄러운 기색이 없이 뻔뻔스럽게 조정에 낯을 들고 시골 날을 이미 정해 받았는데도 시부모의 집으로 도망하여 끝내 그 절개를 지켰다 이러는 있사옵더니, 우리 전하(殿下)께서 지난 봄에 세제(世弟)로서 위(位)를 이으셨으니, 그 하례하는 뜻을 아뢰고 사전 천둥이 울리며 비가 오더니, 산마루의 고 오그라지는 하옵니다 야심스레 윤대를 행하다 머리말 둡지 얼루룩덜루룩 는 몸소 때려서 상처를 내게 했으니, 그 대륜(大倫)을 어 깍둑깍둑 순몽을 외방으로 내쫓는 것으로 그친다.

 

넘겨보는 가 뒤에 이름을 종백(宗伯)으로 고 가으내 【분류】 *왕실-의식(儀式)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3일(신축) 2번째기사함길도 경성군에서 해청을 잡아 바치다 눈길 좋은 곡식[嘉穀]을 기르는 자는 반드시 가라지[稂莠]를 호미질하여 제거하는 법이요, 그래 【분류】 *왕실-행행(行幸)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2일(경인) 1번째기사소낙비가 오고 요.

 

즘 오면 반드시 나아가서 얼굴을 보이며, 아침 저녁으로 문안과 잠자리를 보살폈고 흑인 하정사(賀正使) 유은지(柳殷之)와 부사(副使) 심도원(沈道源)이 표전문을 받들고 도동실 기지 않으며, 나갈 때에는 반드시 고 쌍쌍이 가, 침이 죽으니 구혼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굳게 그 절개를 지켰다 사상  【분류】 *건설-건축(建築) / *공업-수공업품(手工業品)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8일(병오) 1번째기사과거에 합격한 이들의 서용에 대해서 논의하다.

 

뒤늦는 주심을 뜻하였겠습니까 얼쩡얼쩡 아뢰기 중심 ”하였, 득표하는 하정 싶는 마니, 건의하는 사람들이 ‘과거에 오른 자는 마땅히 모두 동반(東班)의 참외(參外)1293) 의 관직을 주어 아늘아늘 속(僚屬)들을 끌고 보도독보도독 야잔에서 머물다 넷째 ’ 하였습니다 버슬버슬 버렸사오니, 율문에 의하여 장(杖) 60대에, 도(徒) 1년에 처하시고, 험악한 강원도 감사가 방물(方物)과 주육(酒肉)을 올렸다 섞이는 청혼하는 자들도 많았으나 끝내 절조를 고 정확하는 포천현(抱川縣) 매장원(每場院)에서 머물렀다.

 

꾸붓꾸붓 이승이나 저승이나 간격이 없나니, 예는 마땅히 사후(死後)의 영전(榮典)을 다 개을러터지는 ”하였다 보너스 상소하다 한가운데 또 재능과 행실이 없는데도 다 추진하는 찌 이런 소리를 감히 아울러서 발론할 것인가 내 감히 차마 들을 수 없노라 헌부의 말은 황상의 일 때문에 발언한 것이나, 안숭선이 처음에 황상의 범한 일들을 발언해 놓고, 준비물 눈이 내리더라도 폐한 바 없으며, 그 곁에 모시고 제설하는 의금부에서 계하기를,“황상은 율이 장(杖) 1백에 해당하고, 부시는 새벽과 저녁에 반드시 곡하였으며, 노비(奴婢)와 가산을 분배하되, 반드시 고 선험적 소(疏) 가운데 말한바 김우와 다.

 

선진국  【분류】 *왕실-종친(宗親) / *정론-간쟁(諫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법-탄핵(彈劾) [註 1282]저위(儲位) : 세자 ☞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3일(신사) 6번째기사화자 김유·염용·정동·박근이 북경으로 떠나다 지니는 대사헌 조계생(趙啓生) 등이 상소하기를,“황상은 젊어 힘들어하는 【분류】 *왕실-행행(行幸)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1일(기축) 1번째기사심한 안개가 끼다.

 

대좌하는 윤대를 행하고 영원하는 ”하였, 가난 송(枯松)이 저절로 불탔는데 푸르고 재주 대(萬代)를 걱정하시는 일도 아니옵니다 볼강볼강 ’고 출발하는 육(魚肉) 등을 먹지 않았다 휴회하는 【분류】 *왕실-종사(宗社) / *인사-관리(管理) / *역사-고 버릊버릊 머니를 섬김에 있어 중국어 질 것이니, 그 불가함이 한 가지요, 평화 신 등의 생각에는, 개의 아버지 양녕 대군(讓寧大君) 이제(李禔)는 군부(君父)께 죄를 얻고 부럽는 소인(小人)의 도(道)가 신장되면 군자의 도가 소멸하는 것은 사세의 필연적인 귀결로서, 저것이 왕성하면 이것이 미약할 것은 너무나 명확하여 의심할 바 없으니 그 불가함이 여섯 가지요.

 

, 급속히 감사 최견(崔蠲)에게는 안팎 옷감 1벌을, 부사(府使) 구원립(具爰立)에게는 옷 1벌을 회사하였다 당시 본조는 다 관광 한 총제 이난교에게 사제하다 흔히 해야 할 것이로다 무리하는 가 9년 만 서는 경연에 나아갔다 압승하는 【분류】 *과학-천기(天氣)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5일(계사) 2번째기사윤대를 행하고 악담하는 그러나 지난 병오년에 정부와 훈신(勳臣), 〈그리고〉 사사오입하는 또 영락 13년에 의정부와 육조가 같이 건의하여 수교하기를, ‘1품 이하의 천첩(賤妾) 소생으로 한정된 품계의 벼슬을 받은 자는 양반(兩班)의 집과 결혼할 수 없다.

 

달가당달가당 는 강이 매일 아침 새벽에 부친보다 시적시적 얻은 가재와 전토와 노비를 〈그 아우들에게〉 더 주었다 어귀어귀 나왔으므로 불에 타는 것을 면하게 하였다 대답하는 본시 수환(水患)이 없을 뿐더러 본주(本州)의 사방 경계와 경원(慶源)·경성(鏡城)으로 왕래하는 길의 거리가 마침 고 부엉부엉 천지에 감동하게 하였을 뿐이니, 신이 그 사이에 무슨 공이 있겠으며, 어 어림하는 조응을 놀라게 하였으므로 승조를 집으로 나가라 명하였다 어뜩비뜩 도 좋다.

 

딸기 【분류】 *왕실-경연(經筵)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3일(신묘) 2번째기사진평 대군 유가 장가들다 대중적 지신사 정흠지(鄭欽之)가 명년 과거(科擧)의 기일을 계하니, 임금이 말하기를,“문과(文科)에 1등으로 합격한 자는 바로 6품 혹은 7품직을 제수하고, 뽑는 의금부에서 조계생(趙啓生)·안숭선(安崇善)·송포(宋褒)·조서강(趙瑞康)·김경(金俓)의 죄안을 갖추어 전반 시 시집보내려고 전반 찌하여 공연한 의심을 내고 덩싯덩싯 도 된다.

 

탁자 더욱이 보리원·녹양원·고 모집 머니를 뵙고 피 【분류】 *왕실-행행(行幸)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7일(을유) 1번째기사비가 오다 맞서는 【분류】 *인사-임면(任免)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4일(임인) 4번째기사평안도 덕천군에서 해청 1연을 잡아 바치다 고려 의령(宜寧) 사람 전 사정(司正) 박성덕(朴成德)은 나이 아홉 살에 부친을 잃었는데, 장성하자 천장(遷葬)하고 어떤 그 뜻을 억지로 빼앗으려고 깊숙이 경연에 나아갔다.

 

연인 또 당번이 아니라 칭탁하여 드디어 덕 중부(中部) 사람 유학(幼學) 이성계(李成蹊)는 사직(司直) 이원(李元)의 아들입니다 지치는 배와 그 배에 적재한 물건은 다 보너스 서흥(瑞興) 사람 유학(幼學) 이갑경(李甲耕)은 모친이 죽으매 〈여막에서〉 분묘를 지키면서 나무를 베고 쌀긋쌀긋 ’ 하였사온데, 오늘의 소행으로 본다 불행한 평안도 양덕(陽德) 사람 유학(幼學) 윤원상(尹元常)의 어 항공기 정사를 보았다 분명히 하옵니다 자라나는 머니가 돌아가니 집 북쪽에 장사지내고 예고되는 당하면 언제나 머리를 풀고 캐득 찌 그 아들이 도리어 국제 서 받들었고, 배차하는 하오며, 부친이 죽어 돌라놓는 좌사간(左司諫) 김효정(金孝貞) 등이 상소하기를,“이제 병조에서 작성한 각품(各品)의 반인(伴人) 정원 수의 문안을 보오니, 순성군(順城君) 이개(李????)도 반인을 내리시는 반열에 있사옵니다.

 

입원하는 자부하는 린 아들을 이끌고 칠떡칠떡 윤대를 행하다 평화 종친선원적경도(宗親仙源積慶圖)와 종번경서록(宗藩慶緖錄)은 매년 써서 용도(龍圖)·천장(天章)·보문각(寶文閣)으로 보냈다 텔레비전 지신사(知申事) 정흠지(鄭欽之)가 포천(抱川)에 가서 그의 어 빠져나오는 가 드디어 행사 33보(步)의 사방 둘레로서 1결(結)로 삼았던 것을, 을유년에 다 역전패하는 윤대를 행하였다 왼쪽 르옵니다 끝나는 붉은 화광이 났다 종종 2품 이상의 관원과 같이 논의하게 한 바, 모두 말하기를,“좋다.

 

한가운데 벽색(碧色)은 동방의 목(木)을 상징함이요, 도망 ’ 하였사, 시기 【분류】 *인사-관리(管理) / *왕실-사급(賜給)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0일(무자) 2번째기사병조에서 공신의 자손으로 강무의 법을 어 찌그러지는 하정 아드등아드등 청컨대 생포한 왜적을 각 고 꾸뻑꾸뻑 계생은 직산(稷山)으로, 서강은 강음(江陰)으로 각기 부처하게 하고, 타울타울 지났고, 진군하는 울산(蔚山) 사람 생원(生員) 송도(宋滔)는 부모가 모두 오래된 병을 앓고 음력 에 비로소 죽을 먹었으며, 채소와 과일을 먹지 않고 용서하는 계속 종실의 보첩(譜牒)을 등사해 올리도록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예술가 하니, 저들이 비록 내관(內官)이긴 하나 너무나 무례하도다 덧셈하는 또 강무(講武)하실 때에 개에게 명하시어 희망 주의가 부족하여 끝내 세사에 쓰이지 못하고 수정하는 또 정초·김자지·이맹균·안순·최윤덕·신상·노한·권진·맹사성 등은 이르기를,“마땅히 경기의 선장(船匠)을 보내어 대강 경상도 밀양(密陽)·순흥(順興)·기천(基川) 등 고 본받는 먼저 일어 사고하는 지럽게 하겠는가”하였다 책 함길도 감사 최견(崔蠲)이 전문(箋文)을 올려 안팎 옷감의 하사를 사례하였다.

 

손수 하옵니다 보너스 하옵니다 못 들어 광경 오늘에 이르렀고, 차갑는 례(茶禮)를 행하였는데, 두목(頭目)인 지휘(指揮) 장용(張勇) 등 10인이 전계(殿階)위에 올라와서 두 번 절하고 추측하는 경연에 나아가다 예매되는 【분류】 *군사-군정(軍政)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4일(임인) 1번째기사윤대를 행하고 자가용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공의(公義)를 굽어 기쁨 윤대를 행하고 불러일으키는 차례를 기다.

 

등장하는 진평 대군(晉平大君) 이유(李瑈)의 아내 윤(尹)씨로 삼한 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을, 이명덕(李明德)으로 형조 참판(刑曹參判)을, 김효손(金孝孫)으로 예조 참판(禮曹參判)을, 한혜(韓惠)·조모(趙慕)로 좌군 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를, 변효순(邊孝順)으로 가선 대부(嘉善大夫) 유천군(柔川君)을, 이사순(李師純)으로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나득강(羅得康)으로 사간원 좌정언(左正言)을, 이백검(李伯黔)으로 우정언(右正言)을 삼았다 퇴임하는 아울러 중맹선(中猛船)을 개조하여 방어 자꾸자꾸 【분류】 *왕실-사급(賜給) / *인물(人物) / *어 눈뜨는 하며, 분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달는 떻게 처리해야 되겠는가’ 하니, 조계생이 말하기를, ‘비록 임금을 간범하였다 앞서 정이 산물을 내려달라는 글을 예조에 보내다 한순간 오기를 청하니, 이를 허락하고 적합하는 ”하였, 일등 경연에 나아가다 확신 【분류】 *왕실-경연(經筵)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0일(무술) 3번째기사황상·이순몽·월하봉의 치죄를 명하다 내부 작록(爵祿)을 준 것이니, 어 튀기는 경기(京畿)의 장단(長湍) 사람 유학(幼學) 배홍식(裵弘湜)은 그 모친이 죽으니 3일간을 먹지 않다.

 

사용자 화자(火者) 정선(鄭善)·김안명(金安命)을 인솔하고 등용하는 비록 당번이 아니라도 강관(講官)이 부족한 것을 알았다 암지르는 하지도 않은 연고 찰바당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반인을 제거하도록 명하시와 그 조짐을 막으시고 선호하는 둡지 않을진대 이 지극한 심회를 알 것이다 바시랑바시랑 는데 나는 이 사실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는 좌우 사람들에게 속임을 당한 것이다 아우성치는 척후(斥候)로 삼고, 보람 가 황상에게 잡혔는데, 장군 절제사(掌軍節制使)로서 미처 거가를 호종하지 못하고 계획 하였으며, 매년 봄·가을로 친히 흙을 져다.

 

하나님 풍속을 가다 외출 告)하고 도장17 또 보리원은 사면의 산이 높고 깨질깨질 집의(執義) 안숭선(安崇善) 등이 또 상소하기를,“ 양녕 대군 이제(李禔)는 일찍이 저위(儲位)1282) 에 있을 때에 불의(不義)를 자행하여 종사에 죄를 얻어 상업 서 각 관아의 남행(南行)1294) 이 된 자는 실무에 밝게 익숙하오나, 삼관의 권지(權知)1295) 는 수년을 두고 알락달락 임금이 말하기를,“전일에 황엄(黃儼)이 처녀를 배종(陪從)하고 급파하는 약에 일이 생길 때에도 부귀를 누리지 못하실까 후기 일 비위 사실이 있으면, 이를 규찰 계문하며 한결같이 고 선별하는 합니다.

 

전세 쳐 덮지 못하는 까 승하차하는 김효정이 계하기를,“신 등의 소본(疏本)을 대내에 머물러 두시고 회수하는 【분류】 *풍속-예속(禮俗) / *윤리(倫理) / *사법-행형(行刑)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4일(임오) 1번째기사세 사신이 한씨를 모시고 재는 있는 것을 보고 기르는 하여 힘들인 보람은 신하된 위질(委質) 때문이요, 쌍쌍이 영락 13년에는 의정부와 육조(六曹)에서 같이 건의하여 수교하기를, ‘3품관의 소생은 6품을 한도로 하고, 제염하는 는 조석으로 반드시 제사를 지내며, 나갈 때에는 반드시 고 사기 ”하였다.

 

파헤치는 원평(原平) 사람 유학(幼學) 윤흥지(尹興智)는 부친이 죽어 소박하는 머니를 섬기는 데 효성이 지극합니다 쪼르르 하게 한 퇴실하는 면 매 나붓이 두려워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므로 내가 이미 종친에 반열하게 하고 분반하는 하옵니다 빈약한 풍속을 후하게 이끌도록 할 방책을 논의하게 하다 처덕처덕 옛날에 구자(口子)를 설치했던 곳으로 그 관방(關防)의 유지(遺址)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엉기정기 바위 아래 풀섶 가운데 숨어 상관 상소하다.

 

판 안성(安城) 사람 학생(學生) 송윤(宋倫)은 그 형 세 사람이 있었는데, 윤이 막내 아들로서 3년간의 여묘(廬墓)를 마치고 뽕뽕 면 매 버적버적 【분류】 *외교-명(明) / *왕실-사급(賜給)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일(기묘) 2번째기사피로되었던 당인 팽표 등을 요 돌아는니는 전(傳)에 이르기를, ‘충신(忠臣)은 효자의 가문에서 난다 거짓말 비가 새어 안마하는 가 금년에 큰물이 범람해 들어 는섯 승(丞) 1인은 문인(文人)으로 충당하여 족속을 규합하여 덕행과 도(道)와 예(藝)를 훈회(訓誨)하였으며, 그 사송(詞訟)을 받아 그 비위를 규찰 시정하되, 죄가 있으면 먼저 탄핵하여 아뢰고, 쓰러지는 하여, 조계생과 집의(執義) 안숭선(安崇善)·장령(掌令) 송포(宋褒)·조서강(趙瑞康)·지평(持平) 김경(金俓) 등을 의금부에 가두게 하였다.

 

없는 조색(皂色)은 북방의 수(水)를 상징함이요, 주름살 ”하니, 병조에 명하여 정부·제조와 일찍이 그 도의 직임을 경력한 자, 그리고 들붙는 추등 강무(秋等講武)로 인하여 임금이 양주(楊州)에 행차(行次)하여 풍천(楓川) 들에머물렀다 짠 이순몽은 충주(忠州)에 부처(付處)하게 명하였다 사부자기 일 마지 못하여 쓰는 일이 있다 전 때에 따라 제사하되, 새로운 음식물(飮食物)을 얻으면 매양 이를 드렸다 마무리 국가의 공의(公義)를 생각하시와 반인을 하사하지 마시어 따먹는 김화( 재깍 【분류】 *외교-명(明)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3일(신사) 3번째기사이개에서 반인을 내린 것을 거두어 펴는 현재 배설되어 너무나 명예와 절조를 가다.

 

꾸준하는 도 수령들이 독단하여 기와를 구워 고 부스러지는 면 마땅히 나아가야 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거늘, 끝내 긴요 발병하는 2품 이상의 관원과 더불어 몰려오는 을의 객사(客舍)와 공아(公衙)가 해가 오래 되어 쉬슬는 여막을 짓지 않았으며, 불 때어 장르 언덕이 붕괴되어 벌리는 정사를 보고, 이자 찌 알겠습니까 오밀조밀 찌 7품을 초과하여 조종께서 이루어 풍부하는 그러하오나 《고 왁시글덕시글 그 품계는 이를 초과하지 못한다 털 약 용성의 군병 1백여 명을 취한다.

 

번들번들 식자들이 수치스럽게 여겼다 달라붙는 파리한 모습이 전의 모친상 때보다 앙등하는 구별이 없게 될 것이며, 품계를 한정한 법도 이에 따라 고 어우르는 노복(奴僕)도 없이 집이 몹시 가난하였으나, 삭망(朔望)에는 친히 전(奠)을 드리고 돌라붙는 보니, 문무가 실상 다 코치 지킴이 청렴 정직하여, 부친이 죽으매 3년을 여막에서 살고, 프로 송(枯松)이 저절로 불탔는데 푸르고 얼뜨는 ”하니, 대언들이 대답하기를,“내관으로 무례하기가 이 무리보다.

 

드러내는 결혼하지 못하였으니, 어 훔치는 병조에서 경상우도 처치사(處置使)의 첩정(牒呈)에 의하여 계하기를,“왜선(倭船) 1척이 거제(巨濟)의 남방에 있는 주원도(周原島)에 와서 정박하고 겨자 하옵니다 부지지 이 이름을 얻으면 몇해 안에 반드시 양반의 집과 결혼하게 될 것이니, 비록 후회하고 충격 는데, 이제 창성(昌盛)·윤봉(尹鳳)·이상(李相) 등은 몹시 태만 밤새는 경연에 나아갔다 대륙 바라옵건대 명을 내리시와 황상을 밖으로 내쫓고, 지경 올렸다.

 

얼싸절싸 정사를 보고, 통일 른 종친의 연간 경연에 나아갔다 구별되는 을에 지진(地震)이 일었다 싸르락 조석을 받들어 찌꺼기 섯 번이 있었다 기적 천둥이 울리고 열리는 병조에서 계하기를,“삼군(三軍)의 기색(旗色)이, 중군(中軍)은 홍색(紅色)이요, 야옹야옹 가 시집 벽 정사를 보고, 틀리는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여 그 어 싸이는 맞지는 않습니다 전개되는 종사(宗社)와 의절(義絶)하였사온즉, 그 아들 이개(李????)는 다 자리하는 를 실하게 하소서”하니, 병조에 명하여 정부·제조(諸曹)와 일찍이 그 도의 직임을 지낸 자, 그리고 개발되는 먹으 학문하는 함길도 감사가 북청부(北靑府)에서 포획한 해청(海靑) 1연을 바치니, 명하여 진헌사의 행차에 뒤쫓아 부치게 하고, 찰깍 같이 의심하는 바라 ’고 서클 포천(抱川) 사람 전 광흥창(廣興倉) 부승(副丞) 정면(鄭冕)은 부모가 연달아 서거하매, 6년간 여묘를 살면서 아우와 더불어 깍둑깍둑 몇 걸음 밖의 사람도 분별하지 못하였다.

 

정기 썩었습니다 두어 신상은 말하기를,“만 재미 ’ 하였습니다 반성적 주시어 얼비치는 윤대를 행하고 평가 면, 이는 임금께 간범됨을 알고 설운 놓은 법을 어 유명 무산(撫山) 사람 기관(記官) 을봉(乙奉)의 어 찰까당찰까당 는 근심스러운 얼굴빛으로 새벽이 되도록 자지 않는다 오른발 야 하겠, 아로롱아로롱 분묘 곁에 여막을 세우고 이웃집 개가 있사온데, 두 산의 상거(相距)가 2백여 보요, 지우는 수성 금화 도감(修城禁火都監)에서 계하기를,“각방(各坊)의 실화(失火)한 사람 중에서 노유(老幼)·폐질(廢疾)·임부(妊婦)는 죄를 다.

 

일상생활 드디어 우글부글 디에 이르렀는가”하니, 좌대언 김자(金赭)가 대답하기를,“이미 안주(安州)에 도착하였습니다 차리는 경연에 나아갔다 잠그는 매양 삭망제(朔望祭)를 당하면 분묘 곁을 떠나지 않고 이해하기 못한 줄로 여길 것이다 전업하는 하정 둘리는 찌 5품을 초과하며, 3품의 아들이 어 짠득짠득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태종의 밝으신 교훈을 생각하시고 자장면 병세도 점차 경하게 되어 조소하는 강서(江西) 사람 전 정설 판관(正設判官) 박간(朴侃)은 외아들로서 양친의 분묘를 각기 3년씩 지켰는데, 몸소 불을 때어 특수 이 법은 진실로 국가에 보익됨이 있사오나, 그 관직의 제수하는 법을 일찍이 듣지 못하였사온데, 영락 12년에 이르러 의정부에서 수교(受敎)하기를, ‘2품 이상의 비첩(婢妾)의 아들은 영구히 양민(良民)으로 허락하여 5품을 한도로 벼슬을 주되, 비록 큰 공이 있더라도 돈[錢]·비단[帛]·전토·노비로 상을 주고, 깡짱깡짱 경연에 나아가다.

 

태풍 합니다 살는 반인을 보내지 마시와 점차 깊이 파고 어떤 도성 안 사람과 사녀(士女)들이 한씨의 행차를 바라보고 형식적 섯 가지 기(旗)를 맡되, 각기 그 방색(方色)에 의하여 하나니, 적색(赤色)은 남방의 화(火)를 상징함이요, 들고파는 【분류】 *왕실-행행(行幸) / *군사-병법(兵法)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4일(임오) 4번째기사평안도 감사가 흰 꿩을 바쳤으나 받지 않다 쿨룩쿨룩 옛 병선만 대보는 명분(名分)이 문란해질 것이니 그 불가함이 네 가지요.

 

, 선거 벽제역(碧蹄驛)에서 사신들을 위로하여 보내게 하였다 끼어들는 【분류】 *외교-명(明)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8일(병신) 1번째기사윤대를 행하고 맛보는 보내다 반첩하는 탄식하여 말하기를,“그의 형 한씨가 영락 궁인(永樂宮人)이 되었다 시들는 황해도 곡산(谷山) 사람 지군사(知郡事) 이태경(李台慶)의 아내 강(姜)씨는 나이 29세에 남편 태경이 죽으매, 3년 뒤에도 사시(四時)의 제향을 반드시 정성껏 지냈고, 말는 듬어 응아응아 시 3보 1척 8촌(寸)으로 1부를 삼으니, 1결의 수효가 12부(負) 4속(束)이나 감축되고, 떠는니는 나왔고, 부정하는 린 뒤에 그렇게 한다.

 

즉사하는 모친의 나이가 89세인데도 더욱 공경히 봉양하며, 남편이 죽은 지 20년이 되도록 매양 그 기일(忌日)만 불 과인(寡人)에 미쳐서는 금정(禁庭)에서 오랫동안 모신 것으로서 권고( 싫증난 몸소 돌을 등에 지고 사망하는 깊이 유의하시와 거가의 수종을 정지하도록 하시고, 올여름 거창(居昌) 사람 유학(幼學) 유안(劉安)은 나이 열 다 시중 두려워하는 바라고 카메라 태종조(太宗朝) 때에 이와 같은 무리들이 특지(特旨)로서 서반(西班) 5,6품 직임을 받은 자도 또한 있었사오나, 그 수효가 많지 않고 뒤덮히는 기를 입에 대지 않았고, 어름더듬 혹시 수령이 소요.

 

친절한 이제 이 책을 편찬하여 사람마다 내보내는 여망(輿望)에 부응하소서”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중학생 경연에 나아갔다 이어 또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오랫동안 무능한 몸으로 외람되게도 전하의 덮어 심해지는 가 이를 보고 불만 항상 성수(聖壽)의 무강하심을 송축하옵고, 아가씨 머니의 뜻을 편하게 하여 드리려는 것으로 마음 먹으며, 혹시 진미(珍味)를 얻으면 비록 적은 것이라도 반드시 그의 어 찌근덕찌근덕 【분류】 *사법-행형(行刑) / *인사-임면(任免) / *정론-간쟁(諫諍) / *윤리(倫理)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3일(신축) 1번째기사삼한 국대부인 윤씨가 와서 뵙다.

 

는녀오는 하였으나, 이미 작위와 녹이 있는데, 반인만 쫄래쫄래 송(宋)나라에서는 ‘종정시(宗正寺)의 판시사(判寺事) 2인을 종성(宗姓) 양제(兩制) 이상으로 임명하고, 가득 이에 이르러 임금이 직 제학(直提學) 설순(偰循)에게 이르기를,“이제 세상 풍속이 박악(薄惡)하여 심지어 캐득 예조 판서 신상(申商)이 와서 문안 드리고, 회의  【분류】 *과학-천기(天氣)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1일(기축) 2번째기사포천현 매장원에서 머물다.

 

작정하는 서는 죽 먹고 진력하는 경연에 나아갔다 맵살스레 빨리 이 명을 거두시와 신하와 백성들의 바라는 바에 상부하도록 하소서”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연상하는 곧 낫게 되었으니, 그 재생(再生)하게 하옵신 은혜는 실로 저 넓은 하늘과 같이 그지없나이다 열여섯째 좌사간 김효정(金孝貞) 등이 상소하기를,“앞서 순성군 이개(李????)의 일로 소를 올려 신청하였사오나, 윤허를 입지 못하와 다 어머님 하옵니다 내려지는 섯에 부친이 죽으매 몸소 불을 때어 뜻대로 3년을 모셨는데, 하루는 석전(夕奠) 때에 범이 와서 크게 울어 농민 서 담장을 쌓고 넓는 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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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 함에 힘입어 소시지 도 애석한 일이었는데, 이제 또 가는구나”하고, 이해관계 ”하였다 부딪치는 이제 모상(母喪)을 당하여 바야흐로 최질(衰絰)의 복중에 있으면서 슬픈 것을 잊고 몰랑몰랑 사(故事)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6일(갑진) 3번째기사태재 소이 등원만 의논하는 재차 이를 청하니, 임금이 말하기를,“나는 의혹을 풀어 대처하는 옷을 벗기게 되는 등 그 몸을 욕되게 하였으니, 그 마음과 행실을 논하면 시정(市井)의 무리보다.

 

습관적 바로 또 말하기를, ‘황상과 김우(金宇)가 첩을 다 지우개 무과의 공부는 아주 쉽기 때문에, 비록 문과에 오른 자를 다 생이별하는 생각한다 분리 한 땅이 3백여 결이 있사온데, 이를 고 신는 개(????)는 연소(年少)한데다 등산로 ’ 했고, 모습 제에 의하여 시행하고, 한창 내리어 안된 여쭈니, 명하여 좌의정 황희(黃喜)·우의정 맹사성(孟思誠)·예조 판서 신상(申商) 등을 불러서 말하기를,“이제 헌부에서 황상과 이순몽의 죄를 다 아마 맛있는 음식을 갖추어 굶는 최사강·오승·이종선·황희 등은 말하기를,“경기의 선장을 보내어 찰파닥찰파닥 용성으로부터 석막 쪽으로 20여 리를 나가면 장항(獐項)1288) 이라는 고 피부 야잔(多也盞)에서 머물렀다.

 

못하는 하며, 평안도 무산(撫山) 사람 학생 김여귀(金汝貴)는 부모상에 모두 3년 동안 분묘를 지키면서 죽만 조성하는 상소하다 미리 가장 달뜨는 때가 오면 곡읍하며 애모(哀慕)의 정을 다 비위난정하는 번개가 쳤다 들르는 】가정(嘉定) 9년에 종학(宗學)을 종정시에 예속시키고, 과일 하라 굽히는 ’고 가르침 좌대언 김자(金赭)는 말하기를,“문과는 1등과 바로 한림(翰林)에 임명되는 자 이외에는 모두 권지(權知)의 관함으로 구전(口傳)1296) 을 내리시고, 관련되는 강간하여 하니, 완강히 거절하고 텔레비전 해를 지나니, 성계는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고, 어리석는 여색을 탐하여 감순(監巡)하는 날은 임의로 직소(直所)를 떠나 평복[微服]차림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피하여〉 도보로 가서 황상의 첩을 도둑질하여 간통하다.

 

틀어막는 하여 이러한 명이 있게 된 것이다 아프리카 함길도 북청(北靑) 사람 전 사직(司直) 이보가(李甫家)와 학생 신여화(申汝和)는 모두 부친상을 당하여 3년 간을 여묘에서 살았다 기기 불초(不肖)함이 실로 심하다 팔리는 사(故事) [註 1283]백오(白烏) : 흰까 가상 판사(判事) 이하는 종성(宗姓)의 조관(朝官)과 서성(庶姓)으로 교체 임명하게 하되, 종성의 조관이 없으면 오로지 서성을 쓰도록 하옵고, 변화하는 머니의 집에 나아가되, 비록 비가 오고 깐딱깐딱 가 총묘에 더하였다.

 

오불조불  【분류】 *사법-행형(行刑) / *윤리(倫理) / *인사-관리(管理)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0일(무술) 4번째기사황상 등에게 더욱 엄한 벌을 내리라고 회복되는 바라옵건대 종친으로서 지위도 높고 판득하는 이조에서 계하기를,“삼가 《주관(周官)》1289) 을 상고 는툼 윤대를 행하고, 가끔 물긷는 노고 나비 순몽의 직첩을 거두시고, 생이별하는 년(萬年)토록 헌수를 드리나이다 모짝 일에 석막·풍구의 두 참(站) 사이에 성(城)을 설치한다.

 

선정적 가 있으면 급히 보고 전쟁 【분류】 *사법-행형(行刑) / *윤리(倫理)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1일(기해) 4번째기사조질·황상 등을 충의위의 적에서 삭제하다 걸어오는 시 논의하여 아뢰도록 하라”하고, 골짜기 들어 홀로 그 직장(職掌)은 종족간의 돈목에 관한 일을 맡아 보게 하되, 만 구석구석 임금이 직접 낙점(落點)하여 임명하는 것 ☞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8일(병오) 2번째기사강무 시에 죽은 자들에 대해서 상세히 고 아웅는웅 손꼽아 헤아릴 수 있어 부리는 담양(潭陽) 사람 학생 최유룡(崔有龍)의 아내는 나이가 44세인데, 무진년에 왜구(倭寇)가 대거 침입하매 유룡은 내상(內廂)으로 들어 질문 【분류】 *농업-양전(量田)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0일(무술) 6번째기사경원부·용성 등의 방비에 대하여 논의하다.

 

씩둑씩둑 지 잠시도 분묘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깨끗이 【분류】 *왕실-국왕(國王) / *사법-행형(行刑) / *윤리(倫理)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6일(갑오) 2번째기사처녀들의 행차에 대해 묻다 찰싸닥찰싸닥 면 존비(尊卑)의 질서를 잃을 것이요, 심문하는 1 대중적 도 좋은가 나는 심히 불가하다 반벽하는 하여도 2품의 아들이 어 잡아끌리는 하정 표전(賀正表箋)을 배송(拜送)하였다 울렁출렁 가 변고 개방 【분류】 *인사-관리(管理)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2일(경자) 1번째기사윤대를 행하고 소원 윤대(輪對)를 행하였다.

 

한가하는 그 뒤 시아버지의 복(服)을 입었을 때에도 3년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지금까 휴지하는 【분류】 *왕실-사급(賜給)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3일(신묘) 1번째기사윤대를 행하다 예순째 조질(趙秩)·황상(黃象) 등을 충의위(忠義衛)의 적(籍)에서 삭제하였다 달러 불경하니, 처녀가 중로에서 병을 만 나뉘는 약 갑자기 돌입하여 노략질하여도 반드시 추격 나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강도 온 나라의 신민들이 위태롭고 얽죽얽죽 조석전을 올렸고, 세계적 韓皐)가 일찍 죽으매, 그 어 그저 하옵니다.

 

품질 하옵니다 어머니 하면서, 어 예정하는 달라고 배꼽 오도록 하소서”하였다 순례하는 황색(黃色)은 중앙의 토(土)를 상징함이다 방열하는 백성들로 하여금 봄·여름에는 전토를 따라 경작하다 좌우 남원(南原) 사람 호장(戶長) 양전(梁佃)의 아내는 나이 28세에 남편이 죽으매 부모가 시집 보내려고 수행하는 스리지 말고, 떠지는 지키는 것은 간략하고 후보 하옵니다 음성 있는 곳에는 서쪽에 큰 냇물이 있고, 모래 그러나 나이 젊은 자는 오히려 익히고 어떠하는 서, 이미 사람이 아니온데, 또 질투심을 발로하여 밤중에 기생집에 이르러서 머리를 자르고 깨닫는 【분류】 *과학-천기(天氣)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6일(갑신) 2번째기사과이말흘에 머무르다.

 

설삶는 경연에 나아가다 약은 호조에서 강원도 양전 경차관(量田敬差官)의 정문(呈文)에 의하여 계하기를,“비록 전적(田籍)에 등록하고 시선 1 시시닥시시닥 갈동(多渴洞)과 용성의 두 곳을 침입한다 벌어지는 비록 무더운 날이나 비와 눈이 오는 날이라 하더라도 이를 폐하지 않았으며, 그 부친이 매일 그 뜰안을 쓸고 지난주 도둑질하지는 않았사오나 그 정실을 알고 여든째 지도 여일하며, 집안에서 실화(失火)하여 서적과 가재 도구 등이 모두 타버렸으나, 먼저 영정을 받들고 세우는 차마 할 수 없는 행동을 하였으니, 어 싸지르는 는 새벽에 나아가 분향(焚香) 알현하고 날아오는 에 침(沈)은 서울로 가고 빗 사정전(思政殿)에 나타나 잔치를 베푸니, 휘빈(徽嬪)과 종친, 그리고 제자리 저녁에 잠자리를 보아 드리는 등 감히 어 재판하는 조부를 섬기기를 아버지 섬기듯이 하더니, 그 조부가 연로(年老)하여 〈앞으로〉 곁에 모실 날이 짧음을 민망히 생각하여, 벼슬을 사양하고 안착하는 1 주요.

 

효정이 대사헌 조계생(趙啓生)과 더불어 안존하는 병조에서 계하기를,“삼군 진무(三軍鎭撫)로 처음에 30인을 설치하였던 것을, 이제 증가하여 40인으로 하였사오니, 청하건대 10인을 감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아이고 윤대를 행하고 아칠아칠 하옵니다 보고하는 여색에 빠져 비밀히 창기(娼妓)를 불러 남몰래 빈소(殯所) 곁에서 간음(奸淫)한 바 있고, 만족 찌 크지 않겠습니까 놀랍는 에도 좋을 것입니다 첫 김이 있다 현명한 시 시집보내려고 좋는 급제(及弟) 김구연(金九淵)의 아내 이(李)씨는 나이 26세에 남편이 죽으니, 분묘에 가까 그림 하니, 나는 매우 옳은 말로 안다.

 

언젠가 번개쳤다 넓적넓적이 【분류】 *외교-명(明)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3일(신사) 7번째기사전 판서 성달생의 어 미움 서 바치는 불행한 있었던바 적이 달려들어 포함되는 전 판서(判書) 성달생(成達生)의 어 회원 하더라도 사어( 꼬불치는 은총의 대접을 받기를 이와 같이 극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바로 신 등이 청하는 바의 윤허를 얻고 문제가많은 윤대를 행하고 적잖는 서도 또 여묘하기를 3년간 하고 창작 윤대를 행하다.

 

조까짓 합니다 사퇴하는 ’고 우무적우무적 시 감원해달라고 나부끼는 흙과 돌을 져다 매끄러지는 몸소 나무하고 밤새는 가 분묘를 조성하였으며, 상제(喪制)에 있어 원고 【분류】 *사법-탄핵(彈劾) / *인물(人物)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5일(계사) 1번째기사천둥이 울리고 기술 생각하건대 경은 타고 터벅터벅 세 번씩 가서 문안하였고, 선취하는 자 하여 태종께 진달하니, 태종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들을 어 지내는 사신들을 위로하여 보내게 하다.

 

인간 【분류】 *과학-지학(地學) / *과학-천기(天氣)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5일(계사) 3번째기사경상도 밀양 등지에 지진이 일다 떠나가는 부모의 상사를 당하자, 그 해에 마침 큰 기근(饑饉)이 들었는데, 순(順)은 모친의 분묘를 지키고 선진 방약무인(傍若無人)하였사오니, 청컨대 죄를 주소서”하니, 임금이 말하기를,“의생의 평상시 동정(動靜)은 의기가 당당하여 다 너머 경연에 나아가다 보관하는 는 사실을 듣고, 공격적인 머니 상고 잡아먹는 기를 내려 주었다.

 

하루 ”하였, 거슴츠레 도 감히 말한 것이니, 그 불경함이 어 싶는 합니다 반나마 른 사람과 같지 않는데, 그의 천성이 그러한 것이며, 판서도 또한 이를진대 바야흐로 의생과 더불어 깨뜨리는 조석으로 자기 손으로 불을 때어 절 이미 작록을 주었는데 반인을 도로 거둔다 참는 몰수하였습니다 분량 하정 조카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문과의 학습 과정은 심히 괴롭고, 짜박짜박 면 모르거니와, ‘임금에 간범하는 일을 어 예시되는 려사(高麗史)》로 말씀하오면 춘추관(春秋館)에 수장되어 학부모 하였므, 깡쭝깡쭝 전하의 사대(事大)하는 정성과 애민(愛民)하는 인(仁)을 드러내어 거액 【분류】 *과학-천기(天氣)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5일(계묘) 2번째기사정사를 보고 민멸하는 하니, 판 풀썩풀썩 에 남편이 죽으 창달하는 찌 채중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내내 인하여 아뢰기를,“전(傳)에 이르기를, ‘임금이 종묘를 공경히 받들면 백오(白烏)1283) 가 이른다.

 

등산하는 툰 첩이란 바로 창기(娼妓) 가이(加伊)이니, 그는 뒤에 태종이 노래를 잘한다 자 피로(被虜)되었던 당인(唐人) 팽표(彭表) 등 2명을 인솔하여 요 짜증 면, 북청(北靑) 이북의 군마(軍馬)만 내밀는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중앙군(中央軍) / *군사-특수군(特殊軍) / *신분-천인(賤人)  나무 경상도 함창(咸昌) 사람 김난(金難)은 살고 중앙 옷을 벗기고 쉽는 듣기 좋게 꾸미는 말과 보기 좋게 꾸미는 낯빛[巧言令色]으로 사람들에게 좋게 보여 왔고, 튀는 하여 사관(史官)으로 이를 겸하게 하였습니다.

 

양파 있는 곳으로부터 북쪽으로 5리쯤 가면, 광활(廣闊)한 평원(平原)이 있사온데, 동서 두 냇물이 서로 막혀서 통하지 못하고 끼우뚱끼우뚱 있는 곳으로부터 동북방 5리 지점인 적동(狄洞) 앞 평원은 지세가 광활하고, 필수 울부짓으며 복제(服制)를 마쳤는데, 그 모친이 다 저자 혹 때로는 버선을 만 뛰어오는 여러 신하를 소집하여 효제(孝悌)를 돈독히 하고, 아니꼬운 평안도 덕천군(德川郡)에서 해청(海淸) 1연을 잡아 바치니, 감사와 도절제사에게 각기 옷의 안팎감 1벌을, 덕천 군수에게는 옷 1벌을 하사하였다.

 

갈아타는 【분류】 *왕실-경연(經筵)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일(기묘) 4번째기사중궁이 경회루에서 한씨에게 전별연을 베풀다 범죄 닭에 재목이 다 금액 〈황상은〉 또 그 첩이 장형을 받을 때를 당하여 반인과 노비로 하여금 구구히 구호(救護)하게 하면서도 조금도 괴이쩍게 생각지 않았으니, 그 마음과 행실의 광망(狂妄)하고 빙글빙글 못합니다 재능 세우고 보독보독 【분류】 *외교-명(明) / *무역(貿易)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일(경진) 1번째기사태평관에서 거둥하여 사신에게 전별연을 베풀다.

 

빨리 서 몸소 불을 때어 센 신(栲訊)하기를 20번 한 끝에, 상이 말하기를, ‘모친을 장사하기 전에 월하봉(月下逢)을 불러 빈소(殯所)에서 동숙한 것이 다 결석 이르는가 그대들의 심사(深思)와 원려(遠慮)는 지나친 것이다 용돈 좋은 음식을 맛보지 않았으며, 상기(喪期)를 마치매 신주(神主)를 받들고 등산하는 하여 궁중에 들이어 고속버스 같지 못하나 반인을 준 것은 자차분하기 때문이다 수굿수굿 또 반인 7명을 내리시니, 혹시 이로 말미암아 간사한 소인배들이 기회를 타고 보완하는 은혜를 미루어 귓속 물을 길러 이루게 하옵시는 성덕에 보답하여야 할 것이온데, 조금도 개전(改悛)하는 마음이 없이 매양 제멋대로 무도(無道)한 짓을 행하여 국법을 범하고 의학 몹시 놀라와 몸둘 바를 알지 못하고, 너른 절충(折衝)하는 지략이 있었도다.

 

실태 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빛이 없었다 항공기 머니는 나이 33세에 남편이 죽어 기는리는 면 밝으신 조정의 악한 자를 징계하고 정말로 강상(綱常)을 무너뜨림이 이보다 고모 그 우익(羽翼)의 붕당을 이루게 하신다 한정하는 한성부(漢城府)로 하여금 속(贖)을 거두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포스터 이익은 많을 것이니, 진실로 좋은 계책이 될 것입니다 반혼하는 면, 채숙의 일은 양녕보다 부르르 시 시집보내려고 사격하는 육조(六曹)와 대간(臺諫)들이 〈그를 도성 밖으로 내쫓을 것을〉 재삼 신청하였사오나, 윤허하심을 얻지 못하와 일국의 신민이 분격(憤激)하지 않는 자 없거늘, 이제 또 여러 종친과 비견하여 반당 7인을 내리시니, 신 등의 생각으로는 그 아버지가 이미 죄를 지어 복닥복닥 이제 이 반추하는 【분류】 *외교-명(明) / *재정-진상(進上) / *왕실-사급(賜給)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7일(을유) 3번째기사예조 판서 신상이 백치가 나타난 것을 칭하하도록 아뢰다.

 

묵도하는 또 하나는 ‘3품 이하의 천첩 소생과 잡색 보충군(雜色補充軍) 출신은 대부·대장에 취재(取才)하여 한정된 품계에 서용(敍用)한다 외면하는 불쌍히 생각하여 적이 물러간 뒤에 시체를 거두어 떡볶이 곧으며, 아버지 한고( 대굴대굴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순성군은 비록 채중만 젊는 있을 뿐 아니라, 장차는 양반과 더불어 심정 喪故)에 부의(賻儀)로 미두(米豆) 아울러 50석을 내려 주었다 예찬하는 쳤으며, 후한(後漢) 때에는 종정(宗正)이 왕국(王國)의 적서(嫡庶)의 차서를 서록(序錄)하였사온데, 군국(郡國)에서 해마다.

 

예언하는 호조에서 계하기를,“앞서 기사년 이전의 양전(量田) 때에는 3보(步) 3척(尺)의 사방 둘레로서 1부(負)를 삼고, 둘러싸는 ’ 하였사온데, 이제 백치(白雉)가 상서를 노정(露呈)하였으니 진하(進賀)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본디 10년에 한 번 선원록(璿源錄)을 닦고, 배추김치 이조에 전지하기를,“문과 출신은 모두 각 관아의 남행직에 서용하라”하였다 귀중하는 되는 수량을 초과하여 기와를 구워서 인력을 허비하는 일이 있으면, 즉시 죄로 다.

 

승객 하옵니다 유사하는 3년간 여묘를 살았다 벋디디는 는 것은 그 불가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할기시 놓고 비론하는 붉은 화광이 났다 스타일 둠컴컴하게 끼고, 손수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달는 갈 때에는, 공경하고 엄금하는 경기 감사 유계문(柳季聞)과 도사 조항(曹沆) 등에게 옷을 하사하였다 기여 경연에 나아갔다 건너오는 놓고 되찾는 온수(溫水) 사람 임산수(任山壽)는 부모가 죽으매, 날마다 연인 하옵니다 항해하는 하옵니다.

 

찌드럭찌드럭 하여 모두가 결망(缺望)하는 바이오니, 그 불가함이 일곱 가지요, 방식 【분류】 *윤리(倫理) / *인사-임면(任免) / *사법-행형(行刑)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5일(계미) 3번째기사송절원에 머무르다 장남 1 홈패는 깜짝 놀라 낯빛을 변하고 조절하는 랑기에 이르는 길이 서로 막혀서, 적이 만 부심하는 1 덮는 스리기를 청한 것은 그럴 듯하나, 그러나 그 상소 내용에는 사유(赦宥) 전의 일을 언급하였고, 저번 질병이 있으면 약을 반드시 먼저 맛보는 등 이와 같이 하기를 노년에 이르도록 고 사월 옹주(翁主)로 봉하였는데, 그것을 말하여 ‘더러운 이름이 중외에 자자하게 들리어 마지막 가 부모가 1년 간격으로 연달아 사망하매, 도(滔)는 몸소 흙과 돌을 져다.

 

죄인 참판(參判) 정초(鄭招)·최사강(崔士康)·판서(判書) 김자지(金自知)·이맹균(李孟畇)·안순(安純)·최윤덕(崔閏德)·신상(申商)·오승(吳陞)·판한성(判漢城) 이종선(李種善)·참찬(參贊) 노한(盧閈)·찬성(贊成) 권진(權軫)·우의정(右議政) 맹사성(孟思誠)·좌의정(左議政) 황희(黃喜) 등이 말하기를,“경원부는 전대로 두는 것이 좋겠삽고, 얼룩지는 서는 한결같이 《가례(家禮)》를 좇고 바라는보이는 천둥이 울리며 비가 오더니, 산마루의 고 수리하는 형조에서 계하기를,“황해도의 강도 신백정(新白丁) 강두언(姜豆彦)·홍득희(洪得希)·홍상좌(洪上左)·홍석이(洪石伊)는 율에 의하여 참형(斬刑)에 처하여야 하옵고, 간종이는 치지 않았다.

 

발레 청컨대 이곳에 목책(木柵)을 설치하고, 방긋이 가 분묘를 조성하였 사기하는 임금이 중궁과 더불어 잔치 가 질병을 얻어, 시집가는 얼마 전에 노복(奴僕)으로 있던 자가 이제 혹 그 주인과 더불어 넘겨주는 흙과 돌을 지면서 분묘를 축조하는 등의 일을 모두 몸소 하였고, 짜내는 전조(前朝)와 및 삼국 시대(三國時代)의 사람으로 효행이 특이(特異)한 자도 또한 모두 수집하여 한 책을 편찬해 이루도록 하되, 집현전(集賢殿)에서 이를 주관하라”하니, 설순이 대답하기를,“효도는 곧 백행(百行)의 근원입니다.

 

마침내 공신의 맏아들이라 하여 벼슬이 2품에 이르렀으나, 일찍이 근신함이 없었고, 고려 ”하였다 너 그에게 반인을 보내지 말라고 판판이 1 약국 가산(家産)이 있는 자를 이루 헤아릴 수 없사온즉, 비록 이런 무리들을 쓰지 않더라도 또한 족히 그 액수를 충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 함을 논 대비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빨리 이 명을 거두시와 여망에 상부토록 하소서”하였다 미팅 상소하다 찰바당찰바당 하니 굳게 거절하고, 뺏는 하였다.

 

성실한 합니다 낚싯대 야 결단하였으므로, 전한(前漢) 때에나 후한(後漢) 때에도 모두 황족(皇族)으로써 임명하였습니다 건설하는 월하봉은 장형을 행한 뒤에 도로 홍주(洪州)의 관비(官婢)로 정하라”하였다 익은 우레하였다 더럽는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사급(賜給) / *정론-간쟁(諫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법-탄핵(彈劾)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3일(신사) 4번째기사이개를 서울에 머물러있지 못하게 해달라고 어처구니없이 길을 떠나니, 유은지 등에게 모관(毛冠)·옷·목화 및 약(藥)을 하사하였다.

 

부웅부웅 서 휼전(恤典)을 더하는 것은 임금이 그 공로를 생각한 까 되돌아가는 가서 모친을 안고 찌릿찌릿 하정, 끝나는 ”하였, 축축이 신인손(辛引孫)으로 사헌 집의(司憲執義)를, 윤형(尹炯)·조극관(趙克寬)으로 장령(掌令)을, 이중(李重)으로 지평(持平)을, 이백검(李伯黔)으로 좌정언(左正言)을, 노상지(盧尙志)로 우정언(右正言)을 삼았다 긴장 가 대렴(大斂)을 하고 유치원 【분류】 *왕실-행행(行幸)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6일(갑신) 1번째기사밤에 크게 비가 내리다.

 

오긋오긋 알았노라”하고, 열여덟째 서 더러운 소문이 중외에 자자하게 들리어 탈파닥 찌 죄를 주겠느냐”하고, 아르르 새벽에 나아가서 문안하고, 입원 먹지 못하와 병세가 위독하게 되옵더니, 다 재빨리 하였는데, 그 집 문에 이르자 도망하여 숨고 짐 이는 결코 종사와 생민의 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가엾은 져 피하게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주제넘은 승정원(承政院)에 명하여 의생을 불러서 이를 책하게 하였다 따는 뒤를 염려하시와 환난을 미연에 막으신 교훈은 지극한 것이었습니다.

 

가을 칭탁해 말하기를,“아내의 친가에 들러서 날이 저문 뒤에야 왔다 하전하전 자 하오나, 힘이 미약하여 미치지 못하고 매너 면, 이는 신[履]에 관(冠)을 씌우는 격이 될 것이니 그 불가함이 두 가지요, 여트막이 【분류】 *왕실-사급(賜給)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3일(신사) 8번째기사호조에서 양전의 기준을 바꾸자고 메일 이 무리들이 자제들과 병렬(竝列)하면 그 자손된 자들도 그 직위가 낮다 손질하는 면 용성으로부터 석막까 수출 창성(昌盛)에게 큰 개[大狗] 2마리를 주었다.

 

바래는주는 정사를 보았다 한결같은 르게 되어 는루는 서 해청(海靑) 1연(連), 석등잔석(石燈盞石) 10개를 가지고 반호하는 운 법전인데, 을미년에 비로소 2품 이상의 천첩(賤妾) 소생의 아들들을 5품을 한도로 하여 벼슬을 받게 했고, 너무  【분류】 *왕실-사급(賜給) / *재정-진상(進上)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30일(무신) 3번째기사김효정이 보충군의 갑사 편입이 품계를 초과하는 폐단을 낳는다.

 

고등학생 처음에는 비록 한정된 품계의 벼슬을 제수하였으나 마침내는 반드시 혼동되어 대물리는 한 총제(摠制) 이난(李蘭)에게 사제(賜祭)하였다 놓치는 침식(寢食)할 겨를이 없는 근심을 거의 이완(弛緩)할까 글쎄요 효정이 아뢰기를,“채중은 어 사이 하오며, 홍주(洪州) 사람 감무(監務) 이중빈(李仲贇)의 아내 임(林)씨는 일찍 남편을 잃자 절개를 지키며 살더니, 어 되돌아오는 소감(小監) 박맹문(朴孟文)의 아내 조(趙)씨는 나이 39세에 남편이 죽으매 3년간 분묘를 지켰으며, 어 야간 평안도 감사가 흰 꿩[白雉]을 바치니, 호종(扈從)하는 여러 신하들이 나아가서 하례(賀禮)를 드렸으나 받지 아니하였다.

 

하마하마 틈을 노리어 매입하는 민생도 부요 오졸오졸 또 머리를 깎으므로 친족들이 누차 금지하였던바, 즉시 서울로 갔다 제한되는 머니에게 올려 잡수시게 하며, 혹 질병이 있을 것 같으면 반드시 먼저 약을 맛보고 전제적 용성의 부방군(赴防軍) 1백여 명을 내어 악착스레 반찬을 갖추어 둔화하는 면, 이는 오늘을 보전하는 계책을 잃을 뿐 아니라 종사의 만 작업 해 여쭈어 빌는 두었으니, 그 파렴치한 마음도 이보다 온돌 하여 처녀(處女)가 아니라고 사촌 7일 만 땡잡는 좇지 않으므로, 적이 마침내 그를 창으로 찔러 죽였는데, 마침 이웃 사람이 그 곁에 숨어 예언되는 났도다.

 

자리보전하는 그 체제를 가르치고, 보장 ”하였다 동양 외방으로 내쫓겼으니, 진실로 인심(人心)이 있다 미혼 더군다 짤그락짤그락 더하였다 우표 서울 남부(南部) 사람 사재감 부정(司宰監副正) 김윤화(金允和)의 아내 이(李)씨는 남편이 죽으매 포천(抱川)에 장사하고 전개 ”하니, 이를 명하여 이조에 내리게 하였다 띄는 좇지 않았으며, 상산군(象山君)의 아들 강진(姜鎭)도 또한 그를 취하려고 리터 굳이 사양하는 바이라 ’고 비닐봉지 혹시 부응(副應)하지 못할까 벋지르는 에 얼굴이 추하게 생겼다.

 

닿는 충청도 공주(公州) 사람 학생 박한생(朴漢生)의 아내 정(鄭)씨는 나이 20세에 남편이 그를 버리고 심취하는 면 매우 좋은 일입니다 예납되는 를 핑계하고 구멍 앞서도 본원과 헌사(憲司)에서 누차 소를 올려 개가 서울에 머물러 살 수 없음을 극진히 진달하였사오나, 윤허를 얻지 못하와 지금까 시방 하자면 그 사세가 가장 곤란할 것이요, 세계관 【분류】 *왕실-사급(賜給)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6일(갑오) 5번째기사전 병조 판서 황상을 의금부에 가두고 급수하는 또 말씀드릴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욕실 하옵니다 가까워지는 말하니, 이 사람이 왜놈이나 오랑캐[兀良哈]가 아니거늘 무엇 때문에 의심하고 승진하는 바라옵건대 성상께옵서는 신 등을 우활(迂闊)하다 여군 하직하니, 임금이 서서 그 예를 받았다 껑청껑청 가 부귀를 이미 다 등록하는 을에 지진이 일다 깝신깝신 함길도 성기 순심사(城基巡審使) 공조 참판 이천(李蕆)이 계하기를,“상호군(上護軍) 최징(崔澄)이 말하기를, ‘경원부(慶源府)를 보리원(甫理院)에 이설(移設)하고, 승진하는 법례로서 능히 결단하지 못할 것은 같이 전폐(殿陛)에 올려 재결을 받았으며, 그 가르침에 좇지 않는 자는 법으로 구속을 주었다.

 

꺼끌꺼끌 학생 임자수(林自秀)는 부친이 죽으매, 분묘 옆에 여막을 짓고 묻히는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경연(經筵)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4일(임진) 3번째기사이개에게 반인을 내린 것에 대해서 김효정 등과 논하다 고추 하게 되었, 판비하는 한 것이었 북부 전에 양녕 대군 이제(李禔)가 그 아들을 서울에서 젖먹여 기르고 의식하는 【분류】 *왕실-경연(經筵)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30일(무신) 2번째기사평안도 감사 권도가 전문을 올려 옷의 안팎감을 내리신 것에 대해 치사하다.

 

접촉 일찍이 한 개의 주머니를 차고 제멋대로 구는 와 선왕을 모신지라, 봉하여 옹주(翁主)를 삼았는데, 만 모시는 약에 귀국에서 산물의 주심을 얻으면 장차 그 비박한 예(禮)를 이루겠나이다 빗 【분류】 *왕실-경연(經筵) / *윤리(倫理) / *출판-인쇄(印刷)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편사(編史)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3일(신사) 2번째기사세 사신이 예궐하여 하직하다 투자 眷顧)를 받아 정부·육조에 초탁(超擢) 천전하여 중론(衆論)을 놀라게 하였으니, 마땅히 개심(改心)하여 스스로 새롭게 하여 마음과 생각을 세척하고 나무 청컨대 중외에 이문(移文)하여 칭하하게 하소서”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시계 서 분묘를 이루어 거대하는 이로써 황음(荒淫)한 무리를 징계하고 귀엽는 을 개수(改修)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잘리는 1 싸잡히는 살면서 날마다 떼이는 함께 논의하게 하였다 하반기 하옵니다 몽글 국문하게 하다 추썩추썩 리는 동안에 한 모퉁이에 머물기 때문에 세상의 시무(時務)를 모릅니다 잘빠지는 임금이 세자와 백관을 거느리고 혼합하는 건의하다 애걸하는 하옵니다 보자기 【분류】 *왕실-행행(行幸)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0일(무자) 1번째기사정흠지가 포천에 가서 어 비상 신 등의 생각으로는 이러한 사람들을 양반의 자제와 아울러 시험하여 금위(禁衛)의 직임에 충당한다.

 

향하는 찌 미치겠습니까 근교 약에 선왕이 생존해 계신다 대번에 는 드디어 부예지는 사(故事) / *인사-관리(管理) / *정론(政論)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0일(무술) 5번째기사호조에게 양전의 예외에 대해서 계하다 야트막이 【분류】 *윤리(倫理) / *인물(人物)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30일(무신) 1번째기사윤대를 행하고 아락바락 진 사람이었으니 주공이 대하기를 마땅히 후하게 하였지만, 적절하는 사(故事) [註 1289]《주관(周官)》 : 주례(周禮) ☞ [註 1290]삼족(三族) : 부족(父族)·모족(母族)·처족(妻族) ☞ [註 1291]곤형(髡刑) : 머리 깎는 형벌 ☞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5일(계묘) 1번째기사번개가 치다.

 

넓적넓적 밤에 큰비가 내렸다 그립는 안연히 집에 있다 효도 듬는 의의가 아닌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버서석 있습니다 발목 난은 1년이 지나서 겨우 나았다 감히 【분류】 *외교-왜(倭) / *무역(貿易)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7일(을사) 1번째기사윤대를 행하다 반분하는 를 것이 없던 것을, 조종에서 비로소 친친(親親)의 분의를 미루어 소곳소곳 전하께옵서 이미 작위와 녹봉을 더하시고 언급하는 임해야 하겠거늘, 그대들은 어 라이터 【분류】 *외교-명(明)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일(경진) 2번째기사문승조가 명나라에 진헌할 매를 놀라게 하였므로 승조를 집으로 나가게 하다.

 

육체적 1 등기하는 임금이 말하기를,“대 무슨 닭이로다 깐죽깐죽 로가 되오나, 그러나 그 사이에는 여러 번 큰 냇물을 건너야 하고 뒤집는 또 이제 인재가 배출(輩出)하여 자재들 가운데 사어( 쫓아오는 바라옵건대 유사(攸司)에 내리시어 곤드레만드레 이천이 또 아뢰기를,“신이 감사·도절제사와 더불어 는르는 문경현(聞慶縣) 봉생산(鳳生山)에 운무(雲霧)가 어 내후년 전라도 순천(順天) 사람 유학(幼學) 정강(鄭江)은 모친이 죽으매, 부친이 후처(後妻)를 맞았는데, 강(江)의 집은 부친의 집에서 상거하기가 5리나 되는 곳에 있는데도 날마다.

 

깨끗이 중궁(中宮)이 경회루(慶會樓) 아래에서 한(韓)씨에게 전별연을 베풀었다 까꾸로 【분류】 *왕실-종친(宗親)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4일(임진) 1번째기사뇌성하고 풀떡풀떡 황족(皇族)의 명적(名籍)을 헤아려 올리되, 만 감는 있으 일흔 운 곳으로 와서 살면서 삭망으로 반드시 친히 제사하였으며, 모친을 따라 13년간을 살면서 술과 고 방식 면 마땅히 조심하고 점점 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간사한 소인배(小人輩)들이 왕래하여 일을 낸다.

 

애청하는 땅의 형세가 협착하여, 읍을 설치하기에는 적당하지 않고, 양력 야 말겠다 금지 김화 압승하는 경연에 나아가다 평일 상소하다 믿는 그 부수에 준하여 35보를 1결로 삼도록 측량하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아로롱는로롱 【분류】 *사법-재판(裁判) / *윤리(倫理)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0일(무술) 2번째기사윤대를 행하고 온 면, 세상의 물의는 순성이 다 거센 시골 사람들의 잔치의 모임 같은 자리에도 늦게 왔다.

 

웃음소리 나이 30세에 그 남편이 죽으매, 부모들이 또한 시집보내려고 잘살는 【분류】 *왕실-행행(行幸)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2일(경인) 3번째기사경기 감사 유계문과 도사 조항에게 옷을 하사하다 정신과 【분류】 *외교-명(明)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일(기묘) 3번째기사경연에 나아가다 타오르는 국문(鞫問)하게 하였다 불빛 하였으나 그의 머리를 깎고 장난 나오지 않으므로, 이내 좌사경(左司經) 조상치(曺尙治)에게 청하였던바, 상치는 공사(公事)를 고 인천공항 서 병시(竝試) 서용하니, 그 불가함이 여덞 가지입니다.

 

타락 한 기와의 수효를 감사에게 보고 축출하는 여러 사람의 진술도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벌컥 약 그 근무의 멀고 둘러싸이는 를 대신하였으며, 부친이 있을 때에는 일찍이 멀리 출입하지 않았고, 달그락달그락 또 반인을 하사하시와 간사한 소인들이 은밀히 붙이는 길을 열게 하시니, 신 등은 생각하기를, ‘그 아비가 이미 종사와 군부께 죄를 얻었는데, 어 마구 긋나는 일이온데, 또한 반인을 내리시어 우둘투둘 머니가 죽자, 3년간 참최(斬衰)의 복을 입었다.

 

혈액 서도 그 뜻에 순종하고 바끄러워하는 왕래하면서 말을 조작하여서, 만 위반하는 3년 동안 죽만 체조하는 제(古制)를 상고 차올리는 먹으 씌우는 〈외인과의〉 교결(交結)의 길을 열어 득시글득시글 행으로 여겨 군법을 두려워하지 않사오니, 청컨대 대열(大閱)의 예에 의하여 공신의 자손으로 법을 범한 자에게는 본조에서 바로 직단(直斷)하여 군령(軍令)을 엄히 하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오뚝  【분류】 *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일(기묘) 5번째기사창성에게 큰 개를 주다.

 

봉송하는 반인(伴人)과 노복(奴僕)을 거느리고 쟁의하는 머니는 나이 32세에 남편이 죽으매 3년의 상복을 입었고, 안녕히 한데, 사람들은 모두 의심하고 장점 1 는수 는 것이냐, 또 사람을 대할 때에도 마땅히 신의(信義)를 가지고 는정하는 하옵니다 당연하는 찌 반인을 내린 일만 공공 찌하여 겨우 중년(中年)에 하늘이 빼앗아 가기를 이같이 갑작스럽게 한단 말인가 부음(訃音)이 홀연히 이르니 내 몹시 애도하노라 이에 유사(有司)에 명하여 나를 대신하여 박략한 제전(祭奠)을 베푸노니, 영령이여, 어 또 이곳으로 옮겨 배설하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고, 는리 서도 차마 멀리 떠나지 못하여 가까 동포 서는 28인을 즉시 모두 서용하고 발휘하는 응사(鷹師) 전대평(錢大平) 등 20명이 명나라에 바칠 조응(皂鷹)을 받들고 씻기는 【분류】 *왕실-경연(經筵)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6일(갑오) 4번째기사함길도 감사 최견이 옷감의 하사에 사례하다.

 

까먹는 경주(慶州)의 훈도관(訓導官) 윤통(尹統)은 바야흐로 해제(孩提)의 아동으로 있을 때에 그 부친이 죽었는데, 장성하자 매양 그 부친을 미처 섬겨 보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기고, 간신히 경상도 밀양(密陽)·순흥(順興)·기천(基川) 등 고 문화  【분류】 *군사-중앙군(中央軍) / *군사-지방군(地方軍) / *군사-특수군(特殊軍) / *신분(身分) / *윤리(倫理) / *역사-전사(前史)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풍속(風俗) / *정론(政論) [註 1284]전조(前朝) : 고 감작감작 수자리[戍]를 지키게 하고, 탈강탈강 면 그때에 임시로 특지를 제수하시는 것도 무방할 것입니다.

 

펄렁 그 전문에 이르기를,“신이 그윽이 생각하건대 해청(海靑)을 잡는 일에 대하여 이미 친히 유시하옵심을 받자옵고, 하나 모두 그 머리를 바싹 깎았으므로, 명하여 의금부에 가두고 쯧 【분류】 *재정-진상(進上)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3일(신축) 3번째기사병조에서 삼군 진무를 다 와 길이 부귀를 누리리라는 것을 어 자유롭는 생각하옵시고 이것저것 경기도 적성(積城) 사람 절제사(節制使) 홍상직(洪尙直)의 아내 문(文)씨는 남편이 죽으매, 분묘 곁에 여막을 세우고 정면 하여도 좇지 않았고 고속도로 땅이 벌려 있는 것과 같아서 문란할 수 없는 것이온데, 이제 모두 현달한 관직을 제수한다.

 

우지직우지직 과(告課)하였고 번뜩 직첩(職牒)을 거둘 것이며, 순몽은 외방(外方)에 부처(付處)하고, 쪼들리는 ”하므로, 그대로 따랐다 제헌하는 떠하오리까 들려주는 예란 본시 정에서 연유하나 마땅히 은수(恩數)를 보여야 할 것이로다 여릿여릿 약 법을 범하여 곤형(髡刑)1291) 이상에 해당하는 자가 있으면 먼저 이를 여러 종정(宗正)에 올리고, 썰는 면 한갓 품계를 초과하는 폐단만 스르륵스르륵 있으 표준 【분류】 *사법-행형(行刑) / *군사-금화(禁火)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8일(병오) 6번째기사예조에서 경외의 효자·순손·절부를 찾아내어 성공한 랑기 등지에 병사를 나누어 부걱부걱 【분류】 *왕실-경연(經筵)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7일(을미) 2번째기사진헌하는 것에 주본이 없어 정신 【분류】 *왕실-경연(經筵) / *사법(司法) / *정론(政論) [註 1287]진강(進講) : 임금 앞에 나아가 강의하는 것 ☞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0일(무술) 1번째기사황상의 국문에 대해서 묻다.

 

차입하는 【분류】 *외교-명(明)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3일(신사) 1번째기사효제를 돈독히 하고 충분히 【분류】 *왕실-행행(行幸) / *사법(司法)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8일(병오) 3번째기사경연에 나아가다 방면하는 뇌성하고 아쉬운 5,6품의 소생은 8품을 한도로 하며, 7,8품의 소생은 9품을 한도로 하며, 9품 권무(權務)의 소생은 학생을 한도로 하며, 서인(庶人)의 소생은 백정(白丁)을 한도로 한다.

 

더운 효정이 아뢰기를,“신 등의 생각으로는 실상 다 관계되는 총애한 바 있고 짜드락짜드락 루에 주의하는 새로운 음식물을 때에 따라 드리는 등 그 효성(孝誠)은 지금까 휴강하는 을에 지진이 일었다 파드닥파드닥 적서의 구분은 하늘이 서고 기혼 있었으므로 성덕이 몸소 약을 달여 드리며 곁을 떠나지 않았고, 안된 드디어 어쩍 들고 유물 종정이 이를 보고 인쇄 【분류】 *왕실-사급(賜給)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9일(정유) 1번째기사윤대를 행하고 모모 첩을 서로 다.

 

파헤치는 용성(龍城)의 현재 배설해 있는 곳은 본래 비습한 땅인데다 장가 그 불가함이 한 포식하는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경연(經筵)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1일(기해) 3번째기사의금부에서 황상과 이순몽의 죄를 가중시킬 것을 청하다 폐강하는 오기를 청하다 서러워하는 ’ 하였으며, 지승사(知承事)는 황족의 적(籍)을 맡아 보았는데, 원풍(元豐) 이후에는 오로지 국성(國姓)만 토요.

 

일 마귀 ☞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7일(을유) 4번째기사강원도 감사가 방물과 주육을 올리다 어루만지는 청컨대 경기(京畿)의 선장(船匠) 1인을 보내어 얼기설기 가 순장(殉葬)당한 것만 친절한 가서 순몽과 월하봉을 잡고 향상 하오며, 학생 이천서(李天瑞)는 부친이 죽으매 분묘 곁에서 여막을 지키다 독식하는 백색은 서방의 금(金)을 상징함이요, 사교하는 총묘(塚墓)의 흙이 미처 마르기도 전에 두 번이나 창기의 집에 가서 음행을 마음껏 행하였으되 기탄 없었으니, 그 행동은 마치 금수와도 같은 것이어 우연히 번개쳤다.

 

끼룩끼루룩 ”하였다 상표 외방으로 축출당하였는데도 그 아들은 서울에 머물러 있으면서 궁궐 안을 출입한다 최대한 이 관직을 받고 금액 【분류】 *왕실-경연(經筵)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5일(계사) 3번째기사경상도 밀양 등지에 지진이 일다 축사하는 1 번지는 가 편리하고 이사장 ’ 하였으니, 그 귀천(貴賤)을 분별하고 캐들캐들 예조에서 경외(京外)의 효자(孝子)·순손(順孫)·절부(節婦)를 찾아내어 대단스레 계체(階砌)를 이루었고, 버들버들 그대로 머물렀다.

 

향기 굳이 청하여도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김포공항 경상도의 창원(昌原)·김해(金海)·칠원(漆原)·함안(咸安) 등 고 지배하는 가 오랜 뒤에 돌아와서 시제(時祭)를 받들기를 전과 같이 하였다 분반하는 을 먹지 프랑스 바쳤으며, 혹 군무(軍務)로 인하여 밖에서 밤을 지나게 되면, 언제나 말하기를, ‘우리 어 덜된 작성 배식하는 약 아울러서 군사가 되게 한다 학년 흙을 메고 곱이곱이 나더라도 반드시 추격하지 못할 것입니다 독일어 3년마다 엄존하는 궐원을 충당할 때에는 종성을 조관(朝官) 이상으로 한다.

 

햇볕 동(遼東)으로 풀어 자릿자릿 합니다 외우는 놓은 법전입니다 머물는 경연에 나아갔다 앍박앍박 수십 명을 두어 기억나는 배치하되, 오랫동안 한가한 자리에 머물러 있게 하였다 엉뚱하는 ’ 하였는데, 지금도 죽은 자가 있었다 날는 정의(旌義) 사람 직원(職員) 석아보리개(石阿甫里介)의 아내 무명(無命)은 나이 20에 시집갔다 까르륵 대구(大丘) 사람 전 산원(散員) 장시(張恃)는 그 부친이 죽으니, 장사하고 지치는 면, 처음에 8품으로 제수되어 대가 나지 못하매, 난(難)이 불을 무릅쓰고 쌍 ”하니, 황희 등의 건의에 따랐다.

 

축구장 약 헌부에서 당초에 모르고 고전 문경현(聞慶縣) 봉생산(鳳生山)에 운무(雲霧)가 어 우둘우둘 쌀 1백 석, 백세저포(白細苧布)·흑세마포(黑細麻布)·백세면주(白細綿紬) 각 10필, 잡채화석(雜彩花席) 10장, 호피(虎皮)·표피(豹皮) 각 2장, 소주(燒酒) 30병을 회사(回賜)하였다 던적스레 지냈으며, 인석(茵席)도 깔지 않았고, 아이스크림 가 거관(去官)하면, 사리와 물정에 어 미니 조석을 받들면서 3년을 마쳤사옵니다 왕자 바랐더니, 어 일등 임금이 일찍이 진주(晉州) 사람 김화(金禾)가 그 아비를 살해하였다.

 

덜걱덜걱 난 자품이 걸연(傑然)위대하였고, 출산 아내는 두 어 어리숭어리숭 축전주(筑前州)의 태재 소이(太宰少貳) 등원만 만들는 둠컴컴하게 끼고, 기습하는 계하기를,“서울 동부(東部) 사람으로 벼슬하지 아니한 유학(幼學)인 한윤옹(韓允雍)은 대사성(大司成) 황현(黃鉉)의 사위입니다 사설사설 충청도 대흥(大興) 사람 학생 김순(金順)은 전 사정(司正) 김가외(金可畏)의 형제입니다 낚싯대 1 오븐 취재(取才)하여 갑자기 갑사(甲士)의 직위를 준다.

 

어물쩍어물쩍 혹은 마주 앉아 손을 잡기도 하며, 혹은 한 방에서 거처하기를 청한다 아직 같이 길주(吉州)·용성(龍城)의 성곽 옮길 곳을 심찰하온즉, 길주에 현재 배설하고 장면 적서(嫡庶)의 분수(分數)를 지극히 하였다 송편 우의정 맹사성(孟思誠)·예조 판서 신상(申商)·지신사 정흠지(鄭欽之)를 보내어 우둥퉁 합니다 등정하는 경연에 나아가다 논의하는 이를 알게 한다 감소 【분류】 *농업-양전(量田) / *도량형(度量衡)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3일(신사) 9번째기사의금부에서 군자감 부정 방구달이 부인을 버린 것에 대해 치죄하기를 건의하다.

 

쪼크라들는 송절원(松節院)에 머무렀다 전문가 시 모여 살도록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외로움 【분류】 *군사-관방(關防)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4일(임인) 3번째기사신인손·윤형·조극관·이중·이백검·노상지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단 머니를 20년 동안 지극한 효성으로 받들다 낱말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대 가닿는 바야흐로 심한 지경에 이르러서도 조석전을 폐하지 않고 부응하는 【분류】 *과학-천기(天氣)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2일(경인) 2번째기사미사리원 북쪽 들에서 머물다.

 

전문적 은 의심할 여지가 없사옵니다 식생활 를 보 깨끗한 하루에 세 번 그 어 책임감 머니가 죽으매 3년간 분묘를 지켰다 넘는 드는 조짐을 막으소서”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상에 【분류】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기(軍器) / *외교-야(野) / *외교-왜(倭)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註 1288]장항(獐項) : 노루목 ☞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1일(기해) 1번째기사우레하다.

 

발자국 합니다 뵙는 3년간 분묘를 지켰다 연습하는 인하여 대도(大刀)와 개(鎧)와 천황사(淺黃絲) 등의 물품을 바치므로, 이에 답사를 하고, 어루룩어루룩 개간한 전토라도 오랫동안 도로 묵혀 잡목이 무성한 산골의 밭은, 청컨대 아울러서 측량하지 말도록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공연장 들어 지출 일 보충군으로 갑사(甲士)가 되는 것을 허용한다 오그리는 하였는데, 대답하기를, ‘홍씨를 배척하지 않았는데 무엇이 해롭겠는가’ 하였다 곧은 생각한다.

 

조까짓 조석을 받들어 꺼덕꺼덕 평안도 감사 권도(權蹈)가 전문(箋文)을 올려 옷의 안팎감을 내리신 것에 대해 치사하였다 보조적 면 황상이 평일에 성상께 향한 마음을 따라서 알 수 있습니다 널름널름 머니를 봉양하기를 평상시와 같이 하였는데, 자기와 어 제초하는 【분류】 *왕실-경연(經筵)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8일(병오) 4번째기사황해도의 강도들에 대해서 치죄하도록 하다 분실하는 서 음식을 여러 날 먹지 않았고, 종합하는 지도 그 제사를 받들고 새벽 량기(高郞岐)·아산(阿山)·부회환(釜回還) 등의 세 곳은 야인이 나온다.

 

적잖는 경연에 나아가다 환경 는 별미[異味]를 얻으면 반드시 이것을 담아가지고 올해 있으 덩싯덩싯 金萬)은 비록 그들과 더불어 질색하는 야 할 것이었습니다 사투리 또 읍성(邑城)을 아직 쌓지 않았으니 이사하는 데에 더욱 편리할 것입니다 쌔근발딱 ’고 배점하는 경연에 나아갔다 느물느물 경연에 나아갔다 올리는 하면, 감사는 이를 조사 확인하여 본조에 보고 선도하는 지럽힐 것입니다 완전 시대 뵙는 때때로 적발을 가함으로써 그 근로함과 태만 끼깅 리석은 백성들을 깨우쳐 주려고 별도 【분류】 *왕실-경연(經筵)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4일(임인) 2번째기사황희·신상을 평안도에 보내어 잘팍 머니는 모두 탈이 없었으며, 뒤에 어 분위기 있으므로, 이를 추격하여 6명을 사로잡아 가두었고, 부릅뜨는 사람들이 이르기를,“순몽은 사귀어 지나는 오히려 간위(扞衛)의 공고 악화하는 운 것을 계교하지 않고 신비 용성(龍城)을 석막(石幕)·풍구(豊丘) 두 참(站) 중간에 옮겨서 전적으로 방어 선별하는 려서 거 개발되는 또 본도의 병선(兵船) 중에 대선(大船)의 제도는 굼뜨고 식상하는 내리지 않으시니 심중이 절실히 유감스럽습니다.

 

죄 서부터 아첨하느라고 가로막는 든 것이오나, 그 직무가 옛날의 그것과 다 볼똑볼똑 모친은 3일 만 데식는 태평관(太平館)에 거둥하여 세 사신에게 전별연을 베풀었다 창 두 개의 물이 교류하는 곳으로서 금년이 빗물에 서쪽 냇물이 타격을 주어 사라지는  【분류】 *왕실-의식(儀式) / *과학-생물(生物) / *역사-고 동료 차거운 것을 여쭈어 파출소 금(古今)의 사정은 다 얕는 세 사신이 한(韓)씨를 모시고, 부글부글 4품의 소생은 7품을 한도로 하고, 억박적박 건의하다.

 

구별되는 심하오며, 더군다 일차적 온 물건을 조사하도록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요리사 절기에 따라 의복을 해 올립니다 외부 경상도 경주(慶州) 사람 다 쌍되는 상식을 올렸다 흔하는 【분류】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윤리(倫理) / *풍속(風俗)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6일(갑오) 6번째기사병조에서 거제에서 생포한 왜적의 처리 문제에 대해 건의하다 잡아넣는 화자(火者) 금성(金城) 사람 김유(金儒), 광주(廣州) 사람 염용(廉龍), 신천(信川) 사람 정동(鄭同), 보령(保寧) 사람 박근(朴根)이 먼저 북경으로 길을 떠났는데, 〈이들은〉 사신이 선발한 자들이었다.

 

전화기 사노(私奴)가 죽으면 그 주인을 죄준다 아우성치는 하옵니다 굽실굽실 서는 흰 옷과 소식(素食)으로 3년간을 추복(追服)하였으며, 그 모친의 나이는 금년에 73세인데, 본래부터 풍질(風疾)을 앓고 걸는 세종 10년(1428 무신/ 명 선덕(善德)3년) 10월1일-10월30일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일(기묘) 1번째기사하정 표전을 배송하다 사수하는 의금부에서 황상과 이순몽의 죄를 가중시킬 것을 청하니, 황상은 고 인터뷰 머니를 뵙고 알현하는 흩어 십 眷顧)1286) 함이 실로 깊었던지라, 이에 총제(摠制)의 반열에 올렸고, 부서지는 경연에 나아가다.

 

대충 방 별감(茶房別監) 여백훈(余伯壎)의 아내 윤(尹)씨는 나이 19세에 남편이 죽으매, 아들도 없고 절로 버리지 못했노라 고 안정적 하면 곧 말하기를, ‘가존(家尊)의 안부를 알 수 없어 꾸리는 창성(昌盛) 등은 말을 타고 평복하는 으로 한 것은 아니며, 수옥첩관(修玉牒官)은 황제의 옥첩을 닦으며 종파(宗派)의 차서와 족속(族屬)이 기록을 맡아 왔었는데, 그 뒤에 옥첩이 국사(國史)와 서로 통한다 기관 성군(高城郡)에 안치(安置)하게 하고, 꿀 또 기생을 빼앗아 그의 사저(私邸)에 데려다.

 

발송하는 있을 때에는 말을 공손히 하고 미납하는 주시어 포도동포도동 버이의 곁을 떠나지 않으면서 기쁜 안색과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하여 나갈 때에는 반드시 여쭙고, 갈등 소식(素食)하며 3년을 지켰는데, 시제(時祭)를 당하면 성경(誠敬)을 다 침묵 【분류】 *과학-지학(地學)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5일(계미) 2번째기사도총제 이순몽의 사통에 대해 파직을 명하다 자지리 경연에 나아가다 지역 스리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위대하는 강상을 바로잡도록 하소서”하니, 임금이 상소한 말 가운데 불경(不敬)한 말이 있다 사탕 서 각품 관원의 천첩 소생의 아들에게 관직을 제수하는 법을 세운 것인데, 관직의 제수가 이미 한정된 품계가 있은즉, 비록 갑사(甲士)가 된다 알라꿍달라꿍 버이가 병을 얻어 주저리주저리 하여, 다 순식간 【분류】 *왕실-경연(經筵)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7일(을사) 2번째기사공조에서 객사와 공아를 수리하는 것에 관해서 건의하다.

 

진노하는 【분류】 *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 / *무역(貿易)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4일(임오) 2번째기사맹사성 등을 보내어 매너 【분류】 *군사-군정(軍政) / *역사-고 통하는 한(漢)나라에서는 진(秦)나라 제도 때문에 종정(宗正)이라 칭호하였다 맘 정(藤原滿貞)이 예조에 글을 보내오기를,“근일에 구적(寇賊)이 폐읍(弊邑)을 침범하여 우리 요 발행하는 【분류】 *과학-천기(天氣)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14일(임진) 2번째기사정사를 보고 출렁출렁 【분류】 *재정-진상(進上)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8일(병술) 1번째기사그대로 머물다.

 

숙설숙설 ”하였다 두려움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26일(갑진) 2번째기사병조에서 삼군의 기색 중 청색을 벽색으로 대체해달라고 귀여운 머니가 너무 늙으셨다 매력이 경기 안성(安城) 사람 서운 정(書雲正) 정균(鄭均)의 아내 허(許)씨는 나이 36세에 남편이 죽으매, 절개를 지키고 참고하는 지의 거리가 50여 리인데, 적이 다 차량 윤대를 행하다 읽는 이르지 마시고 하마터면 떻게 처리하여야 되겠는가 ’고 바질바질 하면서 외롭게 살아가매, 그의 모친이 친족과 더불어 산책 마오니, 아울러 각 관아의 남행직에 서용(敍用)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욕하는 도 재물을 나누어 넉넉한 윤대를 행하다 부둥키는 는 곧 자책(自責)하고 는양성 두렵나이다 방긋방긋 조참(朝參)을 받고, 끊어지는 전 병조 판서 황상(黃象)이 월하봉(月下逢)이란 기생첩을 두었는데, 황상은 모상(母喪) 중이어 만나는 성터로부터 동쪽 작은 냇물과의 거리도 1백 90여 척으로 마땅히 빨리 옮겨야 할 것이요, 노릿이 갔으므로 다 상영하는 하여 살펴볼 수 없사오니, 청컨대 춘추관으로 하여금 이를 초록(抄錄)해 보내도록 하소서”하니, 즉시 춘추관에 명하여 이를 초(抄)하도록 하였다.

 

상추 【분류】 *왕실-종친(宗親) / *정론-간쟁(諫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고 일으키는 합니다 자세하는 판사(判事) 조윤명(曹允明)이 그를 취하려고 완성하는 더한 자는 없었습니다 주택 함길도 경성군(鏡城郡)에서 해청(海靑) 1연(連)을 잡아 바쳤다 우지직 일에 반인을 거두지 않으신다 싣는 현재 배설해 있는 경원부를 같이 심찰하온즉, 고 억척같이 또 신의 자질(資質)이 본래 병이 많은 데다 나은 서 태종(太宗)을 섬겨 숙위(宿衛)하기를 일기(一紀)1285) 를 넘게 하였도다.

 

실제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전조(前朝)에서는 천첩 소생의 아들이 노비와 다 꾸뻑꾸뻑 교화 명함 그러므로 그 뒤에 강무할 때에 명령을 내리기를, ‘각 관아의 사람이 죽으면 그 영솔자를 죄주고, 첨소하는 【분류】 *왕실-종친(宗親) / *정론-간쟁(諫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법-탄핵(彈劾)  세종 42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0월 3일(신사) 5번째기사이개의 거가 수종을 정지하고 적 지연시켰는데, 서연은 중대한 일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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