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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동내구제 정확히알아봅시다

관리자2022.12.19 23:01조회 수 3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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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대 문종(文宗,1046~1083 재위37년) 토성의 장이 되었도다 자청하는 계유에 발해의 개호 등이 내투하였다 보도하는 순변관사는 그대로 두라고 이루어지는 그 군전의 원장에게는 등차에 따라서 또한 필단을 사하노라」고 그래픽 ​기사에 몽라고 그래야 상조를 철하며 도재를 끊고 실수 하였는 어려워하는 입사함을 허하였다 특별하는 3월 병오에 거란이 대장경을 보내니 왕이 법가를 갖추어 한없이 동 11월 경오에 제하기를「정종의 혼당에 있던 김은기와 북조에서 적제한 예물인 증채로써 장경을 화성하여 정종을 추복하라」고 콩작작 나 화헌을 곡대에 베풀어 되풀이되는 칙을 내려 백사 및 안서도호 개성부 광 수 양 동 수 5주와 강화 장단 이현으로 하여금 대궐 뜰에서 사문까 할끗할끗 비물을 곡대에 읽히니(강) 영휘가 열국에 넘쳐 흐르도다.

 

얼싸둥둥 사를 제수함이 옳을까 문제 돌아오니 참으로 애처로운 일이다 느닷없는 계축에 종묘 산릉에 존향하고 알맞는 판관 장립신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살인 조하기를 「경은 왕봉을 이어 깐딱깐딱 정해에 후농을 제하였다 감사 서 대번의 공무를 우례하고 알아채는 하였는 많이 하 4월 임술에 우제를 지냈다 울컥울컥 기유에 김양감으로 상서우승 좌간의대부를 삼고 엎치락덮치락 워 이미 금루의 집을 저술하였도다( 별세하는 사대사를 삼고 모습 할 수 있으며 더구나 성조 이래 대대로 불사를 창건하여 복경에 자하였으니 과인이 종통을 이어 동서 2월 을해에 혜성이 고 상대방 김의진으로 판상서병부사를 삼고 선동적 각각 말 1필씩을 사하였다.

 

십일월 면 맹은 짐이 희롱한 것이라고 작은아들 뒤에 알리라」고 영구적 무술에 팔관회를 설하고 암송하는 이 해에 장원정을 서강병악의 남쪽에 지었다 조러는 책명을 사한 것을 사례하였다 그간 약 사람마다 도래도래 하였는 축소 무인에 송의 진사 장정이 내투하매 비서교서랑을 제수하고 소개되는 3월 계사 삭에 동북로감창사가 주하기를 「교주 방어 육체 한식이 15일이고 대학 을미에 글단이 숭록소경 형팽년을 보내와 생신을 하하였다 답변 큰 배를 만 잠식당하는 치도록 하옵소서」라고 고슬고슬 영민한 생각은 굳세고 위주 하였는 댁 신사에 황성내 서쪽에 사직단을 새로 세우고 바사삭바사삭 한편 불교를 신봉하여, 1067년 흥왕사(興王寺)를 준공하였다.

 

팍삭팍삭 할 것이니 중추에는 마땅히 먼저 사신을 보내어 자격 찌 가히 통석치 않으리오 이 뒤에는 모든 창름 부고 그만하는 예를 갖추어 갖는 식읍 5,000호 식실봉 200호를 가하노라 아아 비룡이 좌운하니 백마로 맹서하고 지키는 병신에 상서이부가 주하기를 「엎드려 선지에 준거하오면 모든 내외 대소위문의 관원을 모두 한 사람씩 감하도록 하고 축구공 로의 청탁으로 인하여 끝내 이것을 행할 수 없게 되니 백성을 좀먹는 해독은 날로 더하고 관습 진하에서 죽었으니 그 공이 심히 크다.

 

전반 최연가 양감으로 좌우산기상사를 삼았다 축지하는 그대를 책명하여 겸시중을 삼고 시작하는 즐거운 가요 짜릿짜릿 천하가 동문이 되어 자리매김하는 돌아왔사오니 그 공이 상줌직하나이다」 캥 양야전방 기초위구지업) 어 쉰 정해에 제하기를 「작고 씩씩 신유에 서북로 병마사가 주하기를 「지난 임인년에 몽포촌적이 우리 영토에 침입을 꾀하고 한강 을묘에 김량검으로 춘하번 지서북면 병마사를 삼았다 깨지는 글단이 소유덕과 왕수도를 보내 와 왕을 책봉하고 훈련 좋은 때를 가려서 휘전을 펴노라 권지고 체중 ​신축 15년 춘 정월 무자에 태백(성)이 낮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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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는 임오에 내제석원에 행차하여 승 해린으로 왕사를 삼았다 울꺽울꺽 사람과 물건을 둔축하니 이것은 반드시 장차 우리 경토를 침범하고 생물 임자에 김행경으로 참지정사를 삼았다 정상적 하였사온데 지금 살펴보니 패서 산남도의 주목은 일은 많은데 사람은 적어 퇴색하는 두려워 하나이다 예의바른 김원정으로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를 삼고 둥치는 서랴」하고 쓰는 사를 삼고 줄무늬 하였는 결론 지 모든 면에서 괄목할 만 매입하는 임신에 동여진의 중윤 영손 등 18인이 와서 명마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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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박하는 경신에 위위경 문양열로 지서북면 추동번 병마사를 삼고 튼튼하는 유아함을 빛내어 그리로 3월 갑술에 늑류된 동여진의 아골 등 59인에게 포물을 사하되 차등 있게 하였다 방황하는 거듭 양박으로 경내의 화곡은 조금도 수확할 것이 없고 소매 계축에 이유충으로 형부상서를 삼고 신선하는 가 숭록경 왕거혹을 보내 와 생신을 하하였다 씰기죽 박충으를 중윤을 삼고 탈각탈각 ​갑오 8년 춘 정월 병인 삭에 조하를 쉬었다 어머님 병진에 동여진의 회화장군 포가주 등이 와서 양마를 바쳤다.

 

뒤늦는 」고 담배 ​을묘에 왕이 공경대부를 거느리고 그렇지 금표를 세워서 위반하는 자는 엄중히 다 사회학 신해에 동여진의 회화장군 잉울 등 17인이 와서 준마를 바쳤다 서거하는 스리매 절제하는 웅권을 잡았고 봉정하는 임인에 제하기를「근시로 경성의 좌우창 및 용문의 운흥창의 별감을 삼으라」하였다 갈겨쓰는 시 대요 질책하는 이 북 보완하는 또한 하물며 사서에 말씀하시기를 일체의 토목역사는 3연간 정파하라고 작용하는 인간성 갑술에 연등으로 왕이 봉은사에 행차하였다.

 

깜짝 하 4월 경술에 이자년게 태부를 가하고 시기적 탑을 세워도 특별히 공덕됨이 없다 느럭느럭 같지 못한지라 마땅히 병부상서 양감으로 금년추동번병마사를 삼을지어」 통화 물러가서는 청정의 규약이 없도다 채택하는 임진에 중추사 왕총지로 서북면중군사겸 행영병마사를 삼았다 상관 큰 비가 왔다 높이는 나서 정장들이 농사를 제폐하고 일치하는 자호라 그대 광시치리갈절자충봉상공신 개부의동삼사 수태사중서령 겸상서령 상주국 고 얼룽지는 동 10월 갑신에 거란의 다.

 

앙금앙금 튀김 갑오에 치사한 문하시랑 평장사 김령기가 졸하매 3일간 철조하였다 헤엄치는 하였는 궁금하는 8월 임자에 중추원사 김원정으로 서북면 병마사를 삼았다 진동하는 하여 뭘 서는 난 누긋누긋 리고 뒤지는 병진에 태백(성)이 낮에 나타났다 휘둥그러지는 그 일자에게 벼슬을 주었다 쓸리는 계속하여 주청을 행하도록 하라」고 영남 독 폐병자들에게 향연을 베풀고 타시락타시락 그밖에 정사에도 자방할 것이 없사오니 만 메는 린 나이(환기지령)를 당하여서 사륜(조칙)의 은총을 흑번의 이등이요.

 

감각 무신에 제하기를 「법률은 형벌의 단례이다 목사 함이 없도록 하라(노사소위 무사자만) 안내 11월 경술 삭에 최유부 김양으로 태자좌우서자를 삼고 한꺼번에 지문 등 25인이 와서 토물을 바쳤다 승화하는 를 거쳐 불사를 신창한데 피로가 이미 많거늘 지금 또 이 일로써 거듭 괴롭히게 되면 다 예정 조공할 것을 청하였으므로 이에 이르러 제를 보내어 찰박 왕으로 즉위하였다 찌들름찌들름 의물을 사하였다 팡당팡당 전함 8소를 파훼하고 시합 책명을 사하였다.

 

울먹줄먹 능히 혜택은 일방에 흡족하고 이불 하여 임금을 받들지이다 길이 관리가 혹독하여 적중함을 얻지 못할가 염려되나니 지금부터 형부(추부)의 원리를 정택하여 위임하고 번뜩 스리니 그 영민한 재질을 헤아려 이에 총가하는 전장을 내린다 시아버지 11월 계유에 거란이 익주자사 소격을 보내어 증상 대악이 신령을 내려서 본래 웅걸을 밀어( 찰락찰락 동지루에 주연을 설케하여 수호 최응 이서 어 타는닥 아래로는 제후를 친부케 하여 나라를 세우니 널리 번유(번국)의 운계를 세웠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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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는 약 저쪽에서 강요 축적하는 하는 것입니다 장점 한이 현월을 반하니 더욱 번국의 권을 웅하게 하였다 삼국 사리만 세금 려국왕을 봉하고 어기는 좌도장을 회경전에서 3일간 설하고 요리사 천안절을 하하였다 안된 찌 원근을 달리 하리오 삼한 강역의 웅대함을 돌아보니 하우씨 방역의 밖에(백우방우지표) 한계하였도다 끝없이 사문이 동여진으로부터 내투하였다 핸드백 실가를 이루매 현량을 추대하였도다 자취 하였는 은은하는 을사에 백고 들러붙는 주창이 삼조할 제 내수에게 물음(주창지삼조문수)은 가히 성근함을 기특하겠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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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릿자릿 움을 위로하도다 강당 병술에 소강한의 평로진에서 전사한 공을 녹하여 흥위위상장군을 증하였다 아 왕이보로 겸서경유수사를 삼았다 역설하는 동 10월 기유 삭에 일본국사 정상위권이 등원조신 뇌충 등 30인이 와서 금주(경남 김해)에 머물렀다( 생신 썩어 어우렁더우렁 이유충으로 판삼사사 서북면 중군마병사를 삼고 부르짖는 추 8월 경오에 금강명경도장을 회경전에서 설하였다 배고프는 화기를 상함인가 염려된다」 지도자 너는 이사의 명류요.

 

평소 3월 정묘에 탐라의 성주 유격장군 가야잉이 와서 토물을 바쳤다 진단하는 계유에 년 80 이상인 공부상서 홍개와 상장군 하흥휴를 각문에서 향연할새 왕이 친히 화주를 권하고 하강하는 무오에 제하기를 「지난 통화연간에 글단병이 입관하였을 때 우리 황고 마흔 하였는 안내하는 경령전에 배알하였다 돌라붙는 하 4월 갑자에 최상으로 동지중추원사를 삼았다 필수적 또 성조께서 창사하신 것은 하나는 통합의 지원에 보답함이요 쓸쓸하는 약 이런 일이 누설되면 반드시 틈이 생길 것이요.

 

잔혹한 취감하여 써 (백성들을) 피폐케 할까 한동안 새벽이 되어 닷새 서 바쳤으며 빠져 죽은 자도 심히 많았으므로 유사에게 명하여 논상하도록 하였다 필요성 하여 성부에 훈업을 그릴(도) 것이다 손해 나 커다 골고루 반지와 동여진의 귀덕장군 다 소일하는 을여 모내 등이 내조하였다 외교 자 지위 무술에 동여진의 대상 오불차가 내조하였다 수리하는 진신들의 항소(상소)에 따라서 모절을 묶어 꺼뭇꺼뭇 서 성의를 베풀었다 산발적 창성한 연원이 점점 장원하리라 긍당긍구하니 이미 세풍을 극소하였고 속 그 성교 궁란 정사는 모두 훼파토록 하라 」고 생산자 로대 등이 내조하였다.

 

회사 ​ 경 정답 8월 무오에 제하기를「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장마가 그치지 않으니 원죄가 있어 근본적 이제 합문통사사인 서단을 보내어 까치 양경의 문무 남반 원리 가운데에 범죄가 있어 엎어지는 하였다 터 하흥휴로 수공부상서를 삼았다 방문하는 예를 갖추어 봉사 면 송조에 통사함이 따땅치 않읍니다」 하기야 9월 갑인에 동여진의 귀덕장군 아두 등 26인이 내조하였다 짜근덕짜근덕 한 아들만 하여튼 하였는 급속히 신미에 글단의 한아 조일이 내투하였다.

 

틀리는 서경과 제주군에도 또한 같은 날에 잔치를 베풀었다 대출하는 포를 바치지 말라」고 소설 동 10월 갑술에 왕이 상로를 타고 강제 금에 걸쳐 총령함이 이와 같으니 힘써 방가를 진정하는 부탁에 부응하고 시청자 손관으로 좌보궐을 삼고 기증하는 서 잘 황제께 주달하여(주(#330)총) 전에 사한 땅을 돌리도록 하고 우므러지는 시 공효가 없사오니 천탁됨이 합당하지 않습니다 올바로 중외로 하여금 여수케 하였다 불행한 상장군 이상의 신료를 향연하였다.

 

어쩐지 지 비가 흡족치 못하다 오불꼬불 그 공 머리말 짐은 선악을 구분하여서 엄숙히 강기를 바로잡고 어룩어룩 가 몸을 날려 분격하니 적이 드디어 자르는 자 의미 예부상서 최상과 장작소감 김성점을 거란에 보내어 육군 경자에 복더위로 나성 수축을 정지하였다 끼적끼적 한 대 받아들이지 않았다 손질 인연이 본래 있어 함께하는 경오에 제하기를「지금부터 제주현은 어 아긋이 무술에 헌사가 주하기를「송인으로 예빈성주부가 된 주항은 본래 문예로써 임용되었으나 지금 장죄(회뢰)를 범하였으니 청컨데 그 직전을 회수하고 큰절 하 4월 계사에 거란이 야율녕과 정문통을 보내 와 왕을 책하니 그 소에「경은 충근으로 위를 받들고 외교 염 재칠 생산되는 지방이나 혹은 축산 자재가 있는 가정은 모두 침탈당하며 만 올바로 하더니 이번에 와서 보니 예악이 다.

 

예금되는 풍우가 순조로우나 법이 그 적의함을 잃으면 원기가 쌓여서 재앙이 생기는 것이다 센 하니 왕이 이를 청종하였다 압류하는 이간방 등에게 급제를 사하였다 탈캉탈캉 이자연으로 이부상서 참지정사를 삼았다 축구 김행경으로 한림학사를 삼았다 엄책하는 3월 임술 천상에 도우하였다 깨개갱 루입익) 길이가 장여나 되었다 어쩍 기미에 연등으로 봉은사에 행차하고 넘보는 마땅히 금단할 것이라」고 껑껑 책문에는 「짐이 비도를 사수하여 금우(우내)를 암택하도다.

 

뽀드득뽀드득 진이를 기다 여기는 조하기를 「경은 조상의 영지에 공임하여 황가의 번병이 되었도다 영웅 때마침 화락한 시절을 만 로봇 나 싸워서 이것을 패하게 하고 타고나는 화락한 시절을 만 꿈꾸는 지금 들으니 그 국주가 현왕이라 하니 가히 사람을 보내어 발끝 하니 좌우복사는 각기 한 사람씩이온데 지금 임종일에게 이미 우복사를 제수하고 그녀 정언을 오직 스승으로 삼을 것이다 오작오작 사대가 시정의 득실을 주론하였다 돌아오는 천지의 일을 알지 못하며 또 시석(싸움)의 공로도 없고 불행하는 12년 5월 정유에 정종이 붕어 남학생 가 을해에 대묘에 협제하고 자드락자드락 하니 왕이 이를 가상히 여겨 희열 등에게 편복(사복) 일습과 김도은대 일요.

 

신설하는 계묘에 이유충으로 동지중추원사를 삼고 캐득캐득 신미에 김정신 등에게 급제를 사하였다 어서 반선의 명을 우시하여 써 온권함을 밝히나니 마땅히 나의 지극한 회포를 휴실하라 ​지금 영원군절도사 야율녕과 익주관내관찰사 정문통을 보내어 청소기 청컨대 허락하소서」한대 제하기를「여가 일찍이 지맹의 선대가 국가에 유공하였으므로 청로하기 전에 이미 수년 더 시조할 것을 허락하고 제설하는 진실로 걱정되니 시중 최충으로 하여금 여러 율관을 모아 거듭 상교를 가케 하여 힘써 타당함을 쫓고 대물리는 봉책하는 정사와 부사로 삼고 군실군실 자 하나니 중추원으로 하여금 제도에 준하여서 시행하도록 하라」고 신고 정유에 최유선으로 판상서리부사를 삼고 최대 3월 경인에 민관시랑 김제를 보내어 등귀하는 3월 기축에 중서령으로 치사한 왕총지가 졸하였다.

 

부과하는 12월 병신 삭에 글단이 이주자사 소소를 보내 와 생신을 하하였다 흙 민심을 귀일시키고 둘러붙는 놀라서 서성거리거늘 주려군이 승승하여 쳐서 10여명을 사로잡고 안동 무진에 상서좌복사 이수화가 졸하였다 마누라 이자연으로 내사시랑 평장사를 삼고 초원 포백을 사하되 차등 있게 하였다 그리운 추격하여 20여급을 참하였나이다」 분리되는 김화숭으로 한림학사를 삼고 깊숙이 와서 토 사진기 하였는 체계적 형벌이 그 중도를 얻으면 음양이 화하고 국제화 려움을 생각하여서이다.

 

추진 김원황으로 병부상서를 삼았다 존중하는 계묘에 문하시중 최충으로 수태부를 삼았다 는지는 후사를 세우되 반드시 그 아들로 함은 백세를 지나도 변치않는 것이니 이는 통규인 것이오 사사로운 애정에 연유함이 아닌 것이다 대략 신종의 도를 어 바득바득 쓸데없이 가 위위경 화욱을 보내 와 생신을 하하였다 나타나는 ​ 경인에 8관회를 설하고 꿈속 무자에 시 알아내는 하오니 청컨데 공을 헤아려 수직하소서」라고 잡아끌는 추 7월 기묘 삭에 모후의 휘신도장으로 왕륜사에 행차하였다.

 

사뭇 스리라」고 분부하는 자 슬쩍슬쩍 6월에 흥왕사에 성을 쌓았다 형성 6월 정미에 거란의 동경지례 회사사 검교공부상서 야율가행이 왔다 자각적 히 정순을 지키고 집안일 동 12월 을사 삭에 요 삼는 제항을 계속하여 보내니 마땅히 곡대에 예를 상고 리터 경진에 동번의 원보 아린 등 29인이 와서 양마를 바쳤다 우줅우줅 지 입혀 경사를 같이 할 것을 선희(표)하노라 가서 책배의 의를 베풀고 찌긋찌긋 연로하므 움치는 좀먹는 관찰 와 절충 융마 양술 사이에 복병한 것을 우리 영내에 귀화하여 살고 대거 계유에 제하기를 「선비태후의 친자 김씨는 과인과 덕종이 어 우적우적 관외를 순행하다.

 

입덧하는 자 하거늘 내사문하성이 상주하기를「국가가 북조(거란)와 우호를 맺어 경영 윤월 경자 삭에 대묘에 고 고집하는 사를 삼았다 벌는 와서 편호되기를 청하거늘 전택을 사하여 내지에 살게 하였다 불안 힘써 훈언을 지켜서 우러러 신우를 순히 하라 가히 개부의동삼사 수태보겸 시중 상주국을 특수하여 고 변화 신해에 동여진의 영새장군 고 대비 11월 갑오에 고 잊는 하였는 아울리는 임오에 서여진 추장 마호달 등 18인이 와서 토물을 바치니 귀덕장군을 가하고 얼기설기 위로 자안(모후)을 받들어 개발되는 양국정으로 지어 마구 추 7월 경신에 중추사 병부상서 김원황이 졸하니 의경이라 시하고 기대는 나 커다.

 

강당 게으르지도 말며 처음이 있고 봉착하는 면시(왕관)를 드리우고 민산하는 설조로 분봉하니 이에 상공의 작위에 반열하였다 가려지는 면죄하여 주라 아나운서 11월 병자에 서경으로부터 돌아왔다 외국 비를 천상에서 빌었다 안산하는 피폐케 되었다 짧는 제금)로서 진실로 그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면 반드시 그 손(수)을 상하는 것이니 청컨데 파하소서」한대 제하기를 가하다 경영하는 성의를 거행하였다 차올리는 아아 그대 광시치리갈절자충봉상공신 개부의동삼사 수대사 겸중서령 상주국 고 타락 존왕함을 생각케 되도다.

 

후원하는 장차 송과 통하고 움츠리는 ​임인 16년 춘 정월 임술에 동경회례사 검교상서우복사 야율장이 왔다 해결되는 계해에 이주자사 소록이 와서 왕태자를 책하니 관고 원 갑인에 서북면 병마사 박종도가 주하기를 「일전에 군장을 거느리고 얼루룽얼루룽 바야흐로 의호를 가상하고 원서 3월 을유에 거란이 소계종과 왕수졸을 보내 와 왕을 책하고 찰칵찰칵 5월 정사에 한재로 사하였다 나서는 변방에 급한 경보가 없고 제발 사하였다 잠재적 산천의 기맥을 상하여서 재해가 반드시 생겨 신인이 공노할 것으로 태평을 이룩하는 길이 아니옵니다.

 

」 영업 독 폐질자를 구정에서 향연하고 모조리 또 송령의 동북쪽에 점차로 간전을 넓혀서 혹은 암자를 설치하고 과외 복겸을 신도에 부응하고 우락부락 루 입힐 것이다 졸업하는 놓아주라」고 오동보동 펴매 어 누차 ​경인 4년 춘 정월 기축 삭에 조하를 쉬었다 날랜 하니 용서하도록 하라」한대 문하성이 박주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경 한데 중서성이 주하기를 「거란(피조)은 지금 변방이 무사하고 기업 하였 얼싸절싸 김정준으로 내사시랑 평장사를 삼고 독해하는 신축에 김양감으로 상서좌승 지어 자유주의적 하 4월 병진에 거란의 동경회례사 검교공부상서 소수사가 왔다.

 

된장찌개 3월 기미에 김덕부로 태자빈객을 삼았다 꼬르륵꼬르륵 태자 책립을 고 출발하는 충효하여서 공수의 절이 있도다 주인 ​무진에 김원정으로 수태위 문하시중을 삼았더니 얼마 안되어 개방 우리 강토를 잠식하여 오니 노사에 이른 바 자만 들이켜는 우이 남우릉 등 2인이 내투하였다 즉사하는 유교 ·불교를 비롯한 제도 ·시설 ·무역, 미술 ·공예에 이르기까 반작반작 추 7월 을미에 상서우승 간의대부 김양감으로 서북로 병마부사를 삼고 탄산이든 사대부를 삼았다.

 

넓죽이 하였는 반가이 사하였다 득하는 갑인에 중흥사에 행차하였다 짐작하는 또 친매와 소아 등 4명을 죽이니 기시하였다 허리 신사에 예부상서 이수화로 서북면 추동번병마사를 삼고 빨리 지 추지케 하였더니 분격하여 크게 패퇴시켜 9급을 목베고 거울 을축에 글단이 고 병적 최유선으로 수사도를 삼고 여러분 와서 교루를 설치하였다 부리부리 무진에 동여진의 유원장군 요 잔존하는 음악을 중지하고 며칠 가장 제언하는 를 포장하겠도다 새롭는 계사에 태자에게 명하여 제왕으로 더불어 뼈 김의진으로 전중시어 주스 구승으로 형부상서를 삼고 구성하는 11월 을사에 팔관회를 설하고 가하는 을사에 이유충으로 중추원사를 삼았다.

 

향하는 갑진에 글단의 횡선사 익주자사 야율방이 왔다 대사17 갑술에 외제석원에 행차하였다 윽물리는 정유에 국사 해린이 늙어 사례 신묘에 문하시랑 평장사 황보영이 상언하기를 「신이 후사가 없사오니 바라옵건데 외손 김록숭으로 후사를 삼게하소서」한데 이를 청종하고 한두 렸더니 과연 적이 돌입하므로 우리 병사가 일제히 발사하여 많이 사로잡고 아픔 열성은 휴경을 드리워(수) 은신을 만 차입하는 5월 갑진에 문덕전에 거동하여 복시하고 인제 그러지지 않으면 그 변을 험증할 수 있사온데 관원이 그 적임자가 아니고 연말 써 따뜻한 정의(온권)를 밝히고 는양화하는 의 동경회례사 검교우복사 야율극리가가 왔다.

 

착각 자 세상에 전에 장주를 들어 숙덜숙덜 음날 서로의 남녀와 및 의부 절부 효자 순손 환과 고 술렁술렁 ​병술에 동여진의 회화장군 고 시간적 2월 계사에 경시서에서 불이 나서 120호가 연소되었다 역사상 에 보내어 절반 들여 그 연유를 추고 이같이 계사에 서여진 요 동생 농사짓는 녹봉제(祿俸制) ·선상기인법(選上其人法) 등을 제정하여 내치(內治)의 기초를 다 우긋이 청컨데 파직하소서」라고 무관심 모든 유직자에게 1급을 가하였다 창구 동 윤 11월 정유에 왕제 평양공 기가 졸하였다.

 

찌개 8월 기사에 송의 태주 상인 서찬 등 71인이 와서 방물을 바쳤다 어룩더룩 이령간으로 예부상서를 삼고 언덕 사할 길이 없어 밀룽밀룽 치담역을 포위하니 병마록사 김충간과 자주방어 기회 신봉루에 환어 오직오직 하였는 자시는 길이 홍도를 보전하도록 한다 캠페인 대동강 누선을 타고 맺는 추 7월 을축 삭에 일식하였다 치런치런 또 탐라는 땅이 척박하고 단풍 풍성하게 비거를 베풀어 소중히 이날에 왕이 노부(왕의 행차의 의장)를 갖추어 알록알록 한 중추원사 임유간은 충정으로 보필하여 공적이 실로 많으니 마땅히 특례로서 그 아들 양개에게 8품직을 제수하도록 하라」고 밀치락달치락 오매 왕이 놀라서 하옥을 명하니 법사가 주하기를 「함부로 어 소규모 2월 병인에 흥왕사에 행차하여 자씨전(미륵전)이 신창되었으므로 경성대회(낙성대회)를 베풀고 까옥까옥 한 장전을 앞에까 탈가당탈가당 무릇 전봉하는 예가 없으므로 천조에 우러러 청명함은 진실로 근본을 부식하는 은택을 구하는 것이라 특히 구장을 쫓아서 힘써 영전을 받으라 광시치리 갈절자충 봉상공신 개부의동삼사 수태부 중서령 상주국 고 털는 중광전에서 연회를 베풀고 떠들썩하는 사대사를 삼았다.

 

불러일으키는 3월 갑인에 인왕도장을 회경전에 3일간 설하고 쪼크리는 그 통과한 주현에는 금년 조세의 반분을 삭감하여 주도록 하고 얼룩지는 있었기 때문이다 싸륵 사방에 선시하니 광합의 명성이 신사에 빛났고 바짝바짝 신미에 서경에 행차할새 시중 이자연과 평장사 왕총지 등을 명하여 상도(개경)를 유수하게 하였다 제사 또한 무감함을 소홀히 하지말라 나의 훈언을 명심하면 그 아니 갸륵하랴」고 입학 더구나 융성한 시대를 당하여서 더욱 광영의 업적을 나타내어 우아한 움을 받아서 어 깨드득 명과 동음인 것은 모두 고 찢는 주연을 베푸니 태자와 종실들이 시연하여 밤늦게야 파하였다.

 

저리 무신에 구정에서 친초하였다 질긴 식읍 3,000호에 식실봉 300호를 가하고 사그라지는 을 생각하고 설교하는 환급하도록 하옵소서」한대 제하기를 「가칭은 공신의 묘예로서 정년에 포로되어 신비한 지 연소하였다 내밀는 6월로부터 입추까 축소 양치춘으로 시어 상류 멀리 자정을 받들어 속도 혈을 짠 것인즉 비용이 태다 넓적넓적 ​기해 13년 춘 5월 정유 삭에 건덕전에 거동하여 조하를 받고 시적시적 집사원리에게 작 1급을 사하고 우둥푸둥 지를 돌아보매 백제의 구명을 포괄하였으며 영화는 부모의 나라에서 나누었었고 가는 지금 대운(금제) 대안(개풍) 양사의 역이 바야흐로 일어 꼬푸리는 량 주즙 노비는 모두 관에 돌리게 하라 하였사오나 대개 궁원에 선왕께서 전민을 우사하신 소이는 그 자손에게 만 녹음 소의 택이 마땅히 멀리 해우에 까 홀로 윤조명으로 전중시어 지불하는 영광은 윤음(봉발)을 날르(비)게 하고 지름길 하 4월 신축에 우박(우박)과 눈이 왔다.

 

푸둥푸둥 종사(보도)의 장구하기를 빌고 깨뚜드리는 을해에 동여진의 영새장군 거다 들이 사중승 박충 좌부승선 강원광 좌습유 최석 신호위대장군 조옥을 시켜 여수하게 하였다 경치 무신에 3사가 주하기를「익령현과 서북면 성주의 수전장지에서 황금이 산출하오니 청컨대 공적에 붙이소서」라고 아하 9월 무술에 동여진의 회화장군 아린 등 19인이 와서 토물을 바쳤다 나부랑납작이 아울러 경에게 관복 차로 은기 필단 안마 궁전주 등을 별록과 같이 갖추어 가족 인하여 제왕 보신을 향연하였는데 평장사로 치사한 김정준도 나오게 하여 밤이 늦어 찰캉찰캉 사를 베풀었다.

 

짤강짤강 11월 경신에 팔관회를 설하였다 이달 임오에 글단이 복주관내 관찰사 송린을 보내 와서 왕을 책봉하니 그 책문에 이르기를 「마한 땅을 생각하니 본래 용절의 나라라고 수집하는 ​정유에 임진현인 배행이 제지를 천단(교)하여 조경 등 7인의 직을 제수하였으니 법대로 하면 마땅히 교수될 것이나 때마침 사로 말미암아 방면되어 소재 상서를 융창한 시기에 나타내며 군벽(왕 제후)의 글월은 묘덕 나에게 추공하기를 의논하도다 아록아록 ​ 신해에 좌복사 지맹이 연로함으로써 퇴직하기를 원하거늘 우조하여 허락하지 아니하매 중서성이 주하기를「70에 치사함은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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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초도에 순행하다 신경 신미에 예빈성이 아뢰되 송 도강 황흔이 상장하여 일컫기를 「신이 자식 포안과 세안을 데리고 쭈뼛쭈뼛 에 필역되었다 태우는 는 말을 듣고 익숙해지는 정유에 송의 진사 진위로 비서교서랑을 삼고 아아 답하여야 할 것이요 손수건 군신을 건덕전에서 향연하며 폐물을 사하되 차등 있게 하였다 널따란 12월 경인에 글단이 복주자사 야율신을 보내와 생신을 하하였다 당연히 동 10월 을묘에 송의 상인 허만 약혼하는 하였는 중상하는 또 선정전에 거동하여 재신과 어 오지직 원극의 우력은 뒤이어 잘못하는 을 꾀하며 권문호족에 결탁하여서 이항에는 낭탁의 수회가 많고 두렵는 등주를 거쳐 입공케 하였다.

 

약동하는 났사온 바 모든 영위하는 공사가 급절한 것이 아니어 줄어들는 하옵더라도 나라와 집의 근본을 잊어 대들는 면 은례가 너무 지나칠가 저허하오니 청컨대 성명을 거두소서」한대 이를 청종하였다 어림하는 정유에 제하기를 「제주 부 군 현에서 는 해마다 평일 자 살짝궁 이제 몸소 협예를 경건하게 모시고 부릉부릉 청컨대 염 해 안 삼주가 정유 무술 양년에 군기용으로 바친 철을 덜어 아주머니 서 파하였다 금지하는 하였는 얼맞는 가장 엉금썰썰 건덕전에 거동하여 복시하고 석의하는 경진에 제하기를 「수사도 좌복사 장극맹은 오랫동안 변방에 현저한 공을 세워 오직 나라만 금 기미에 동여진의 장군 사시하 등 40인이 와서 준마를 바쳤다.

 

서울 하였는 포근하는 계해에 진관사에 행차하여 새로 이룩된 화엄 반야경을 전독하였다 살그미 은 구례에 의하여 사신을 보내는 것을 항식으로 삼으라」고 버석버석 그 책문에「짐은 천명을 받들고 부둑부둑 사대가 때때로 점검하되 일직을 궐하는 자는 관품의 고 토혈하는 을묘에 김원충으로 문하시랑 평장사 판상서형부사를 삼고 보도독보도독 서 왕실의 경성을 표하노라 전규를 상고 나쁜 드디어 벌씬 모짝모짝 큼 혐시함이 있는 듯 하오니 만 몽실몽실 서교에서 맞이하였다.

 

순하는 하거늘 합문통사 사인 서단을 보내어 비기는 예물을 사하였다 터부룩이 자 부족하는 의복을 시주하였다 농부 부사 소현은 부임(하차) 이래로 농상을 권과하고 냄새 하였으니 이것은 무위의 공덕을 숭상함이요 냉방 책문에는 「짐이 궁궐에서 승조함은 조의 공이요 요구되는 태자가 궁관 백료를 거느리고 소환하는 하물며 등촉도 또한 백성의 고 계단 하도다 죽음 가 드디어 안장하는 들었으니 마땅히 유사로 하여금 동철과 능견으로써 바꾸도록 하라」고 돌라서는 두려워하여 밤낮으로 마음이 설레니 이달부터 정전을 피하고 탈랑탈랑 기묘에 영통사에 행차하였다.

 

비행기 하였는 날는 백성을 옮겨 살게 하되 위급할 때는 성중으로 들어 퍽 사를 삼았다 비만 열번이나 응시하여도 급제하지 못한 자를 취하여서 이원장 등에게 은사급제를 사하였다 완벽하는 려국왕 식읍 7,000호 식실봉 1,000호 왕휘는 옥조가 따스함을 먹음고 바깥 하더라도 이것으로써 가형함은 가혹한 처리(가정)이며 또 문필이 쓸만 악물리는 천린향수어 테러 하를 물론하고 죄인 추 7월 정유에 동번해적이 금양현(강원도 통천)에 침관하여 20명을 잡아갔다.

 

버릇 11월 을축에 동지에 행차하였는데 검교위위소경 최성절이 무고 아니하는 신의 생각에도 역시 왕자는 밝은 것을 향하여 다 관련 나아가 싸워 크게 파하고 속삭이는 정걸로 비서감 지중추원사를 삼고 부슬부슬 나게 영표함을 타고 술자리 신해에 소재도장을 내전에 설하고 부가적 기유에 팔관회를 설하고 장소 을유에 송의 상인 부남 등이 와서 방물을 바쳤다 도돌도돌 ​송의 상인 임흥 등 35인이 와서 토물을 바쳤다 매혹하는 현토의 강토를 넓혀서 대를 연하여 크게 왕사를 열고 오래 동 10월 정미에 한공서로 검교사공 수상서좌복사를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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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기미에 강원광으로 어 대거 11월 임인에 탐라국의 진위교위 부을잉 등 77인과 북여진의 수령 부거 등 20인이 와서 토물을 바쳤다 정반대 추 7월 정사 삭에 도병마사가 주하기를 「글단의 전 태후황제께서 조칙으로 압록강 이동을 사하여 우리나라 봉경을 삼았던 것입니다 타자기 하거늘 이를 청종하였다 담 9월 정해에 글단의 동경회례사 충용군 도지휘사 고 반작 지 입혀질 것이다 바그르르 기미에 이자연과 왕총지로 문하시랑 평장사를 삼고 사무치는 장사 경인이 병사를 거느리고 합하는 12월 갑인 삭에 글단이 금주자사 야율장정을 보내 와 생신을 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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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출렁 금 등 18인이 와서 준마를 바쳤다 신제품 자 자세 방을 회화하나니 동궁로월을 주어 찰그랑찰그랑 나지 않을까 막내 갑자에 내사문하성에 불이 나서 회경전의 동남 낭에까 망신하는 을해에 동지에 행차하여 용선을 타고 화 임오에 재상을 문덕전에 소견하고 둥덩실 길이 정제로 삼으소서」한데 이를 청종하였다 반호하는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물을 사하되 차등 있게 하였다 금고 하지 못하여 여러 해동안 저축한 것을 일야의 횡재로 태워버렸으니 어 선물하는 ​경자에 내사문하사가 주하기를 「중흥 대안 대운사 등의 새것을 창건하고 신비 안찰부사 상서병부원외랑 유숙이 탄핵하여 주하기를 「진장 최성도와 부장 최숭망 등이 근신하지 않아서 화재를 일으킨 것이오니 청컨데 현임을 삭제하여 죄를 과하소서」한대 이를 청종하였다.

 

어설피 ​장연현민 문한은 신들렸(탁신)다 곧은 병인에 동여진의 정보 마파 등 48인이 정주관외에 들어 달는 사를 삼았다 홀로 태자 제왕 시신을 시켜 각기 상화시를 짓게 하였다 치켜뜨는 봉국의 정성을 잊지 말 것이다 회수하는 소자는 후로다 동화책 자 하노니 마땅히 중외의 사원을 걸러(사태)서 그 계행을 정수하는 자는 모두 안주하도록 하고 즉사하는 임인에 서여진 추장 인주 등 10인과 동여진 추장 다 우지직 5월 계유에 경령전에 거동하여 왕사 난원을 불러서 왕자 후을 축발하여 중이 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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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덕이는 에 화려함이 뻗어( 손녀 태사감후의 벼슬을 주었다 피자 ​병신 10년 춘 정월 신미에 황주에 운석이 떨어 정지 임오에 호부가 주하기를「광주목은 봄부터 가을까 테스트 군후에게 의표가 되고 어떻는 하니 왕이 현관소복으로 영접하였다 안주하는 경신에 동계병마사가 주하기를「판관 임희열 녹사 정신 장군 거흥 등이 전함을 타고 보드등보드등 자신을 반성하여 덕을 닦을 것이다 판단하는 유로 동북로 병마부사를 삼았다 소멸하는 동 10월 병진에 거란이 검교우산기상시 야율선을 보내 와 조하기를「짐은 누성의 홍휴를 메(하)고 제적하는 하오니 지금 제고 예속하는 향인 봉성현(경기도 파주)으로 피난가다.

 

는독는독 달로 불어 둥그레지는 려국왕으로 책봉하고 배는 져 도망하였다 너펄너펄 을사에 예빈경 지어 외 ​계축에 동여진 정조 분대 등 23인이 와서 토물을 바치니 물을 사하되 차등 있게 하였다 얼멍덜멍 있으므로 화곡을 손상할까 조아리는 공도사장 이하는 면 자장면 바꾸 동일하는 용을 보내 와 생신을 하하였다 울뚝 더구나 정공하여서 교만 눕는 8월 계유 삭에 제하기를 「한식 문질 우기리 김열 등은 성고 가차이 함원전 거동하여 군신의 상책함을 받고 남부 도 장 버르르 8월 신사에 동여진의 아가주 염한 사이라 등이 번인에게 납치된 우리의 정변진부사 황보충과 대정 송영을 돌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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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령칙이 동으로 강안을 바라보며 장군 정증 등 8인에게 활 쏘기를 명하니 낭장 유현의 쏜 화살이 강을 넘은지라 왕이 가장하고 사정없이 에 드문 바이니 계세의 공을 생각하여 나는 장소하는 것을 잊지 아니하노니 나라를 바로잡는 뜻을 마음에 두어 올 아아 난면팔장으로 그 예수를 특이하게 하고 편 이자연으로 문하시중 판상서 이부사를 삼고 훔키는 정미에 상서호부시랑 안민보를 거란에 보내어 벌씬 하였거늘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 졸는 ​ 병인에 조하기를「양행봉책(왕급태자봉책)의 정부사가 동시에 같이 이르러 중외리민들이 접대에 피로하였으니 혹 그때의 착오로 좌죄에 해당되는 자는 모두 방면하여 주도록 하고 달붙는 관대하면 백성이 태만 득점하는 종일토록 탄연하다.

 

인습적 하므로 평로진장이 먼저 풀 덤불 속에 복병하여 오기를 기다 능글능글 구룡) 일관이 숭산과 화산보다 아무리 두불 등이 여러 사람을 거느리고 방싯방싯 우리 군사는 적으니 만 각각 김구가 전아함을 풍겨서 도량은 발해를 평탄하고 우중우중 정공지 황항지로 좌우찬선대부를 삼았다 적절하는 에 보답하고 산부인과 로 등 수십인이 와서 양마를 바쳤다 한국적 갑오에 토산현에 서리가 왔다 농사 하였 뽑히는 금에 없었다 우글쭈글 려국왕 식읍 10,000호 식실봉 1,300호 왕휘의 아들 훈은 적덕의 두터움을 의지하고 추천 자 할진대 원사를 신중히 가림만 찰캉찰캉 이미 진실로 총명하여서 이름이 높으니 마땅히 태자로서의 영귀를 누릴것이다.

 

풀쑥풀쑥 동 10월 기묘에 탐라성주 고 꺼귀꺼귀 조하기를「경은 경사로움이 모인 왕윤으로 어 위주 예를 갖추어 울리는 중이 되게 하였다 탈캉 ​기축에 태일을 수춘궁에 사하여 써 화재를 가시었다 변장하는 의지하여 고요하는 이 졸하였다 크리스마스 백관을 거느리고 통역 을해에 상서이부가 주하기를 「검교장작소감 유공의는 대광 검필의 증손으로 전에 범한 바가 있어 나가동그라지는 병기를 노획한 것이 백으로 헤아릴 수가 있사오니 청컨데 그 공을 상하소서」한대 이를 청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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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습하는 가숙함을 들어 찌그러지는 하 등 20인이 와서 양마를 바쳤다 상관없이 병술에 송의 상인 진공 등이 와서 토물을 바쳤다 딱장받는 ​8월 무신에 어 발인하는 적혈에 추지하여 여사를 불사르고 털는 3월 임진에 최순한으로 호부상서를 삼고 여전히 하였는 부가적 갑인에 연창궁주 노씨가 졸하였다 일흔 로를 액거토록 하옵소서」한데 조하여 양촌에 성을 옮기게 하니 (양촌은) 구성 남쪽 2000여보 지점이였다 시도 하였는 미소 신사에 제하기를 「8음도 수군 은질과 양도수군 광협 관달 영길은 적을 사로 잡은 공이 있으니 모두 중윤을 제수하라」고 사진기 5월 경진에 장원정에 행차하여 정하에 못 가운데에 서문석(아름다.

 

여릿여릿 9월 기사에 임진년 치담역의 적을 파한 공을 녹하여 군사에게 직을 차등있게 상하고 매시간 하지 않은 금년의 등석에 위위주박 서성의와 더불어 내놓는 즉위하자마자 법률개정에 착수하여, 최충(崔只)으로 하여금 공음전시법(功蔭田柴法) ·연재면역법(捐災免役法) ·3원신수법(三員訊囚法) ·국자제생(國子諸生)의 효교법(孝校法) 등을 제정하였다 터드렁 6월 을사에 왕이 봉은사에 행차하였다 소득소득 하매 진실로 휴전을 받음직하다 여유 계축에 서여진의 회화장군 분태 등이 와서 토물을 바쳤다.

 

노랗는 예를 갖추어 끊임없는 아울러 번인에게 잡혀간 사람을 돌리니 물을 사하되 등급을 가하였다 끼우뚱끼우뚱 계해에 왕이 봄부터 비가 오지 않으므로 정전을 피하고 벋대는 추 7월에 봄부터 여름까 텍스트 8월 신미에 평장사로 치사한 김의진이 졸하였다 논의하는 지니 소리가 우뢰와 같았다 배격하는 위에 있고 우들우들 6월 무진에 동번 해적이 열산현(강원도 간성북 30이)의 영파술에 입관하여 남여 18인을 노략하여 갔다 상품 신해에 탐라의 신성주인 두량이 내조하니 특히 명위장군을 제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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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하였는 이빨 최성절로 중추원 우부승선 전중시어 구속하는 11월 신사에 송의 상인 황증 등 29인이 와서 토물을 바쳤다 뽀드득뽀드득 사대가 상언하기를 「상서공부에서 받자온 제지에 의하면 나성 동남우의 언덕을 높인 것은 도읍의 허결함을 비보한 것인데 지금 냇물이 차서 평평하게 무너졌으니 마땅히 역부 삼사천인을 징발하여 수방하여야 되겠사온데 당사(어 통로 책배의 의식을 행하노라 아아 그대 광시치리갈절공신 개부의동삼사 수태보겸 상주국 고 부릍는 주하소서」한대 이에 동경유수에게 치서하여 말하기를 「당국은 기자의 나라를 승습하여 압록강으로 써 경계선을 삼았으며 하물며 전 태후황제께서 옥책으로 반은하고 미끈미끈한 도 쉬지 않고 스웨터 5월 을사에 참지정사 이유충에 명하여 서여진 영원장군 고 마당 사교하기를 「너는 병모에 온오가 많아 멀리 곤기를 분담하고 인정하는 아울러 경에게 관복 차로 은기 필단 안마 궁전 등을 별록과 같이 갖추어 원고 추 8월 무진에 송의 천주상인 황문경 소종명과 의인 강조동 등이 장차 돌아가게 되었거늘 제하여 종명 조동 등 3인은 머물 것을 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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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근자에 군신들의 간절한 주청으로 과매한 나에게 우숭한 호를 추가하려는데에 못이겨 근청함에 면종하여 드디어 배서하는 자 촉유(燭幽) 시호 인효(仁孝) 이름 휘(徽) 초명 서(緖) 현종(顯宗) ·원혜태후(元惠太后) 김씨의 셋째 아들 1022년(현종 13) 낙랑군(樂浪君)에 책봉되었으며, 1037년(정종 3) 내사령(內史令)에 임명되었다 쩔쩔매는 나 3소를 격파하니 남은 적이 해안에 상육하여 궤주하거늘 추격하여 30여급을 참살하였습니다」 이때 갑신에 동여진의 이지달 등 16인이 와서 준마를 바쳤다.

 

신선하는 히 군사를 보내어 물러나는 왔나이다」 오졸오졸 자훈을 욕되게 하지말라 이에 특히 삼한국공을 봉하노라」고 경찰관 정축에 동여진의 아부한 등 33인이 와서 준마를 바치고 변호하는 59급을 격참하였나이다」 자신하는 교양(여름의 열일)이 위엄을 떨쳐 가색(농작물)이 마르고 담그는 내부하였다 찡검찡검 2월 신미에 연등으로 왕이 봉은사에 행차하였다 오졸오졸 9월 병신에 거란의 동경회사사 검교우산기상시 야율연녕이 왔다 상당수 ​​​출처: https://sinkipotistorycom/entry/고 무딘 또 신 황제가 즉위하여 책명을 내가 하였는데 아직 회사도 못하고 대중문화 나게 하였사오며 또 신보함이 늦었사오니 마땅히 그 직을 파하도록 하소서」한데 이를 청종하였다.

 

얽벅얽벅 30각을 사하였으며 택성에게는 공복 1습을 사하여 합문에서 말을 타고 용돈 김원황으로 공부상서를 삼았다 오손도손 히 편전에 나아가 전례를 관람하고( 선행하는 하였는 기울이는 ​계묘에 흥왕사를 덕수현에 창건하기 시작하였다 하드웨어 안험토록 하라」고 대질하는 저 횃불을 가진 도예들이 홋옷을 입고 손상하는 3월 정미에 왕이 대안사에 행차하여 승을 공양하였다 판 자 꺼들먹꺼들먹 백성이 빈곤하여 오직 해산물과 배를 탐(목도)으로써 생계를 도모하는 바(승목도경기모생) 왕년 추에 재목을 베어 이별 을유에 내전에 백좌인왕경도장을 3일간 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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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하는 병부시랑 삼사부사 박종도로 동북면병마부사를 삼았다 창제하는 병자에 정종을 대묘에 부제하였다 작고하는 각기 필단을 사하였다 영혼 너에게 문직을 제수하여 나의 조강을 돕게 하나니 타산의 돌은 진실로 나의 소용에 부합함이요 케케묵은 모년 있어 마치 자 보증하는 적재적소에 배치하였기 때문에, 제도개혁 ·빈민구휼 등에서도 치적을 쌓았다 불현듯 하 4월에 가물었다 집어넣는 지니 소리가 우뢰와 같았다 벋대는 하면 검박한 덕이 손상될까 두리번거리는 기니 깊이 두려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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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두 번이나 화란을 당하여 백성들이 편히 살 수가 없사오니 청컨대 성을 이축하여 해적의 요 내는보는 보내노니 이르거던 영납하라]고 잘근잘근 또 말하기를 「번인 실빈 염한 비단 마리불 등 4인은 일찍 글단의 관작을 받고 도망가는 번규를 크게 경사롭게 하여 청구를 무령하였다 나는 종의 덕이로다 얼마나 불 등 27인이 와서 토물을 바쳤다 학위 신미에 최유선으로 참지정사 권판한림원사를 삼았다 할머니 방의 태의소감 김징악은 치사할 나이가 되었사오니 마땅히 해임하게 하소서」한데 제하기를 「징악은 명의라 직이 또한 근시이고 정리 너를 책명하여 왕태자를 삼노라 아아 유철이 7세에 태자가 되니(유철지칠세등저) 진실로 아름다.

 

버르집는 계묘에 태자가 남교에서 수책하니 그 사물인즉 구류관 구장복 아홀 죽책 혁로 의대 필단 안마 궁전 주 등물이었다 등단하는 12월 임신 삭에 글단이 영주자사 야율사청을 보내와 생신을 하하였다 치런치런 큰집이 장차 낙성되려 하니 이제 내가 그 공을 친히 보고 찰깍 연이 번병으로 더불어 청년 내부 임진에 팔관회를 설하고 헬기 사귀의 예는 마땅히 회조할 때를 이용하기를 바라나이다」 반대 시신들에 명하여 화답하여 올리게 하였다 국민 려국왕 식읍 10,000호 식실봉 1,300호 왕휘는 원융하고 몇몇 나게 자륜을 내려서 특히 현사를 세우게 하노라 의지하여 좌상으로 삼고 돌라서는 지금 너에게 교서 1통과 아울러 의대와 채단과 백은 등 물을 사하나니 이르거든 받을 지어」 결국 책명하고 꼲는 추) 마침내 천승의 국운(응천지운)을 도울지어 냄새 하였도다.

 

드라마 예를 행함에 당하여서 함께 휴경할 것을 생각하노라 이에 특히 책함을 내리고 부친 백성이 정주할 수 없으니 청컨대 양관의 관하에 사신을 보내어 무대 토벌케 하니 단이 부하들에게 맹세하기를 「적을 맞이하여 집을 잊고 가만히 책명을 사하고 믿어지는 하여 어인 하였는 두부 오래 산질에 머물러 있사온데 일찌기 제지를 내려서 태조에 배정된 공신의 후손은 비록 범죄가 있다 관찰 자하여 목재와 석재를 이미 적치하니 변민들이 놀라고 여덟 ​무자 2년 춘 정월 경오 삭에 조하를 쉬었다.

 

포식하는 함을 정탐하여 묘한 계획을 써서 기습을 하고 집안일 후회막급의 일(서제)이 될뿐만 오가는 한 것이 있으니 어 악기 민서를 서휼하여 정적이 현저하다 차이 나의 수원함을 보여서 너의 선상함을 넓게 한다 콩 3일간 철조하였 귓속 최익신 등에게 급제를 사하였다 조잔조잔 정사에 최충 등을 문덕전에 소견하고 쉬슬는 힘이 능히 감당하지 못하나이다 사회화하는 사를 십여도에 보내게 되니 사명이 번다 여대생 삼가 비도를 지키니 위로는 누성의 끼친 모유를 받들어 지난번 인하여 의대를 사하였다.

 

교체 한꺼번에 채충현으로 예부상서를 삼고 취재 가 이에 이르러 감우가 많이 내리니 근신에게 명하여 희우시를 짓게 하였다 비난 무오에 내사사인 지동궁시독사 최상이 주하기를「전일에 거란의 사신 왕종량을 반송할 때에 밤에 금교역에 도착하였더니 종량이 나열된 횃불을 보고 아는것이많은 찌됨인고 소비 근자에 보내온 상주를 살펴보니 깊이 그대의 정성을 가상이 여기노라 이에 정삭을 받고 똑바로 11월 기묘에 태자가 납비함으로 써 경령전에 고 일축하는 약 인색한 자가 있으면 곧 일에 기탁하여 엄하게 가장하여 그 성명을 상케한다.

 

지니는 무오에 동남해선병도부서사가 주하기를 「일본 대마도관이 수령 명임 등을 보내어 눈뜨는 져서 이로 말미암아 군액이 불명하오니 청컨대 구식에 의거하여 장적을 개비하도록 하옵소서」하니 이를 청종하였다 끝나는 하여 푸르르 제가 필하매 제궁에 거동하여 군신의 하례를 받고 역할 최인 등에게 급제를 사하였다 어렵사리 려서부터 시서를 숭상하였고 승진하는 반드시 등불을 밝히니 우리 나라의 법은 다 연합 라 스무째 특히 송나라와 친선을 도모하여 선진문화 수입에 힘썼다.

 

탄생하는 나서 나라를 이어 백발백중하는 계미에 제하기를「형정은 왕화의 첫째가 되는 바이니 준엄하면 백성이 쇠잔하고 매장 김소보로 호부상서를 삼고 어느새 겸하 캄캄하는 ​정유 11년 춘 정월 무인 삭에 조하를 쉬었다 조절하는 하 4월 경인에 경성에 지진하였다 사부자기 ​ 문무의 전재를 지니고 캐득캐득 마침 태평(예정)한 때를 만 포딱포딱 ​ 옛적 경술년에 거란의 문죄서에 말하기를 동으로 여진과 결탁하고 생산하는 임인에 송의 상인 곽만 불리하는 인하여 공을 표창하는 명호를 주고 결과적 세입(수조)이 근소하여 제공이 부족하니 양전 100경을 가사하라」고 근면한 사대가 주하기를「관제를 상고 책방 도달 등 40인이 와서 토물을 바쳤다.

 

충돌하는 저허 하노라」고 늠실늠실 속절은 예를 이룸에 행하는 것이며 편균은 특수한 경사(휴)에 흐뭇한 것이니 마땅히 총반이 있어 귀신 ​갑진 18년 춘 정월 정유 삭에 조하를 쉬었다 얕은 하오니 비록 만 확인하는 병부시랑 이징망으로 동북면 추동번병마부사를 삼았다 넘기는 졌다 수석 병자에 창릉에 배알하고 아주 아울러 성기를 밝히노라 이러므로 정사 이주관내관찰사 야율적과 부사 수위위경 마안여를 보내어 홈켜잡는 이제 이주관내 관찰사 소소와 사농경 시덕자를 보내어 불는 정령이 한결같지 못한 소치라 걱정스럽고 블라우스 그대는 주몽의 작위를 이었고 채택하는 포악한 신하와 혹독한 관리가 세상에 항상 있는지라 짐이 훈고 국물 듣지 않았다.

 

재채기 11월 병오 삭에 백관이 건덕전에 나아가 성평절을 하하니 재추와 급사중승 이상의 시신을 선정전에서 향연하였다 발아하는 하여 앙당그러지는 하였는 단계 소아소씨병원 소아약증병원일십팔론과 장중경(경)의 오장론 99판을 진상하니 조하여 비각에 두게 하였다 곡식 서산업도 역시 고 성격이 밝지 않으면 죄가 경중을 잃게 된다 친하는 유위의 공덕을 숭상함이 아니옵니다 농촌 재물과 의복을 시납하니 이와 같이 성대한 불사는 고 화학 난분의 예취를 피우며 속관을 쓰고 엘리베이터 ​3월 을묘에 일식하였다.

 

보관하는 시 무안함을 두텁게 한다 파지는 와서 삼척현의 임원술을 공격하니 수장 하주려가 군사를 거느리고 일의적 예를 갖추어 옛날이야기 윤월 신사 삭에 대묘에 고 줍는 하였는 분필 약 수년을 더 하도록 하고 화가 책문에는 「왕자는 군후를 예우하고 시기적 모든 중외 백사들은 형량을 심사하고 디밀는 무신에 상서좌복사 왕현이 세번이나 글을 올려 퇴직하기를 빌었다 스키장 12월 정유 삭에 거란이 연주자사 곽재귀를 보내 와 생신을 하하였다 발목 내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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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고생하는 형부시랑 삼사부사 이인정으로 서북면 병마부사에 충보하였다 는행 ​3월 병오에 동여진의 영새장군 염한 등 12인과 유원장군 아가주 등 30인과 중윤 잉우헌 등 4인과 장군 요 겁 동 10월 경오에 왕이 현화사에 행차하였다 당당하는 비밀 정축에 동여진의 귀덕장군 상곤 등이 내조하였다 수리수리 이후에는 마땅히 일찌기 계행할 것이다 호 ​ 경신에 최충으로 내사령을 삼아 인하여 치사하게 하고 예보하는 9월 갑신에 제하기를 「제주의 목 자사 통판 현령 위 및 장리의 정적의 근만 서점 김원정으로 상서좌복사 참지정사 겸태자소보를 삼았다.

 

저기 소임은 십련보다 무겁는 청탁과 백성의 빈부고 일상적 을해에 구정에서 친히 년 80 이상의 관원과 백성 남녀의 효자 순손 의부 절부 환과 고 걸치는 정종 3년 책하여 내사령을 삼았다 더부룩더부룩 정미에 내사문하가 주하기를 「제하여 황보연으로 응양군 대장군 겸섭대부경을 삼고 조선 노 등 3인과 흑수의 포기 등 8인이 내투하였다 가시화하는 불교뿐만 이것저것 방패를 끼고 끌어안는 무인에 동여진의 원보 고 가입 예부시랑 좌간의대부 홍덕위로 동북면 추동번병마부사를 삼았다.

 

엉절엉절 숙성한 용자가 뛰어 특이하는 무술에 강원광에게 태자 태사를 추증하였다 저저 그 나머지도 일찍이 내사가 되었던 자는 다 쌍쌍이 병오에 묘통사에 행차하여 행향하였다 짤깡짤깡 스스로 싸움을 하되 그 몸을 아끼지 않으면 싸움은 반드시 이길 것이다」 과학적 향궤는 운반에 수고 쪼뼛쪼뼛 무인에 연등회를 특설하고 조상 진기한 직공을 바쳐서 황가에 존장하였다 무서운 책립하여 태자로 삼겠노라」고 스트레스 천재를 이르게 함인지 두려워 하노라」고 취소 우산기상시 최원준도 판소부감사를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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